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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작가 :
작품등록일 : 2016.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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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필률공명(1)
작성일 : 16-09-23     조회 : 333     추천 : 0     분량 : 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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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어째서

 왜? 소리가 나지 않는 거야.

 나는 계속 노래를 해야 하는데…. 어째서, 어째서?

 왜? 내 목소리는 아무런 소리를 낼 수 없는 거야?

 

 

 

 “억지에도 정도가 있지!”

 

 좀 전에 말년에게 빼곡히 무언가가 적힌 종이를 받고 나서 달자가 화가나 외친 말이다. 받아든 것은 A4용지 세장에 걸쳐 무당의 용어와 굿의 순서 등이 적혀있는 종이이다.

 결정이 난 것이다. 정말로 달자가 굿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넌, 아무런 준비도 할 필요가 없어. 그냥 그날 와서 굿만 하면 돼.”

 

 날짜는 오늘로 보름 후. 2월이 오기 삼일 전, 동트기 전이다.

 새벽에 굿이라니? 달자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선택한 장소는 하영이 발견된 복숭아나무 밭이다. 어둠 컴컴한 숲 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징과 장구, 꽹과리, 피리소리에 맞춰 울리는 수십 개의 방울 소리. 그 가운데서 원색 옷을 입고 있는 자신.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전신에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곳에서해야만 일이 해결될 것이다, 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미친― 새벽에 무슨 굿을 하라는 거야.”

 

 돌아버릴 지경이다.

 

 오구의 외출로 혼자서 서방아를 보던 달자는 보름 후의 일들은 잊기 위해 평소에는 읽지도 않는 책을 주변에서 대충 한권 골라 들었다.

 

 필률공명.

 무슨 인연인지 몇 달 전 손님에게 팔릴 뻔 했던 고서였는데 오구의 뜻에 따라 팔리지 못하더니 아직까지 서방아에서 나뒹굴어지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처박아 둘것이면 그때 비싼값 주고 팔아버리지. 돈귀신이 그럴땐 돈을 돌보듯 한담. 하여간 성격도 지랄 그지같은데 돈에 대한 기준도 이상해."

 

 이것도 인연이면 인연이라고 책장을 넘겼다.

 한자와 한글이 뒤 섞여 있어 읽기가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시도해 볼만은 했다.

 

 책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옛날 옛적에 자그마한 초가집을 가지고 있던 이씨라는 농부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리따운 처와 세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소작을 하는 논도 있어 살림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들은 오순도순 살아가는 행복한 시골 농가에 있을 법한 가족으로 주변 사람들도 그 가족을 보면 입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곤 했다.

 

 그러한 집에 무슨 변고인지 아내가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 것이다. 혼자 남겨진 이씨는 그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아직은 어리기만 한 자식들을 위해 떠나간 아내를 가슴에 품고 일어섰다. 그렇게 한해가 가고 두해가 찾아와 세 번째 해를 맞이하려 하는 봄날.

 같은 마을에 사는 과수댁을 통해 이씨에게 재혼 자리가 들어왔다.

 상대는 건너 마을의 사는 처녀이다.

 

 이씨는 얼굴도 곱고 참하며 일도 썩 잘 한다는 처녀가 가진 것도 없고 아이도 셋이나 되는 자신에게 왜 시집오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과부댁에 말로 처녀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과부댁은 미안한 듯 한 쪽 뺨을 실룩대며 말했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처녀가 말여. 흠이라면 흠이랄까, …달거리가 없어.”

 

 달거리라 하면 지금의 월경을 말한다.

 

 “그래도 말이여 이씨는 지금 나이도 있고 아이들도 커 가는데 언제까지 얘들 돌보며 일까지 하냔 말여, 몸만 죽어나지. 뭐, 달거리가 없어 얼라 가질 수 없다는 게 좀 그렇지만, 오히려 이씨 아이들 생각하면 그게 좋지 않것어. 어떤 애미나 지 배 아퍼 난 지자식이 중요한 법이라 전처 자식은 나 몰라라 하는데, 이 처자랑 결혼 하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 아녀.”

