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렇게 된 거에요. ”
내 이야기를 듣는 형의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끼어들어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한숨을 쉬면서 한심함과 안쓰러움이 교차하는 듯 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형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앉아있더니 잠시 나갔다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생각에는 담배를 피러 간 것 같았고 잠시 후 형은 다시 들아와 내 앞에 앉으며 말했다.
“ 솔직하게 말할게. 내가 네 상황이 안되봐서 잘 모르겠어. 나는 결혼도 안해봤고 애도 없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난 너 처럼은 안 할 거 같아. 네가 잘 못 됐다는 건 아냐. 어떻게보면 네 생각도 맞겠지. 네가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가려한다면 말리지는 못 할거야. 하지만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
형 역시 승찬이와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말했고 나는 내 생각이 정말 이기적이란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생각해도 내 머리로는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형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소주 한 잔을 들이킨 후 다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 승찬? 성찬? 네 친구에게 들은 답이랑 나랑 비슷한 이유가 그거야. 그 친구도 나도 너 같은 경험을 해 본적 없으니까. 우리는 네가 아니기 때문에 너를 중심으로 말 할 수 없어. 그래서 나온 결론을 너에게 말 하는거고.”
“ 네. 저도 제가 이기적이란 건 알지만 저로선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질 않아요... ”
“ 그래. 쉬운 문제는 아니니까. ”
한숨을 쉬며 답하던 형은 잠시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놀란 듯이 잠시 눈이 커졌고 상 위에있는 것들을 치우며 말했다.
“ 나머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 나도 혼자 생각해보고 답을 알려줄게. 일단 넌 지금 바로 자. 선생님이 일찍 자야한다고 했어. 벌써 9시다. ”
“ 제가 치울게요. 놔두고 가세요. ”
“ 암 환자가 뭘 치워. ”
형은 자신도 환자인 걸 까먹었는지 서둘러 치우며 네게 말했고 난 옆에서 같이 거들었다. 둘이 치우니 상은 금방 깨끗해졌고 형은 쓰레기를 몽땅 챙긴 뒤 목발을 잡고 일어났다.
“ 남에 집에 쓰레기 놔두고 가는 거 아니랬어. 그러니까 다른 말 하지말고. 나 알아서 갈테니까 어서 쉬어. ”
그 말을 끝으로 형은 다시 아까 처럼 쿨하게 나갔고 나는 집 앞까지 형을 바래다 준 후 다시 들어왔다.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내일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샤워를 하기 위해 옷과 수건을 챙기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으로 톡이 하나가 왔고 확인하니 아내였다.
- 어디야?
아내의 톡에 답장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을 했다. 지금 아내와 톡을 오래하면 나는 아내에게서 떨어지기 더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아내도 비슷 할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더 차갑게 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친구네 집이야. 당분간 집에 안들어갈거야.
아내에게 답장을 한 후 어떻게 말 해야하나 생각했다. 더 차갑게, 나에게서 정이 떨어지게 답장을 해야하지만 역시 아내에게 상처를 준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 선우가 당신 보고싶대.
아내에게서 온 톡에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생각을했다. 나는 무심해야한다. 차가워야하고 그 누구보다 나쁜놈이 되어야했다. 그러기로 다짐했고 이미 그러고 있는 상태였다.
- 나도 선우는 보고싶네. 어차피 우리 며칠 뒤에 이혼 서류 작성하고 법원가려면 만나야해. 그때 선우 잠깐 볼게.
- 난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아는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무슨 일 있는거지? 솔직히 말해. 나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있는거야?
- 사정은 무슨 사정. 그냥 내가 다른 사람이 생긴거잖아.
- 어디 아프지? 오빠 어디 아픈거야? 죽을 병이라도 걸렸어?
아내의 날카로운 질문에 나는 적잖게 당황했고 이대로라면 내 미련이 아내에게 느껴질 것 같아 나는 급하게 톡을 끊으려했다.
- 아프긴. 나처럼 건강한 사람도 드믈어. 나 바빠. 법원 가야 할 때 연락 할게. 준비하고 있어.
답장을 보낸 후 아내에게서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나는 잠시 바닥에 누워 아내와 선우의 사진을 보기위해 사진첩을 열었다.
밝게 웃고있는 아내와 선우. 그리고 나. 정말 행복해보였다. 선우에겐 미안하지만 나에게 1위는 아내. 서아였다. 아내에게도 매일 말했고 아내는 나는 아닌데라며 나를 놀리곤 했다. 화면에있는 아내와 선우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보고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을 때 아내에게 답장이 왔다.
- 오빠..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걱정되고 무서워... 보고싶어...
