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열한번째 시간
작가 : 현실주의
작품등록일 : 20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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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작성일 : 19-10-24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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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세요, 이 경장?”

 

 “네.”

 

 치현은 소장이 부르는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시큰거리는 이 때문에 발음이 셌다. 손으로 이를 억누르며 겨우 통증을 다스렸다.

 

 “당시 cctv 영상을 보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규정상 1년까지는 보관이긴 한데, 그 이후는 확인해봐야겠습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난 입이 가볍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구태여 내가 보고를 하지는 않겠지만, 누군가 물어본다면 숨기지도 않을 것이라는 소리다. 당연한 일이다. 소장과 나 사이에는 의리는커녕 면식도 없으니까. 솔직히 이렇게 전화를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울 따름이다.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치현은 솔직하게, 라고 말할 때 미묘하게 템포를 늦췄다. 소장 자리는 거저먹는 자리가 아니니,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을 정리했다.

 

 은사. 보통 스승이라는 표현을 붙일 텐데, 왜 은사라고 했을까. 아니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김원규가 그 사람을 존경했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이다.

 

 어디 가르침뿐일까.

 

 촉수처럼 늘어나고,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하며 달콤한, 아니 끔찍한 고름이 터져 나왔던 수포들.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터져 나온 순수한 악까지. 몸도 마음도 바뀌는데 2년이 걸린 셈이다. 은사는 훌륭한 스승이었고, 김원규는 성실한 제자였다.

 

 치현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과연 은사의 제자가 김원규 한명 뿐일까. 은사 같은 자가 한명 뿐일까. 은사가 가진 사악한 술수는 몇 개나 되고, 어떤 방식으로 날 노리고 있을까.

 

 내가 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쫓기는 기분이다.

 

 딩동.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은행 앞 오토바이 날치기 건에 대한 cctv 영상자료. 명호가 맡은 사건이다. 그래, 일이 있었지. 서둘러 팀원들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치현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대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상대의 일이다. 지금처럼 내 할일을 더 잘하면 내가 이긴다.

 

 먼저 행적 검토. 모든 모험의 시작은 집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변의 cctv로 경로를 확인하면 은신처 정도는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본청이 날 주시하고 있다. 과연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치현은 주인태의 성난 얼굴을 떠올렸다. 퍽이나.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만 찾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김원규가 당일 지나갔던 곳들에는 아직 냄새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안치소, 병원, 구급차,

 

 공사장, 도박장.

 

 도박장.

 

 형수파 이종철과 그 조직원들의 증언.

 

 모험은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

 

 대답은 않고 이미 다 이야기되었다면서 계속 오야 어디 있냐고 그러고.

 

 나에 대한 본청의 집착. 감찰관 주인태.

 

 이종철 상대로 작업을 좀 친 거 같긴 한데, 급이 좀 있는 모양이다.

 

 이종철. 엉성한 나침반이지만 그럭저럭 방향을 잡았다. 함정인지, 아니면 우연히 꺾인 나뭇가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미답지를 눈감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치현은 이종철의 지난 첩보를 확인했다. 첩보의 최신 일자는 4일 전이었는데, 특이한 내용은 없었다. 하긴, 위에서 작업을 쳤다면 이 정도 차단은 기본이겠지.

 

 하지만 치현의 팀은 2달간 형수파와 이종철을 전담했다. 시간이 없어서, 이미 시효가 지나서, 혹은 너무 사소해서 버려지고 잘라낸 생생한 날것의 정보들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찌꺼기 같은 정보들이지만, 요리사의 솜씨에 따라 훌륭한 음식으로 만들 수 있다. 치현은 팀원들이 여기저기 남긴 정보찌꺼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류철, 다 쓴 수첩, 공유드라이브, SNS메신저 채팅로그, 포스트잇과 명함.

 

 단란주점 청록. 명함의 뒷면에는 수아라는 이름과 3주 전 날짜가 적혀있었다. 태경의 필체였다. 그가 맡았던 업무를 생각하면, 이종철이 자주 만나던 여자임에 틀림없다.

 

 작은 흔적이다. 하지만 차가워진 피가 끓기에는 충분했다. 치현은 즉시 전화를 걸었다.

 

 “어 무슨 일이냐?”

