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랫목에 앉아 곰방대에 불을 지피는 말년 앞에 하영의 부, 유기천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그 둘 사이에 앉아있던 달자의 눈에 비친 기천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을 정도로 초췌하다.
말끔해 보이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인 듯 하고 헝클어진 머리 모양새도 신경 쓰지 않고 콧등에 걸친 안경만 수시로 만지작거린다. 온 몸에서 피곤함을 찾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편히 앉으세요. 얘기론 우리 달자 친구인 하영 양의 아버지가 되신다고요. 따님의 일은 참 안타깝게 됐소이다.”
말년의 위로 섞인 인사에 기천은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경찰은 뭐라합니까? 사건의 진척은?”
달자는 할머니가 어째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의 경위가 발표된 어제, 달자와 함께 신문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말로는 목이 단도에 찔려.....”
“단도? 과도 칼 같은 거 말이요?”
“네..., 단도가 목을 관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피가...피가.....”
기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본 신문에 따르면 하영의 사망원인은 목에 단도가 관통되면서 그에 따른 과다출혈과 쇼크사라 했다. 목은 관통된 채 세로로 그어졌다 한다. 하지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저항한 흔적은 몸 어디에서도 없었고 물리적 충격에 의한 그 어떤 부위의 손상도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달자는 말년과 신문을 보면서 하영이 발견됐을 당시를 떠올렸다.
깊게 그어진 하영의 목.
부패되고 벌어진 피부사이로 도드라져 보이는 흰 뼈.
달자의 뇌는 잠시라도 멍하니 있을 라 치면 하영의 죽음을 상상하게 했다.
하영에게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
손에 든 날카롭고 번뜩이는 단도.
순식간에 하영의 목을 향해 다가온 단도.
강한 힘에 의해 찔리고 그어진 목.
뇌로 향해야 할 혈액과 산소는 갈 길을 찾지 못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어느새 창백해진 하영의 얼굴을 붉게 뒤덮었다.
달자는 그렇게 하영의 목뼈와 죽음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나를 찾아오신 이유는 그 딸아이 때문이요?”
“예, 딸의 혼령을 위로해 주고 싶다고나 할까…”
“달자에게 듣기로 교수님이라 하니 이제부터 내 그리 부르겠소. 미안하지만 그 전에 갑갑한 장소이나 내 염치 불구하고 담배 한 모금 좀 할 터이다.”
기천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년은 불이 붙은 곰방대를 입술에 물고 깊게 한 모금을 빨았다. 그렇게 잠시 회색의 연기를 빨고 내쉬기를 몇 번, 말년이 입을 열 때 까지 방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말년이 곰방대를 엎어 안의 재를 화로에 털고 무거웠던 입을 연다.
“내 손님으로 온 교수 양반을 신당에서 맞이하지 않고 이리 방으로 모신 건, 그리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오. 댁의 집안 일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익히 듣고 봐서 알지만, 내 무당질을 한 것이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라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만 보아도 그들의 가슴 응어리에 맺힌 게 보인다면 보인 다우. 하지만 교수 양반은....”
말년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깊게 숨을 들이켠 뒤 이야기를 돌렸다.
“무속을 안 믿지 않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어찌 굿을 하고 싶다는 것이오?”
무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는 말년과 그 이야기를 긴장 속에서 듣고 있는 기천을 달자는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 힘없음에 바닥을 짚고 있는 기천의 손가락이 몇 달 전과 달리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여있는 것 같았다.
“물론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무속을 믿지도 않지요. 그렇지만 죽은 딸아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는데 교회를 찾아가 기도를 해야 할지, 절로가 공양을 드려야 할지 고민 하다 예전 딸아이에게 달자양의 집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나 이리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무당집에 사람이 오는 것이 실례라 할 수는 없으니 개의치 마시게나. 그보다 따님이 억울하게 죽은 건 알겠지만, 그래서 굿을 하려는 게요?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기천은 작게 숨을 내 쉰 뒤 달자를 바라보는 듯 하다 말을 이었다.
“제 딸아이는 달자양도 알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참 좋아했던 아이였답니다. 아마 제 친엄마를 닮아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언제나 집안은 아이의 노래 소리로 가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추억을 말하는 기천의 표정이 옛 기억 때문인지 조금 괴로운 듯 일그러졌다. 지난날의 행복했던 일들이 이제는 되돌려 보면 가슴 아픈 추억이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까요… 요즘 들어 자꾸 딸아이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싶습니다.”
“….”
“저희 집은 아시다시피 주변이 온통 복숭아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곳입니다. 그런 집에 혼자 조용히 있다 보면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빼곡히 들어찬 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 아이의 노래 소리와 같이 들리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이야기 이지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제 아이는 목이…, 목이 그어져 있었답니다. 마치 그것이 더욱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저에게 나무가 스치는 소리, 바람의 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있는 듯싶습니다.”
