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열한번째 시간
작가 : 현실주의
작품등록일 : 20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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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작성일 : 19-09-08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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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애들이었냐?”

 

 “네?”

 

 “좋아하는 애들이었냐고.”

 

 치현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거, 운전 중 시선분산 아닙니까? 오래 살고 싶다는 분이. 철민은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하지만 노래는 이미 끝났고, 대리운전 광고가 흘러나왔다.

 

 “입대가였습니다.”

 

 “그러냐? 그런데 참 신기하다. 네가 걸 그룹 노래를 다 알고.”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조수석 탑승자의 의무 중 하나는 운전자의 졸음방지라고 하던가. 차도 막히겠다, 치현은 적당히 받아주기로 했다.

 

 “제가 어때서요?”

 

 “몰라서 묻냐. 여자는 멀리하고, 일은 가까이 하라. 하는 짓은 완전 도 닦는 노인이야, 노인. 얼굴 안 아깝냐? 인간미가 없어.”

 

 인간미.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철민이 말하는 인간미라면 뻔하다.

 

 “지각하고 힘든 일 살살 빠지려고 하는 게 무슨 인간미입니까. 그렇게 뺀질거릴려면 걸리지나 말지, 매번 다 걸려서 결국 다 하시면서. 차라리 욕이라도 덜 먹게 그냥 시도를 하지 마시”

 

 분노한 철민의 주먹이 날아왔기에 치현은 충언을 다 잇지 못했다. 시의 적절하게 신호가 바뀌었다.

 

 “하여간 아주, 좀 봐주면 기어오른다니까. 너 여친 없지 새끼야.”

 

 따닥. 치현은 눕혔던 시트를 되돌렸다. 제법 연식이 있는 차라서 그런지 소리와 진동이 거슬렸다.

 

 “있었습니다.”

 

 “얼씨구, 경찰이 거짓말하면 쓰나. 유치원, 초등학교 빼고. 가만, 여친이 아니라 친구 중에 여자인 사람이 있는지부터 물었어야 했네. 서순 잘못 했다.”

 

 안전벨트가 거슬렸다. 치현은 창을 내렸다.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와 차 소리, 매연에 뒤섞인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섞인 냄새에 속이 메스꺼워졌지만, 창을 닫지는 않았다.

 

 “대답 안 해? 이게 빠져가지고.”

 

 “삐졌습니다.”

 

 “저렇게 잘 삐져서야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서 존경하는 사수님을 벤치마킹하려고 합니다만.”

 

 철민은 뺀질이지 양심을 판 거짓말쟁이는 아니다. 그래서 외통수였다. 결국 그는 남은 시간동안 운전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치현은 여전히 창을 올리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드라이브를 하고 돌아온 치현과 철민을 향해 팀장이 퉁명스레 물었다.

 

 “어디 사우나라도 갔냐? 왜 이렇게 늦었어?”

 

 “치현이가 여친하고 찐한 시간 보낼 수 있, 읍!”

 

 치현은 서둘러 철민의 입을 막았다. 아니 이 인간이 진짜. 서둘러 팀장의 눈치를 봤다. 팀장은 못 들은 척했지만, 그의 냄새는 그렇지 못했다. 안도와 미안함.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치현은 팀장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차가 막혔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저 뺀질이. 뭐 건진 건 있냐?”

 

 “퉤. 야, 입에는. 없습니다. 연료 값도 안 나왔어요. 피해자는 지난주부터 안보였답니다. 짐도 이미 싹 갖다 버린 지 오래고.”

 

 “그럼 거긴 빼자. 진수 쪽이 지금 냉장고 주운 곳으로 갔으니까 그쪽에 집중하자고. 아마 처리할 거 엄청 쏟아져 나올 거다. 명호야, 역 쪽으로 협조 넣은 거 결과 왔냐?”

 

 명호의 대답이 늦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탓이다. 그는 약간 허둥댄 끝에 팀장의 질문에 답했다.

 

 “아직 안 왔습니다. 전화도 해봤는데, 노숙자 담당하던 사람이 바뀌면서 아직 인수인계가 덜 됐다고.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합니다.”

 

 “일단 오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라.”

 

 치현은 명호의 경직된 어깨를 가볍게 쳤다. 뭘 그런 거 가지고 신경 써? 명호의 어깨에 힘이 조금 풀렸다.