 

 “형수파 관련해서 결과 정리해서 넘기는 중인데, 제가 모르는 부분들이 있어서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언론 브리핑이라도 한데? 뭘 그렇게 꼼꼼하게 쓰라는 거야, 귀찮게.”

 

 귀찮다는 말과는 달리 태경의 목소리에서 옅은 의심이 느껴졌다. 타이밍이 안 좋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팀원을 속여야하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잡다한 것들을 언급한 뒤에야 치현은 드디어 본론으로 넘어갔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상에 올라왔던 청록의 수아라는 사람 말인데.”

 

 “걔? 걔가 올라갔었나? 걔는 빼도 돼.”

 

 신중하게, 티를 내면 곤란해진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기록은 있어서, 과장님이 물어보실 때 왜 뺐는지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건수가 안 돼. 얘들이 새끼 갈아치우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최근에 몇 번 지명한 게 전부야. 한 3번, 4번이던가. 그건 그 정도로 넘기면 될 거다. 또 뭐 있냐?”

 

 확실히 태경의 말대로다. 이런 부류들에게 술집 여자란 잠깐의 여흥이다. 의미가 없다. 하지만 시기를 고려하면 어떨까.

 

 이종철은 경찰에게 모종의 회유 내지는 협박을 당했다.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운신 자체도 제한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려운 와중에서 기어코 만났다면.

 

 “아, 네. 그리고 다음으로는...”

 

 걸어볼만하다.

 

 태경과 통화를 끝내고 한 시간 뒤, 치현은 차 안에서 유흥가의 입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은 한산한 시간이었고, 나가려면 지금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현은 나가지 못했다.

 

 목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가래 때문이다. 누구나 가끔 하는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숨을 쉴 때마다 목에 걸린 가래가 구멍 난 돛처럼 펄럭이는데, 억지로 삼키거나 뱉어내기에는 너무 미묘해서 그러지 못하는 것 말이다.

 

 갸르릉, 갸르릉.

 

 평소라면 감기 걸린 셈치고 무시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는 없을 유일한 기회다. 안 좋은 상태에서 강행했다가 허투루 날릴 수는 없어. 차라리 개인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위잉-

 

 스마트폰이 울렸다. 치현은 황급히 문자를 확인했다.

 

 저 목요일에는 약속 있어서 좀 어려울 거 같네요. 참고하세요 형사님.

 

 혜연이다. 내가 이전에 약속을 잡은 게 있었나? 취소를 했다면 모를까. 오늘 낮에 보낸 문자의 내용이 떠올랐다. 시간나면 내가 먼저 연락할게. 그녀의 함의가, 그녀의 목소리로 들렸다.

 

 먼저 연락한다고 했던데, 나도 스케줄이라는 게 있거든요? 또 바람 맞기는 싫으니까 잘 짜서 연락하세요.

 

 치현은 핸들에 이마를 기대었다. 쾌청한 웃음이 나왔다. 이 친절하면서도 새침하고, 짓궂은 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떡하긴, 후딱 해치우고 만나야지.

 

 치현은 차에서 내렸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행히도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혐오감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치현은 유흥가, 그중에서도 룸싸롱을 특히 기피했다. 빠져나가지 못한 욕망의 냄새가 쌓이다 못해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책길에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처럼, 그 덩어리들은 연신 얼굴에 달라붙기까지 했다. 그에게 룸싸롱은 오래된 쥐똥이 떠다니는 소굴이었다. 그나마 청록은 2층에 위치해서 좀 나았다.

 

 “어서오십쇼! 근데 아직 오픈 전이라서 준비가 덜 되었는데, 괜찮으시다면.”

 

 “잠깐 사장님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신분증을 본 종업원이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청록의 사장이 조심스럽게 나타났다.

 

 “우린 딱히 문제될 것이 없는데. 그리고 이런 식으로 오면 우리 영업방해에요, 영업방해!”

 

 의심과 긴장. 가시를 바짝 세운 고슴도치와도 같았다. 일단은 좀 누그려 뜨려주는 게 급선무다.

 

 “이종철 씨에 대해서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누구요? 그런 사람 모릅니다.”

 

 좀 거짓말 칠거면 그럴듯하게 하던가. 치현은 짜증을 숨겼다.

