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그림자에 담은 빛
작가 : 웅크린불꽃
작품등록일 : 20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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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 선 곳이 어디든...
작성일 : 19-11-03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7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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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연주...혹시 너도 내 목소리가 들리니? 이따금씩 이라도 말이야.

 난 오늘도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 두리번거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혼잣말을 했어.

 ‘저녁에 우리 뭘 할까?’, ‘사고 싶은 책 있니? 서점에 가볼까?’

  결국 퇴근 후에 너와 함께 갔었던 서점에 갈 수 밖에 없었어. 네가 책을 고르던 코너에서 서성이다가 네가 골라 집어 들었을 것 같은 책들을 만지작거렸어. 아무거나 한 권 집어 들고 네 발자국을 따라 걷듯 걸어 다니고 계산을 했지. 어떤 책인지 중요하지 않았어. 어차피 읽어질 것 같지 않으니까.

 “ 이 책 어때?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어쩜 좋아?” 재잘재잘 떠들던 너의 목소리가 정말 들리는 것 같았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사람들 구경을 했지. 요즘은 운전을 잘 하지 않아. 차를 팔아버릴까 생각중이야. 술 마시는 날이 잦아 일부러 두고 다니기도 했지만 꼭 술 때문이 아니더라도 걷는 일이 많아 졌어. 그냥 걷다보면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견딜 수 있으니까.

  내일은 너의 어머님을 찾아뵈어야겠다. 지난번 뵈었을 때 안색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 보였거든. 네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찾아뵙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냥 뵈러 간다.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혼자 계시니까...

  난 요즘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도 자주 전화해. 철이 든 것 같지는 않지만 아버지 쓰러지신 이후에 정신은 좀 차렸어. 부쩍 쇠약해진 모습과 곁에서 살펴주시는 어머니도 많이 늙으신 것 같아. 그 분들께 여전히 근심덩어리 응석받이로 남을 수 없었거든. 한동안 많이 벅차고 힘겨웠던 것 같아. 지금은 괜찮아. 괜찮은 거 맞나? 나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거지. 여전히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것까지...

  나 이사도 했어. 아버지 수술비 마련을 위해 오피스텔 전세비용을 내놓아야 했거든. 지금은 기철이 이모부님 댁에서 지내고 있어. 하숙생인 셈이지. 마음 넓은 큰아버지 같으시기도 하고, 같이 장난쳐 줄 막내삼촌 같으시기도 해. 좋은 분이셔.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져 불편할 것을 예상했지만 그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야.

  아마 나 혼자서 계속 지냈다면 지금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지도 모르겠어. 어두운 동굴 속에 가두어 두고 계속 술이나 들이부었을지도 몰라. 폭풍우 속에 서있는 느낌인데 피할 생각은 없어. 그대로 부딪혀 부서질 때까지 감당하려고 해.

  네가 없어도 시간이 멈추지 않는구나. 네가 사라져 버린 걸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 어쩌면 나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렇게 되돌아가는 시간으로 하루하루 견디며 사라져 버린 너를 만나고 있거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찾아가 볼 생각이다. 그래야 나중에 널 다시 만났을 때 네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를 가든 넌 항상 웃는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는 웃을 수가 없네. 젠장.

  일기를 쓰듯 네게 편지를 쓴다. 설마 일부러 메일도 확인 하지 않는 거니?

 그래도 혹시나 네가 읽는다면........ 그렇게 내 마음을 네가 읽어준다면 .......어쩌면.......

 네 곁으로 다가 설 수 있을까? 연주야........ >

 

  메일을 보내고 시간을 보니 자정이 넘어 가고 있다. 자야 할 텐데.......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는 일이 잦다. 그래도 술기운을 빌어 잠을 청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냥 오롯이 깨어 새벽을 맞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생각이 꼬리를 물어 결국에는 연주에게 가 닿아버리기에 .........

 

 “규영아, 아직 안 일어났어? 출근 안 해? 일어나봐. 오늘 차 쓸 거야? 차 안 쓸 거면 좀 빌려주라. 야, 임마 일어나, 너 그러다 늦는다구.”

 “ 필요하면 오늘 써. 대신 나 출근 해야 하니 회사 앞에 내려주고 ....... ”

 “ 그래, 고맙다. 친구야 회사까지 모셔다 드릴께, 얼른 일어나기나 해.”

 

  새벽녘에 잠이 들어서인지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그런데 지훈이 녀석이 왜 갑자기 차를 쓴다는 거지? 소연이 배웅하려는 건가? 오늘 출근 안하나? 아예 녀석에게 팔아버리고 내가 빌려서 쓸까? 어이없어할 지훈이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 그런데 차는 왜?”

