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로운 여행
회색빛 화덕이 있는 15억짜리 고급 아파트
어두운 새벽, 나는 거친 장작을 하나씩 화덕에 넣으면서 울고 있었다.
이날이 내가 결정한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점차 실감되었다.
수많은 날들을 고민하고, 생각했던 일이라 장작을 넣는 손은 거침없으나, 막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장작을 쌓고, 연기가 많이 나오는 싸구려 연탄을 올린 후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아끼는 푹신한 안락의자를 화덕에 넣었다.
이 의자에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기에 선택한 의자였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오래전부터 생각한 이야기들을 종이에 쓰기 시작하였다.
- 유서 -
나는 용감한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남들은 부모님께 죄를 짓는 일이다.
그저 무서워 도망치는 겁쟁이다.
삿대질과 함께 혀를 끌끌 찰 테지만,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를 욕하는 그대들도 언젠가 떠나야하는 여행이라고.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지만, 나는 내 시간에 자발적으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남들보다 더 많이 준비한 후 가는 여행은 더 편할 거라고.
나는 어릴 때부터 꿈이 없었다.
나는 단지 노는 것을 좋아 했을 뿐이다.
놀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돈을 많이 벌면 더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배운 전부였다.
‘돈을 벌면 더 많이 놀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정해진 길에 따라 남들보다 한걸음 앞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였다.
돈을 공부하다 보니 경제를 배우게 되었고,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적당한 차와 적당한 집에서 적당히 살았다.
평범했다.
특별한 일들은 나를 모두 비껴갔다.
내 삶은 기록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아는 교과서였다.
찬란했던 청춘은 빛 바랜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소모되었고, 그 빛 바랜 노후는 찬란한 청춘을 맞이할 내 아들에게 쓰여졌다.
그러면 안 되지만 아들과 그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움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젊고 탄탄한 몸과 배가 불룩 나온 나의 몸이 비교 되었고, 그들이 만나는 사랑은 내 마지막 사랑과 비교 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웠고, 내가 좋아하던 노래에 맞춰 춤추는 내 모습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그들이 그들의 청춘을 멋지게 즐기는 것이 아니 꼬아서 충고라는 이름의 지적을 해댔고, 그들은 나를 꼰대라 불렀다.
맞다.
나는 힘들어서, 재미없어서, 정해진 길이 너무 뻔하고 익숙해서, 나의 어머니 아버지보다 먼저 무서운 여행을 떠난다.
유서를 다 적은 후 갈색 봉투에 넣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마지막으로 거실을 둘러본 후, 나는 회색 빛 화덕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았다.
이승의 문이자 새로운 시작의 문인 화덕 문을 천천히 닫고 자물쇠를 걸어 잠궜다.
안락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머리 위 굴뚝을 쳐다보았다.
긴 굴뚝 끝에는 연기가 새어 나가지 않게 밀봉해놓은 두꺼운 영어사전이 보였다.
이 모든 게 로켓 발사하는 것과 같았다.
아내가 사준 검정 수트가 나의 우주복이었고, 안락의자는 중력을 견뎌 내기 위해 설계된 특수한 우주 의자였다.
우주 멀미약은 강력 수면제였고, 로켓 발사 버튼은 불붙은 석유 램프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내 안락의자 로켓은 우주가 아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발사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세상에서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