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그림자에 담은 빛
작가 : 웅크린불꽃
작품등록일 : 20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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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어
작성일 : 19-11-03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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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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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훈이 면접 통과했다고 연락 왔다. 인턴으로 6개월 근무 후 다시 입지가 결정된다지만 일단 붙었으니 잘 하겠지...”

 “ 넌, 오디션 또 봤다면서? 결과보고 안했잖아?”

 “ 또 볼거야. 다음주에 .....”

 “ 지훈이 지금 어디 있는데? 여기로 온다고 했어?”

 “ 아니, 어딜 갔는지 많이 늦는다고만 하더라.”

 “ 이모부님 댁에서는 지낼 만 하냐? ”

 “ 편하지 뭐.. 잔소리 하시는 분도 아니고...괜히 걱정 끼쳐 드려서 죄송한 거 빼고는 ... ”

 

  처음부터 낯설지 않던 이모부님께는 지금 내 심정을 털어놓고 싶어질 때가 있다. 텅비어버린 것 같은 머릿속을 열어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 참, 너 연주 만났냐?”

 “ 누구? 걔가 누군데? ”

 “ 짜식, 쪼잔해 가지고 삐졌구나! ”

 “ 누가? 나? 쪼잔해? 그래 쪼잔하다. 몰랐냐? ”

 “ 왜 성질이야? 뭔데? 왜 일어나 ? 앉아 ! 앉아서 털어놔 봐. 이 형님이 들어줄게.”

 

  느물대는 기철이 녀석이 곱게 보이지도 않았고 괜히 화풀이하기 싫어서 그냥 그 자리를 떴다. 답답한 마음에 그냥 좀 걸었다. 좀 걷다보니 낯익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안단티노>라 흘려 쓴 푸른 네온등이 켜진 커다란 창 아래로 작은 테이블에 연주가 앉아 책을 보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 들어가 보니 연주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가슴에 커다란 돌 하나가 날아와 박힌 듯 짓눌려 숨이 막혀온다. 연주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물끄러미 건너자리를 바라보니 거기에도 내가 앉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연주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었구나... 연주가 바라보던 건너자리의 나는 창밖만 응시하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연주는 나의 옆모습을 많이 보았겠구나... 나는 연주를 제대로 보기 위해 건너 내 자리로 옮겨 앉았다.

  연주는 탁자 한 편에 밀어둔 작은 책 한 권을 만지작거리며 건성건성 대답하는 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커플이 다투는 것 같더니만 여자가 먼저 일어나 나가버린다. 뒤 따라 나가 붙잡아 달래는 남자를 보고 연주가 말을 한다.

 

 “ 규영씨는 저렇게 잡아주지 않을 거지? ”

 “ 당연하지. 간다는 사람을 왜 잡아? 됐다 그래.”

 “ 사랑하는 사람이 화가 났는데 달래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

 “ 버릇돼. 갈 테면 가라지 누군 성질 없나?”

 “ 그래, 절대 잡지 마. ”

 

  연주가 잡지 말라 하는 말을 하며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연주가 사라진 지금에서야 연주의 표정이 보이고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잡아 주고 싶어졌는데 너무 늦어 버렸다. 이미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가버린 걸 도무지 인정하기가 싫었다.

 

 

 

 #

 “ 너 지금 이대로 가면 나랑 끝이야. 난 가는 사람 안 잡는다 했어.”

 “ 그래 안 잡을 거 알아, 아무리 내가 화가 나서 가도 전화 한통 안할 사람이란 것도 알아. ”

 “ 대체 왜 그래? ”

 “ 알고는 싶어? 내가 왜 화가 난건지?”

 “ 아니, 관둬! 듣고 싶지 않아.”

 “ 늘 그랬지, 그래서 내가 더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의미를 못 찾겠어. ”

 “ 내가 뭘 잘 못했는데? 왜 사람을 이리 피곤하게 하는 거야?”

 “ 내 목소리가 들리긴 해? 내가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 도대체 뭘 어쩌라고?”

 “ 날 정말 사랑해?”

 “ 사랑한다고 했잖아. 미쳤다고 사랑하지도 않는 애랑 금쪽같은 시간을 내다버리겠어?”

 “ 그럼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아?”

 “ 어, 그래, 알아!”

