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왠일이야. 서아씨는 뭐하고? ”
날 보자마자 인사도 안하고 아내인 서아부터 이야기하는 승찬이는 이미 안주와 술을 시켜서 먹고있는 도중이었다.
“ 왔으면 인사부터 하자. ”
“ 야. 너랑 나랑 무슨 인사냐. 빨리 앉아. ”
나는 왠만하면 저녁에 따로나가 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선우가 아무리 얌전해도 서아 혼자 선우를 보는 건 힘들고 내가 더 챙겨줄 수 있을 때에 개인적인 약속으로 나가는 건 부부간의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잘 지냈냐. ”
“ 너 무슨 일 있냐? 왜 그래? ”
평소와는 다른 나 때문인지 승찬이는 그 작은 눈을 예리하게 빛내며 내게 물어봤다. 나는 아까전까지만해도 말해야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좀 망설여졌다.
“ 뭔 일인데 이렇게 심각해? ”
승찬이는 내가 대답을 안하자 마시려고 들었던 술까지 내려놓았고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떠올랐다.
“ 야. 무슨 일... ”
“ 나 암이래. ”
성격이 급한 승찬이는 내가 계속 대답을 안하자 조금 인상을 쓰며 다시 물어보려했고 나는 그 순간에 승찬이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가장 중요한 말을 건냈다.
“ 뭐? ”
승찬이는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다시 물어봤고 나는 술을 한잔 들이킨 다음 승찬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나 죽을 수도 있대. ”
이번에는 똑똑히 들었는지 승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승찬이 앞에 서류를 올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 승찬아. 내가 몸이 안좋아서 병원에 갔거든? 그런데. 나 위암3기란다. ”
내 말에 대답하지 않던 승찬이는 내가 올려놓은 서류를 급하게 집더니 입구를 열어 서류를 꺼내 확인하기 시작했다.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던 승찬이는 한 순간 서류를 다시 내려놓더니 내 손을 잡고 일어났다.
“ 왜? ”
“ 일어나. 집에 가자. ”
승찬이는 정말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을하며 나를 일으켰고 나는 승찬이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승찬이는 내가 자리에 앉자 다시 내 손을 잡으며 약간은 격양 된 목소리로 말했다.
“ 빨리 일어나. 네 성격에 아직 서아씨한테 이야기 안했지? 이 서류가 진짜라면 날 만나기전에 집부터 들어갔어야지. ”
“ 승찬아. 앉아봐. 나도 말 좀 하자. ”
내가 침착하게 말하자 승찬이는 한숨을 내뱉더니 인상을쓰며 자리에 앉았고 서류를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다.
“ 나 서아한테 이야기 안하려고. ”
“ 미쳤냐? 당장 말해. 보니까 성공확률이 30%네. ”
“ 만약 성공 못 하면? ”
“ 뭐? ”
내 말에 승찬이는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고 잠시 쉼호흡을하며 화를 가다듬더니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부어 마신 뒤 나에게 말했다.
“ 그럼. 말 안하게? 아무것도 모르고 네가 갑자기 어느날 죽으면? 서아씨는? 너.. 그거 엄청 이기적인거야. 알아? ”
승찬이 말이 맞기 때문에 나는 빨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하나 생각하며 술잔을 집어들자 승찬이는 정말 화가난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 술 마시지마. 술 마시는 모습보이면 암으로 죽기전에 나한테 먼저 죽는다. ”
내가 술잔을 내려놓자 승찬이는 내 술잔을 자기쪽으로 가져가며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일 붙였다가 다시 끄며 말했다.
“ 하... 왜 서아씨한테 말을 안 한다는 건데. 들어나보자. ”
“ 수술을 시작하면 서아도 선우도 힘들어질거야. 서아가 가장 힘들어지겠지. 내 간병하면서 상처도 많이 받을거고 울기도 많이 울거야. 간병이란게 쉬운게 아니잖아. 그런데 만약 수술이 실패하면? 서아도 어린 선우도 엄청 큰 충격을 받을거야. 그런데 내가 없으면? 나만 없어지면? 서아 너도 알다시피 아직 정말 사랑스럽고 예뻐. 아직 어리니까 나 아니더라도 잘 살 수 있어. 선우도 아직 많이 어리고... 나만 나쁜놈되서 없이지면 되는거야. 그럼 서아 새출발 할 수 있어. ”
내 말이 끝나자 승찬이는 다시 담배를 물었고 불을 붙혀 피우기 시작했다. 승찬이는 담배를 한 대 다 피울 때 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다 피우고 나서야 한숨을 쉬며 말했다.
