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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의 변명
작가 : 이야기
작품등록일 :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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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의 편지
작성일 : 20-08-01     조회 : 292     추천 : 7     분량 : 5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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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인은 곧장 한강경찰서 강력 2반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 선배. 퇴근 안 하세요?”

 

 상인의 후배 김민재였다. 민재는 자신의 짧은 머리를 한 차례 만지작거리더니 상인에게 다가왔다.

 

 “야근. 야근. 또 살인사건. 어여 퇴근해.”

 

 “아유. 수고하십시오. 저 약속이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주섬주섬 검은색 외투를 챙긴 민재는 상인에게 인사를 한 뒤,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강력 2반 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상인은 자신의 자리에 와서 기지개를 켰다.

 

 ‘장민수...’

 

 상인은 진공 팩에 놓았던 장민수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다.

 

 ◇ ◇

 

 또 맞았다. 이번엔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아빠, 아니 ‘그 사람’은 술만 마시면 나를 때리고 또 때렸다. 그 사람이 때리는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는 나만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며 뺨을 후려쳤다. 어느 날에는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발길질을 해댔다. 나는 그 사람보다 약했기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참담한 현실을 매번 받아들여야만 했다.

 

 엄마는 내가 5살 때 도망을 갔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사람의 폭력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맞던 엄마는 나를 보며 미안하다며 하염없이 눈물만을 보였다. 그의 폭행은 어린 내게도 이어졌다. 엄마는 내가 사시를 앓는 것은 그 사람의 폭행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될 무렵. 열이 새벽에 오른 나머지 내가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고 한다.

 

 하지만 집에서 잠을 자고 있던 그 사람은 내 머리를 수차례 때리며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다고. 뒤늦게 일어난 엄마가 나를 지켜내려 서둘러 막아섰지만, 나는 이미 경기를 일으킨 뒤였다고 했다. 이후 내 오른쪽 눈은 뒤로 돌아갔다.

 

 그대로 병원으로 간 나는 7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아기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다행히 눈은 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뒤로 사시를 앓게 됐다. 엄마는 그때 나를 못 지켜준 게 미안하다며 계속해서 안타까워했다.

 

 그의 폭력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내가 아프다고 울면 울수록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내게 물건을 던져댔다. 한 번은 밥그릇이 날아온 적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내 몸은 그 사람의 발소리만 나면 자연스레 벌벌 떨었다. 더는 못 참은 나머지 나는 엄마에게 둘이서만 살고 싶다고 몰래 얘기를 해봤다. 나의 소원에 엄마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을 보이곤 했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그 사람이 던진 술병에 머리를 맞았던 어느 여름이었다. 시뻘건 피가 엄마의 머리에서 솟구쳤지만, 엄마는 어떠한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한 상태로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몸은 나무 고목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그만 때리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번엔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라면서. 엄마는 그날 저녁에 사라졌다.

 

 엄마가 안 보이자, 그 사람은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그 뒤로 그 사람의 폭행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그는 매일 공사판에서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우연히 일을 얻게 되면 기분이 좋다며 술을 마셔댔고 그때마다 폭행이 뒤따랐다. 일을 못하게 되면 나 때문에 일을 못 구하고 있다며 또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도망친 엄마에 대해 원망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이 생활을 버티기란 참 힘든 것이라고 혼자서 되뇌었다.

 

 나는 이웃집 할머니 집에 도망치곤 했다. 엄마를 좋게 보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늘 나를 딱하다며 보살펴줬다. 그리고 종종 엄마 얘기를 해줬다. 매우 착하고 예뻤다면서.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다. 나는 한동안 그 사람의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 사람도 나를 더 찾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할머니의 병이 악화하자, 할머니는 병원으로 가야만 했다. 할머니는 나를 안쓰럽다며 병원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자식들이 부담스러워 하며 같이 가는 것을 말렸다. 나는 가기 싫다고 이웃집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를 못 챙겨주는 것에 다들 그저 안타까운 눈빛만을 보냈다. 나는 결국 다시 그 사람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온 지 3개월 만이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나를 그 사람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사람의 집은 엉망이었다. 마당에는 술병이 어지럽게 놓여있었고 집 안에 들어가자 고약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사람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를 본 이웃집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나를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풀린 눈 주위에는 뻘건 빛이 맴돌았다. 꼭 먹이를 찾는 짐승과도 같았다. 그 눈빛은 당시 5살이었던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그는 한동안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그가 나를 다시 때린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시점이었다. 엄마가 내게 입학 선물로 가방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람은 엄마랑 연락하고 있었느냐면서 배신자라며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사실 엄마에게 연락이 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니라고 그 사람에게 말해봤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흥분한 그 사람은 가방을 찢어버리겠다고 칼을 들었다. 나는 가방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내 팔부터 뻗었다. 이윽고 내 팔뚝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내가 무덤덤하게 피를 닦으며 가방을 지키고 있자, 그 사람은 나를 한동안 쳐다봤다. 그리고 조용히 칼을 내려놓고 집에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눈물을 흘렸다. 왜 살아야 하는 걸까. 경찰에도 종종 신고도 해봤다. 하지만 경찰은 내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학교도 잘 나가지 않은 나를 오히려 불량하다며 아빠 말을 잘 들으라고 겁을 줬다. 그리고 경찰은 그 사람에게 연락했다. 댁 아드님 여기 있으니 잘 얘기해보세요. 이 나이 때는 아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 사람은 경찰 앞에서는 참으로 공손했다. 바쁘신데 죄송하다며 엄마가 없는 아이라 어쩔 수 없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경찰은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내 손을 꼭 잡고 지구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날 집 문이 닫히자마자 뺨부터 얻어맞았다. 이런 행동도 엄마한테 배운 거냐는 말이 뒤따랐다.