 

 “고철상 주변 cctv는?”

 

 “일단 싹 돌면서 확보하긴 했습니다.”

 

 “양 많지? 같이 보자.”

 

 “별로 안 많습니다. 고장 난 것도 있고, 각도가 안 맞는 것도 많아서.”

 

 그렇게 말한 명호였지만, 치현의 도움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고철상 주변의 cctv는 상태가 좋지 못했다. 장애물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거나, 렌즈에 뭐가 끼어서 화면이 불량하다던가. 뿌옇고 답답한 화면을 보고 있자니 금세 눈이 따끔거렸다.

 

 “거기에 너무 집중하지 마라. 어차피 나올 것도 없어.”

 

 팀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노련한 병사는 쉴 때와 싸울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법이다. 1시간 후, 고철상이 냉장고를 수거했던 장소로 갔던 진수와 태경이 돌아왔다.

 

 “이거 고생깨나 해야 할 거 같은데요? 건진 게 별로 없어요. 와 씨. 돌아버리겠네.”

 

 태경은 꽤나 짜증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팀장은 태경 대신 진수에게 물었다. 진수는 평소처럼 침착했다. 팀장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처음부터 전부, 하나도 빼지 말고 디테일하게 말하라는 팀장만의 버릇이자 신호였다.

 

 “건진 게 없다는 소리를 하루에 두 번이나 들으니 답답하네. 어떻게 된 거야?”

 

 “냉장고를 수거한 곳은 재건축이 확정되어서 주민들이 거의 퇴거한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주민들이 떠나면서 가전제품 같은 대형쓰레기들을 많이 버렸는데,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업자를 부른 거라고 하더군요. 비용은 시공사에서 처리해주기로 했답니다. 근처 cctv는 장식이고, 경비원도 몇 명 없었습니다.”

 

 “주민들 쪽에서 용의자가 있을 가능성은?”

 

 철민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주민들 전체를 조사하겠다고? 대부분 이사를 해서 여기저기 흩어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표정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참 용한 재주다.

 

 “특정할 수 없습니다. 경비원들의 야간 순찰시간 간격이 너무 길고 부실해서,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버리고 가기에도 충분합니다.”

 

 팀장은 답답한지 턱을 문질렀다. 뾰족한 수가 없으니, 가장 고전적인 방법으로 가야 한다.

 

 “안에 사체가 든 냉장고를 일반 승용차나 suv로는 못 옮긴다. 못해도 용달정도는 돼야지. 치현이, 아니 진수 네가 태경이 하고 통합관제센터로 가서 그 동네 근처 단속카메라 영상 좀 확인해봐라. 양 알아서 줄일 수 있지? 어차피 밤이다.”

 

 통합관제센터. 치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게 진심은 아니잖아.

 

 “에이 팀장님. 방금 들어왔는데 숨 좀 돌리고.”

 

 “네. 명호야, 너도 따라와라.”

 

 “어, 전 고철상 쪽을.”

 

 “치현이가 할 거다. 너 아직 관제센터 가본 적 없으니 이참에 얼굴도장도 찍어야하고.”

 

 진수는 팀장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눈치껏 행동했다. 치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하며 불량한 화면에 고개를 파묻었다. 팀장에게서 스멀스멀 흘러나온 죄책감이 치현마저 답답하게 했다.

 

 철민이 잠시 나가자, 팀장은 시간낭비를 하지 않았다.

 

 “그래, 여자 친구는 이뻐?”

 

 진실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치현은 팀장이 더는 속앓이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는 궁리 끝에 그런대로 괜찮은 답을 찾아냈다.

 

 “그냥 친구입니다.”

 

 “남녀사이에 친구가 어디 있어. 그나저나 재주도 좋다. 만날 야근에, 주말도 제대로 못 쉬고 남자들 사이에서 부대끼면서 말이다.”

 

 진짜로 재주가 좋았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도 없었을 겁니다. 치현은 침묵했다. 팀장이 제발 이대로 입을 다물어 주기를.

 

 “사실 걱정 많이 했다. 지난번 교통계 그... 아가씨하고 헤어진 이후로 네가 영 마음을 못 잡는 거 같아서.”