달자의 망막위로 뭉그러지고 일그러진,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무칙칙한 시체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패한 살갗위에 하얗게 도드라진 목뼈―
“바보 같긴요. 정들었던 이가 떠나면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의 소리도, 때아니게 나타난 나비의 모습도 떠나간 이의 혼령이 내려와 나 여기 있소... 하며 말하는 듯 하다는 건 남겨진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이라오.”
말년은 작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콩콩 두드리는 시늉을 했다. 마치 가슴 한 구석에 누군가를 담아 놓고 그것을 확인이라도 하는듯한 행동이었다.
“어르신이 듣기에 제 이야기 역시 그리 들리시겠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 아이의 한을 달래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암―, 그러시겠지요.”
말년의 대답에 기천은 힘을 얻어 다시 한 번 부탁을 해 왔다.
“그러니 값은 얼마가 들어도 좋습니다. 하영을 위해 굿을 해 주세요.”
간절히 부탁 하는 기천의 모습에 달자는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자신은 부모의 정이 라는 것은 모르지만 있다면 저런 것이 아니지 않을 까 하고 생각한다.
“굿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요.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굿, 올 한해를 잘 부탁드린 다며 하늘에 받치는 굿, 죽은 이가 귀신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쫓는 굿 등 여러 굿들이…. 이런 굿중 하나를 하고 싶다는 건, …선생은 아이의 넋이 아직도 이승을 떠돌고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다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 그런!”
말년의 질문에 기천은 목소리를 높이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기천은 자세를 낮추고 말년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굿을 부탁했다. 달자 역시 굿에 대해 얘기가 나올 때부터 말년이 하영을 위해 굿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빨리 이야기가 성사되길 바랐다.
“그리 부탁하신 다면 야…”
긍정이 담긴 말년의 말에 기천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어지간히 딸을 위한 굿을 바래왔던 모양이다. 달자역시 할머니에게 고마움의 미소를 보냈다.
“그런데 말이요.”
“......”
“내 지금 몸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라오. 이래서야 굿 한판 할 수 있을 지….”
“.....그럼?”
“아니, 내 굿이 하기 싫어 그렇다는 것이 아니요. 나 역시 그 아이를 위해 신명나게 굿 한판 벌이고 싶다우. 그런데 몸이 이러하니.”
말년이 얼굴에 지친 표정을 만들며 주름진 손으로 어깨와 허리를 번갈아 두드린다.
“어르신. 그러면…”
“이제와 말이지만 여기 있는 내 손녀 녀석 말이오. 이 녀석이 아직 나이는 어려도 아주 신기가 대단하다우. 우리 집안은 몇 백 년 전부터 무업(巫業)을 이어 받아온 집인데, 우리 집안에 이어져온 무당들 중에서도 그 기가 손꼽힌 다우.”
“할머니?!”
말년의 이야기가 얼토당토 않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감지한 달자는 참다못해 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말년은 달자의 부름이 무슨 개 짖는 소리라도 되는 둥 한귀로 흘려보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도 7살 때부터 무당 일을 해왔다오. 뭐, 어릴 적에는 신점(神占)을 치는 일이 많았지만 굿도 십대 때 시작했소. 어리다고 굿을 못 한다 그런 건 없다오. 다 끼지―. 그러니 우리 달자를 믿고 해보겠소? 그것이 좋다면 우리 쪽에서 굿판을 벌려 주겠소.”
말년의 제의에 기천은 달자를 한 동안 바라보았다.
이제 까지 딸아이의 친구로만 봐왔던 터라 새롭게 바라봐 진다기 보단 관찰의 의미를 담은, 아니 평가의 의도를 지닌 시선이었다. 그런 기천의 시선에 달자는 난처하기 짝이 없다.
말년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물론 달자가 대대로 무당 일을 해오던 집안의 딸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은 전혀 신기가 없는 몸으로 그것은 달자도 알고 말년도 아는 사실이다.
집안에서는 열 살도 되기 전에 무당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달자에게는 어릴 적부터 조금이라도 그러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잡기들에게 몸을 빼앗기면 빼앗겼지 남들보다 둔하다면 둔 할 정도이다.
인간이 아닌 무언 가를 본건 얼마 전 서방아 에서 본 저승사자가 처음이다. 뭐, 어찌 보면 그것이 더더욱 놀란 일일 수도 있지만…, 오구의 말대로 체질 변화 일 수도 있다.
어찌됐든 영감에 둔한 달자를 두고 집안사람들은 출생에 문제가 있어 그렇지 않나하고 얘기를 했었고, 이에 집안을 어찌 이어나갈까 하는 것이 또 하나의 문제였었다. 하지만 달자의 외할머니 조말년 여사는 이 대로 무당으로의 대가 끊기면 끊기는 것일 뿐, 이라고 말 할 뿐이었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이것은 달자가 타고 난 숙명일 뿐인 것이야.’
