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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는 로봇
작가 : 유라
작품등록일 : 20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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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문과 로봇] 5장 오두막의 구도자
작성일 : 20-08-19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2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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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행성 YVB00073914은 지난 10년 동안 전쟁로봇의 은거지로 활용되었다. 로봇의 은신처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된 종교인 ‘발룬다’는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등 수사에 협조적이지 않으며, 우주인권규정 및 비문명국보호법, 종교지역 조사지침 및 규정에 의거 심문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마혜인(6급 요원)의 보고서 中-

 

 

 ***

 존은 복숭아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을 했다. 해가 뜨고 졌다가, 달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는 인간과 인류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생각을 비우고. 마침내 사고가 완벽한 정지 상태에 이를 때까지. 존은 타인을 미루어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을 통하여 타인을 바라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물아일체가 되어 대상에게 동화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는 정지상태에서 쟈로쿠 병사가 되었다. 그는 쟈로쿠의 군체의식에 빠져들었다.

 

 종족의 고양된 단결과 사기가 느껴졌다. 그는 쟈로쿠들과 함께 진군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을 울리는 발돋움 소리와 수백만의 군대가 울부짖는 군가가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우리는 승리한다. 우리의 진군을 막을 종족은 없고, 우리가 지나간 곳마다 새로운 군락지가 꽃을 피운다.”

 

 그리고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식민지는 찬란했고, 온 우주가 그들의 발밑에 있는 것처럼 상서로웠다. 그들에게 전쟁은 그토록 멋진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전투에서 전쟁로봇과 기계군단을 마주했다. 지구인들에게서 탄생한 그들은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전략은 치밀했고, 작전은 무자비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알려진 그 로봇의 약점은 도무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 끔찍한 기계의 손에 수많은 개체들이 학살당했다.

 

 어느 전장이었다. 존은 적지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기어코 그의 시야에는 증오스러운 전쟁로봇이 들어왔다. 그는 로봇을 보며 본능적인 적개심과 증오를 느꼈다. 알 수 없는 고양감에 찬 존은 전쟁로봇의 머리통을 향해 힘차게 갈퀴를 뻗었다. 전쟁로봇에게 갈퀴가 닿으려는 찰나, 그는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눈을 끔뻑.

 

 영문도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 앞에서 머리 없는 쟈로쿠 몸뚱이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 몸뚱아리를 보고서야, 존은 머리통이 뽑혀 있는 것이 전쟁로봇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선 머지않아 꿈틀거리는 몸에 차가운 기름이 뿌려지고, 시뻘건 불이 붙었다. 살갗 속으로 불길이 타들어 가고, 무뎌진 피부를 뚫고 내장이 터져 나왔다. 시커먼 연기와 함께 그는 공기 속으로 승화되었다.

 

 

 또 존은 지구군의 장군이 되었다.

 

 

 장군은 우주를 누비는 철갑의 배에 앉아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주적, 끔찍한 벌레들. 장군은 그것들을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저것들만 죽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장군의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면 사령관은 합참의장이 될 것이고, 장군도 당연히 소장으로 진급할 것이다.

 

 ‘그래, 그 정도면 되었다. 그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으리라. 사단장 보직을 잘 받으면 나중에는 심지어 중장도 될 수 있을지 몰라. 그토록 꿈꾸었던 사령관이 되는거야.’

 

 그의 안목은 틀림이 없었다. RT-101의 전쟁무기화에 대한 제안서를 결재받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저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다.

 

 ‘전쟁로봇은 적들을 분쇄하고 승승장구하며, 첫 전투를 개시한 지 넉달 만에 벌써 7개의 항성계를 되찾았다. 심지어 여태껏 그 어떠한 인명피해도 없었다. 사령관께서는 나를 신뢰하신다.’

 

 그리고 8번째 항성계. 전쟁로봇이 탈영했다. 원인조차 알 수가 없었다. 모든 미래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예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논리가 서지 않았고, 사령관께서는 청문회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위원들의 질책을 받는 사령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위원들의 추궁과 문책은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장군의 진급은 진작 누락되었고, 결국 그는 전역서를 제출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여정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번쩍번쩍 빛이 나던 계급장과 오색의 약장이 붙은, 병들이 빳빳하게 다려 놓아 아직도 칼 주름이 남아 있는 군복을 벗어 내려놓았다. 더 이상 아침저녁으로 자신을 떠받드는 부관이 없었다. 자신이 지나가면 벌벌 떨며 선채로 죽었던 어린 장교들과 부사관들도 이제는 없다.

 

 장군이었던 신사는 거울을 오랜만에 들여다보았다. 흰머리가 듬성듬성 올라와 있고, 눈가와 입가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영락없이 노인의 입구였다. 거실이 텅 비어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다.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훌쩍 커 버렸던가. 방에 들어가고자 하면 다 커 버린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비쳤다. 아이들에게 장군은 어색한 노친네에 불과했다. 사실 장군 역시도 그들이 어색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내도 그를 피했다. 아내는 그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저 밥상을 차려 주고는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그녀와 같은 공간에 머무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지난 생애 동안 마치 부하를 대하듯 그녀를 대했던 것은 큰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남편이, 아버지가 없이 살아왔다.

 

 ‘국가에 대한 장군의 충성과 헌신이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밤낮으로 싸워 온 나의 일생이 가치 없는 일이었단 말이냐?’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전쟁이었다. 장군이었던 신사는 창밖을 보았다. 그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젊은 청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사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생도 시절, 늠름하고 당당했던 자신의 모습. 고된 훈련. 어느새 어깨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자랑스러운 장교 임관식. 첫 소대원…. 모든 것이 아련하고 아름답게 스쳐 갔다. 장군은 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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