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주.
별 탈 없이 이씨가 어디에 있건 바람을 타고 피리소리는 들려왔고, 역시 그 얘기는 오해에 불과 하다고 이씨는 생각하며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흘러 겨울로 접어든 어느 날.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초상이 나 하룻밤 그곳에서 묵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집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흉흉한 세상에 아이들과 처만 집에 남게 된다는 것이 걱정이었지만 동네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가봐야 한다. 그렇게 이씨는 부인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는 이씨의 등 뒤로 아이들이 방에서 불어오는 피리소리가 겨울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대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왠지 가볍다.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해가 질 무렵 이씨는 친구 박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날도 추우니 술 한 잔도 생각났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서 박씨에게 권한 것이다. 초상집을 나서면서 내리던 눈은 좀더 굵어져 어느덧 집 근처에 왔을 때는 땅을 살짝 덮을 정도였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 이씨의 귀에 피리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바람소리도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피리소리라네.”
“피리소리? 어찌 자네가 그것을 아는가? 그보다 그리 말하니 피리소리 같기도 하구 먼.”
이씨는 웃으며 자신의 아이들이 불고 있다고 박씨에게 알려 주며 피리에 얽힌 얘기도 해주었다. 박씨가 그 생각 한번 괜찮다고 말해주자, 이씨는 더욱 기분이 좋아져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추운 겨울인데도 발걸음이 가벼울 정도다.
“얘들아, 애비 왔다. 여보, 나 왔!”
“으 아아아아―”
옆에서 박씨의 거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비명과 함께 이씨가 본 것은 마당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세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 가운데 자신의 젊은 처,
화령이 헝클어진 머리와 가지런하지 못한 모양새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옷매무새도 바르지 않지만 옷도 상당히 더럽혀져 있다.
그것도 붉게―
화령이 고개를 들고 이씨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듣기 싫었어… 듣기 싫었다고! 어머니 어머니… 쫄랑쫄랑 쫒아 다니는 모습도 싫어. 내가 왜 지들 엄마야! 내가 왜 엄마여야 해? 그래서 부르지 말라 했는데도 불러대. 말도 안 들어먹는 놈들!”
기천이 좋아했던 앵두 같은 작은 입술이 거친 말을 내 뱉는다.
“이…이봐. 부인?”
이씨의 부름이 화령에게는 들리지 않나보다. 초점을 잃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화령이 이씨는 무서워 졌다. 사시나무 떨 듯이 떨리는 몸이 진장되려 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이젠 피리를 불어대! 고얀 녀석들! 주구장창 하루 종일 일어나서 잠들 때 까지 번갈아 가며 불어대! 그게 얼마나 듣기 싫은 줄 알아? 마치 애미 찾아 울어대는 천한 새들 같이! 짹짹, 짹짹― 듣기 싫어 죽겠는데 조용히 하라 혼내도 말도 안 들어먹는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 넌덜머리가 나!”
험악한 말은 내뱉는 입술이 마치 천한 것이라도 되는 듯 역겨워 졌다. 화령의 붉게 물든 손이 헝클어져 있는 머리를 감싼다. 손가락에서부터 시작된 선명한 붉은 줄기를 불안한 시선으로 따라가 보았다. 작은 수적을 만들어 가는 붉은 방울을 따라가니 시선은 작은 아이가 누워 있는 곳에 다다랐다.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지금 내리는 눈과 같이 하얀 피부를 지닌 아이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런 어린 것의 목에 빨간 막대가 꽂혀있었다.
피로 물든 피리.
이씨가 만들어준 것이다. 두려움에 그 옆을 바라보자 가운데 아이가 보인다. 전처를 유난히 닮았던 딸아이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딸….
그 아이의 목에 꽂힌 빨간 피리.
이젠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니, 대문을 들어선 순간 알았다. 하지만 뇌가, 가슴이 받아들고 싶지 않았다.
털썩―.
무릎에 힘이 빠져 나갔다. 두 눈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워 졌다.