 “ 묻지 마라. 답 없다.”

 “ 그냥 내차를 니 놈이 사라. 싸게 줄게.”

 “ 오늘만 쓸꺼다.”

 “ 매번 오늘만 쓴다고 하면서....... 그냥 사라 사.”

 “ 담달에 내 차 나온다. ”

 “ 어? 차 뽑았어? 형님한테 보고도 않고 무슨 차를?”

 “ 나중에 보면 알 테고 차키나 줘. 나 바쁘다. ”

 

  열쇠를 던져주고 욕실로 들어가 칫솔을 물었다. 오늘 저녁에 연주 어머님을 찾아 뵐 생각을 하니 답답해져 온다. ‘뭘 사가지?’ 여전히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테고 이때까지 차 한 잔도 주시지 않는다. 현관문 앞에서 잠깐 뵙고 되돌아오지만 서운함보다는 안쓰러워하시는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다시 걸음 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말씀도 이젠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의 눈빛이 날 서럽게 할 뿐.....

 

  “ 아빠, 다녀올게요. 출근 했다가 오후에 공항으로 갈 거예요. 떠나기 전에 전화 드릴게요.”

  “ 그래, 몸 조심히 다녀와. 밥 잘 챙겨먹고...”

  “ 아빠, 옷장에 셔츠랑, 바지...”

  “ 고만, 고만, 네 잔소리 안 들어서 좀 쉬겠다. 얼렁 가...”

  “ 오빠들, 울 아빠 잘 챙겨 드릴 거죠? 술 많이 드시지 말구요.”

 

  먼 길 떠나는 심청이 같은 딸과 아버지의 이별장면을 뒤로 하고 출근을 했다. 트렁크에는 벌써 소연의 짐이 실려 있었고, 지훈이는 회사에 나를 내려놓고는 종일 소연을 따라다닐 작정인 것 같았다. 저자식이 회사에 왜 안 나갔지? 인턴사원이 맘대로 휴가를 낼 수 있었나? 이런저런 궁금증과 아직 남은 소연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복잡한 출근길 복판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지훈이라면 어떻게는 시간 내에 회사 앞까지 데려다 놓을 것이다.

  1층 로비 게시판에 해외 영업팀 지원 신청을 받는다는 공고가 났다. 자격요건과 선발 시험관련 안내문을 보니 6개월에 걸쳐 3차 선발 과정이 게재되어 있었다. 근무하게 될 지역은 미국 서부, 동부, 남아메리카, 유럽, 동남아, 다양한 지역으로 파견될 역대 최고의 인원모집인데 입사한지 2년 이상 된 직원에게 지원자격이 주어지며 지원 시 필요한 서류 및 세부 안내사항들이 첨부된 공고문이었다. 바다건너 저기 어디쯤에 연주가 있지 않을까? 나의 생각은 늘 끝자락이 연주에게 닿아버린다. 웅성거리는 틈을 빠져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연주가 있는 곳으로 갈 수 만 있다면... 운명의 신이 나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고 나를 연주 곁으로 보내서 만나게 한다면...? 막연히 상상을 해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오후에 소연이가 전화를 했다. 공항에서... 아버지 잘 부탁한다고... 역시 지훈이와 기철이가 소연을 살뜰히 배웅했고 무심한 나에게는 엎드려 절 받는 다며 바쁜데 전화까지 걸어 ‘잘 다녀오라는 말을 꼭 듣겠다’ 면서 은근히 미안하게 만든다. 그때 만약 공항에서 걸려온 연주의 전화를 그리 끊지 않았다면 연주는 나에게 말했을까?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텐데... 항상 연주에게는 기다리게 했나보다.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퇴근 후 연주의 집으로 갔다. 어머님께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것 같다. 현관 옆 계단에 걸터앉았다. 이렇게 불쑥 찾아와 기다리다 그냥 돌아간 날도 많았다. 오늘도 그냥 돌아가야 하나? 어머님을 만나게 되더라도 연주 소식을 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냥 돌아가는 발걸음은 더 무거워서 싫었다.

 

 “ 아저씨 또 왔네요? ”

 “ 안녕? 앞집 꼬마구나.”

 “ 왜 여기 앉아있어요?”

 “ 어,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 오늘은 제가 바빠서 같이 있어드리지 못해요.”

 “ 어, 괜찮아 오늘은 엄마가 일찍 오셨나보구나? ”

 “ 네~, 그날은 외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급하셔서......”