톡을 본 순간 답장을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너무나도 답장하고 싶었지만 답장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내 안에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답장을 하지 않은 뒤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고 물을 틀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내와 과거의 추억. 그리고 현재 아내와 선우에 대한 추억으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기 싫었다. 아니. 이대로가 아니라 그냥 죽고싶지 않았다. 살고싶었다. 이기적이라도 그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있어주길 바랬다.
“ 보고싶어....”
나는 샤워기 줄이 마치 동아줄인 것 마냥 꼭 붙잡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샤워를하고 밖에 나와 바닥에 누우니 한참을 울어서인지 조금씩 잠이 오기 시작했다. 솔직히 요즘은 꿈이 더 좋았다. 그곳에선 건강한 모습으로 아내와 선우를 볼 수 있었으니까.
나는 절대 잊지 말고 챙겨먹으라고했던 약을 먹은 뒤 다시 자리에 누웠다. 위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지만 이미 속이 뚫린 것 처럼 횡해서인지 예전처럼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역시 약 기운이 도니 잠이 오기 시작했고 나는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춘 후 잠이 들었다. 꿈에서 나는 결혼식장에 있었고 신랑신부 인사에서 아내인 서아에게 큰 절을 하고 있었다.
벌써 다음날이 온 건지. 시끄러운 알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알람소리에 눈이 떠진 나는 핸드폰을 들고 바로 알람을 껐다.
시간은 오전 8시 30분이었고 잠시 정신을 차린 나는 바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이 과장. 자네 이게 뭐 하자는 건가! ”
박문화 팀장님은 바로 전화를 받으셨고 평소에 나에게 단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던 박 팀장님이 나에게 화를 내니 기분이 이상했다.
“ 죄송합니다. 팀장님. ”
“ 무슨 일 있는가? 이 사람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전화도 안 받고. 일이야 이 과장이 평소에 미리미리해놔서 무리는 없었다만 걱정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
팀장님의 목소리는 다시 걱정이 서린 목소리로 변했고 나는 내가 생각보다 주변 사람을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 죄송해요. 팀장님. ”
“ 됐네. 사정이 있었겠지. 회사엔 내가 나에게 따로 연차를 쓴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해놨네. 무슨 일 있었는가? ”
“ 감사합니다. 팀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오늘 좀 만나 뵙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십니까? ”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진 않았지만 일단 일을 그만두려면 말을 해 놔야 할 것 같았고 전화로 통화하기에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회사 근철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늘? 점심에 식사나 같이 할까 그럼? ”
“ 네. 좋습니다. 11시 30분까지 회사 앞으로 갈게요. ”
“ 알겠네. ”
팀장님과 전화를 끊은 뒤 나는 간단하게 씻고 나와 옷을 챙겨입었다. 이번에는 지갑과 핸드폰을 챙긴 뒤 밖으로 나왔고 진료비를 계산하기 위해 병원으로 차를 타고 출발했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 한 뒤 병원으로 들어갔고 접수처에서 진료비 결제를 한 뒤 병원 내부에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
아메리카노를 받아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확인하니 다행이도 아내에게 연락은 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점심시간 때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오랜만에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고 잠시 후 카페 문이 열리고 아이와 아이 엄마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4살 정도가 되어보였고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체 가만히 서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선우가 4살일 때는 정말 말썽도 많이 부리고 가만히 있지 못해서 카페 같은 곳도 오기 힘들었는데 이 아이는 참 얌전하고 의젓한 아이 같았다.
그런 아이가 너무 예뻐 보였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와 아이 엄마를 쳐다보고 있었고 곧 이어 아이와 아이 엄마가 시킨 음료 2잔과 조각 케이크가 나왔다. 아이는 처음으로 신난 듯해 보였고 아이 엄마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이 음료를 내려놓다 손이 미끌어졌는지 실수로 음료를 놓쳤고 컵은 카운터와 바닥으로 떨어지며 얼음과 음료가 주위로 튀기 시작했다.
놀란 아이 엄마는 아이를 잠시 확이 한 뒤 직원에게 티슈를 받아 카운터를 닦기 시작했고 아이는 놀란 상황에서도 가만히 서서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놔두고 가세요. 제가 치울게요. ”
“ 아니에요. 바쁘신데. 제가 치우면 돼요. ”
아이 엄마의 말에도 직원은 재빨리 바닥을 닦는 걸레를 들고나와 얼음조각을 치우고 바닦을 닦시 시작했는데 그 순간 정말 불쾌한 목소리와 말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아... 애x끼랑 왜 카페에와서 사고를 치는거야. ”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40대 중후반 쯤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인상을 팍 구기며 서있었고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 뭐라고요? 지금 저한테 한 말이에요? ”
“ 그럼 누구한테 했겠어? 여기에 애x끼랑 온 사람이 아줌마 밖에 더 있어? 그냥 집에서 먹을 것이지. 왜 밖에까지 나와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는거야? 이러니까 맘충소리나 듣는거지... 쯧. ”
아이의 엄마에 말에 그 새.. 아니 아저씨는 비꼬는 듯 한 말투로 반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아이 엄마도지지 않고 말을 받아치기 시작했다.
