“도대체 일은 언제 해 주실 겁니까!”
서방아의 문을 열자 들려오는 거친 언성에 달자는 흠칫 눈을 들어올렸다.
소리를 높여 말하던 검은 형체의 인물이 달자를 힐긋 바라보는 듯 하다. 험난한 분위기에 오도가도 못 하고 서있는 달자에게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해왔다.
“찬바람 들어와. 문 닫아.”
‘네’ 하며 문을 닫는 달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려보자 그 사람은 벌써 달자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였다.
책상 앞에 서서 오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자는 달자가 알지 못하는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그는 검은 머리에 검은 테의 안경, 검은 양복에 검은 구두, 심지어 팔에 걸치고 있는 겨울용 코트마저 검은 색이다.
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검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모습이다. 그렇게 차려 입은 남자는 외모로 보아하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미남자였다. 이미지는 좀 강해보이지만 단정하면서도 지적인 외모를 갖추고 있다.
오구가 선이 가늘며 화려한 용모로 호청년의 이미지라면 -물론 대외적 이미지지만- 검은 옷의 남자는 몸은 호리호리하지만 반듯하게 균형 잡힌 체격으로 날카로운 이미지였다. 차가운 눈빛과 오똑한 콧날, 뚜렷한 이목구비, 한 가닥도 남김없이 뒤로 넘긴 머리가 남자의 차가운 이미지를 더 부각시켜 주었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힐끗거리며 달자는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왔지만 무얼 어찌 하면 좋을지 모를 분위기이다. 평소처럼 목재의자에 앉아있을 분위기도 아니고, 청소를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래서 발소리를 죽여 책장 옆의 한 구석으로 더듬더듬 걸어갔다.
푸드득―
“우왓!”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달자는 책 더미 위에 넘어지고 말았다.
“조심해. 다치면 네가 배상해야 되니깐.”
오구의 말과 함께 기척이 나는 옆을 바라보니 작은 새 한 마리가 새장 안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달자가 놀라 넘어질 때 손에 걸렸던 것이 새장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웬 새인가 하며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배상이라는 단어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새장을 들어 주위에서 제일 안정되게 쌓아진 책 더미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뒤 다시 새장 안을 바라보자 새는 보기에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병약해 보였다.
달자가 넘어트려 다치지 않았어도 -물론 이 소란으로 다치진 않았지만- 마치 목숨이 얼마 안남은 듯한 모양새다.
“오구 씨, 웬 새에요?”
“몰라도 돼.”
달자는 왠지 가련한 마음이 들어 새장 안에 줄어든 물을 채워 주었다. 그러자 새는 잠시 머뭇거린 뒤 힘겹게 걸어와 부리를 물에 담갔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한다니깐. 뭘 서두르고 그래.”
무덤덤한 오구의 말로 다시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출판사 사람이라 생각하며 처음 본 그의 모습에 담당기자가 바뀌었나 보다 생각하며 달자는 구석이긴 하지만 책장 틈 사이로 둘의 모습을 새장 옆에서 지켜보았다.
오구의 얼굴은 의자가 돌려져있어 보이지 않는다.
“오구 씨!”
참다못한 건지 차가운 음성으로 검은 옷의 남자가 오구를 부르며 의자를 돌려 세웠다. 귀찮다는 표정을 역력히 내뿜는 오구의 작은 얼굴이 보였다. 검은 옷의 남자와 함께 있어서인지 은발에 가까운 청회색 머리가 유독 하얘보인다. 자신에게 돈을 주는 출판사일 터인데 오구의 태도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다.
'어쩐일이래...저 돈귀신이. 담당자에게 툴툴 거리기까지 하고.'
“이 지역의 명부첩을 지난달에 보내드렸습니다. 받아 보셨지요?”
“받아보긴 했지.”
넓지 않은 공간인지라 둘의 대화는 틀리지 않고 달자의 귀에 잘 들려왔다.
명부첩?
죽을 이들의 이름, 수명, 죽는 법이 적혀있다는 명부첩?
저승사자들이 들고 다닌 다는 명부첩?
달자는 아무리 자기네 집이 무당집이라 해도 특별히 이 세상것이 아닌 것을 본적이 없기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구를 알고 지낸 지도 거진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오구가 솟대의 신인지 뭔지 굳건히 믿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그냥 흐름에 따라 지내고 있을 뿐이다.
이젠 그가 솟대의 신이건 인간이건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너희들이 일하기 싫다고 억지로 떠넘기는 건 좋다고, 하지만 나까지 그 일을 도와 줄 필요는 없잖아. 그보다 너희 일은 너희들 끼리 알아서 해결해. 저승사자면 저승사자답게 조용히 내려와 죽은 영(靈)이나 제 때 제 때 데려가라고.”