 

 공기가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래서 더 불편했다.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영과의 이별에서 팀장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굳이 꼽자면 부하가 스승의 딸과 사귀는 것을 알고는 스승에게 부하 자랑을 한 것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팀장이 부하를 자랑하고, 아비가 자식을 챙기는 일이 무슨 새삼스럽고 해로운 일이겠는가.

 

 그저, 퇴직 청장인 나영 아버지의 감이 예리했고,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는 나의 위험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고, 빠르고도 점잖게 대처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정말 그것 뿐?

 

 정말로 그것뿐 이였어. 정말로.

 

 오래 전에 소원해진 연인들의 관계는 악성채권과 같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조금이라도 일찍 청산하면 모두에게 득이 된다. 약간의 감정은... 비용처리라고 해두자.

 

 “죄송은 무슨. 하여튼 잘 해봐라.”

 

 팀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냄새도 가라앉았다. 치현은 통상의 업무에 몰두했다. 꼭꼭 숨겨둔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강도. 증 제1호. 식칼. 25cm. 증 제3호. 밧줄. 피의자와의 심문기록. 폭행.

 

 폭행. 김원규는 학창시절부터 잦은 폭행사건으로 경찰서를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양친도 없고, 보나마나 학교도 겨우 얼굴이나 비추는 수준이었을 테니, 경찰이 더 낯익을 터.

 

 치현은 관할 서에서 보내준 자료를 뒤진 끝에 김원규와 가장 많이 접촉했던 경찰의 이름을 확인했다. 김용민. 현재 파출소장이었다. 기름기가 쫙 빠진 관할 서의 자료보다는 이쪽의 기억이 더 영양가가 있을 것이다. 치현은 일단 인트라넷으로 그에게 연락을 넣어두었다. 못해도 며칠 안으로 연락이 올 것이다.

 

 아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부천이다. 간다면 금방갈 수 있다. 반차를 내거나, 아니면 수사를 핑계로 다녀올 수도 있다.

 

 관계자인데다가 감찰 중인 상태로 가겠다고? 뒷감당할 자신 있어?

 

 닥쳐.

 

 이가 시큰거렸다. 치현은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했다. 가끔 있는 동요다. 아무래도 피로가 쌓인 모양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문제될 것은 없다. 모든 건 지극히 정상이다. 그래, 정상. 감찰관과 김원규의 얼굴과 냄새가 스쳐지나갔다. 치현은 애써 무시했다.

 

 그 사이 진수 일행이 돌아왔다. 그들에게서 갈비탕 냄새가 났다. 서 근처의 식당 냄새다. 보나마나 태경이 보챘을 것이다.

 

 “밥들은 먹었냐?”

 

 “넵, 식당에서 대충 먹었습니다. 오늘 반찬 괜찮던데요?”

 

 “괜찮긴. 만날 똑같은 거 반복인데.”

 

 “뭐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태경은 너스레를 떨었고, 명호는 아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진수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책상에 앉았다. 새삼 볼 때마다 신기한 조합이다. 어쩜 저렇게 서로 상반되는 성격이면서도 같이 다닐 수 있을까.

 

 “카메라 돌린 건 어때?”

 

 “5대가 유력한 후보입니다. 소유자하고 주소지 뽑아왔습니다.”

 

 “더 못 줄이나?”

 

 “아파트 주변 도로에는 카메라가 없어서 이게 한계입니다.”

 

 “뭐... 그렇고. 수고들 했다. 일단 이 차들 주소지 한 번씩 보고들 와봐.”

 

 팀장은 떨떠름하게 입을 다셨다. 진수처럼 경험 많은 형사가 우선순위를 매기지 못했을 리가 없다. 단지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말하지 않은 거겠지. 동료들이 편견을 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진수의 대단한 점이기도 했지만, 팀장은 그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다. 치현은 그런 팀장을 이해하지 못 했다.

 

 “나는 역으로 간다. 어째 속도가 안 나는 게 답답하네. 좀 거들든가 쪼던가 해야지. 치현이는 남아서 데스크 업무하고, 나머진 주소지 좀 가서 살펴봐라.”

 

 “너무 치현이만 편애하는 거 아닙니까? 운전하고 뛰고 걷고 숨고 찾아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거기다가 데스크 업무도 있고.”

 

 “그럼 그 힘든 일하고 돌아와서 또 서류 꾸밀래? 여기서 쟤보다 더 빨리 문서 작업할 수 있는 놈이 있냐?”

 

 “그렇다면야.”

