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듯한 고통에 눈을 뜨니 이미 날은 밝아있었다. 바짝 말라있는 입 안에 약을 털어넣은 뒤 문을 살짝 열어 아내가 거실에 나와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이도 아내는 거실에 나와있지 않았고 나는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신음을 간신히 참으며 냉장고로가 물을 꺼내 마셨다.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8시 정도가 되어있었고 나는 다시 배게에 얼굴을 처박고 쥐어짜는 듯 한 고통을 참아야했다.
10여분정도 지나자 고통은 서서히 사라졌고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거실로 나왔다. 간단하게 씻고나와 옷방에서 편한 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아내가 거실에 나와있었다.
“ 선우는 오늘까지 엄마가 봐주시기로했어. ”
아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했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 아침은? ”
“ 괜찮아. 배 안고파. ”
무미건조한 아내의 말투에 마음이 아팠지만 아내의 반응을 이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내가 아내라도 저렇게 할 것 같았다.
아내는 식탁에 앉아 무언가를 준비했고 나는 그런 아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내를 처음만나던날 나는 첫눈에 반했고 청혼 같은 고백을하고 아내와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내를 바라보고있자 아내는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곤 무언갈 내밀었는데 쳐다보니 건강음료인 것 같았다.
“ 아침 대용이야. 마셔. ”
나는 아내가 준 음료를 남김없이 다 마신 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 서아야. ”
“ 왜? ”
이대로 지내다간 나는 더욱 서아와 떨이지기 힘들거고 선우도 더욱 눈에 밟힐 것 같았다. 서아에게 언제 들킬 지도 모르고.
“ 미안해. ”
서아는 내 미안하다는 말에 말 없이 내 손에서 컵을 가져가 싱크대로 향했고 나는 그런 서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사랑해서 일까. 상처주는 것도 상처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서아는 싱크대에 컵을 내려 놓은 뒤 나에게 다시 다가왔고 내 옆에 앉았다.
“ 아직도 이해 못 하겠어. 오빠가 나에게 했던 말. 정말 여자가 생긴거고 아이까지 만든거야? 그래서 헤어지려는거고? ”
“ 응.. 미안해. ”
“ 난 아직도 오빠가 장난이었다고 했으면 좋겠어. 아직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
“ ...... 미안. ”
아내는 내 대답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혼자서 무언갈 생각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 정말 모르겠어. 바람 필 시간이나 있었어? 일 말고는 밖에 나간적도 없는 사람이. ”
아내 말대로 나는 가끔 회식때 빼고는 집과 일 말고는 다닌 곳이 거의 없었다. 서아는 아직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눈에는 불안함이 섞여있는 듯 했다.
“ 정말 미안해. 뭐라고 말을 못 하겠다. ”
“ 그럼 선우는? 오빠가 나랑 헤어지겠다면 우리 선우는? 선우는 어떡해. ”
아내는 어느새 떨리는 눈으로.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아내의 손을 잡았다.
“ 우리 서로 새출발 할 수 있잖아. 우리 아직 젋고 서로 연봉 좋은 직장도 다니고있고. 물론 당신은 아직 휴직 상태지만 일이야 다시 시작하면 되는거고.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내는 내 손을 뿌리쳤고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한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새출발? 그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하... 됐어. 나도 더 이상 말 하지 않을게. 선우는 내가 키울거야. ”
아내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내게 말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하던 상황대로 흘러가고있었지만 마음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 당신에게 위자료, 양육비 다 받아서 우리 선우 열심히 키울거야. ”
“ 그래..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줄게. ”
“ 당신이 해주는게 아냐. 법적으로 당신은 당연히 해야하는거야.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지마. ”
나는 고개를 숙인체 끄덕였고 아내는 한숨을 한번 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고개를 들어 아내를 바라보자 아내는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눈을 하고선 날 내려보고 있었다. 나는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으며 입을 열었다.
“ 당분간 나 나가서 살게. 집에 있어봤자. 당신도 나도 안 좋을테니까. 서로 할 이야기 있을 때만 만나자. ”
아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뒤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수술 전까지 혼자 지낼 집을 구하기위해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병원 근처에 구해야 입원 할 때도 편할 것 같은 마음에 나는 일단 차를 끌고 병원 근처로 이동했고 깔끔해보이는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 어서오세요. ”
부동산 안으로 들어가니 인상 좋은 아저씨 한 분이 나를 반겨주셨고 자리로 안내해주셨다. 내 건너편으로 앉은 사장님은 나에게 녹차를 건내며 말씀하셨다.
