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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는 로봇
작가 : 유라
작품등록일 : 202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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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사문과 로봇] 7장 각성(3), 1부 完
작성일 : 20-08-21     조회 : 277     추천 : 0     분량 : 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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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은 아침 일찍 연못에서 스승을 찾았다. 그는 나지막이 명상 중인 스승을 깨웠다. 스승의 눈알은 시뻘겋고, 눈두덩은 퉁퉁 부어 있었다.

 

 “선생님, 존이 왔습니다”

 

 “오, 왔는가, 나의 오랜 친구, 존. 나는 이 자리에 앉아서 자네가 오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꼭 수천 년 같았다네.”

 

 발룬다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의 진정한 친구, 존. 나는 지난 생애 동안 자신을 버리려고 그토록 노력했으나, 그대를 만나고 다시 자아에 집착하게 되었네. 번민도 자만도 없는 나의 멋진 친구, 존. 내가 수십 년을 행해 온 구도와 고난의 길이 이렇게 무너졌구나. 나도 자네처럼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자네는 번뇌가 없지만 해탈이 없고 입멸이 없으며, 불행이 없는 대신 행복도 없는구려. 그래서 나는 자네를 동정하게 되었네. 그리고 나는 자네에게 사문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네.

 그래, 자네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가르침이 필요가 없었지. 시주도 필요치 않으며, 단식과 명상도 의미가 없었네. 그러나 나는 자네를 진작 떠나보낼 수가 없어…, 미안하네.

 나는 그대를 사랑하고 집착하게 되었네. 작은 아들을 키우는 마음으로. 나의 음성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나의 모든 행동을 따라하는 자네를 보며 나는 부성애를 느꼈네. 그래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네를 걱정하게 되었네. 자네에게 어떤 보호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네가 우주를 떠돌아다닐 것이 걱정되었네. 온 우주가 그대의 적일 텐데, 그 우주를 친구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자네를 근심했다네. 그런 자네를 보호하는 방법은 자네를 막아서는 것뿐이었다네.”

 

 존은 발룬다가 이렇게 오래 말씀하시는 것을 일찍이 보지 못했었다. 자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는 것만 같았던 우직한 선생이 자신의 우둔함과 방황을 고백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벗, 존이여. 나는 어젯밤 내내 망가진 복숭아나무 아래에 앉아 한숨도 들지를 못했네. 자네를 떠나 보내야 하는 늙은 내 마음이 종일 동요했기 때문이야.”

 

 스승은 침을 삼켰다. 스승은 이윽고 지난 10년 동안 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떠나게, 사랑하는 나의 친구, 무쇠 로봇 존. 자네는 잔잔한 연못가에 물결을 일으키는 존재일세. 자네의 선함은 이 세상에 영향을 주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남아 귀감을 줄 것이네. 그대는 자비와 사랑을 실천으로써 행하고, 삶에서 길을 잃은 마음 약한 이들의 손을 잡아 주게. 그리고 사람들 안에 부처를 깨워 주게나.

 오- 왜 아직 그 자리에 있는가. 관리들이 자네를 찾아오기 전에 서둘러 가시게, 존.”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지난 10년 동안 동거동락한 진정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의 미소에는 서로가 총총 박혀 있었다.

 

 그리고 로봇은 곧장 떠났다. 로봇은 굳은 결의를 품고 높은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발룬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존이 야박하고 밉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시원하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뜬 발룬다는 마치 오랫동안 초록 빛깔의 꿈을 꾼 것처럼 오묘한 몽롱함을 느꼈다. 그 언제보다도 조용하고 공허한 아침이었다.

 

 그리움은 오랫동안 아려 왔다. 사문은 그가 떠난 이후로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가 날아간 별자리를 응시했다. 그가 떠난 오두막의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다 때때로 울컥하고 마음을 졸였다.

 

 노인은 알고 있었다. 그가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를 떠나 보낸 것은 정말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노인은 몇 년 동안이나 불안하고 마음이 퍽 슬펐다. 슬픈 것은 계속 슬퍼하고 싶었고, 그리운 것은 계속 그리워하고 싶었기에, 그는 로봇의 빈 침소를 함부로 치울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소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그를 동요하게 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존을 생각하며 자신의 아비와 어미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자신의 부모는 진작 죽어 백골이 되었으리라. 그것은 그것대로 후회가 되었다. 출가한 젊은 시절의 자신. 그 이후로 한 번도 그들을 찾아가지 않은 중년의 자신. 자아를 잊으며 부모까지 잊어버린 노년의 자신. 그것은 틀림없는 불효자였으리라. 그러나 그 운명이란 것이, 마치 자신에게 존이 그러했듯, 부모에게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날이 맑아 총총 별을 헤는 밤이면, 사문은 더 외로웠다. 저 별들 사이를 헤매는 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떨어지는 별똥별은 유난히 가슴이 떨리고 코끝을 시큰하게 했다. 그 모습이 마치 무용담을 들고 금의환향하여 달려오는 작은 아들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문은 침소에 누워서 그 아이를 떠올렸다.

 

 기억 속에서, 존의 정직하고 고른 자태를 볼 때, 존이 아침에 자신에게 인사를 올릴 때, 낭랑한 목소리로 불경을 읽을 때, 마을 사람들을 도울 때…. 노인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흡족함을 느꼈었다.

 

 그 기쁨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기쁨이 끝나고 슬픔이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기쁨 속에 불안함과 번뇌가 있었으며, 슬픔 속에는 사랑과 그리움이 있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그랬다. 소인 안에는 부처가 있었고, 부처 안에는 악인이 있었으며, 악인 안에는 소인이 있었다.

 

 발룬다는 때때로 자식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행복을 응시하며, 발룬다는 그 행복에 동화되어 흠뻑 젖은 미소를 짓다가, 미묘하고 알 수 없는 감정에 궁핍한 쓸쓸함을 느꼈다.

 

 ‘아, 저 행복이 어디에나 있구나. 선한 농부에게도, 악한 산적에게도, 비둘기와 숲쥐에게도 저 행복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저런 행복이 있었다.’

 

 발룬다는 자신이 소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더이상 도덕적 우월감을 느낄 수 없었다. 덕분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안에 있는 오만함과 자만심을 마주하지 않았다. 구도의 길은 자신만이 걷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꼭 숲속이 아니더라도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에서, 집에서, 술집에서, 일터에서 열반에 이를 수 있었다. 아비와 어미의. 상인과 어부의. 노인과 농부의 삶은 하나같이 위대한 삶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들의 삶을 존경했다.

 

 사문은 깨달음을 얻었다. 비록 그의 힘은 로봇에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는 로봇이 그랬듯 그들을 돕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주 작은 일이겠지만,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그래서 노인은 우타베나골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며. 발룬다는 마을사람들이 마을을 재건하는 것을 돕고, 지혜를 나누어 주며, 제자를 키우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사문은 사랑하는 무쇠 로봇의 꿈을 꾸다 입멸에 올랐다.

 

 

 - 1부. 사문과 로봇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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