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열한번째 시간
작가 : 현실주의
작품등록일 : 20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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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작성일 : 19-09-04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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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직은 네가 한다고 말하긴 했다만, 정말 괜찮겠냐? 빼줄까? 2팀 얘들 나한테 빚진 거 있으니까 말만하면.”

 

 “괜찮습니다. 정말로.”

 

 팀장은 입맛만 다셨다. 걱정과 가벼운 자책. 괜히 라면 핑계를 대면서 정보를 줬다고 후회하는 게 분명하다. 치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늘 이렇다니깐. 팀장은 결국 치현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사무실에 홀로 남게 되자, 치현은 본격적으로 추적을 시작했다. 세상은 오래 전에 바뀌었다. 희미한 냄새를 쫓고, 귀를 기울이는 것보다 이쪽이 더 효율적이고, 위력이 좋다. 거기에 오늘은 이례적으로 조용한 밤이었다. 출동이나 자잘한 신고도 없었다. 덕분에 치현은 온전히 오늘 밤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죽은 용의자, 김원규의 조회부터. 그의 신상정보에는 아직 사망 사실이 추가되지 않았다.

 

 김원규, 30살. 고졸. 출생지는 울산이었지만, 자라기는 부천에서 자랐다. 19살에 폭행으로 징역 6개월을 복역한 것을 시작으로, 숨 쉬듯 범죄를 저질렀다. 양친은 유년기 때 사망했고, 종교는 없다.

 

 그러나 강력범은 아니다. 범죄기록의 대부분은 벌금이나 경범죄, 집행유예정도였다. 기록으로 볼 때, 이런 최후를 맞이할 사람은 아니었다.

 

 뭐를 놓쳤을까.

 

 김원규가 28~29세 때 어떠한 범죄기록도 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시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 치현은 해당 관할 서에 협조 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현장에서 검거한 형수파 조직원들의 심문을 확인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이다.

 

 답)가방 묵직하게 채워서 온 거 보고 호구 왔다고 생각했는데, 대뜸 오야부터 찾더라고요. 뭔 일 때문에 그러냐고 하니까, 대답은 않고 이미 다 이야기되었다면서 계속 오야 어디 있냐고 그러고. 이미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면서. 한 대 줘 팰까 싶었는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일단 기다리라고 하고는 영규 형님이 오야한테 전화한다고 잠깐 나갔는데, 이 새끼가 갑자기 뒷문으로 내빼더라고요.

 

 문)망인이 외부에서 연락받고 그랬는지?

 

 답)그러면 제가 봤죠. 그냥 갑자기 나가더라고요. 뭔가 감이 좋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지.

 

 .

 .

 .

 

 문)망인이 이전에 해당 불법 도박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답)제가 하우스에서 2달 정도 있었는데, 처음 봤습니다. 딴 곳에서 본 적도 없고.

 

 .

 .

 .

 

 문)이종철은 언제 왔는지?

 

 답)오야요? 한 일주일 됐나. 그 새벽에 비 내리던 날요. 배달 늦게 왔던 날이라 기억나네요. 그때도 새벽에 와서 잠깐 수금만 하고 가고. 노가리 까던 전하고는 다르게.

 

 문)이후로 연락은 언제였는지?

 

 답)이틀 전이요. 수금날짜 지나서 전화 한번 때리니까, 일단 현금으로 만들고 기다리고 있어라, 곧 간다고 하더라고. 이후로 연락도 안 되고. 냄새가 나서 때려 치고 튈라고 준비하던 차에, 씨바 재수 오지게 없지.

 

 치현은 스크롤을 멈췄다. 등에다 칼을 꽂는 게 예절인 이쪽 업계에서 가장 확실한 통제는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주일이나 얼굴을 못 봤다는 것은, 잠적 내지는 신변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강력 1팀 경장 이치현입니다. 차량 수배 요청 드립니다. 번호는...”

 

 통화를 마치고, 치현은 스트레칭을 했다. 신체의 피로라기 보단 정신의 피로가 더 성가셨다. 김원규는 흔적이 없고, 형수파 조직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이종철은 위치불명이다.