 

 그나마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엄마의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휴대폰을 선물로 보냈다. 그것도 지인을 통해 몰래. 하지만 엄마는 내게 번호를 따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 사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메일로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 맞고 있다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게 항상 미안하다며 말을 했고 늘 내가 행복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기에 나는 그런 엄마를 위해 그 사람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둘러댔다.

 

 엄마는 언젠가 파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외국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엄마는 그게 소원이라고 했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어른이 되면 엄마를 꼭 파리에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이후에 열심히 학교에 다녔다. 엄마의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마음과 함께. 다짐과 달리 나는 학교에서 늘 혼자였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나를 피했다. 나는 이것이 그 사람의 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때문인지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은 늘어갔다. 처음에는 말로만 놀리던 친구들이 점차 그 수위를 높여갔다. 놀림은 결국 주먹과 발길질로 돌아왔고 나는 그 사람과 친구들의 폭력을 모두 견뎌내야만 했다.

 

 나는 참다못해 나를 괴롭히는 한 친구를 향해 의자를 던졌다. 불행하게도 내가 던진 의자는 친구의 입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친구의 앞니 두 개가 눈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친구는 결국 다음날 자신의 엄마 아빠를 모두 불러왔다. 친구의 부모는 모두가 내 책임이라며 엄마 없는 집이 다 그렇지 않느냐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것은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 사람까지 학교에 오게 됐다. 그 사람은 나를 보더니 제 엄마를 닮아서 그런다며 모두가 있는데서 손찌검부터 했다. 나는 맞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맞아야 하지. 내가 왜 맞고 있는 거지. 결국 친구 부모까지 말리고 나서야 그 사람의 폭행이 멈췄다. 그리고 친구 부모는 내게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학교 2학년 가을쯤, 낯선 사람의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이는 자신을 엄마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고 내게 알려왔다. 그 자리에서 내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가 됐다. 나는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 그리고는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경찰은 엄마가 식당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다 낯선 이의 둔기에 머리를 수차례 맞았다고 밝혔다. 그리고선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그 사람'을 지목했다. 둔기는 집 현관문에서 나왔다. 내 낡은 신발 바로 옆이었다.

 

 망치 곳곳에는 핏자국이 굳어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엄마를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우는 것이 전부였다. 엄마의 빈소에서 내 울음소리만이 하염없이 울려 퍼졌다. 그래도 궁금했다. 그 사람은 왜 엄마를 죽였던 것인지. 자기를 싫다고 도망간 엄마를 도대체 왜 찾은 것인지.

 

 ‘네 엄마는 바람났어. 나하고 같이 살지 않으면 죽어야 돼.’

 

 ‘네 엄마는 나를 무시했어. 그래서 혼을 내준 거야.'

 

 그 사람은 엄마의 위치를 늘 알고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 사람과 혼인 신고한 엄마의 위치는 너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엄마의 정보가 담긴 문서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엄마를 줄곧 감시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것을 알면서도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모습에 격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다짐했다. 죽일 것이다. 반드시 죽여 버릴 것이라고. 그 사람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술에 취한 상태인데다가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다며 감형했다. 나는 항소를 신청하지 않았다. 더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게 가장 컸다. 재판 과정에서 그 사람의 변명 또한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뒷산 나무에 목을 매달려고도 했다. 하지만 나뭇가지가 뚝 부러지는 바람에 나는 살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엄마가 살게 해준 거라고. 아. 엄마가 복수해달라고 하는 거구나.

 

 삶의 미련도 없는 내게 3년이라는 시간은 긴 세월이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매일 이날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마침 그날이 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위해 '복수'를 했다. 여기에 쓰러진 사람은 이 편지에 나오는 그 사람이다.

 

 내가 이 사람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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