 

 제일 먼저 일어난 철민이 능글맞은 웃음을 짓더니 자신의 서류를 치현의 책상에 올렸다. 치현은 한숨을 쉬었다. 왜 남의 일은, 아니 철민이 주는 일은 유독 더 많아 보일까.

 

 “이치현 경장님,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철민은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뒤이어 태경이 진수의 일까지 가지고 와 함께 얹었다.

 

 “대충 써서 실적 날려먹게 하면 확 게시판에다 찌른다?”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미래의 총경님.”

 

 진수는 자기 일을 떠넘긴 게 미안한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다. 어느새 책상은 빈자리 없이 빽빽해졌다. 하지만 아직 다 쌓인 게 아니다.

 

 “명호야 네 것도 줘라.”

 

 “괜찮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냥 내놔.”

 

 명호는 결국 주뼛거리면서 자신의 몫을 넘겼다. 텅 빈 사무실, 가득 찬 책상.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최대능력으로 일하기에는 최고의 환경이다. 사무실이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로 가득 찼다.

 

 동시에, 딴 짓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다. 치현은 망설이지 않고 받았다.

 

 “강력 1팀 이치현 경장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 김용민 소장입니다. 지금 통화 길게 가능합니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전화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치현은 귀를 기울이며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집중했다. 호흡은 안정됐고, 희미한 자동차 소리와 통화음, 타자 소리가 들렸다. 근무지다. 그것도 ‘깨끗한.’

 

 “네 가능합니다. 먼저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뉴스는 보니까, 급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래, 뭘 질문하고 싶은 겁니까?”

 

 숨소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나도 알만큼 다 알고 있지만, 순전히 호의에서 응해준 거니 어설프게 장난치지 말라는 뜻이다. 일종의 경고였지만, 되래 마음이 편해졌다.

 

 “김원규의 대인관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보호자라던가, 아니면 친구라던가요.”

 

 “일단 나도 그를 잘 알지는 못합니다. 조서 쓸 때마다 마주친 게 좀 있을 뿐이지요. 다만 친구나 보호자는 없었습니다.”

 

 “혹시 교사들 중에서는.”

 

 “늘 바뀌더군요. 마치 순번이라도 돌리는 듯이. 아마 당직 순대로 나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약한 한숨소리. 그는 김원규를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나 경험은 다른 문제다. 치현은 그의 한숨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보면 소장님이 가장 친한 사람일수도 있겠군요.”

 

 “어쩌면.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전 그 녀석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관심도 없고요. 솔직히 말해서 그냥 저렇게 살다 가겠거니, 했습니다.”

 

 달라진 단어와 숨소리, 그리고 어설픈 위장. 제대로 잡았다. 더욱 깊게 파고들되,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가야한다.

 

 “혹시 최근에 김원규가 소장님을 만나러 온 적이 있습니까?”

 

 글쎄요, 라는 말이 힘없이 뭉개졌다. 소장은 다행히도 그 이상 방어를 하지 않았다.

 

 “최근은 아니고, 언제였더라. 아마 재작년이었을 텐데. 에어컨도 고장 나서 한참 더웠을 때 잠깐 왔습니다.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이 안 나더군요.”

 

 재작년 여름이라면, 범죄기록이 없던 시기다. 공백의 시기 중 확인된 유일한 기록이 고교시절 자신을 담당하던 경찰관에게 인사를 한 것이라. 그대로 미담이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혹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뭐, 흔히 하는 말들이죠. 기억하느냐, 그때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 이젠 훌륭한 일을 하려고 한다, 같은. 참.”

 

 “무슨 일을 하고 있다거나, 어디서 누구와 같이 산다거나, 혹은 취미 같은 것에 대한 말을 하던가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2년이나 된 일인데, 어떻게 기억을 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아! 같이 온 사람이 한명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침묵. 말의 공백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자기 은사라고 소개했는데, 이상한 일이네.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나.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도. 분명 있긴 있었는데. 여보세요?”

 

 소장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두려워하던 최악의 결과가 현실이 되었다. 비밀은 탄로가 났고, 그걸 아는 사람들이 더 있다. 수를 알 수 없는 김원규들이 뒤에 붙은 것이다. 얼마나 더 올까. 언제까지 올까. 어디까지 알릴까.

 

 어디까지, 막아야할까.

 

 이가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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