 

 이렇게 마냥 정보가 들어오길 기다려도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현장으로 가서 냄새를 맡고, 뒤를 쫓아야 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가족들에게라도 경고를 전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머니나

 

 아버지, 동생

 

 에게.

 

 부디 그게 최선이길.

 

 이가 시큰거렸다. 독사는 죽어도 독을 뿜는다더니. 쓴웃음이 나왔다.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위험을 없애겠다고 집을 불태워버린다면, 그걸 지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생활을 지키면서, 위험을 없애야 한다. 힘들겠지만 승리에는 공식이 있는 법이다. 아니, 있어야 한다.

 

 “뭐 좋은 일 있어요?”

 

 “언제 오셨어요? 오늘은 좀 일찍 오셨네.”

 

 “도로 공사한다고 막힐까봐 빨리 나왔더니 내일부터더라고요.”

 

 경찰청 출입기자인 박재영은 너털거리며 웃었다. 얼굴에는 졸음기가 가득했는데, 목에서 흔들리는 기자증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위태로운 남자는 나 하나로 족한데.

 

 “잠깐 쉬시죠.”

 

 “이 경장님만큼이나 챙겨주는 사람이 한명만 더 있으면 세상 참 살기 편해질 거 같은데. 커피 좀 마실게요.”

 

 경찰청 출입기자들은 대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의경들이나 근무자들을 상대로 행패를 부리거나, 취재라는 명목으로 온 서를 들쑤시고 다니기 때문에 그렇다. 주기적으로 사소한 일을 부풀려서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박재영은 정반대였다. 대범하면서도 싹싹하고, 경찰이 곤란해 할 기삿거리는 어지간하면 그냥 무시하는 호탕한 성격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경찰청 내에서 제법 인기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경찰은 언제나 고전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박재영 같은 성격이 인기 있을 수밖에 없다. 뭐, 적당한 넘어가도 문제가 없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만.

 

 “뭐 기사거리 있어요?”

 

 치현은 보고 있던 자료를 최소화시켰다.

 

 “오늘은 별 거 없네요. 절도 네 건이 있긴 한데,”

 

 “잠깐만요. 수첩 좀 꺼내고.”

 

 재영은 커피 잔을 입에 물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잠을 깨기 위해 물을 적게 탄 그의 들큼한 믹스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치현은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숙이며 찡그린 얼굴을 숨겼다.

 

 “어, 박 기자. 오늘은 일찍 왔네? 오늘 치현이 네가 당직이냐? 됐어. 무슨 경례야. 하루 종일 보는데.”

 

 수사과의 최현식 경정이다. 강력 1팀의 직속상관이자, 진급에 눈 뒤집힌 새끼이고, 팀장의 헛웃음인 남자. 솔직히 치현은 그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냥 보통의 상관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그랬다는 말이다.

 

 “좋은 밤입니다, 최 경정님. 기사거리 좀 있나요?”

 

 “기사거리는 무슨. 아주 일에 묻혀 죽겠다. 그나저나 오늘 유 팀장이 너 당직 안 빼줬냐? 나 참, 좀 다른 줄 알았더니만.”

 

 방어권이 필요한 사람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게 뭐 잘못된 겁니까?

 

 “일이 좀 밀려서 제가 당직 서겠다고 했습니다.”

 

 “이럴 때는 팀원들한테 넘기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요령 없기는. 하여튼, 오늘 일은 걱정하지 마라. 네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많이 당황하긴 했을 텐데, 그런 건 일상다반사야. 더는 감찰관이 귀찮지 않게 내가 손 좀 볼 테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게 했다. 치현은 재채기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참 기운 나는 말씀이시긴 한데, 그걸 기자 없는 자리에서 해주시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배 안 고프냐?”

 

 “아까 팀장님하고 라면 먹었습니다.”

 

 “그래? 박 기자, 같이 라면이나 먹을래?”

 

 “경정님이 부르시면 없던 배라도 만들어야죠. 이 경장님, 있다가 올게요.”

 

 그러나 박재영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도 건보다 훨씬 더 그럴듯한 기사거리를 찾게 될 테니까.