 “ 어떻게 알아? 난 사랑한다고 말 한 적이 없는데......?”

 “ 그냥 알아.”

 “ 부럽네. 난....... 사랑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어도 모르겠는데......”

 “ 그게 내 탓이야? 나더러 어쩌라고? ”

 “ 느껴지지가 않아....... 믿기지 않는다구......”

 

  비가 오는 탓일까? 갑자기 떠오른 기억이 점차 생생해져서 오지 않을 전화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외롭고 우울해졌다. 그러고 보니 사랑한다고 제대로 고백한 적도 없는 내가 투정을 부리며 그를 지치게 했나보다. 비오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뿌옇게 흐려진 창에 그의 이름을 적어버렸다.

  하... 규... 영...

  오늘 하루도 온통 그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혹시나 찾아줄까 하는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 테니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다.

  이곳에 온지 한 달이 넘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이 바빠졌다. 영어가 서툴러 수업을 이해하는 것도 힘이 들고 과제를 해결하여 제출하느라 밤을 새야하는 날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지만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시작하고 보니 오히려 내가 영어를 배우는 것 같아서 좋은 일자리를 찾아준 친구가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매일 빵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고 틈나는 대로 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다녀오면 하루가... 한주가 불쑥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

  몸이 무겁다. 도저히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몸살기가 오는 것 같기는 했지만 자고 나면 괜찮겠지 했는데 아닌가 보다. 엊저녁 내린 비를 고스란히 맞은 게 화근인가 보다. 퇴근하고 들른 <안단티노>에서 흘러나오는 곡을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를 보고서 되돌아가는 연주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 허둥지둥 달려 나갔다. 우산속의 그녀가 연주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황당해 하는 여자의 얼굴에서 마치 미친 사람을 본 듯한 표정을 읽었다. 사람을 잘 못 봤으니 사과를 해야 하는데 난 멍하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슬슬 미쳐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고 그대로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계속 걸었던 것 같다.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고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히 연주 같았는데...... 이제 어떻게 하지?

 

 “ 정신 좀 드냐? 미친놈아, 상사병은 약도 없다. ”

 “ 니가 여기 왜 있냐?”

 “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그거지?”

 

  정말 기억이 없다. 계속 해서 놓쳐버린 연주의 뒷모습만 떠오를 뿐 다른 기억은 없다. 기철이 놈이 날 데리고 왔나? 같이 술을 마신 기억이 없는데 내가 전화를 하기라도 했나? 도저히 모르겠다.

 

 “ 정신 차리고 일어나봐. 이 형님이 해장국 비슷한 걸 끓였으니 먹고 약 챙겨 먹어. 난 얼른 가 볼 데가 있어서 나간다. ”

 

  약 먹으라고? 부스스 일어나 정신 차리고 보니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있다. 뭐지? 거울을 보니 입술은 터져있고 눈에 멍까지... 이런 이 얼굴로 어떻게 출근을 한담? 오늘은 휴일이라 쳐도 내일까지 다 나을 리도 없고 난감하네... 기철이가 끓인 국은 맛이 좋았다. 짜식 끓였다더니 어디서 사왔나? 약 봉지를 보니 내가 밤사이 병원까지 갔다 온 모양이다. 손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기철이 말대로 약을 먹고 나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술을 마셨고 연주도 만났고 가려는 연주를 잡았다. 연주가 내 손을 뿌리치고 가버렸다.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 연주를 잡았던 손에 왜 붕대가 감겨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아직까지 자는 거야? 일어나 봐 임마. 뭐 좀 먹었냐? 약은?”

 

 다시 잠이 들었나보다. 이번엔 지훈이 녀석이네... 이것들이 번갈아 가며 마누라 노릇을 하려 한다. 귀찮다. 그냥 자고 싶다. 못들은 척 돌아 누워버렸다. 저러다 그냥 가겠지...

 

 “ 기철이가 전화했어. 오디션 본다고 갔고 너 혼자 두지 말라더라.”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잘도 떠든다. ‘제발 그냥 가라’저 자식들이 원래 수다스러웠나? 못들은 척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계속 떠들어 댄다.

 

 “ 손이 다 나으려면 좀 걸린다더라. 박힌 유리를 다 빼내고 꿰매긴 했다는데 상처가 깊다 하잖아. 약 잘 챙겨 먹고 적어도 2~3일 마다 소독하러 병원에 가야하고.”