 “ 외할머니는 괜찮으시고? ” “

 “ 네, 퇴원하셔서 우리집에 계셔요.”

 “ 다행이구나, 그날은 아저씨가 고마웠다. 친구해줘서...”

 “ 에이, 별말씀을... 근데 아저씨는 왜 자꾸 기다려요? 할머니가 약속을 안 지키셔요?”

 “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저씨가 좀 일찍 와서 그런 거야...”

 “ 어? 그런데 엄마가 아침에 할머니만나서 인사할 때 어디 여행가신다고 하신 것을 들었는데...”

 “ 그랬구나, 아저씨는 몰랐네, 고맙다 알려줘서...”

 “ 안녕히 가세요.”

 꼬마가 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일어나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 아저씨 잠깐만요. 같이 가요.”

 “ 왜? 꼬마야?”

 “ 우리 집 우편함에 들어있어서 가지고 왔는데 앞집 꺼 라고 엄마가 도로 갖다 두래요,”

 

  꼬마아이 손에 들려있는 우편물을 내려다보다 가슴이 턱 내려앉더니 심장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히 연주의 이름이다.

 

 “ 꼬마야 잠깐만, 그거 이리 줘 볼래?”

 “ 네? 아저씨꺼 아니잖아요.”

 “ 어, 맞아 내 것은 아닌데 아는 사람 이름인 것 같아서 ...”

 “ 누나한테서 온 편지 같아요. 앞집에 이쁜 누나 살았거든요.”

 “ 이 편지 아저씨가 할머니께 전해주면 안될까?”

 “ 엄마가 도로 갖다 놓으라고 했는데....”

 “ 아저씨가 할머니 뵈러 자주 오잖아. 할머니 여행 다녀오실 때 까지 아저씨가 잘 보관하고 있을게.”

 “ 네, 그럼 아저씨가 꼭 전해 주셔야 해요.”

 “ 그럼, 걱정 말아. ”

 

 연주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글씨를 쓸어본다.

 ‘ 샌프란시스코? 네가 숨은 곳이 거기였어? 지금 거기에 있는 거니? ’

 마음이 급해 졌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야할 것 같아 미칠 것 같았다. 뜯어 읽어 보고 싶었지만 감히 그러질 못하고 안주머니에 넣어 품은 채 걸음을 재촉했다. 쿵쾅 거리며 뛰는 가슴이 터져버리라고 뛰기 시작했다. 진정시킬 수 없으니 차라리 터져버리라고.....

  그렇게 무작정 뛰다가 멈추어 선 곳이 어디든 그 길 끝에 연주는 서 있을 것이었다.

 더 이상 날 보고도 웃어주지 않겠지.... 숨이 멎도록 달려가도 점점 더 멀어져가는 연주의 긴 그림자마저도 밟을 수 없음이 서글퍼지는 밤이다.

 

 

 #

  브레이든이 준 자료를 읽다보니 내가 더 배우고 읽혀야 할 내용들이 속속 드러난다. 많이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적어두는 노트를 마련했다. 한국에서 책을 좀 구입해달라고 소연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선 죄다 영어로 된 서적들뿐이니, 도서관에 가서 빌려 읽는다고 해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연에게 우선 필요한 책 목록을 메일로 보내고 자료를 좀 더 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는데도 일찍 눈이 떠졌다. 창안으로 들어온 새벽 푸른빛이 침대 맡에 닿았다가 사라진다. 서늘한 느낌이 들어 포트에 물부터 끓여 커피를 탔다. 메일함을 열어 볼 때마다 확인하려는 손이 떨려온다. 그의 메일은 스팸메일로 처리 했으니 바로 눈에 띄지 않을 텐데, 내 눈은 ‘푸른 돌고래’을 찾으며 찾을 수 없음에 안도하고 또 서운해 한다. 소연의 답장을 클릭했다. 유럽 출장 중 이라 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왔다. 소연이가 일을 마치고 귀국하려면 한 달이 넘을 텐데... 너무 늦다. 소연이의 대안은 이랬다. 전자서적으로 구입하여 다운받아서 보거나 국내 인터넷 서점을 사이트를 이용하여 구입하고 해외배송을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아직 종이책을 넘겨가며 연필로 끄적끄적 낙서도 하면서 읽고 공부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 꼭 사야할 책들을 골라 배송 받는 방법을 선택했다.

  휴대폰이 울린다. 케이티의 도움으로 여기서 휴대폰을 장만했기에 아직 이 번호를 아는 사람은 케이티 뿐... 전에 쓰던 번호는 해지하고 새로운 번호를 갖게 되었다. 이제는 누구에게든 내가 연락을 취해야만 나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겠지...