 

 “1팀에서 알아보는 겁니다. 협조 좀 해주시죠. 어휴, 좀 앉을 수 있을까요?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치현은 철민과 태경을 떠올리며 능글맞은 태도를 흉내 냈다. 사장의 냄새가 복잡해졌다. 송진을 만지면 더러워지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팀장은 오랜 강력계 경력에도 불구하고 깨끗했다.

 

 그건 달리 말하면 유승태에게, 아니 1팀에게 걸리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뭔가 껄렁해 보이는 1팀 형사가 보인다면.

 

 “원래는 이런 거 안 해주는데. 빽하면 깍두기 애들 와서 들쑤시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죠. 에이, 유 팀장님 보고 해준다. 최 실장아! 3번 청소 됐냐!”

 

 한번쯤 구멍을 만들 만한 기회로 보이겠지. 그 와중에 허풍 떨기는. 반달 주제에. 3번방은 작은 방이었다. 조명은 약간 어두운 정도였다. 강한 청소용품 냄새 밑에 깔린 나무와 과일, 기타 잡다한 안주와 욕망의 냄새가 신음소리처럼 희미하게 났다.

 

 그리고 훅, 하고 갑자기 찔렀다가 사라지는 날카로운 냄새가 하나. 사방으로 튕겨 다니면서 구멍을 내는 냄새가 하나 있다. 날카롭고, 코를 찌르는 아주 자극적인 냄새다. 하지만 의외로 낯설지는 않다. 정확히는 느낌이 익숙하다. 뭐였더라.

 

 “어디보자... 10일 날에 오고는 그 이후로 안 왔네요.”

 

 일단은 나중에. 10일이면 조직원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날로부터 하루 전이다. 치현은 사장의 반응을 주시하면서 질문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 특별한 행동이나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서 아는 게 없긴 한데. 영일아! 이종철이 왔을 때 누가 들어갔냐? 수아? 수아 걔 좀 오라고 해!”

 

 사장이 직접 불러주니 편하네. 잠시 후, 한 여자가 들어왔다. 민소매에 달라붙는 짧은 치마. 화장품과 레몬향의 향수.

 

 그리고 사방으로 찌르는 날카로운 냄새. 처음 맡았던 그 냄새다. 냄새는 더 독해서 이제는 시신경을 콕콕 찌를 지경이었다. 살짝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치현은 수아를 좀 더 면밀하게 관찰했다.

 

 “사장님 부르셨어요?”

 

 화장과 어두운 조명 때문에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코와 눈에 조금씩 손을 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미인상이다. 가슴은 좀 컸고, 겉으로 보이는 문신은 없었다. 술집 여자치고는 청순한 느낌이 들었지만, 살짝 풀린 듯 끝이 흐트러진 눈 때문에 묘한 색기가 흘렀다. 어지간한 손님이라면 한번쯤 집적거리며 피아노치려고 들법했다.

 

 문제는 치현에게는 그저 날카로운 냄새를 쏘아대는 기관총으로만 느껴진다는 점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쏘아대는 냄새에 치현은 수아와 사장의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흘려 내렸다. 대신 한참을 견디며 냄새를 고르고 골랐다.

 

 제초제와 화학약품, 화장품, 식용유.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계통 없이 섞여서 냄새가 균일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본 토대는 화학약품에 가까웠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지만, 그래서 언제라도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냄새다.

 

 이가 시큰거렸다.

 

 “오늘 일 많아서 힘 드셨겠다. 잠깐 한숨 돌리세요.”

 

 그녀는 치현에게 술을 권했다. 진한 나무 향이 올라왔다. 적어도 양주에 물은 안탔네. 눈물 나는 직업정신이군. 잠깐의 침묵 속에서 치현은 고민했다.

 

 여기서 내가 대놓고 접대를 거절한다면, 사장이 의심할지도 모른다. 상종 못할 1팀 종자니 약치는 게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날 빨리 내보내려고 들겠지. 그렇다고 받아들인다면, 사장에게 코가 꿰인다. 감찰관이 붙은 것을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다.

 

 여자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고 있었다. 답을 잘 골라야 한다.

 

 “아직은 근무 중입니다.”

