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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의 변명
작가 : 이야기
작품등록일 :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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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작성일 : 20-08-03     조회 : 226     추천 : 7     분량 : 5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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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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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0일. 민수를 태운 비행기가 파리 샤를드골(Charles de Gaulle)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파리에 도착했다는 기장의 메시지가 비행기 안에서 울리자, 사람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별다른 짐이 없는 민수는 멀뚱히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때 옆에 있는 승객과 눈이 마주쳤다.

 

 “하이(Hi).”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남성이었다. 그는 민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게 왜 저런 미소를 보이는 거지..?’

 

 해외여행이 처음인 민수에게 있어서 남성의 돌발 행동은 낯설게 다가왔다. 민수가 어찌해야할지 모르자, 머쓱해진 남성은 민수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더니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민수는 한동안 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남성의 모습이 그의 눈에서 사라지자, 민수는 그제야 짐칸에서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빨간 비니 모자를 쓴 뒤에 빨간 점퍼를 입었다. 그리고는 검은색 캐리어 한 개를 챙기고 비행기 앞으로 나갔다.

 

 ‘봉주르.’

 

 승무원의 환한 인사에 민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승무원의 웃음 또한 낯설다고 생각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왜 다 웃고 있는 거야.’

 

 민수는 이 문화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승무원의 환한 인사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민수는 억지로 미소를 지은 뒤에, 비행기에서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민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낯선 향이 민수의 코를 자극했다. 민수가 뒤를 돌아보자, 비행기 연결통로에서 승객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 위로는 파란 하늘이 눈에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드디어 프랑스야.’

 

 민수는 살짝 웃은 뒤 캐리어를 강하게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문인지 그의 주변에서 캐리어의 소리가 드르륵 울려 퍼졌다. 민수는 이 소리가 썩 괜찮다고 생각했다. 캐리어의 소리가 자신을 꼭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처럼 들린다고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수가 성큼성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민수를 힐끔 바라봤다. 사실 사람들은 민수의 캐리어 소리 때문에 바라본 것인데 민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반응을 즐기는 민수였다.

 

 새로운 세상의 모습은 민수를 들뜨게 했다. 확실히 공항의 모습은 민수의 낡고 허름한 방과는 달랐다. 깔끔한 바닥과 거대한 로비는 민수에게 또 다른 세계였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공항의 모습 또한 그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누었고 어떤 사람들은 헤드셋을 낀 채 눈을 감는 이들도 있었다. 자식들과 함께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도 눈에 보였다. 활발한 모습이었다.

 

 민수는 이 모든 모습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해했다. 민수가 출입국 직원 앞에 서자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직원들의 물음에 민수는 ‘여행하러 왔고 학생이다’고만 얘기했다. 예상한 질문에 준비한 대답이었다. 현지 직원들은 하품하며 민수의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었다. 여권을 받은 민수는 표지판을 따라 1층으로 향했다. 1층에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살짝 당황한 민수였지만, 민수는 긴 줄부터 찾았다. 그는 파리행 열차 탑승권을 파는 전자 매표소 앞에 줄이 많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실제로 전자 매표소 앞에 탑승권을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나 있었다.

 

 ‘파리로 가는 사람들의 줄일 거야.’

 

 휴대폰을 꺼낸 민수는 RER열차 탑승권을 구입하는 장소인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RER열차는 한국으로 치면 공항철도와 같았다. 공항에서 파리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이기도 했다. 장소를 확인한 민수는 기계 앞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내 RER열차 탑승권을 구매했다. 그리고는 휴대폰 유심을 파는 곳으로 가 5GB 유심을 휴대폰에 갈아 널었다. 한국에 썼던 유심은 그 자리에 버렸다.

 

 ‘이제 진짜 얼마 남지 않았어. 살아남는 시간이.’

 

 민수는 어머니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파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사람’을 작업한 뒤로 민수는 살아 있는 것에 대해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사치라고 생각한 민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그 사람’을 죽였다고 편지까지 쓴 민수였다. 차라리 일찍 숨을 거두고 자신의 어머니를 보다 빨리 만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프랑스의 모든 모습은 민수에게 있어 특별해 보였다. 어쩌면 자신의 생애 마지막 모습이었기에 민수는 주변을 수시로 둘러봤다.

 

 파리로 가는 길은 평온했다. 열차를 탄 사람들은 저마다 할 일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민수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Fuck you'라는 그라비티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가 익숙해질 무렵,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이 열차 안에 들어왔다. 그의 가슴에는 낡은 아코디언이 들려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노인을 호기심 어리게 바라봤다. 노인은 검은 이를 드러내며 연주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노인이 연주를 마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팁을 달라는 의미였다. 노인이 민수의 자리까지 오자, 민수는 속으로 고민을 했다.

 

 ‘돈을 줘야 해, 말아야 해.’

 

 하지만 이런 민수의 고민도 잠시, 노인은 민수를 그대로 지나쳤다. 그리고는 뒷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열차는 금세 파리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민수는 캐리어를 끌고 샤틀레(Châtelet)역 밖으로 나갔다. 파리의 날씨는 한국과 확연히 달랐다. 햇빛은 진했으며 공기는 가벼웠다. 마치 가을 날씨 같았다. 건물의 모습도 한국과 달랐다. 교과서에나 봤던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눈앞에 나열돼 있었다.