“ 제가 뭔 피해를 줬는데요? 저거 제가 엎은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제가 제 돈으로 카페와서 음료도 못 마시나요? ”
“ 아니. 그러니까. 집에서 마시지 왜 밖에서 마시냐고. 남편이 꼬박꼬박 월급 주는 걸 왜 밖에서 사치를 부리냐고? 응? ”
그 아저씨의 말에 나는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다가갔고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 엄마와 진
상을 피우는 아저씨는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 아. 시끄러워. 아저씨 목소리 좀 줄입시다. 여기 공공장소인데. ”
나는 덩치가 크고 생긴 것도 무섭게 생긴 편 이었다. 그런 내가 다가가서 인상을 쓰며 말하자 그 아저씨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역시 아직 이 사회는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 넌 뭔데 꺼어들고 지x이야? ”
그 아저씨는 잠시 조용히 있다 다시 인상을쓰며 욕을 내뱉었고 나는 바로 아이를 바라봤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말이 늘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말을 금방 습득하기 때문이다.
“ 아니. 왜 욕을해? 내가 니 자식이야? ”
“ 뭐? 어린 놈이 어디서 어른에게 반말이야? 부모가 교육한번 참 잘 시켰네. ”
“ 우리 부모님은 당신 같은 사람 어른 대접하지 말라고 하시던데? 그럼 너네 부모는 너 참 교육 잘 시켰나보네. 혹시 결혼했어? 그럼 자식 교육도 참 잘 시키겠다. 훌륭하네. 혹시 딸 있어? 아니지. 일단 당신 어머니부터 맘충이네. 자식 교육을 이따위로 시킨거보니까. ”
나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을 했다. 내 말에 아저씨는 얼굴이 빨개진 체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저씨에게 말을 덧붙였다.
“ 이거 직원이 실수한거야. 이 아저씨야. 어디서 알지도 못 하면서 맘충소리를 함부러 내뱉어? 당신을 낳고 길러 준 사람도 당신과 함께 사는 사람도 당신이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다 여자고. 만약 결혼을 하고 애를 낳게 된다면 싫어도 이런 일이 생겨. 그런데 당신이 뭐라고 그딴 소리를 내뱉는거야? ”
다행이도 카페에 사람이 얼마 없어 내가 크게 떠들어도 다들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내 말에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보였다. 그 아저씨는 진짜 터질만큼 빨개 진 얼굴로 내게 손가락질을하며 말했다.
“ 네가 뭔데? 남편이라도 돼? 왜 나서? ”
“ 나? 이 분 남편은 아닌데.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빠고 맘충이란 단어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왜? 나가서 따로 얘기 할래? 괜찮겠어? ”
내가 그 아저씨에게 다가가며 이야기하자 오히려 아저씨를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잠시 후 간호사로 보이는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고 아이와 아이엄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 선생님. 휴일에 죄송합니다. 카페로 들어가셨다는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환자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는데 지금 담당 선생님이 다른 수술 중이셔서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
그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 아이의 엄마는 의사인 것 같았다. 아이 엄마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아이의 손을 잡았고 나가면서 그 아저씨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아. 죄송한데. 전 제가 벌거든요. 남편은 집에서 집안일하고요. 딱봐도 저보다 못 버시는 거 같은데 제가 시간 잡아먹어서 죄송하네요. 한푼이라도 더 버셔야 할 텐데. 사과의 의미로 저기 있는 커피랑 케이크 드실래요? 아이가 엄청 먹고 싶어하는데 제가 돈 못 버는 사람한테 적선한다 생각할게요. ”
그 말을 남긴 뒤 아이 엄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며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했고 진상을 피우던 아저씨는 혼잣말로 계
속 욕을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자리에 앉아 마저 커피를 마시며 예전에 서아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 왜 우리나라는 여자와 남자에게 차이를 두는 걸까? 다 똑같은 사람인데. 평등을 외치면 욕먹고 외치지 않으면 비하 당하고 각자에 대한 존중이란게 있어햐 하는데. 그런게 없는게 참 아쉬워. ’
서아와 연애를하고 결혼을하며 나는 예전에 당연하다는 듯이 생활했던 것이 얼마나 차별적인 건지 알 수 있었고 많이 반성하고 고치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서아에게 자랑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을했고 오랜만에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