“제가, 제가 그리 천벌 받을 만한 짓을 했습니까? 내 마누라 빼앗아 가더니, 이제는 내 아이들도 뺏어 가십니까?! 그것도 내가 내손으로 만든 피리로! 나를 데려 가시지요… 제가 미웠으면 저를 데려가셨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씨는 대답도 없이 눈만 뿌려대는 하늘을 바라보며 원통한 마음을 외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차디찬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이내 곧 머리를 숙여 차디차진 아이들을 품에 끌어 앉았다.
“아니다… 하늘의 탓이 아니다. 내 탓이다. 내가, 내 아이들이 아프다고 할 때, 진작 그 말을 믿었어야 했다. 피리를 만들 어 줄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지켜줘야 했던 것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못난 애비 때문에 미안하다….”
눈 내리는 겨울밤.
한 남자의 울음소리와 공허함을 노래하는 바람소리가 마을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 날 이후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세 아이를 죽인 화령은 관아에 끌려가 얼마 후 돌연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씨는 세 아이의 주검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본 어떤 이가 이리 말한다.
“이불에 무엇을 넣고 둘둘 말았던지 지게가 묵직해 보였지.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 같더라고. 어디로 가더냐고? 모르지. 그냥 허리가 구부정해 터벅터벅 걸어가더라고. 쓸쓸히 노래 부르며.”
피리야 피리야
늴리리 늴리리 울어라
너의 아버지 나무하러 갔다가
범한테 물려 죽었단다…
섬뜩― 하다.
“이런, 책이었던 거야…?”
이야기를 다 읽은 달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했다. 그것은 매정한 새엄마가 무섭기도 하지만 세 아이들의 죽은 모습이 하영의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닮지는 않았지만 다들 목을 다치며 죽었다.
아이들은 피리를 불 수 없게 목을, 하영은…
‘마치 그것이 더욱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기천의 목소리가 겹쳐진다.
필률공명.
이 책에는 ‘피리노래’의 이야기 말고 두개의 이야기가 더 있었다. 희한하게도 책 속의 세 이야기 모두 제목이 같으며 달자가 읽은 것은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굿에 대해 잊어 보려 읽기 시작한 것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책을 내려놓기 전 달자는 첫 번째 피리노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펴보았다. 그 장에는 다만 이렇게 적혀있었다.
「 누구는 이 노래가 아이들을 대신하여 죽고 싶은 아비의 심정을 담은 노래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물오른 나뭇가지를 꺾어 그 껍질로 피리를 만들던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놀이 노래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노래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누구로 인해 시작이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후자의 이야기가 더 맞을 것이다.
호드기의 소리가 마치 애기 울음소리 마냥 처량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 이야기 역시 사실인지, 아니면 꾸며진 이야기인지 그것조차 모른다.
나는 단지 동네에 떠도는 항간의 이야기를 주워듣고 이리 적어 놓았을 뿐. 그러니 당신이 이 책을 손에 잡았다면 그냥 한번 읽고 버려주길 바란다. 」
달자는 이런 이야기가 더 무섭다며 중얼거리고 책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다.
*호드기 : 나뭇가지를 꺾어 껍질을 이용해 만든 피리
“내일이네.”
“응, 내일.”
달자와 그녀의 친구인 희진, 기영은 언제나와 같이 분식점의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오늘의 만남은 내일 있을 하영을 위한 굿에 대해 이야기도 할 겸해서이다.
어찌 보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나이의 여고생이 굿을 한다는 게 본인의 입장에서는 창피한 것일 수 있지만, 어릴 적부터 각 가정의 사정을 알고 지내다 보니 그런 껄끄러움도 없는 지금의 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달자는 기천이 굿을 의뢰하고 그 굿을 자신이 하게 되었다는 것을 둘에게 알린 것이다.