“당신은 너무 비협조적입니다. 오구 씨. 저희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거라 말씀하고 싶은 신거군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같은 솟대의 영조라 해도 이건 효조 씨와는 너무나 비교가 되는 군요. 그분은 본인의 일이 바쁘신 와중에도 저희 일이 바쁘다면 기꺼이 이곳까지 와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 몇 달 전에 영(靈)하나를 명도(冥途)의 입구까지 데려다 준 것이 다지 않습니까!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일다운 일은! ......하, 뭐 그건 그렇다 치고요.”
반듯하게 균형 잡힌 자세가 흥분으로 인해 조금 흐트러지려 하자 검은 옷의 남자는 곧 옷매무세를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런 정신나간 까마귀 여자하고 날 비교하지 말라고. 그리고 난 하고 싶은 일만 할 거고, 그 일도 하고 싶을 때에만 할 거야. 몇 번을 말해.” 오구가 귀를 후비며 말한다.
“요즘 시대에는 자살, 타살이 늘어나서 질서 없이 죽어가는 혼령들로 인해 저승의 일이 마비까지 될 정도로 바빠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이승에 사시는 당신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직 제 명 다하지 못한 인간들이 죽음을 택해 저승에 오면, 저희 저승사자들에게 그 혼들은 정화되지 않은 혼! 그것이 바로 독이 됩니다. 이로 인해 부정으로 죽은 영(靈)과 아픈 저승사자들이 늘어만 갑니다. 그래서 저승에서는 하나의 방책으로 당신들. 바로 솟대의 영조들을 도움의 손길로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솟대의 영조이시니 잘 아시겠지요. 솟대는 마을의 재액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만 새(鳥)로써 현세와 내세의 매개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죽은 영혼을 타계(他界)로 운반 할 수 있는 안내자라는 것. 이것이 당신들 솟대의 영조가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는 당신들에게 정중히 부탁을 한 것입니다. 원하신 다면 지상과 천상을 이어줄 장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물건 역시 저희가 새로이 준비해 드린 다고도 했고요.”
달자는 숨을 죽이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는 또박또박한 어조로 긴 내용의 말을 빠르게 끝마친 뒤 오구를 바라보며 안경을 쓸어 올렸다.
솟대. 영조. 저승사자. 영혼. 그리고 이승과 저승.
정말이지 현실에서는 책이나 만화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올 해의 마지막 일입니다. 저희 뜻을 아셨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검은 봉투를 오구의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오구는 마지못해 알았다며 손을 휘휘 저으며 가보라 한다.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를 한 뒤 걸음을 돌리고 문을 열고 나가려다 구석에 있던 달자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눈빛이라 생각되는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에 숨이 멎는 듯 했다. 짧지만 긴듯 한 시간 동안 달자에게 시선을 주던 남자는 이윽고 서방아를 떠났다.
“오구 씨! 저 사람 누구에요? 아니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아닌데…, 저승사자! 정말 저승사자에요? 정말 오구 씨 사람이 아니었어?”
달자가 생각해도 하영의 실종 이후 오랜만에 숨 가쁘게 올라오는 텐션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그럼 내가 아직까지 사람인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 바보 같은. 그보다 일은 며칠째 내팽겨 치고 뭐하자는 거야.”
“오구 씨야 말로 일도 안한다고 아까 그 사람이 그랬잖아요. 그보다 정말 저승사자에요? 나 지금까지 그런 거 본적 없는데… 귀신이라든가… 귀신이라든가?”
“그럼 저게 뭐로 보여? 저런 구질구질 우중충한 검은 옷만 입고 다니는 녀석들은 저승사자 놈들 밖에 없어.”
“완전 잘생겼는데요!”
“잘생기기는...너는 뇌 용량도 딸리지만 눈도 이상해졌냐? 안과나 가서 정밀진단 한번 받아봐라.”
아우, 이 싸가지-
“그리고 네가 그런 거 보이는 것은 체질이 바뀌었나 보지”
오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 뒤 봉투까지 검다며 책상위의 봉투를 째려보았다.
“체질변화라…, 그보다 오구씨도 검은 옷 잘 입잖아요.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검은색?”
“좋아하기는. 그리고 내가 검은 옷을 입는 것과 그 녀석들이 검은 옷을 입는 거는 센스가 다르자나. 그놈들은 정말이지 얼굴에 나 저승사자요. 하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달라. 하긴 예전에는 그 얼굴에 허연칠까지 하고 검은색으로 눈 밑에 다크 서클 마냥 그려 넣기 까지 했으니 말 다했지. 정말 센스가 없다니까. 그렇게 생각 안하냐?”
오구의 연설에 달자는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구는 아무래도 아까 검은 옷의 남자에게 한 소리 들은 것이 맘이 상한 모양이다.
근본부터 삐뚤어져 있는 영조다.
“봉투 안에 그거 명부첩이에요?”
“그렇겠지. 이것들 허울만 좋게 이런데다 돈 쏟아 붓기나 하고.”
