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로의 천재 감독 ‘한해준’ 표 로맨스, 최단기간 400만 돌파
충무로의 떠오르는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한해준 감독의 3번째 작품인 ‘시선 끝’이 최단기간 400만 돌파라는 흥행 신화를 새로 쓰고 있다. 한해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시선 끝’은 신인배우 지해원과 신이연의 출연으로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와 우려를 받았던 작품이다. 지난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라 한다. 흥행 보증수표인 한해준 감독의 이후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아아.”
인터넷 포탈 연예면 메인에 걸린 기사를 읽어 내려간 민재는 소파에 기대앉아 긴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해준에게 시선을 던졌다. 최단기간 4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고, 평론가와 대중 모두에게 핫한 반응을 얻고 있는 작품의 감독이라기엔 너무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뭐야, 안 기뻐? 반응이 왜 이렇게 시원치가 않아.”
대충 고개를 흔들며 머리를 흐트러뜨리는 모습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 민재는 순간 ‘사실 배우가 본직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왜 얼굴까지 천재지, 너는?”
“뭔 소리야. 이상한 소리 하려면 그냥 가. 나 피곤해.”
“이상한데? 너 원래 작품 끝내고 후유증 같은 거 없잖아. 뭔 일 있었어?”
말하기 전까지 집에서 절대 안 나갈 것 같은 민재를 보고 해준은 차라리 내가 나갈까,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냥, 내 영화가, 우리 제작진이랑 배우들이 힘내서 만든 작품이 겨우 숫자로, 기록으로 판단되는 게 조금은 씁쓸해서.”
기운 빠진 소리로 웃으며 말하는 해준을 보며 민재는 언젠가 자신이 해준에게 질문했던 것을 떠올렸다.
영화계의 거장 한영준 감독의 아들인 해준이 이 바닥에 발을 들인다고 했을 때의 관심은 무서울 정도였다. 콧대 높다 유명한 배우들까지도 연락을 해 올 정도였고 큰 배급사에서도 투자를 하겠다며 의사를 표현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관심을 받던 해준은 정중히 거절하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들을 택했었다. 모든 이의 우려와 다르게 이 작품에 출연했던 남녀 배우는 각각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눈물과 함께 자신을 이 자리에 있도록 만들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똑같이 전했었다.
그걸 보며 민재는 눈물 젖은 감사 인사가 듣고 싶어서 유명배우는 쓰지 않는 거냐고 농담으로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해준은 지금과 똑같은 표정으로 답했었다.
‘그냥,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그 열정만으로도 웃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싶어서.’
늘 비슷한 출연진, 큰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 모든 것이 신인들에게는 불리하다 못해 열악한 영화판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먼저 한 걸음 내딛음으로써 무언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스크린의 수, 관객의 수로 작품의 흥패가 나뉘었다. 작품이 지닌 의의는 뒷전이었다.
“어렵다, 민재야.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했는데 점점 어려워진다.”
“천재 감독도 힘들 때가 있어야지. 계속 잘하면 재수 없어.”
짙은 회의감에 휩싸인 해준을 보며 민재는 괜히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분명 네 노력 알아주는 사람 어딘가에 한 명쯤은 있을 거다. 괜히 고뇌에 휩싸인 척하지 마. 한해준 감독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줄을 섰는데. 배가 불렀어.”
“…고뇌는 무슨. 나 진짜 피곤해. 당분간 쉴 거야. 일 안 해. 나한테 아무것도 부탁 하지 마라.”
쫓아내기 전에 나가- 무심하게 말하는 해준을 가볍게 무시하던 민재는 조용히 울리는 해준의 핸드폰을 보고는 소리쳤다.
“야! 김지환 감독님 전화! 이 감독이 너한테 전화를 왜 해? 친분 있어?! 나 완전 팬인데!”
“아 좀, 이제 제발 좀 가면 안 돼?”
짜증스럽게 민재를 밀어내며 전화를 건네받은 해준은 통화를 연결했다.
“네, 형.”
- 영화 잘 봤다, 천재 감독.
“형까지 왜 그래. 굳이 되새겨 줄 필요 없어요.”
- 넌 어떨 때 보면 정말 재수 없더라.