“그런 굿을 사령제(死靈祭)라고 하나? 울 엄마가 그러더라고 굿 한다니깐. 산 사람이 잘 지낼 수 있게 굿을 하고, 그 다음 죽은 혼령이 저승으로 잘 갈수 있게 하는 굿 일거라고.”
희진의 엄마는 한해에 서너 번 달자네 집에 찾아와 점을 보기 때문에 이래저래 무당일이라던가 굿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고 있는 듯 하다.
“뭐, 그렇긴 하지. 사령 제에는 지방에 따라 지노귀굿이나 자리걷이 등 여러 가지 불리는 말이 있는데, 무속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이러한 굿을 해주지 않으면 그 혼이 남겨진 가족이나 친척에게 해를 끼치거나 병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거든.”
"오~달자, 아주 굿한다니깐 전문가 다됐는데!"
희진이 달자를 약올리듯 얘기한다.
"어릴 적 부터 주워들은 것 뿐이야. 듣다 보면 귀에 박혀, 이것아."
"헤헤헤. 그나저나 그럼 이번에 하는 굿이 하영이 저승에 잘 가라고 하는 굿인가?"
"그렇지 않으면 뭐겠어. 뭐, 난 할머니가 하라니깐 하는 거지만."
“그렇군. 그런데 하영이네 집은 종교가 없지 않아? 오히려 따지고보면 친엄마가 교회에 다니셨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그러면 기독교 아닌가?”
기영이 고개를 갸우뚱 하며 말해왔다.
“아, 그런 말 들은 적 있는 것 같아. 어릴 적 몇 번 교회에 따라가 본적이 있었다고.”
달자에게는 처음듣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왜 하영의 아빠는 굳이 굿을 부탁 한 것일까? 차라리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한다.
“그보다. 너는 신기도 없고, 무당도 아니잖아. 내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윽―”
잘하기는커녕, 지금도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짜증과 불안으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도망 가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할머니께서 무슨 비전이라도 가르쳐 주신 거 아니야? 그렇지 않다면 굿을 할 수가 없지.”
“비전은 무슨 얼어 죽을 비전! 달랑 종이 세장 주면서 대충 이런저런 말들 섞어가면서 뛰기나 해. 이러고 말았다니깐! 그 뒤로는 신경도 안 쓰고, 내가 하기 싫다 떼를 쓰고 화를 내도 씨알도 안 먹혀. 대체 어쩌자는 건지.”
매정한 말년의 태도가 생각나자 달자는 또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듯하다. 그래서 애꿎은 빨대만 씹어 본다.
“그럼 아무것도 모른 채 정말 네가 하는 거야? 어째? 할머니 왜 그러시는 걸까?”
“그걸 알면 다행이게. 말도 안 해줘. 몸도 펄펄 날정도로 정정한데, 아프다고 굿을 할 수 없으시다 하잖아. …울, 조말년 여사가 오구 씨 말은 또 잘 듣거든. 그래서 오구 씨에게 부탁 좀 드려봤지.”
“할머니 좀 설득해 달라고?”
“응, 그런데 거절당했어.”
- 방학이라 퍼질러 자지만 말고 새벽녘에 굿 한번 하는 것도 건강에 좋잖아.
달자는 오구의 딱딱하면서도 무신경한 말투와 표정을 흉내 냈다. 그걸 본 둘은 키득키득 웃을 뿐이다. 하영의 일이 있고 나서 둘 역시 오구를 몇 번 봐 왔던 터라, 달자의 흉내가 더욱 리얼하게 느껴져서이다.
“오구 씨가 그리 나오면 어쩔 수 없지. 할머니들에게도 역시 젊은 꽃미남이 인기 인가봐. 그보다 새벽만 아니라면 구경하러 가고 싶다. 굿하는 거 방송에서밖에 본적 없거든.”
기영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다.
“보긴 뭘 봐. 그보다 나 내일 정말 어떡하면 좋냐. 도망가고 싶어.”
추운 겨울날의 순서도 방식도 알 수 없는 새벽녘의 굿판이 걱정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