그렇게 말한 말년이 어째서 자신에게 굿을 하라고 말하는 것일 까 달자는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달자는 어릴 적에 굿판이 벌려지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빈 집에 혼자 어린 아이를 남겨둘 수가 없어 말년이 데리고 다닌 것뿐이었다. 그때 본 굿판은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장구, 징, 꽹과리, 제금 등의 온갖 악기들이 울려 퍼졌고 그것은 어찌 보면 신명나는 놀이판 같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중심에서 달자는 자신의 할머니가 눈에 박힐 정도로 강렬한 원색의 치마저고리를 걸치고 어느 날은 흰 고깔을, 어느 날은 족두리와 비슷한 온갖 자잘한 장식물이 달린 넋두리를 쓰고 바닥까지 흐드러지게 늘어진 긴 천과 그 천에 달린 수십 개의 방울을 흔들며 땅을 뛰는 모습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지금도 가락에 맞춰 뛰어오르듯 춤을 추는 말년의 모습과 맨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음을 토해 내며 손바닥이 까질 만큼 비벼대는 어른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다.
노여움을 내다가도, 박장대소 하며 웃다가도, 얼마나 한이 큰지 오랜 시간을 걸쳐 대성통곡하는 무당일 때의 할머니―.
그것이 굿이고 굿을 하는 자를 무당이라고 부른 다는 것을 차차 알아 갈 때쯤 말년은 무당도 되지 않을 년, 이런 거 볼 것 없다며 혼자서 집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더 이상 굿판에는 데려가 주지 않았다.
그런 달자에게 말년은 이제와 굿을 하라는 거다.
그것도 달자 친구의 넋을 달래는 굿을―.
“달자 양. 부탁해도 될까?”
말하는 목소리로 기천의 마음은 굳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굿판을 벌이고 싶은 것이다. 딸을 위해….
달자가 이도저도 대답도 못하고 있는데, 말년이 나서서 굿을 하겠다며 응했다.
굿
판을 하기로 정해지자, 빠르게 몇 가지의 말들이 오갔다. 대화는 굿판을 벌이기 위한 준비의 말들이었고 말년의 말에 굿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기천은 그냥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어느 정도 자잘한 사항들이 정해지자 기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짜는 달자를 통해 알려드리리다. 굿판에도 좋은 날짜가 있는 법이니.”
“예,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달자 양. 잘 부탁해.”
기천이 허리를 숙여가며 인사를 하는 통해 달자도 얼떨결에 같은 모양새로 인사를 하고 말았다. 집을 나서는 기천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진 듯하다.
“어쩌려고 그래! 굿이라니! 그게 말이되!”
“말이 안 될 건 뭐냐. 굿판 벌어지면 신명나게 한판 놀아 제끼면 그만이지.”
“사기야 사기! 이건 사기라고. 무당도 아닌 내가 어떻게 넋을 달래고 굿을 하냔 말이야!”
무당집 아이로 태어나 못 할 건 또 뭐냐며 말년이 개의치 않은 모습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벽에 걸려있는 옷걸이에서 누빔 조끼를 내려 팔에 걸쳤다.
“지금 이럴 때 어디 갈려고? 이 일은 어떡하고!”
조금은 신경질 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달자의 모습에 말년은 혀를 한 번 차고는 집이나 잘 지키라는 말만 남기고 외출을 했다.
“조말년 여사!”
떠나가는 뒷모습도 남지 않은 빈 대문을 바라보며 달자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으로 온 몸이 들끓었다.
친구가 사라졌다는 말에 점한 번 봐주지도 않던 할머니가 이제는 그 친구의 넋을 달래기 위해 하는 굿에 아무런 신기도 없는 달자에게 하라는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어쩌자는 거야!”
말년이 굿을 하기로 결정하고 외출을 한 것이라면 백의 백으로 갈 곳은 딱 한곳이라고 달자는 생각했다. 20년을 넘게 말년과 함께 굿판을 벌여온 박씨 할아범의 집이다.
박씨 할아범은 굿의 전체적인 준비를 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데 굿판 얘기가 들어오면 우선 박씨 할아범은 몇 명의 장구재비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 중에 날짜가 맞는 악사 중에 몇 명을 골라 고용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정식 고용된 악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굿이 성행하지 않기에 필요 할 때만 사람을 쓰곤 한다.
정말로 말년이 박씨 할아범에게 갔다면 달자는 빼도 박도 못하고 굿을 해야 한다. 머리라도 벽에 박고 싶은 심정이다.
무당도 아닌 년이 굿이라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