 

 민수는 그 자리에서 버스를 갈아타 미리 예약한 한인 민박집으로 향했다. 영어와 불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민수는 휴대폰에 담긴 지도만을 바라보며 민박집을 찾았다. 다행히 민박집은 역 가까이에 있었다. 문도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어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민수는 문 앞에 달린 검은색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고는 몇 분 뒤,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이윽고 파마머리를 한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예약한 학생이죠? 어서 와요. 많이 힘들었죠? 파리 날씨는 한국보다 더 추운가요? 어머 제 정신 좀 봐. 전 캐서린이에요.”

 

 “전 민수라고...”

 

 캐서린의 인사에 민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캐서린은 웃으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민수는 아무 말 없이 캐서린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 내부는 한국과 달랐다. 건물 한가운데에 정원이 있었고 한 쪽에는 쓰레기통 3개가 놓여있었다. 민수가 고개를 드니 집마다 창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지금 보는 것처럼 프랑스에서는 정원이 건물 안에 있어요. 한국과 다르지요?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 저 창문으로 이곳 정원을 보며 관리하고 있지요. 물론 가끔 유독 관심을 자주 보이는 이웃들이 있어 귀찮은 일로 다가오지만, 결국 이 정원이 있어 이웃들과 잘 지낼 수 있답니다. 모두 시간이 날 때마다 정원을 가꾸고 있죠.”

 

 민수는 정원에 설치된 쓰레기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모습에 캐서린이 말을 덧붙였다.

 

 “하나는 플라스틱 또 하나는 캔과 병만 담아야 해요. 나머지 하나는 일반 쓰레기만 버리는 거고요. 가까이 가서 보면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학생이 나중에 확인 해봐요. 아! 이 쓰레기통들은 수요일에 한 번 밖에다 놓아요. 그러면 업체가 새벽에 가져가거든요. 그건 그렇고 제가 여기 프랑스에 있는 이유를 말하자면요···”

 

 그러면서 자기가 프랑스에 있게 된 사연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국에 있을 때 승무원이었고 지금은 통역원 일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훌륭한 남자친구를 만나 아이까지 낳았다는 얘기였다. 다만 캐서린은 남자친구에 대해선 더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학생, 파리는 참 살기 좋은 곳이에요. 여기 정책이 좋아서 보조금도 많이 나오고..”

 

 캐서린은 계속해서 자신의 얘기를 떠들어댔다. 민수는 그저 고개만을 끄덕이고는 주변을 바라봤다. 민수가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캐서린은 웃으면서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피곤하죠?”라고 말하고는 정원 옆에 있는 검은색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무로 만든 계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캐서린이 발을 내미니 삐걱대는 소리부터 들렸다.

 

 "놀라지 마세요. 건물 위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에요. 4층까지 연결돼 있어요. 혹시나 무너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안전하거든요."

 

 캐서린은 보란 듯이 2층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민수도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꽃이 걸린 문 앞에 멈춰 선 캐서린은 손에 든 열쇠로 잠긴 문을 열었다. 캐서린과 민수가 집 안에 들어가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아시아계 아이가 손으로 인사를 했다. 아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 딸이에요. 이제 막 10살이 됐지요. 어찌나 귀여운지.”

 

 캐서린은 자신의 딸을 안은 뒤, 방 구조를 설명했다.

 

 "여기가 안방이고.. 여기가 샤워실이고.. 여기가..."

 

 캐서린은 이어 자신은 1층에 살고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고 했다. 민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캐서린한테 열쇠를 받았다.

 

 “아 참! 학생, 프랑스에서는 도난이 많으니 나갈 때 창문하고 문을 꼭꼭 잠가 주세요.”

 

 캐서린은 다시 한 번 강조하고는 자신의 딸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갔다. 민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엄마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민수는 이들이 1층에 내려간 것을 확인한 뒤,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바로 누우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는 바로 트위터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psyco-ji’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killer_min : 저 파리에 왔어요...

 psyco-ji : ㅋㅋ 정말로요? 장난인 줄 알았는데 ㅋㅋ 일전에 작업은 잘 봤어요.

 killer_min : 고마워요. 언제 시간 되세요?

 psyco-ji : 지금 바로 만나요. 마침 시간이 돼요.

 killer_min : 지금이요? 어디서요?

 psyco-ji : 제가 지도를 보낼게요. ㅋㅋㅋ 이리 봐도 파리에서 살고 있어요. 올 수 있겠어요?

 killer_min : 여기까지 왔는데.. 그럼요. 어디든 갈게요.

 psyco-ji : 좋아요 ㅋ 그러면 한 시간 뒤에 봐요 :)

 

 민수는 ‘psyco-ji’의 메시지를 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거울을 보며 비니 모자를 고쳐 썼다. 이윽고 민수의 메시지가 울렸다. 장소가 나타나 있는 메시지였다. 그는 1층으로 성큼성큼 내려갔다. 정원에는 캐서린이 아이와 함께 놀고 있었다. 민수의 인기척에 캐서린과 아이는 웃으며 인사를 했다. 민수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이들 앞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이들의 행복한 모습에 민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정체 모를 불쾌한 심정이었다.

 

 ‘저들은 왜 행복한 거지.’

 

 민수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봤다. 자신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살아왔고 민수 또한 삶을 포기한 채 버텨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니 분노가 배에서 꿈틀거렸다.

 

 ‘뭐 하는 거야. 장민수. 차라리 내가 빨리 없어져야지.. 그 편이 낫겠어.’

 

 민수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순간, 민수의 얼굴에 바람이 불었다. 비니 모자 사이로 나온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민수는 다시 비니 모자를 고쳐 쓰고는 ‘psyco-ji’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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