 

 과부댁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라며 처녀의 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오메가메 한번 봐봐. 처자가 너무 이뻐. 그럼 나 가―.”

 

 과부댁의 말을 스쳐 지나 듯 듣고 난 날로 며칠 후. 장을 보기 위해 옆 마을을 지나다 이씨는 호기심에 처녀 네 집을 스쳐 지나가 보았다. 때마침 처녀는 마당 안에서 나물들을 널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이씨는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겨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처녀 네 집을 들러 담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슬쩍 본다는 것이 어쩌다 눈까지 마주치자 처녀는 얼굴에 홍조를 띠우며 수줍어했다. 그 모습은 몇 해를 홀로 산 홀애비의 가슴에 방망이질을 한 거나 다름없을 것이리라. 그 날로 일은 일사철리로 진행되었다.

 

 없는 형편이지만 상대는 첫 혼례이기 때문에 물 한 사발 떠다놓고 혼례를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씨도 그리 허름하게 해 주고 싶지는 않아 그 동안 모아두었던 자금으로 처녀의 집에서 떠들썩하게 혼례를 치러주었다. 처녀의 부모도 집으로 돌아가면 세 아이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눈 쌀을 찌푸렸지만 딸의 몸을 생각하면 이것도 감사할 따름 이라고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이씨는 처녀에게 갑자기 생긴 아이들로 인해 힘들겠지만 잘 지내보자며 혼례를 치룬 뒤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언질을 해준 터이라 아이들은 처녀를 ‘어머니‘라며 잘 따랐다. 처녀는, 아니 이제는 혼례를 치러 처녀라고 하기 뭐하니 이름인 화령으로 하자.

 

 화령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자신을 따라주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상냥한 어머니의 노릇을 해주었다. 이씨도 그녀가 들어온 뒤 한결 생활이 편해져 예전에 행복했고 즐거웠던 나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주변에서 젊은 각시랑 산다며 놀려대도 그는 마냥 기쁠 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흘러 주변의 풀과 나무들이 붉은 색을 띠는 가을이 왔다.

 

 이씨는 수확을 끝내고 바쁜 농사일이 마무리되어 겨울을 대비해 나무를 하러 어릴 적 동무들과 뒷산에 올랐다. 그리고 그 중 동무하나가 이씨를 불러내 이런 얘길 했다.

 

 “요즘 집은 어때?”

 

 “집이라니? 우리 집? 뭐 평소와 똑같지. 땟거리 걱정만 안하고 살면 행복 한 겨.”

 

 “아이들은 어때? 잘 지내?”

 

 “우리 집 애들? 잘 지내. 요즘에는 지 애미 도와서 둘째 아가 살림도 도와준다고 하더라고, 아직 일곱도 안 된 것이 기특 허지. 그런데 오늘 따라 자네 이상하네. 왜 그리 우리 집에 대해 묻는 겨.”

 

 “아니 그냥. 궁금혀서 그러지.”

 

 “표정을 보아하니, 궁금혀 묻는 게 아닌 것 같은 디, 말혀 봐. 뭐여?”

 

 친구인 박씨는 뜸을 들이며 고민을 하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에구 해도 될 런지. 내 애기 고깝게 생각하지 말고.”

 

 “아, 이 친구 알았다니깐. 내가 마음에 담아두고 하는 그런 사람 아니 자녀.”

 

 이씨의 대답에 난처하다는 듯 입을 연 박씨의 얘기는 이러하다.

 

 친구인 박씨에게는 이씨의 장남과 비슷한 또래의 자식이 있는데, 각 집의 첫째들도 부모와 같이 소꿉친구인 것이다.

 

 올 여름.