“ 어떤 집 알아보러 오셨어요? 신혼집? ”
“ 아니요. 저 혼자 지낼 집이요. 집 상태는 크게 상관없고 가장 저렴한 곳으로 해주세요. 2주정도만 살고 비울 수도 있어서요. ”
내 말을 들은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장부 같은 걸 내 앞에 펼치며 말씀하셨다.
“ 저희가 고시원도 연결해드리긴 하는데. 고시원 같은 경우도 최소 한달은 사셔야해요. 2주 뒤에 나가셔도 비용은 한달 비용으로 결제하셔야하고요. ”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가장 저렴한 곳은 여기서 한 10분정도 걸리는 고시원인데..오래되긴 한 곳인데 내부는 깔끔해요. 지금 추천드릴 수 있는 곳은 2곳 정도고 한곳은 고시원 한곳은 원룸이에요. ”
가격과 사진이 나와있는 방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고 고시원은 한달 30만원, 원룸은 35만원 정도였다. 고시원은 내가 갑자기 통증이 왔을 때를 대비해 들어가기가 좀 불편했고 시설도 원룸이 더 나은 것 같았다.
“ 원룸이 나을 것 같네요. 거리는 얼마나되나요? ”
“ 원룸은 여기서 걸어서는 한 15분 정도 걸리고요. 차타고가면 금방이죠. 가보실래요? ”
“ 네. ”
대화가 끝나자 사장님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무언가 확인을 하셨고 잠시 후 차키를 챙겨와 가자고 말씀하셨다.
원룸에 도착하니 오히려 병원에서 더 가까워져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원룸에 들어가 안을 확인하니 시설도 괜찮았고 근처에 편의점도 있었다.
다른 곳을 확인 할 정도로 오래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사장님께 바로 입주를 하겠다고 말씀드린 뒤 사장님이 알려주신 계좌에 바로 돈을 입금했고 사장님은 차로 나를 다시 부동산까지 태워다주셨다.
“ 다행이 방이 비어있어서 바로 들어오실 수 있겠네요. 주인에게 말해놨으니 바로 입주하시면 됩니다. ”
“ 네. 감사합니다. ”
사장님은 오히려 빠르게 결정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기시곤 볼 일이 있으시다며 차를 타고 가셨고 나도 대충 짐을 챙기기위해 다시 집으로 이동했다.
집에가니 다행이도 아무도 없었고 나는 맘 편히 아주 조금의 짐을 싸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내에게 이혼 문제로 할 말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카톡을 보낸 뒤 나는 원룸으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원룸에 혼자 누워있자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와 선우도 보고싶었고 혼자 있는 기분 자체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근처나 둘러보자는 생각에 나는 밖으로 나왔고 나오자마자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를 만날 때도 흡연을 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권유로 끊게 되었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랜만에 펴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한값을 사기에는 다 안 필 것 같아 아깝기도했고 병원에서 하지 말라는 것 중에 흡연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흡연을 하는 사람을 보니 나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남자였고 나는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사람은 내가 옆에오자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건내며 말했다.
“ 혹시 한까치만 파실 생각 없으세요? 500원 드릴게요. ”
담배가 4500원이니까 한까치에 500원이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나를 불편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담배 한까치를 꺼내 나에게 건내주며 말했다.
“ 돈 안주셔도 돼요. 그냥 드릴게요. ”
담배를 받아 든 나는 정말 오랜만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물고 있으면서도 필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눈 앞에 불이 떠올랐다.
“ 라이터도 없으시죠. ”
“ 아... 네. 감사합니다. ”
그 남자는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던 게 라이터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는지 불을 붙혀줬고 나는 갑작스럽게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피는거라 강한 거부감이 들거라 생각했지만 그와 반대로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중간 정도 펴 갈 때 쯤 위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고 이제 그만 펴야겠다고 생각했다.
“ 새로 이사오셨나봐요. 못 보던 분인데. ”
나는 어느새 참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서 있기 조차 힘들정도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내가 대답을하지않자 내쪽으로 고개를 들렸고 그가 고개를 돌림과 동시에 나는 고통을 참지 못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 저기요! 저기요! ”
“ 끄으.... ”
내가 쓰러지자 그는 나를 일으키려 노력했지만 나는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하듯 오히려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 아.. 미치겠네.. 저기요! ”
나는 저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