옆에 붙어 통화를 듣던 민재는 지환의 살벌한 말에 역시 배우신 분은 뭘 아신다며 눈을 반짝였다.
“아침부터 욕해주려고 전화했어? 나 이제 쉴 거예요. 빨리 용건만 말해요.”
- 성질 급한 자식. 바로 본론이다 그럼.
전화기 너머로 전해진 말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었다.
- 너, 드라마 해 볼 생각 없냐.
* * *
“어! 언니도 이 영화 봤어요? 진짜 재미있지 않아요?”
“응, 재밌더라.”
“저 진짜 저런 배우 있는지도 몰랐잖아요. 한해준 감독한테 절해야 할 판이에요. 통장을 받칠 사람을 찾았어요, 저는.”
한해준 감독의 새 작품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있던 자신에게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지현의 모습에 설아는 웃으며 지현을 바라보았다.
“저번 작품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거의 신인이던데.”
“그러니까요. 이제 저한테는 그냥 믿보한이에요.”
믿고 보는 한 감독, 깔깔거리며 새로운 사랑에 대해 말하던 지현은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에 잠시 기다리라며 메인바 쪽으로 걸어 나갔다.
The Snow. 설아가 운영을 시작한 지 4년이 된 이 카페는 지현과 설아 단 두 명이 단란하게 가꿔나가는, 바쁜 도심 속 쉼터 같은 작은 bar 형식의 카페였다.
메인 바에서 차를 내리며 휴식을 얻기 위해 찾아온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가게 안쪽에 놓인 테이블 석에 앉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소음을 느끼기도 했다.
메인 바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지현의 모습을 바라보던 설아는 설핏 웃으며 노트북 화면 위에 띄워져 있는 한해준 감독의 기사를 훑어보았다.
“한해준이라.”
괴물 신인, 천재, 보증수표. 그를 지칭하는 모든 표현이 대단했다.
“뭐가 이렇게 거창해…. 과한 칭찬은 부담이라는 건 알고 기사들 쓰시나.”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은 채 스크롤을 내리던 설아는, 눈에 띈 한 기사에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기사를 클릭했다.
- 돌아온 윤찬형, “복귀작은 한해준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어,”
국민배우 윤찬형이 지난 월요일, 모든 군 복무를 마치고 팬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팬들 앞에선 그는 더욱더 늠름해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다음은 연예N뉴스와 단독으로 이루어진 윤찬형의 인터뷰 전문이다.
Q : 제대 축하드린다. 오랜만에 팬들과 마주하니 기분이 어떠한지?
A : 감사할 따름이다.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신 팬 여러분을 위해서라도 빨리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다.
Q : 군 생활을 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는지?
A : 다들 잘 해주셔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체질이 아닌가 싶기도(웃음). 군인 역할 맡겨주시면 잘 해낼 자신이 있다.
Q : 벌써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복귀작은 어떤 작품으로 할 예정인지?
A : 감사하게도 많은 곳에서 연락을 주셔서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Q : 원하는 작품이나 감독, 작가가 있는지?
A : 한해준 감독님과 함께하고 싶다. 휴가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도 한해준 감독님 작품을 보는 거였다(웃음). 군대 가기 전에……
“언니!”
창백한 낯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설아는 자신을 부르는 지현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며 지현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어, 아냐. 아무것도….”
다가온 지현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묻자 설아는 급히 인터넷 창을 닫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 설아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지현은 설아를 이끌고 메인 바로 향했다.
자신의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던 설아는 기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애썼고,
A : ……하다. 아, 또 한 분 더 있다. 어……(정적). 지금의 윤찬형을 있게 한 작품……그 작품 써주신 작가님과 꼭, 한 번 더 작업하고 싶다.
…기사의 마지막 역시, 알지 못했다.
* * *
“선배 잘 지내죠?”
가게를 마무리할 때쯤 갑작스레 찾아온 이는 설아의 대학 시절 선배인 지환이었다.
“나야 뭐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지 뭐. 너는 어때. 잘 지내?”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 중에 한 명일 분이 무슨 말이세요.”
메인 바에서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내온 설아는 환히 웃으며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나한테 연락을 하지. 나가서 만났을 텐데.”
“아냐. 오랜만에 가게 와보고 좋지 뭐.”
