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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
작가 : 문달
작품등록일 :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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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작가님
작성일 : 19-10-24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6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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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락드릴게요.

 

 자연스레 번호를 저장하고 입가에 미소를 그린 해준이 사라진 것이 벌써 3일 전이었다. 감감무소식인 핸드폰을 내려다본 설아는 괜히 테이블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손으로 툭, 건드렸다.

 

 “연락한다면서.”

 

 그가 가게에 왔던 그 날은, 퇴근한 후에도 연락이 언제 올까 조마조마 한 마음에 핸드폰을 붙들고 있다 새벽 늦게 겨우 잠이 들었었다.

 

 가게에서 일을 할 때는 지현이 기다리는 연락이라도 있냐고 물어올 정도였으니, 어떤 모습이었을지 예상이 갔다.

 

 정작 그에겐 거절의 말을 전하고, 작품을 할 자신도 없으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저 자신이 우스워 자조적으로 웃었다.

 

 남은 맥주를 한입에 털어 넣고 빈 캔을 구긴 설아는 노트북에 띄워 놓은 대본으로 시선을 옮겼다. 흰 바탕에 검은 파도가 일렁이듯 잔뜩 늘어선 글씨의 끝에서 깜박깜박 흔들리는 커서에 고정된 시선은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워.”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이 글이었지만, 단 한 순간도 글을 싫어한 적은 없었다.

 

 설아에게 있어 글은 처음으로 설렌다는 감정을 느끼게 한 대상이었고, 행복으로 가는 수단 그 이상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다른 친구들이 가족과 저녁을 먹을 때 설아는 홀로 불 꺼진 집으로 들어서 불을 밝히는 날이 수두룩했다. 늘 바빴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가득 몰려온 졸음에 눈이 감길 때쯤이 되어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엄마 아빠와 단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던 설아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잠에 취한 설아를 껴안으며 엄마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었다. 그런 나날들의 연속 속에서 설아의 손에 올려진 것은 작은 일기장이었다.

 

 - 설아, 우리 설아가 여기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적어주면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볼게. 그럼 설아가 늦게까지 힘들게 엄마 아빠 기다리지 않아도 설아가 뭘 했는지 다 알 수 있어.

 

 삐뚤빼뚤 일기장에 한가득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 그때부터였을까.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확인한 일기장 밑에 유려한 필체의 글이 적힌 것을 봤을 때부터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 오늘은 뭘 썼어?

 

 끼익- 소리를 내는 낡은 그네에 앉아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을 건네던 아이의 모습까지 떠올린 설아는 쓰게 웃으며 뻐근해진 눈을 두 손으로 꾹 눌렀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부푼 마음으로 펜을 움직였고, 지환을 비롯한 수많은 좋은 사람과의 인연 또한 만들 수 있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기쁨을 넘어, 남이 자신의 글을 읽고, 자신의 글을 통해 기뻐하는 모습을 전부 알아버린 설아에게 글은 버릴 수 없는 저 자신의 일부였다.

 

 “미련한 이설아.”

 

 그래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현재에 와서도 글을 쓰는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미련으로 똘똘 뭉쳐있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때때로 글을 쓰고, 지환에게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나도 모르겠다, 진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 넘어져 있던 자신에게 한해준 이라는 기회가 내려진 것임은 틀림없었다. 문제는 과연 그 기회를 잡을 용기가 저에게 있느냐, 없느냐였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예전처럼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을 수없이 던져 봐도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겁을 먹은 이설아는 양 귀를 틀어막고 두 눈을 감은 채였으니까.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자신에게 또 이런 기회가 오는 날이 있기는 할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혹 기회가 또 찾아온다고 한들 두 번 다시는 작품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

 

 ……과연 그의 손을 잡아도 될까.

 

 지잉- 연달아 울린 짧은 진동 소리와 함께 화면을 밝힌 핸드폰을 내려다본 설아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잠금을 해제했다.

 

 [한해준입니다.]

 [통화 가능할 때 연락주세요.]

 

 짧은 문자 메시지를 곱씹으며 여러 번 읽은 설아는, 써 내려간 답장을 지우고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신 또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므로.