혀를 차며 봉투를 열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자 검은 가죽에 옆으로 빨간 끝이 묶인 자그마한 고서 느낌의 책자가 한권 나왔다. 가죽에서는 조금 광택이 나며 고급스러운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오구는 그런 것을 하찮다는 듯 책상 모서리 부분에 톡톡 쳐댄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명부첩을 바라보고 있자니 달자의 머리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영이다!
“저기 오구 씨. 그 명부첩을 보면 죽은 사람이 언제 어찌 죽었는지 알 수 있는 거죠?”
오구의 대답이 없다. 그건 그렇다는 긍정의 뜻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제 친구 이름도 있지 않을까요? 복숭아집에 살았던 제 친구요.”
하영의 시체가 발견되고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시체가 발견된 날부터 온갖 미디어 들은 떠들 썩 했었다. 십대 소녀의 가출로 알았던 사건이 사실은 살인 사건이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온갖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11일 A시 OO동 OO학교 뒤편 과수원에서 여성의 시체 한구가 발견됐다. 복숭아밭을 관리 중이던 주인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며칠 동안 내린 많은 비로 인해 흙이 무너지며 시신의 일부분이 땅 위로 드러났고 한다. 시신은 많이 부패된 상태로 신원은 바로 확인 할 수 없었으나 옷차림으로 인해 8월 말 실종된 인근의 여고생 유모양(18)으로 추측, 시신 발견당시 가족이 확인했다고 전했다.
사망의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목 부분의 자상이 경추부까지 깊숙이 찔린 것으로 보고있다. 정확한 사인과 사망시간, 유전자 검사결과는 국과수 부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한다.
OO일보 』
신문과 뉴스에는 낮이고 밤이고 하영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주검이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사진이 각 신문사의 1면을 장식했다. 실신하여 스러지는 달자와 친구들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함께 실려져 있는 신문도 있었다.
살인사건의 첫 번째 용의자로는 우선 이전부터 하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새엄마 미옥이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하영이 실종 되고 얼마 안가 밝혀진 그대로 그녀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어 하루도 안 돼 풀려났다. 기천은 경찰이 그녀를 용의자로 삼은 것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분노를 알렸다. 그런데 그것에 이어 두 번째로 미옥을 감쌌던 기천이 용의자가 되었다. 그것은 2층 하영의 방문 앞에서 다량으로 사용된 표백제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안을 청소하는라 했다고 하기에는 한 부분만 유독 많이 사용된 것이다.
경찰은 표백제에 들어간 HClO- 하이포아염소산을 사용하면 혈흔감식을 망칠 수 있다는 지식을 갖춘 인물일 것이라는 거다.
하지만 기천은 모르쇠로 일관했고 언론은 수사가 진척이 안 되니 피살자의 부모까지 범인으로 몰아넣는 다며 더욱 경찰을 비난의 길로 몰아넣었다.
더군다나 가출로 수사방향을 잡았던 형사들이 하영의 집을 들락거리면서 현장은 이미 오염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건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집안 청소도 수십 번은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유의성이 있는 증거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피를 닦아낸 흔적이 있다는 정황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고 무더운 여름부터 겨울을 땅속에서 지낸 시신은 기후와 여러 변수로 인해 구체적이며 정확한 사망날짜와 시간을 추정하기에는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정확함을 요하는 알리바이 대조는 사망 시간 불분명으로 확인조차 해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영의 가출 일을 기준으로 본다면 하영이 알고지낸 지인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있는 셈이다. 정확한 사망날짜를 아는 것조차 매우 애를 먹었다.
이러 저러한 문제로 사건은 진척되지 않았고, 세간이나 언론의 관심 역시 2주도 안 되어 멀어져 갔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바보냐. 생각 좀 해. 네가 듣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네 친구는 죽은 지 몇 달 만에 발견 된 거잖아. 그때의 명부는 이미 내손을 떠 난지 오래야. 그보다 지금부터 나갔다 올 테니 서방아나 잘 지키고 있어. 어디로 셀 생각 말고 손님 오면 공손히 인사하고 잘 팔고 두 시간 있다 새 모이 좀 주고 물도 갈아주고.”
달자가 할 일 만을 남기고 오구는 서방아를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갑자기 웬 새냐고 물어 보고 싶었는데 그럴 틈도 없이 달자는 혼자 서방아에 남겨졌다.
일할 마음도 들지 않아 달자는 책 더미에 아무렇게 주저앉아 바깥과의 기온차로 인해 생긴 결로(結露)가 낀 유리창 너머의 복숭아 집을 바라보았다.
봄날의 화려한 언덕 집은 이제는 인가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알고 있는 것 마냥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는 기천의 마음도 저 집과 같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겨울에 이사와 죽음을 당해 그해 다음 겨울에 발견된 유하영.
서글프기 그지없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