카페 내부를 둘러보며 칵테일을 마신 그는 맛있다는 듯 설아를 쳐다보며 엄지를 올렸다.
“갈수록 실력이 좋아진다?”
“운전할 거 같아서 무알코올로 했어요.”
“역시, 이설아 센스 아직 안 죽었네.”
칵테일을 마시는 그를 설아는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았다.
자신의 선배는, 아무 이유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말을 꺼내기까지의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한 설아는 그가 다 마실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고, 그런 설아를 바라보며 지환은 민망하다는 듯 웃었다.
“……진짜 너는 못 속이겠다.”
“선배는 배우 말고 감독한 게 신의 한 수죠.”
그래서 하실 말씀이 뭔가요?
웃으면서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가자는 설아의 말에 지환은 잔은 내려놓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전해야 했으나 전하지 못했던, 오랫동안 가슴 속에서 썩혀온 말이었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가지 못하는 자신의 후배를 위한,
“설아야.”
재능을 죽이고 있는 이설아를 위한,
“이제 그만, 다시 작품 하자.”
선배이자 감독 김지환의 부탁이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카페의 공기는 무거웠다.
설아는 말이 없었고, 지환은 그런 설아를 기민하게 살폈다. 아무 표정 없이 테이블 끝 어딘가에 시선을 던진 설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없었다.
대학 시절, 까마득히 먼 학번임에도 불구하고 설아는 유달리 활달한 모습으로 자신을 따랐었다. 어려움도 없이 다가왔고, 그 모습에 한 번 더 정이 갔다. 가진 능력을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후배였고, 재능보단 노력이라며 땀을 흘리는 근성 있는 후배였다. 그런 설아가 본인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시간을 버리고 있는 것은 지환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녀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었다.
“다시 글 쓰자.”
펜을 잡았어야 했고,
“너도 다시 작품 만들고 싶잖아.”
마음껏 그녀의 세계를 펼쳤어야 했다.
“도와줄게. 다시 작업하자.”
가만히 앉아 지환의 말을 듣던 설아는 허탈하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 나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인 거 알죠.”
“알아. 그러니까,”
“그런 내가 안 하는 거면 선배, 그건 이제 내 능력 밖의 일 인 거야.”
알고 있다. 지환이 무얼 걱정하며 이런 말을 꺼낸 것인지.
“선배는 다 알잖아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사는지. 나라고 후회 안 했을까.”
하지만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가……나한테 그 말을 하면 안 되지.”
누구보다 많은 재능을 가졌음에도 피워보지 못했고, 현실에서 등을 돌려야만 했다.
“이게 최선이었어요, 선배. 사람들 만나면서, 가끔 글 쓰면서…나한테는 이게 최선이었어.”
5년 전, 모든 것을 잃고 방향을 상실한 설아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환 역시 그를 잘 알았으나 텅 빈 눈으로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말하는 설아를 더는 방치할 수 없었다.
“선배 진짜 너무 잔인하다.”
“네가 뭘 잘못했어? 아니잖아, 설아야.”
“나는 이제 자신이 없어요.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너도 하고 싶잖아, 응?”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삶은, 생각보다 더 불행했다.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설아는 차오르는 설움에 결국은 소리 없는 울음을 뱉어냈다.
“네 시놉시스, 넘기자. 괜찮은 감독 있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설아를 보며 지환은 표정을 굳혔다. 과거, 반짝반짝 빛나는 열정으로 제 재능을 발휘할 줄 알던 영리한 후배가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금방 일어서겠지, 강한 아이니까, 그리 생각했던 그 당시 자신의 안일함을 지환은 원망했다.
이설아가 무너질 때 곁에서 모두 지켜봤으면서 그를 방지하지 못했고, 그녀가 넘어진 곳이 길을 찾을 수 없는 미로라는 것 또한 인지하지 못했다.
제 생각보다 이설아가 받은 상처가 컸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환은, 늦었을지라도 길을 잃은 후배를 위해 기꺼이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다.
“내가 직접 하면 좋은데 이번에 내가 작품 하나 들어가.”
지금 이 행위는 설아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지환은 확신했다.
“한해준 감독 알지? 미리 언질 해놨어. 나한테 네가 틈틈이 보냈던 시놉시스, 보낸다.”
새로운 이야기의 한 획이 되리라,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