 

 최현식은 종종 기자들에게 정보를 흘리곤 했다. 사건이 되지 못한 문제에서부터 현재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것까지 말이다. 그는 정보를 흘릴 때마다 늘 아슬아슬한 선을 지켰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기자들과 줄을 탄다는 것은 언젠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영리한 최 과장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아마 그는 줄에서 떨어지기 전에 잘 먹여둔 기자들을 화려하게 써먹을 것이다. 일개 경장으로서는 알 리가 없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서.

 

 퍽이나.

 

 이가 시큰거렸다. 치현은 다시 일로 돌아갔다. 틈틈이 김원규와 관련된 첩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밀린 서류 작업을 하며, 때때로 치솟는 초조함을 억누르면서.

 

 그러는 사이 창 너머로 부지런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이다. 어느 순간에 몽롱해졌던 치현은 정신을 차렸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서류작업은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본디 사건은 매번 품고 있는 사연이 달라서 한 부류로 모을 수 없다. 그런 것을 억지로 분류하여 하나의 계통으로 쑤셔 넣는 일은 정신을 깎는 일이다.

 

 어쨌든, 당직은 끝났다. 치현은 마무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퇴근 하냐?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걸 할 수 있냐. 그냥 다시 출근하자. 내 일 좀 나눠줄게.”

 

 “출근하시니 좋겠습니다.”

 

 “이게 죽을라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한 철민과 시답잖은 농담을 끝으로, 치현은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하루 일했으니 하루 쉬는 당직처럼 단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도, 범죄자도, 괴물도 뭣도 없이.

 

 “헛소리.”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보다. 치현은 스스로 뺨을 두어 번 친 뒤, 중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일단 김원규가 죽었던 공사장으로 가야한다. 냄새부터 티끌만한 증거까지, 놈의 경로를 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찾아야 한다. 아울러 그가 버린 돈 가방도 함께. 발목에 주인태라는 족쇄를 계속 달고 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편안했다. 무취한 차안 덕분이다. 차안에서 치현의 후각은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과연 고생하면서 차에 배인 냄새를 뺀 보람이 있었다.

 

 대구에서 유학하던 중학생 시절, 냄새는 그에게 큰 난관이었다. 사람의 고유한 냄새는 그런대로 버틸만했지만, 화학제품 냄새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특히 화장품과 향수가 치명적이었다. 겨우 적응하기 전까지, 여선생들의 수업시간에 뛰쳐나가 토악질을 한 것이 도대체 몇 번이었는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혜연이라던가, 혜연이라든가, 혜연이 같은. 흠, 한명 뿐이네.

 

 사실, 이 도시에서 친구라고는 오직 그녀가 유일했다. 과거형까지 확장한다면

 

 빵빵빵-

 

 치현은 슬쩍 고개를 내밀려던 옆 차선의 차를 향해 거칠게 클락션을 울렸다. 어쨌든. 비록 사귄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혜연은 좋은 친구였다. 서로 꾸미지 않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좋은 친구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그녀와 만나기로 했었지. 혜연은 오늘의 만남을 위해 오랜만에 휴가를 썼다. 분명 늦잠을 자고 있을 테니, 지금 전화하기는 그렇고. 언제쯤 전화를 하는 것이 좋을까?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혜연일까?

 

 액정에서 태경의 이름이 반짝거렸다.

 

 “치현아 너 지금 어디냐? 집이냐?”

 

 “아뇨, 선배님. 퇴근 중입니다.”

 

 “시체 나왔다. 경인 고철상. 가스공사 근처에 있는 거. 어딘지 알지?”

 

 “네, 압니다.”

 

 “미안한데, 바로 와야겠다. 다들 출근하자마자 여기로 오고 난리도 아니다.”

 

 공사장까지는 코앞이었다. 잠깐이라도 들렸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 고철상 쪽으로 가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 사이에 어떤 중요한 정보와 흔적들이 없어질지 모른다.

 

 하다못해, 혜연에게 전화하기 위해서라도 잠깐 차를 세워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자고 있을 터였다.

 

 별 수 없지.

 

 치현은 차를 돌렸다. 조바심 내지 말고, 조급해지지 말자. 사람은 기다려주지만, 시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상을, 삶을 지켜야 한다.

 

 그는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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