 

 여자는 순간 멈칫하며 사장을 쳐다봤고, 사장은 빠르게 대응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네 그렇죠. 근무 중이시죠. 우리도 아직 영업 전이구. 하하하. 우리 애가 그만 일하던 버릇이 나왔네요. 야, 뭐하냐. 빨리 술잔 안치우고!”

 

 “치. 제가 마실 건데요?”

 

 수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혀를 날름 내밀었다. 아니, 날름이라기보다는 입술 위에서 미끄러졌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여자는 술을 살짝 흘리면서 마셨다. 꿈틀거리는 목을 따라 흘러내린 술이 가슴골에서 잠깐 맺혔다가 사라졌다. 가슴 그늘 아래에서 옷이 샘처럼 젖었다.

 

 뭐 어쩌라고.

 

 치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사장은 여자를 다시 타박했다. 하지만 아까 전보다 신호를 보내는 손짓이 더 노골적이었다. 훌륭한 방법이야. 일단 시작을 했으면, 계속 흔들어야지.

 

 “형사님 놀러온 거 아니라 일하러 오셨다잖냐. 빨리 안 치우냐.”

 

 “누가 논데요? 나도 일하고 있거든요. 일하는 사람보고 일하지 말라는 경찰이 어딨어요, 그쵸?”

 

 좀 있으면 오빠소리까지 하겠네. 여자는 은근슬쩍 몸을 기울이며 치현의 어깨에 가슴을 들이대었다. 촉감이 괜찮은 가슴이었다. 치현은 여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 가슴이 기관총이 아니었다면 다툼의 여지가 있었을 텐데.

 

 “이종철과 같이 계셨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거 없으십니까?”

 

 여자의 얼굴에서 풍선이 바람 빠지듯 미소가 사라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그리고 술 취한 사람이 무슨 제대로 된 말을 해요? 그냥 횡설수설하지. 너 언제 시간 나냐, 뭐 좋아하냐, 먹고 싶은 거 있냐, 집이 어디냐, 데려다 줄까 어쩌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으휴, 징그러워.”

 

 시작은 짜증이었는데, 끝에 가서는 묘한 애교다. 대단하네. 어쨌든, 며칠이나 지났는데, 라. 일단 아예 기억도 안 난다고는 안 하는구나? 치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대로 왔다.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빈정이 상한 걸까. 그녀는 술과 안주를 들고 나가버렸다.

 

 “야 너 어디가?”

 

 “아 쉬러가요! 일했으니까 쉬어야지.”

 

 “어휴 저걸 진짜. 죄송합니다. 쟤가 요즘에 벌이가 신통찮아가지고, 허허.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형사님도 요즘 돌아다니시다보면 느끼시죠? 경기 안 좋은 거. 저야 뭐 아직까지는 목이 좋아서 버틸만하지만, 점점 매출 줄어드는 거 보면 잠자리가 심난해질 지경입니다. 딸린 식구들도 많은데, 이러다가 망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10일 날 이종철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 없으십니까.”

 

 “수아가 모른다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나야 뭐 매일 십여 팀씩 모시고, 계속 돌아다녀야 해서.”

 

 방금 전에 매출이 줄어서 잠도 못자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장님? 사장의 어투가 살짝 변한 것을 보니, 생각이 복잡해진 모양이다. 맡아보니 다시 의심과 회의가 도진 모양인데, 맘대로 생각하라지. 어쨌든 목표는 사장이 아니라 수아다. 적당히 무마하고 털어내면 그만이다. 치현은 한동안 잡다한 질문을 던졌다.

 

 “네, 알겠습니다. 대충 이정도면 될 거 같네요.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휴, 별말씀을. 언제라도 필요한 일 있으면 말만 하십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사양 않고 바로, 하하. 아까 그 아가씨, 수아던가요? 지금 어디에. 아뇨, 부르지는 말고.”

 

 사장의 냄새가 바뀌었다. 자신감과 오만함, 그리고 경멸. 사장의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털어도 너무 잘 털어냈네.

 

 “저희가 애프터는, 헤헤. 아시잖아요?”

 

 “에이, 제가 무슨 사장님 잡으려는 줄 아십니까. 한국에서 함정수사는 불법이에요, 불법. 그리고 저 근무시간 끝났습니다.”