  케이티가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한다. 다운타운의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오라며 자세한 길 안내를 하면서 데리러 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케이티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꽤 근사했다. < 알레로 벨로 > 이탈리아 남부의 아름다운 마을이름이라 했다. 오래된 가구들이 고풍스러웠고 벽에 걸린 그림들은 전시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간혹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화가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고 했다. 내 그림도 걸어줄 수 있다고 해서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케이티가 준비해준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와 카프레제, 파니니를 차례로 먹으며 오랜만에 근사한 식사를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나온 과일이 토핑된 아이스 크림을 먹을 때 케이티의 남편 피터가 함께 자리를 했고 피터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 식사 맛있게 했어요?”

 “ 네, 근사한 식사였어요. 너무 맛있네요.”

 “ 이태리 혹시 가봤나요? 난 일 때문에 자주 다니는데 이태리의 정통 맛을 고수하려고 노력하지요.”

 “ 못 가보았지만 여기서 이태리를 경험한 셈이니 제가 정말 운이 좋은 가 봐요.”

 “ 샌프란시스코에는 오래 머물 건가요?”

 “ ... 글쎄요. 일단 하려던 공부를 마치려면 2년은 지날 것 같아요.”

 “ 그럼, 제가 제안을 하나 할 건데 한번 생각을 해 보겠어요? 부담 갖지 마시고 ...”

 “ 무슨? 어떤 제안인가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나요?”

 “ 우리가 1~2년 정도 유럽에 가서 살게 될 것 같아요. 이태리에 레스토랑을 하나 더 운영하려고 준비 중이거든요. ”

 “ 네.”

 “ 여기 레스토랑은 전문 경영인을 들여 관리 하도록 하면 되는데 문제는 집에 계신 케이티의 할머님 이 걱정되어 여러 가지 고민하고 있어요.”

 “ 네.”

 “ 할머님은 여기 계시고 싶어 하셔서 보호자가 필요하거든요.”

 “ 다른 자손들이 살펴드리긴 할 테지만 그래도 함께 살면서 말벗 해 드리고 챙겨드릴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찾고 있어요. 그리고 줄리아가 혹시 우리 집에서 지내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

 “ 할머님 혹시 고향이 어디신가요?”

 “ 경주? 알아요? ”

 “ 네, 그래서 가끔 한국말 하실 때 말씨에 경상도 사투리가 베어 있으셨군요.”

 “ 아주 오래전에 이곳에 오셔서 항상 그리워하시죠. 할머니께서 줄리아를 좋아하세요.”

 “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듣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

 “ 우리 집에 사는 동안은 생활비 걱정을 안 해도 될 거예요. 집세는 물론 무료입니다. 그리고 월급도 드릴 거예요. 청소나, 식사준비를 할 가사 도우미는 따로 고용할 것이니 그 부분은 줄리아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혹시 생기게 될지 모르는, 염려되는 위급한 상황에 할머니 홀로 집에 계시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줄리아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할머니의 손녀처럼 지내면 좋겠어요.”

 “ 제가 오히려 저를 믿고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려야 할 것 같네요.”

 “ 네, 믿어요.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우리가 본 줄리아는 예의바르고 성실했어요. 그리고 또 밝은 미소에 반했죠. 당신을 소개해 준 에이미에게도 고마워하고 있어요.”

 “ 저도 혼자니까 할머님과 생활하면 외롭지 않아 오히려 좋을 것 같아요.”

 “ 그럼 허락한 걸로 알고 추진할게요. 고마워요.”

 “ 네, 그런데 월급은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세와 생활비 부담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 아니에요. 할머님과 생활하면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일 텐데 보상이 당연한 겁니다. 사양 말아요.”

 “ 정말 괜찮아요.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죄송해져요. ”

 “ 많이 못주니까 서운해 말고 받아요. 생각보다 어른 말벗해 드리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끔 피터나 내가 다니러 왔다 갈 거예요.”

 “ 네, 알겠습니다.”

 “ 정말 고마워요. 그럼 줄리아가 쓸 방이 준비 되는 대로 연락할게요. 편히 가족처럼 생각해요. 우리는 한 달 뒤 쯤 떠나게 될 것 같아요.”

 “ 할머님이 저를 어찌 생각하실지.......”

 “ 기뻐하실 거예요. 사실 줄리아에게 물어보면 어떠냐고 할머님이 생각하신 거였어요. 덕분에 마음이 놓이네요. ”

 “ 그러셨군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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