 

 * * *

 

 설아가 해준의 연락을 기다리며 마음 졸였을 3일간, 해준은 서재에 틀어박혀 태블릿에 띄운 설아의 시놉시스를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이따금 민재가 대체 뭘 하는 거냐며 서재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해준은 방해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집중하던 그는, 시놉시스의 내용이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그려질 때쯤이 돼서야 서재 밖으로 나섰다.

 

 몇 시간 만에 움직인 해준은 뻐근한 눈과 어깨를 주무르며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음을 가득 담은 컵에 탄산수를 따르려던 해준의 시선에 잡힌 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포장 죽과 노란 포스트잇이었다.

 

 - 스튜디오 다녀올 테니까 먹고 있어. 갔다 오면 대체 뭔지 하나부터 열까지 읊어라.

 

 피식 웃은 해준은 민재가 썼을 것이 분명한 포스트잇을 접으며 쇼핑백에 얌전히 담겨 있는 포장 죽을 꺼냈다. 사다 놓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인지 먹기 좋게 게살이 올라간 죽은 잔뜩 식어 있었다.

 

 “하여간에 별걱정을 다해.”

 

 분명 서재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는 제가 걱정되어 사다 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안 봐도 훤한 민재의 생각에 해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작은 용기에 죽을 옮겨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렸다.

 

 작품이 끝나면 그 무엇도 하지 않던 사람이, 작업할 때 외에는 잘 들어가지도 않는 서재에서 나오지도 않고 묻는 말에 답도 하지 않았으니 이상하게 보일만도 했다.

 

 괜한 걱정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잘 먹겠다는 문자를 보낸 해준은 곧바로 돌아온 답장을 눈으로 한 번 읽고는 화면을 껐다.

 

 자신의 집에 빌붙으며 귀찮게 할 때는 진심으로 성가셨지만, 누가 뭐래도 민재는 해준에게 있어 감사하고 귀중한 동료였다.

 

 첫 작품을 제작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김민재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해준은 단언할 수 있었다.

 

 22살, 무작정 휴학계를 내던지고 떠났던 유학길에서 그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었을 자신의 꿈을 듣고도, 환하게 웃으며 같이 하자고 외쳤었다.

 

 - 재밌겠네! 내가 보는 눈이 좋은 편이거든? 넌 좀 될 놈 같아, 진짜로.

 

 원래 하던 영어 공부도 관두고 자신과 어울린 민재는, 실제로도 눈이 좋았다. 정확하게는 감이 좋았다. 애초에 관련 지식이 없었던 지라 새로 경험을 쌓는 일은 오히려 쉬웠다. 자신의 감을 믿어보라고, 한국에 돌아가면 스튜디오를 차리자고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그는 진짜로 귀국과 동시에 저를 이끌고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들이닥쳤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철없이 구는 저희를 묘한 눈빛으로 보던 아버지는 껄껄 웃음을 흘리며 어디 한 번 투자할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보라 말했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객기 어린 행동을 보였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 일 이후, 아버지가 아닌 거장 ‘한영준 감독’에게 인정받겠다는 목표로 매달렸던 작품이 독립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 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으니까. 그게 한해준의 감독으로서의 첫 작품이었다.

 

 

 

 그렇게 첫걸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스튜디오를 차릴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자신을 비롯하여 ‘한해준 사단’이라 불리는 제작진이 소속된 회사였다. 귀찮은 걸 질색하는 저 대신, 감이 좋고 사람 좋은 민재가 대표직에 앉았고, 소규모 영화사임에도 제법 잘 굴러가고 있었다.

 

 “…진짜 욕심나네.”

 

 괜히 죽을 사다 둔 민재 덕에 밥을 먹는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올린 해준의 생각은 돌고 돌아 다시 설아의 생각으로 이어졌다.

 

 “우리 작가님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런 시놉시스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감독의 욕심이란 그러했다. 그녀와 함께 같은 회사에 몸담으며 많은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를 만났던 날, 카페를 나온 해준은 곧바로 지환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 형, 저 작가 진짜 뭐야?

 

 헛웃음을 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제 상태를 알아챈 지환 역시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었다.

 

 - 천재 감독이랑 비교해도 손색없지?

 - 이해가 안 돼서 그래요. 저런 작품이 왜 나한테까지 와요?

 - 네가 전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놈이라는 거 설아가 알면, 말해주지 않겠냐. 그러니까 잘 좀 부탁하자.