 ‘ 어서 가라’

 “ 진짜 자냐? 안 자는 거 알아. 내가 연주씨 찾아볼까? 속 앓이 혼자 하지 말고 털어놔 봐. 입장 바꿔서 내가 니 상황이라면 넌 모른 척 할래? 기철이도 나도 너 망가지는 거 지켜만 보라는 거야? 정말 연주씨를 찾고 싶기는 한 거냐? 찾으려고는 해봤어? 아니면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잊혀지길 바라는 거야? 너 같지 않아서 그래 임마. 너한테 연주씨가 이정도 였는지 몰랐다.”

 ‘나는 알았겠냐?’

 “가는 여자 안 잡는다며? 너 매일 술에 쩔어서는 미친놈 같이 사방을 헤매 다니면서 아무하고나 시비 붙어 싸우고, 언제 까지 이럴래? ”

 “ 가라. 귀찮다.”

 “ 이모부님이 너 설득해서 집으로 데려고 들어오라셔. 걱정하시더라. ”

 “ 얼른 가서 걱정 마시라고 전하기나 해. ”

 “ 진지하게 묻는 거야. 연주씨 찾을 생각은 있어?”

 “ 누가 찾는데? ”

 “ 그럼 왜 이러고 다녀? ”

 “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찾아도 되는지도 모르겠어.”

 “ 그건 무슨 소리야? ”

 “ 모르겠다고...... 나를 피해 사라진 거면? 그런데 내가 찾으면? ... 그 다음은? ”

 “ 잘못한 거 사과하고 그렇게 사라져 버린 거 원망이라도 해. 미친놈, 진작에 잘할 것이지.”

 “ 나 나쁜 놈 이었어?”

 “ 몰랐어? 전생에 진 빚이라도 받으려는 사람 같았지.”

 “ 내가? 뭘? 설마 그렇게 까지 했을까....... ”

 “ 연주씨는 너한테 항상 안절부절 했었어. 네 심기 건드릴까봐서 ........”

 “ 나한테 얘기 좀 해주지 그랬어?”

 “ 나한테 좀 맞을래? 귀 막고 살아놓고선 ”

 “ ...............”

 “ 너 지금 연주씨 보고 싶어 이러는 거잖아! 볼 수 없어서 이러는 거잖아! 아니야? 겁먹었어? 겁날게 뭐야? 부딪쳐 보는 거지...”

 

  정말 두렵다. 마음먹고 찾으면 찾을 수는 있겠지... 그 다음은? 연주가 날 보면 반가워할까? 만약 다른 사람이 생긴 거라면? 혹시나 돌아올지 몰라서 조금이라도 연주의 흔적이 있을 법한 곳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다.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다가 나타나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자꾸 자라고 있었다. 내가 막 화를 내고 심술을 부려도 그저 나를 봐 주던 것처럼.......

  어쩌면 돌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려고 헤매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찾으러 나설 용기가 없는 나에게 이런 저런 핑계거리는 충분했다.

 

 #

  목이 부었는지 침을 삼키기가 어렵다. 열도 나는 것 같고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 같이 무겁다. 과제를 해내느라 며칠 밤을 새웠고 먹는 것도 잘 챙겨먹지 않은 탓인 것 같다. 엄마가 옆에 계셨다면 또 온갖 잔소리를 하시며 먹거리를 챙겨 주셨을 것이다. 몸이 아프니 괜히 서러워진다. 오늘은 알바를 하러 가기 어려울 것 같아 메시지를 넣었다. 한국에서 챙겨온 비상약을 뒤져서 종합감기약을 찾았다. 빈속이라 먹을 것을 찾아보니 씨리얼이 눈에 들어왔다.

 후...... 뜨끈한 국이 간절해진다. 엄마가 끓여주신 김치콩나물국을 먹으면 다 나을 것 같은데....... 차가운 우유에 씨리얼뿐이다.

 그때 서러운 나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연주? 줄리아, 나에요. 케이티.

  안에 있나요?”

 

 이런... 나의 짧은 영어가 잘못 전달되었나? 깜짝 놀라서 문을 열었다.

 

 “ 케이티? 오늘 못 간다고 메시지 드렸는데요?”