 햇볕이 가장 뜨거웠던 날 더위를 시켜 보자는 마음에 박씨의 아들이 멱을 감으러 강에 가자고 제안을 했는데, 자꾸만 이씨의 첫째 아들이 싫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아이를 끌고 강에 갔는데 옷을 벗지도 않고 발만 물에 담그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놀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친구가 이상히 여겨져 박씨의 아들이 일부러 물을 뿌렸다고 한다. 옷이 젖고, 더운 날 찬 물의 감촉이 좋았던지 이씨의 아들도 근심의 표정을 버리고 어느새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고 한다.

 

 물놀이가 끝난 뒤 젖은 옷을 말리려 이씨의 아들이 상의를 벗자 등과 팔에 퍼런 멍 자국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본 박씨의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박씨의 부인에게 말 했다고 한다.

 

 “어디 넘어졌것지. 갸가 어릴 적부터 잘 넘어지고, 긁히고 그래서 멍이 잘 들었자녀.”

 

 박씨의 부인은 그리 말하며 그 일은 그냥 잊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주전, 박씨 부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위해 막걸리를 받아 오는 길에 봤다는 것이다.

 

 이씨의 새 부인이 말을 안 듣는 다며, 아이를 때리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흙바닥에 꿇어앉아 잘못했다 빌고 또 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박씨부인은 여름날에 들은 아들 얘기가 떠올라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박씨에게 전하고, 박씨가 고민 끝에 이씨에게 얘기를 한 것이다.

 

 “뭐, 고만고만한 나이에 혼나기도 많이 혼나지만, 내 자네 아이들을 하루 이틀 봐 온 게 아니지 않는가. 말썽은커녕 착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지.”

 

 이씨는 박씨의 얘기에 혼란스런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먼저 아이들의 방에 얼굴을 내밀었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피곤한 것이지 세 아이가 벌써 잠이 들어 있었다. 아이들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안 좋다.

 

 그 모습에 어찌할까 고민을 하다 이씨는 저녁상을 내온 부인에게 은근 슬쩍 운을 떼보지만 화령은 펄쩍 뛸 뿐이다. 거기에 너무하다며, 자신을 그런 여자로 본 것이냐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 화령의 모습을 보자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첫 아내를 잃고 얻은 아내인지라 이씨는 마냥 잘 해 주고 싶은데 친구의 말만 듣고 이런 오해를 받게 해서 미안스럽기만 했다.

 

 무거운 맘으로 밤을 지새운 다음 날. 새벽녘에 소일꺼리가 있어 나가 보려든 참에 아이들의 얼굴이나 한 번 더 봐두자며, 이씨는 잠들은 화령을 깨우지 않고 조심스레 방을 나가 아이들이 방으로 건너갔다.

 

 잠들어 있는 아이들의 평온한 얼굴을 보니 마음의 무거운 짐은 괜한 오해였다고 생각하며 이씨가 방을 나가려 할 때였다. 무심코 돌린 시선에 잠결에 몸을 뒤척이는 큰 아이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험한 잠버릇으로 인해 옷자락이 말아 올려진 등.

 퍼런 멍이 몇 개나 들어 있는 새하얀 어린 살갗.

 이씨는 놀라 등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아이에게 다가갔다.

 

  ―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사실 이었던 것인가?

  아니, 정말 넘어져서 생긴 멍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져 이런 곳에 멍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화령에게 묻자―

 

 이씨는 이리 생각 하면서도 어젯밤의 화령의 눈물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밖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들려와 이씨는 서둘러 방을 나와 일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당장은 화령의 얼굴을 볼 수 없을 듯해서다.

 고민으로 인해 일은 진척 되지 않았다.

 

  ―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사실을 알고 물어야 한다.

 

 이씨는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지난밤처럼 화령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여러 궁리 끝에 하나의 방안을 생각해냈다.

 

  ― 아이들에게 피리를 만들어 주자.

 

 이씨는 그 날로 대나무를 잘라 세 개의 피리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피리를 분다.

 이리하면 이씨가 멀리 밭에 있건, 산에 있건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리 소리가 들리면 내 아이들이 무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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