 

 일개 형사 따위가 거창한 구멍은 안 되겠지만, 구멍이 많을수록 물이 잘 빠지는 법이다. 그리고 새파란 형사라도 빨대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고, 앞으로 진급도 하겠다, 혹시 아나? 잘 먹이다 보면 특급 빨대가 될지. 사장은 셈을 마쳤다.

 

 “에이 형사님 안 되겠네. 낄낄. 정문으로 모실 라고 했더니만. 칼퇴 하셔야지요? 수아 보실 거면 비상구로 가는 게 더 빠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홈런 치십쇼!”

 

 방에서 나가자마자, 자판음이 들렸다. 서로 합을 맞추려는 모양이다. 평소라면 적당히 받아주며 나름대로 즐겼을 터였지만, 더는 이 하수구 같은 곳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다. 치현은 비상문으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녀는 계단 중간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뭘 봐?”

 

 쉬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솔직하네. 짜증이 난 표정이었고, 짜증이 난 냄새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솔직하면 얼마나 좋을까.

 

 “네 몸.”

 

 반가운 솔직함이었기에 치현은 최선을 다해 경의를 표했다.

 

 “하,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뭔 개좆만한 것들이 개나 소나 다 지랄이네. 실장 오빠한테 깨져서 망신당하기 전에 꺼져라.”

 

 “팔은 아니고, 어디냐? 허벅지?”

 

 “어디서 개씹”

 

 “약하잖아, 너.”

 

 여자는 움찔했다. 치현은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비상구에 몸을 기댔다. 밖에 나온 덕택인지 숨쉬기가 편해진 느낌이다. 뭐, 그래봤자 유흥가의 대기 질을 생각하면 오십보백보지만. 빨리하고 끝냅시다, 언니.

 

 “아, 지랄. 짭새 새끼들 헛소리는 무슨 디폴트냐? 사장한테 무슨 바람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떡치고 싶으면 얌전히 꼬추 잘 싸가지고 가서 오거리 할매들한테 가셔.”

 

 “코구나?”

 

 살짝 부어오른 코가 눈에 띄었다. 수아는 급히 코로 손을 올리려다가 어설프게 머리를 넘겼다. 이제 보니 베테랑이 아니라 겨우 구색만 갖춘 초짜였다. 룸에서 보여줬던 건 그냥 그쪽 경험이 어쩌다 있었을 뿐이고.

 

 어쩌다.

 

 여성청소년과 단골이었겠네. 하여간 룸에서 일한지는 얼마 안 되었고, 그래서 그런지 중독 증상도 딱히 보이는 게 없었다.

 

 그럼 왜 이렇게 냄새가 심하게 날까. 그것도 가슴에서.

 

 “하는 게 아니라 파는구나?”

 

 “안 팔아! 아니, 안 판다고요. 그리고 경찰이 이렇게 애먼 사람 무슨 범죄자 취급해도 돼? 어? 어!”

 

 여자는 항의하려고 일어나는 척하면서 슬금슬금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치현은 수아의 손목을 잡고는 확 난간 쪽으로 밀쳤다. 그녀의 허리가 난간 너머로 크게 젖혀졌다. 까치발로 겨우 계단에 발을 대고 있기는 했지만, 치현이 조금만 더 힘을 주고, 손목을 놓아버린다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사람 살려! 살려줘요! 아저씨! 여기, 읍.”

 

 수아는 팔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를 질러댔다. 치현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야! 너 뭐하는 새끼야!”

 

 술 좀 먹은 남자 두 명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재들 술 좀 드셨다고 소싯적에 무협지로 다져진 협객 본능이 나온 모양이다. 치현은 신분증을 꺼내 대충 흔들어주고는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치현은 문득 자신과 수아 둘만이 남은 것을 깨달았다. 안에서 고여 버린 온갖 추잡하고 원초적인 욕망들의 종점인 유흥가 속, 아무도 오지 않을 공동같은 비상구에서.

 

 꿈틀거리는 여자의 푸른 목 줄기가 보였다. 네온사인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겁에 질린 눈동자가 보였다. 이가 시큰거렸고, 윗입술이 움찔거렸다.

 

 그리고 눈동자 속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맹수라는 걸 막 깨달은 짐승의 모습이.

 

 얕은 미열 같았던 몽유병은 금방 사라졌다.

 

 “제대로 경청할 수 있죠?”