 “ 알아요. 집에 가는 길에 들렀어요. 레스토랑에서 끓인 수프 좀 가져왔는데 아직 따뜻할 거예요. 좀 먹고 푹 쉬어요. 난 갑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했다. 아플 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다. 더구나 아직 따뜻해서 얼른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난다. ‘엄마, 난 괜찮아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잖아....’

  케이티는 한국계 미국인이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엄마다. 머리색도 금발에 가깝고 눈동자도 푸른빛이며 동양적인 외모가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할머님이 한국 분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미국인 인줄 알았다. 한국말도 거의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더불어 같이 우리말에 관심이 많다. 더구나 오늘처럼 이렇게 친절히 챙겨주는 고마운 분이다. 이 신세를 어떻게 갚을지...

  울컥 울컥 눈물을 같이 삼키며 따뜻한 수프를 충분히 먹은 후 약을 먹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따뜻한 수프 덕분에 몸이 따스하고 나른해 졌다. 오늘 따라 흐린 날씨 탓에 불을 켜지 않은 내방은 낮 시간이지만 제법 어두운 저녁 같다. 불을 켤까 하다가 그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

 “ 장난치는 거야? 놀리지 마 오빠! 하나도 재미없어.”

 “ 미안해, 나 다른 사람 생겼어.”

 “ ........”

 “ 넌 나 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

 “ ........”

 “ 항상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더 이상은 기다리지 말고, 날 잊어라.”

 “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

 “........”

 “ 오빠, 갑자기 왜? 내가 뭘 잘 못했어? 고칠게... 말해줘...응?”

 “ 너 잘못한 거 없어. 내가 너한테 잘 못하는 거야. 지금...”

 “ 그럼 하지마... 하지마 오빠.”

 “ 내가 변했어. 많이 .... 더 이상은 빈 맘으로 널 대하기 싫다.”

 “ 빈 맘? ”

 “ 그래....... 다른 사람 생긴 지 좀 됐어. 미안하다.”

 “ 나 이대로 오빠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 좀 더 시간을 줘”

 “ 아니야, 서로에게 시간낭비이고 감정만 더 상할 거야.”

 “ ......”

 “ 그만 일어나자. ”

 “ 잠시만.... 이러면 난 어떻게 해? 제발 시간을 좀 갖고 다시........ ”

 “ 그런다 해도 달라질 것 없어. 난 더 이상 너 안 봐!”

 “ 오빠... 너무 갑작스럽잖아, 내가 감당할 시간이라도......”

 “ 잘 생각해봐. 갑자기가 아니잖아. 우리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어. 단정 짓지 않았다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 아니잖아......”

 “ 그렇지 않아. 난 이대로 헤어질 수 없어.”

 “ 아니, 질척거리며 추하게 그러지 마라. 너 그런 애 아니잖아?”

 “ 오빠는... 어떻게 나한테...

  어쩜 ... 헤어지는 모습까지 오빠 맘대로 정해서 강요하는 거야?”

 “ 그만... 말했잖아, 감정만 더 상한다고... 일어나자”

 “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정말?”

 “ 후회? 하게 되면 할게... 그래도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아냐. ”

 “ 사랑해...난...후회할거 같아. 놓지 못할 거야. 오래도록 많이 아플 거......”

 “ 아니,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나 같은 놈은 금방 잊어버릴 거야.”

 “...............”

 

  설핏 잠이 든 것 같은데 꿈이었을까? 오래 전 기억이 꿈으로 꾸어지기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어’하고 말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눈이 떠진 것 같았다.

 그렇게 아득한 날에 꿈처럼 날 떠났던 사람이다. 내가 잊지 못하는 그는......

 아프게 떠난 그를 계절이 여러 번 바뀐 후에 다시 만나게 되기 전까지의 나는 몸도 마음도 메말라 시들어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만난 후로도 여전히 목마른 나는 생기를 되찾을 수 없었다.......

  왜 난 꼭 그 여야만 했을까?

 언제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파도처럼 나를 그에게로 떠밀어 부서지게 하는 것 같았다. 점점 더 진해지는 아픈 기억들이 그를 사랑하는 만큼 원망도 키워서 어느 순간 나도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또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내게도 더해져서 고통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로서는 서로를 위해 그의 곁에서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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