“ 하... 그건 네 생각이잖아. 서아씨 생각은 안해? 좋아. 다 좋다그거야. 그런데 지금 네 말은 서아씨랑 갈라서겠다는건데. 그럼 그 상처는? ”
“ 잠깐이야. 나보다 더 좋은 사람만나면 자연적으로 잊혀질거야. ”
“ 그건 네 생각이고. ”
나도 어제부터 알고있었다. 내가 생각하는게 비정상적인 걸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계속 생각하고 생각해도 서아는 날 간병하고 나 때문에 힘들어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 승찬이 네 생각이 뭔지는 알겠어.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땐 진짜 끝이야. ”
“ 왜 죽는다고만 생각해? 만약 너 서아씨랑 이혼하고 수술받았는데 살면? 그럼 그때는 어쩌게? ”
“ 그건 그때가서 생각해볼게. 넌 지금의 날 이해하지 못 할거야. 최악만 생각하게 된다는 걸. ”
승찬이는 뭔가 계속 애매한 표정을 지었고 혼자서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했다.
나도 승찬이 말에 동의를 안 하는 건 아니다. 서아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서아는 당연히 날 도와주겠지 날 챙겨주고 날 살리려 노력하겠지.
내가 만약 운 좋게 살아난다면 우린 예전보다 더욱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고 성공했을때도 항암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그 동안 모든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것 이다.
“ 그래. 네 말 알겠어. 나도 일단 조용히 있을게. 수술이 2주뒤네. 그동안 잘 생각해봐. ”
한참을 생각하던 승찬이는 슬픈 눈을하고 날 바라보며 말했고 나는 나를 이해해준 승찬이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 이기적이지만 나로선 방법이 없어. 이해해줘서 고맙다. ”
“ 이해한 거 아냐. 그냥 네 뜻을 존중해준다는거지. 치료를 안받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
승찬이는 다시 한번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운 뒤 마셨고 나에게는 소주잔을 건내며 아주 조금의 술을 따라줬다.
“ 도와주진 못 하겠다. 알아서 잘 숨기고 잘 행동해. 뭐든 일단 네 맘이 편해야겠지. ”
“ 응. 서아에게 말하지만 말아줘. ”
그 잔을 마지막으로 건배를하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술집을 나왔다. 시간은 10시가 다되어있었고 나는 대리기사님을 불렀다.
승찬이와 인사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승찬이가 나를 껴안았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 도와줄 수 있는게 없어서 미안하다. 많이 무섭고 아프고 힘들겠지만 계속 연락하고. 건강하게 살아나면 술이나 한잔 더 하자. ”
따듯한 승찬이에 말해 나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덩치 큰 남자 둘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승찬이는 나에게 큰 의지가 되는 친구니까.
“ 승찬아.... ”
“ 왜. 빨리 말해. 사람들이 조금씩 쳐다보니까. ”
“ 나 무섭다... 정말 무서워.. 아프고 무서워... ”
내 말에 승찬이의 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승찬이는 들키지 않으려는지 손에 힘을 한번 꽉 준 뒤 나에게서 떨어졌다.
“ 수술비나 생활비 필요한 거 있음 부담가지지말고 말해. 난 너처럼 가족이 있는것도 아니니 여유가 넘쳐나니까. ”
“ 그래. 고마워. 연락할게. ”
그 말을 끝으로 승찬이는 집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대리기사님이 도착해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집에가는 동안 나는 서류를 다시 한번 읽어봤고 오늘 승찬이와 놔눈 대화를 다시 생각해봤다.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있었고 나는 기사님께 대리비를 드린 뒤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집 앞에 도착해 현관문 앞에 서니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슬퍼하고있는 아내를보면 많이 힘들 것 같았다.
삑삑삑삑삑- 띠리리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행이도 아내는 안방에 있었고 나는 겉옷을 대충 벗은 뒤 비어있던 옷 방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며 무의식적으로 식탁을 바라보니 꿀물이 타져있었고 밑에는 아내의 글씨로 짧은 글이 쎠져있었다.
- 마시고 자. -
나는 연하게 타져있는 꿀물을 마신 뒤 옷방으로 들어갔다. 옷 방에는 아내가 이미 내가 여기로 들어 갈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이불이 깔려있었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이불에 누웠다.
아주 조금이지만 술도 마셨지만 잠은 단 하나도 오지 않았고 누워있으니 갑자기 또 위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끄으으..... ”
최대한 조용히 신음을 뱉으며 오늘 받아 온 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다행이도 꿀물을 다 마신게 아니어서 그 물로 대충 약을 먹은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생각보다 진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몸을 쭈그린 상태로 신음을 흘리지 않기 위해 베개에 얼굴을 파뭍고 있었다.
10분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약 덕분인지 진통은 조금씩 사라졌고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들었다.
내 핸드폰 잠금화면은 내 아내 서아. 배경화면은 선우였다. 나는 그 화면을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스마트폰이 생긴 게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 사랑해.... 정말.. 많이... ”
나 혼자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하고 난 뒤 나는 핸드폰을 가슴에안고 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수술에 성공했고 항암치료도 성공적으로 잘 받았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나는 서아와 선우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