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표정으로 나온 의사 선생님은 내 앞에 방금 촬영 한 것 같은 것들을 내려놓았고 잠시 봤지만 일반인인 내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으셨고 표정은 계속 어두운 상태였다. 아까와는 너무나도 다른 표정 때문인지 나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입을 열었고 그 말을 들은 나는 얼어붙게 되었다.
“ 촬영 결과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에요. 일단 아까 말씀드린데로 다른 장기에 전이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더 진행 될 가능성이 있어요. ”
“ 위험 할 정도인가요...? ”
내 말에 선생님은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종이를 하나 꺼내 펜으로 위를 그리며 설명해주셨다.
“ 이게 위라고 했을 때 지금 종양이 이정도에요. 아침에는 이정도 절제하고나서 항암치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종양이 커서 먼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어요. ”
그 후 선생님은 무언가 더 설명하셨지만 내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씀은 안 하셨지만 더 진행된다면 30%였던 내 생존률이 더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 그럼 어떻게... ”
“ 왠만하면 수술 날자 전 까지는 입원해 계시구요. 식사도 저희가 따로 드릴게요. 수술도 더 앞당길 수 있다면 따로 말씀드릴게요. ”
“ 네... 감사합니다. ”
“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꼭 원래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 드릴게요. ”
“..... ”
선생님은 내 표정이 좋지않자 내 손을 꼭 잡아주시며 말씀하셨지만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조금씩 버텨오던 나에겐 정말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 이준수 환자분. 이건 환자분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거에요. 우리 같이 힘 내봐요. ”
“ 네... ”
선생님은 혼이 빠진 듯 한 나에게 위로의 말을 조금 더 건냈지만 이미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병실로 들어 온 나는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살 수.. 있.. 어.. 살... 수 있을 까...? ”
나는 불이 껴진 병실에서 혼자 외롭게 앉아 울기 시작했고 한참을 울고 난 후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카페가 기억이 나 혹시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나싶어 찾아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려 핸드폰을 들었다.
- 선우에겐 잘 설명했어. 아프지마.
핸드폰을 켜니 아내에게 톡과 사진이 와 있었다. 사진속에는 선우가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며 웃고있었고 나는 선우의 사진과 아프지말라는 아내의 톡을 껴안고 한참을 더 울었다.
아내에게 답장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고 왜인지 아내에게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었다. 아니. 말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시작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던 도중.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다며 꺼져버렸고 순간 나는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복에 대충 겉옷을 챙겨입은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왔고 내가 나오자 야간 대기를 하던 간호사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 환자분. 무슨 일 있으세요? ”
“ 어..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짐을 챙겨야해서.. ”
“ 허락 받으신거죠? ”
“ 네. ”
허락 받았다는 내 말에 간호사분은 다시 일을 시작하셨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날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고 나는 택시를 탄 후 집으로 이동했다.
나는 택시 요금을 계산 한 후 집 안으로 들아와 필요한 물건을 가방에 챙기기 시작했고 한참 챙기던 도중 잠궈놓지 않았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쪽을 바라보니 성환이형이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형을 잠시 바라본 뒤 다시 짐을 챙기는데 열중했다.
“ 준수야. 내일 같이 오자니까. ”
형은 내게 가까이 다가왔고 형이 다가오니 술 냄새가 가득 나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순간 속이 안좋아지기 시작했고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하기 시작했다.
“ 웨엑... 웩.... 우웩... ”
내가 토를하자 형은 내게 달려와 등을 두드려줬고 나는 물을 내린 뒤 얼굴을 대충 씻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 형. 다리도 아픈 사람이 술을 마시면 어떡해요. ”
난 나도 모르게 날카롭게 형에게 따지듯이 말을했고 형은 자신의 옷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 아.. 미안. 혹시 술 냄새 때문에 토 한거야? ”
형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서 좀 떨어졌고 나는 괜히 형에게 짜증을 낸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 아니에요. 아까부터 속이 안 좋았어요. ”
나는 괜히 형에게 죄송해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한체 말했고 형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내 가방을 가져갔다.
“ 그래? 내가 옆에 있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
형은 나에게 또 다시 사과를하며 내 짐을 대신 챙겨주었고 나는 바보처럼 그런 형에게 나에게 정말 천사처럼 다가와 준 형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 형! 제가 한다니까요! 저 할 수 있다고요! 오히려 저보다 다리 불편한 형이 더 힘들거 아니에요! ”
형은 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놀란 눈을하며 나를 쳐다봤고 나는 형에게서 가방을 빼앗은 뒤 신경질적으로 가방 안에 짐을 넣었다.
형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화를 내지 않고서는 못 버틸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너가 나보다 힘들거아냐. 몸도 마음도. ”
내 짜증에도 차분한 형의 말에 나는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왠지 형에게 내가 우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형 몰래 눈물을 닦은 나는 형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 형. 이제 형 도움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형도 이제 형 볼일 보세요. ”
“ 준수야. ”
“ 가시라고요! 제 일 제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
“ 이준수!! ”
내가 나 자신도 하고싶지 않은 짜증을 형에게 부리며 소리아닌 소리를 계속해서 지르자 한 순간 형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형은 그런 날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 준수야... 나는 가족이 없어. 처음부터 말이야. 그래서 항상 외롭게 살아왔어. 밖에 사람들도 잘 안 만나고. 그런데 정말 어쩌다 널 만났는데 처음에는 악연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악연이였지만 네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 동생이란게 있었다면 이런 기분이였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
“ ....... ”
“ 무슨 일 있는거지? 그치? ”
“ 죄송해요.. ”
형은 가만히 서있는 나에게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었고 나는 형 앞에서 눈물을 보이게 되었다.