 

 에둘러 말하는 그의 모습이나, 한껏 동요하던 그녀의 모습으로 보나 말 못 할 사연이 깊게 있다는 것쯤이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는 못 하지.

 

 설아가 대학교 시절부터 아주 뛰어났다는 둥 후배 자랑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지환의 목소리를 한 귀로 대충 흘리며 전화를 끊은 해준은, 그 길로 집으로 들어와 설아의 시놉시스를 붙든 것이었다.

 

 식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거실로 나선 해준은 소파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몸을 길게 늘어뜨렸다.

 

 “어떡할까.”

 

 3일이라는 시간 동안 해준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진 상태였다. 문제는 설아의 설득이었다.

 

 손가락으로 톡톡 무릎을 두드리던 해준은 시선을 돌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한번 든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는 어렵지 않았다.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낸 후 핸드폰을 던져 놓고 두 눈을 깊게 감았던 해준이 다시 눈을 뜬 건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길게 울린 진동 때문이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올 거란 예상은 하지 못했던 터라 잠시 당황했던 해준은 이내 가벼운 미소를 띠며 전화를 받았다.

 

 “네. 한해준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용하게 울리는 설아의 목소리가 듣기에 퍽 좋다고 생각하며 몸을 좀 더 소파 깊숙이 파묻은 해준은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자는 거 깨웠어요?”

 

 - 아뇨,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그럼 혹시 내 연락 기다렸어요?”

 

 - ……네.

 

 “와.”

 

 긍정적인 답변은 기대도 안 했었는데. 작게 소리 내어 웃은 해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랑 같이 작품 할 생각이 들었어요?”

 

 - 감독님.

 

 “음, 아니다. 이건 아직 대답하지 말아요.”

 

 - …네?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거든요.”

 

 - 감독님은 왜 저랑 작품 하고 싶으신 거예요? 혹시 지환 선배 때문이면….

 

 망설이며 건넨 질문인 듯 들릴 듯 말 듯 작게 전해진 그녀의 목소리에 해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설아 씨 시놉시스를 계속 봤어요, 거짓말 안 하고 정말 계속.”

 

 - …….

 

 “지환 형 때문은 더더욱 아니에요. 책임을 전부 져야 하는 일인데, 선택은 온전히 본인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 그럼 왜 저예요?

 

 “욕심나서요.”

 

 조용한 수화기 너머 작게 들리는 그녀의 숨소리에 해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설아 씨랑 같이하고 싶어요. 설아 씨 글, 좋거든요. 읽으면 읽을수록 더 좋아졌어요. 이걸로는 이유가 안 돼요?”

 

 해준이 나지막이 말을 전해올 때 설아는 소파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울컥 차오르는 울음과 함께 얼굴엔 저도 모르는 사이 피어오른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유가 안 될 리가 없었다. 충분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글을 좋아해 준 것만으로도 이미 거절할 명분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쉽게 함께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해 설아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그의 손을 잡고 싶었으나 아직은, 잡을 용기가 부족했던 설아는 그저 진심을 가득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진심이에요. 작게 덧붙이자, 설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 수화기 너머 그가 옅게 웃는 것이 느껴졌다.

 

 - 나도 고마워요, 좋은 글 읽을 기회 줘서.

 

 설아는 알 수 있었다. 해준이 지금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 그러니까 보답할게요.

 

 “네?”

 

 무심한 듯 보이지만 한껏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뿐, 사정도 상황도 그 무엇 하나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을 채근하거나 하지 않았다.

 

 - 밥 먹을래요, 나랑?

 

 그런 해준이 산뜻하게 웃으며 건네온 제안을 거절할 재간 따위, 설아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 작품도 좋지만, 그전에 일단은 우리가 친해져야 하지 않겠어요?

 

 설아 씨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설아 씨랑 친해지고 싶거든요. 나긋하게 말을 전해오는 그의 낮은 목소리는 옅은 웃음기를 담고 있었다.

 

 - 아, 이것도 거절은 하지 말아줘요. 마음의 준비가 안 됐거든요.

 

 “…거절 안 해요. 좋아요. 같이 밥 먹어요, 우리.”

 

 ……우리. 작게 중얼거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느른하게 말을 내뱉었다.

 

 - 우리 작가님 맛있는 거 먹게 해드려야겠다.

 

 한동안 가슴이 찡하게 울릴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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