 

 여자는 맹렬하게 몸을 흔들었다. 치현은 천천히 여자를 당겼다. 수아는 계단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지린내가 났다. 치현은 못 맡은 척했다.

 

 “이종철의 연락처를 알고 있습니까?”

 

 여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치현은 잠자코 기다렸다.

 

 “아, 아뇨. 몰라요. 진짜몰라요정말로.”

 

 그녀는 완전히 겁에 질린 상태였다. 치현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것 참. 하지만.

 

 “이종철과는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입니까?”

 

 “온건몇번안됐지만항상절지명했어요그, 한번 오면 하루 종일.”

 

 “애프터도?”

 

 “네. 첫날빼고매번. 그, 그래도 매번 자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드라이브한 적도 있구, 저번에는 밤바다 보러가자고 하더니 강원도로 가가지고. 핸드폰도 다 끄고. 실장 오빠가 얼마나 화를 냈었는지.”

 

 말을 하면서, 여자는 많이 진정했다. 치현은 직감했다. 이 여자를 흔들어서 상처를 내고, 밖에다 풀어주면 이종철을 어떻게든 찾아갈 것이라는 걸. 설사 찾지 못하더라도, 피 냄새를 맡은 이종철이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걸.

 

 로보와 블랑카.

 

 하, 젠장.

 

 “내 번호 불러줄 테니 외워요. 아니, 적지 말고. 따라 불러요. 다시, 4가 아니라 3. 다 외웠죠? 한 번 더.”

 

 그러니까 이건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야. 그렇게 긍정적일 리가. 이건 일종의 일방적으로 투영된 자기연민에 기인한 자살 같은 거야. 쉽게 말하면 올해의 이그노벨상이라는 거지. 아주, 아주 장하십니다, 이치현씨.

 

 “수아씨, 지금 본인이 아주, 미묘한 상황에 있다는 것 잘 알지요?”

 

 치현은 ‘위험한’ 이라는 말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 더 이상 여자가 겁을 먹어서는 곤란하다.

 

 “네, 네. 알겠.”

 

 “지금 수아씨가 어떤 행동을 취하냐에 따라 미묘한 것이 위험한 것이 될 수도, 아니면 그냥 지나간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딱 한 가지만 약속해주면, 상황이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해드릴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지요?”

 

 치현은 악화라는 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녀가 상상할 수 있도록, 그래서 비겁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그니까.”

 

 “이해, 하셨습니까?”

 

 여자의 흔들림은 치현도 느낄 수 있었다. 공명된 흔들림은 치현의 마음속에서도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치현은 다리에 힘을 주었다.

 

 “네.”

 

 “앞으로 이종철에게 연락이 오는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고, 저에게 제일 먼저 연락하세요. 딱, 그거 하나면 됩니다. 전화 한통. 무엇을 할 필요도 없고, 지시를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뭘 하라고요?”

 

 “전화, 전화 한통.”

 

 “저에게. 아주 간단하고, 귀찮은 일 없는 일입니다.”

 

 여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치현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의 손이 몸에 닿을 때마다 수아는 움찔거렸다. 담배를 새로 꺼내 핀 그녀는 아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제야 사장이 보낸 문자를 확인한 그녀는 멈칫거리며 치현에게 문자의 내용을 보여줬다. 짐작했던 대로였다.

 

 “이제 쉬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당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할 시간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치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기계적인, 정말로 쥐어짜낸 웃음이었지만, 수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구분할 겨를이 없었거나. 그녀 역시 불안하게 미소를 따라짓고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수아가 사라지자마자, 치현은 유흥가에서 뛰쳐나가 차로 돌아갔다. 차의 에어컨을 최대로 틀고, 힘껏 액셀을 밟았다. 한참 강변도로를 따라 달리고 나서야, 겨우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미끼 사냥이 싫다고 덫사냥을 했지만, 결국 뭐가 다르지? 똑같이 남의 것을 흔들고 깨지게 만들었는데. 말해봐. 뭐가 다른데?

 

 치현은 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이 질문에 시달릴 테지. 우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이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게 아주 바빠지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꽤나 끈질기고 지독하게.

 

작가의 말
 

 정말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이 좀 많아서리... 게다가 그 일이 여전히 반절 이상 남았다는 게 치명적이네요. 기다려주시는 분들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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