“ 죄송해요... 죄송해요.. ”
“ 괜찮아. ”
형은 내 등을 토닥여주며 괜찮다고 말했고 나는 잠시 형에게 안긴 체 어린아이 처럼 엉엉 울었다.
잠시 후 내가 조금 진정이 된 것 같아 보였는지 형은 나를 놔줬고 나는 고개를 숙인체 말을 이어갔다.
“ 암이.. 계속 진행중이래요.. 이 빌어먹을 암 덩어리가 생각보다 커서 조금은 심각하대요.. ”
형은 내 말에 잠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고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을 이어갔다.
“ 이제야.. 이제야 겨우 살아야겠다는.. 꼭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
“ 괜찮아. 내가 위암에대해 많이 알아봤는데 4기도 수술 잘 하고 항암치료만 잘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대. 요즘 의학기술 많이 발달했잖아? 게다가 넌 아직 3기야. 벌써부터 포기하지마. ”
형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고 형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형을 바라봤고 형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울음을 참고있는 형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고 그 자리에 주저 앉게 되었다.
“ 형.. 나 죽고 싶지않아요.. ”
나는 형의 바지를 붙잡고 아주 작게 중얼거리듯이 말했고 형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 안 죽어. 너 살거야. ”
“ 저... 살고 싶어요.. 살아서 아내와 선우와 함께 살고 싶어요.. ”
“ 걱정하지마. 넌 무조건 살거야... ”
아직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이제 조금씩 커가며 세상을 알아가는 선우. 이 둘을 놔두고 절대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말 죽고싶지 않았다.
성환이형에게도 승찬이에게도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많았다. 나를 위해 힘써준 팀장님에게도 쓰러진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홀연히 사라진 그 분들에게도...
정말 죽고싶지 않았다. 죽기에는 난 아직 너무 어렸고 아직 가족들과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아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선우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당장이라도 보고싶었다. 연락이라도 하고싶었다.
너무 아프다고 괴롭다고 외롭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가만히 앉아있자 형도 자리에 앉았고 그 상태로 날 바라보며 내 손을 잡았다.
“ 네가 가장 힘 내야해. 지금 가장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 건 너야. 너 살아야 하잖아. 아내랑 아이가 보고싶다며. 그럼 봐야지. 응? ”
나는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울음을 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은 뒤 내 손을 놓고 마저 말을 이어갔다.
“ 내가 너 간병인 해줄게. 수술도 항암치료도 내가 항상 옆에 있어줄게. 힘들고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는거 다 나에게 풀어도 돼. 그러니까 포기만 하지마. ”
“ 형... ”
“ 나 아까 편집자 만나고 왔다고 했지? 후속작 얘기 나와서 당분간 생각 없다고 말하고 오는 길이야. 너 돌봐주려고. 형 돈도 많다?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걱정 할 거 하나도 없어. ”
“ 하지만... ”
“ 괜찮아. 이제 나한테 넌 가족이야. 넌 내 동생이야. 내가 그러기로 했어. 내가 내 동생 살리겠다는데 옆에서 지켜준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거야. ”
“ 고마워요... 고마워요.. ”
나는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고 형은 다시 한번 나를 안아주며 그 따듯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여줬다.
“ 괜찮아. 울지마. 지쳐. 마음 약해지니까. ”
“ 네... ”
형은 내 대답을 듣고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났고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시간이 많이 늦었어. 빨리 짐 싸고 가서 자자. ”
“네. ”
“ 그리고 앞으로 말 놔. 누가 형한테 존댓말 쓰냐? ”
“ 네.. 아니. 응. 알겠어. ”
형은 짐을 다 싼 후 잠시 날 바라봤고 형의 얼굴은 어느새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 나이도 30이나 먹은놈이 형 앞에서 그렇게 서럽게 우냐. ”
“ 형도 울었잖아. ”
“ 아니거든. ”
형은 내가 장난을 받아치자 밝게 웃었고 형은 짐을 싸러가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형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직 많이 어렸을 때 사고로 가족을 잃었다. 형제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고 그런 가족을 잃은 충격은 어린 나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었다.
그 후로 나는 가족의 정이란 걸 모르고 살아오다 아내인 서아를 만나게 되었고 나를 아들처럼 생각해주시는 장인장모님을 만나뵙게 되었다.
선우가 생기고 진정한 가족이란 걸 느끼게 되었고 오늘 다시 한번 형으로인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난 살아야했다. 난 꼭 살아야했다.
잠시 후 형은 짐을 싸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우리는 차에 올라 탄 뒤 병원으로 이동했다.
“ 형. ”
“ 왜? ”
“ 난 꼭 살아야겠어. ”
“ 그래. ”
형은 내가 살아야겠다고 말하자 밝게 웃으며 대답했고 나는 조금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형에게 말했다.
“ 꼭 살아서 형 결혼하는 것 까지 봐야겠어. ”
“ 뭐?? ”
형은 내 장난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날 바라봤고 옆에서 계속해서 뭐라뭐라 중얼거렸지만 나는 형을 무시한 체 기분 좋에 운전을 해 병원에 도착했다.
“ 야. 요즘에 비혼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그 사람들을 다 부정 할 셈이야? 그리고 너 내가 인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
난 꼭 살아야했다. 이 행복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