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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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눈동자
작성일 : 20-09-02     조회 : 266     추천 : 1     분량 : 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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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내 몸을 물어뜯고 있는 괴물 물고기의 정체가 보였다.

 

 <헬피쉬>

 역할 : 지옥의 청소부(하급 마물)

 공격력 : ★★

 방어력 : ★

 지구력 : ★

 특성 : 끝없는 허기

 약점 : 아가미

 

 역시 아가미가 약점이었군.

 난 가시로 녀석들의 아가미를 힘껏 찔렀다.

 꾸에엑! 꾸엑!

 헬피쉬가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몸이 가벼워지자, 난 어딘가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쫓아오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시를 휘둘러 녀석들의 아가미를 찢어버렸다. 이 순간, 내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지옥을 탈출해야 한다!’

 [‘조요한’의 의지가 상승합니다.]

 [불지옥의 마왕 ‘페이몬’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 멀리 희미한 빛이 아스라이 보였다. 난 빛을 향해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저 빛이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뭐가 됐건 지옥의 하수구보단 나을 거 아닌가?

 [차원의 문이 열립니다.]

 [‘조요한’의 영혼이 차원의 문에 도달합니다.]

 사방에서 악마들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원의 문을 닫아!

 -작동불능! 작동불능!

 -저 새끼 저러다 탈출하는 거 아냐?

 -그럼 완전 흥미진진!

 -불지옥 X됐다!

 알 수 있었다.

 저 빛이 바로 지옥의 탈출구라는 사실을.

 죽을힘을 다해 개헤엄을 치는 그때, 발밑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내 몸은 이내 소용돌이에 빠져들며 급격하게 방향을 잃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안 돼... 또 다시 지옥에 끌려갈 순 없어.’

 있는 힘껏 소리치며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

 화아악-

 몸을 휘감는 시커먼 소용돌이를 뿌리치고, 난 마지막 힘을 짜내 빛 속으로 몸을 던졌다.

 “으아아아아악!”

 

 ***

 

 고요하다.

 난 그저 일렁이는 하얀 빛 속을 부유하고 있다.

 답답하다... 숨을 못 쉴 것 같다... 이러다 또 죽을 것 같다.

 그런데, 빛 속에서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거 아녀?”

 “119에 전화해볼까?”

 “근디 119가 몇 번이여?”

 “114에다 물어보면 되잖어.”

 맥락 없는 환청을 들으며 힘껏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 막혀있던 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푸악!’

 한참을 숨 쉬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라! 여긴 많이 와봤던 곳인데?

 꼬질꼬질한 파란색 타일, 천장에 아롱아롱 맺힌 물방울, 그리고 구석에 붙은 촌스러운 아크릴 간판.

 <때 밀어 드립니다>

 우리 동네 목욕탕이잖아!

 열탕에서 반신욕을 하던 두 명의 쌍둥이 할아버지가 양쪽에서 날 빤히 쳐다본다.

 “아이고! 살아있었네.”

 “잠수 연습했는가?”

 좀 전에 들었던 그 목소리다.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나저나... 여기도 뜨겁다.

 난 재빨리 열탕에서 뛰쳐나와 벌겋게 달아오른 몸을 마구 비벼댔다. 아... 팔, 다리, 손가락, 발가락 다 붙어있네? 그저 몸이 무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격한 감정이 몰려왔다. 쌍둥이 할아버지들은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젊은 사람이 폐활량이 좋구만.”

 “수영 선순가?”

 “요즘 수영은 뜨건 물에서 하나?”

 “뜨거운 물은 우리 집이 잘 나오는디. 우리 딸내미가 보일러 갈아줬거든.”

 “효녀네. 우리 아들은 작년에 에어컨 달아줬는디.”

 “옴마! 그래서 여름에 감기를 달고 사는 거였구만. 여름 감기는 개새끼도 안 걸린다는디...”

 할아버지들의 맥락 없는 수다를 들으며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락커룸을 열고 바지를 챙겨입는데... 주머니 안에서 벽돌같은 무게가 느껴졌다. 오잉? 이건 내가 10년 전에 쓰던 구형 폴더폰이잖아?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핸드폰을 열었더니, 날짜가 이상했다.

 ⌜2010년 10월 13일⌟

 이건 또 뭐냐? 정확히 10년 전 오늘인데...

 설마! 하는 의문은 어느새 거울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뜨악!’

 운동으로 단련된 구리빛 피부, 배에 선명하게 드러난 식스팩, 주름 하나 없는 말끔한 얼굴, 날카로운 턱선과 오똑한 콧날...

 정확히 10년 전의 ‘나’로 돌아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환생이라도 한 건가?’

 그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맞다.

 난 지옥에서 탈출해 시간의 강을 건너 10년 전으로 돌아온 거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좋아, 인생 리플레이다!’

 

 ***

 

 집으로 향하며 이상한 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잣집 아들내미로 환생했으면 어쩌지?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그대로다.

 달동네 옥탑방 문 앞에 나무를 깎아서 만든 문패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영화감독 조요한의 집>

 10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며 내가 상상했던 미래는 이렇다.

 한국 최고의 감독, 조요한! 그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옥탑방에서 하루 세끼 라면만 먹으며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작품을 분석하느라 밤을 샌 적도 많았죠. 힘들었냐구요? 전혀!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영화는 제 인생이니까요.”

 이 문패는 나중에 영화박물관에 기증하려고 손수 만들어 둔거다.

 그냥 그랬다고......

 “실례합니다...”

 참! 내 집이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 집안이 개판이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빨래들, 프린터 해놓은 시나리오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쾌쾌한 냄새... 목욕을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겨드랑이 냄새를 맡고 있는 나. 이 습관도 버려야 한다. 난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 거니까.

 ‘일단 청소부터 하자!’

 번개같은 속도로 방구석을 구석구석 닦아내니... 순간 빛이 나는 집. 모서리에서 자라고 있던 ‘팡이’가 안녕!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내가 키우는 유일한 생명체, 팡이.

 강아지, 고양이도 못 키우는 주제에 곰팡이라도 키우자는 생각에 이름도 짓고, 때때로 분무기를 뿌려가며 사랑을 듬뿍 주었지. 어쩌면 나와 가장 닮은 생명체라고 느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청소를 마치고, 지난 10년간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난 영화광이었다.

 <쥬라기 공원>의 공룡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고,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과 사랑에 빠졌고, <매트릭스>의 ‘네오’를 따라 감기약도 빨간 약만 먹었다.

 그 빨간 약 때문일까?

 이후로 내 삶은 영화라는 매트릭스 안에 완전히 갇혀버렸고, 얼떨결에 영국 최고의 영화학교에 입학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영화는 런던 국제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게 된다.

 여기까지는 나름 탄탄대로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온 뒤부터가 문제였다.

 “제작비 너무 많이 들 것 같은데?”

 “스토리가 황당해요.”

 “이거 술 먹고 썼어요?”

 내 시나리오를 본 한국의 제작자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

 “현장 경험은 있나? 영화감독 하려면 현장부터 배워야지.”

 그렇다. 나는 현장에서 스텝으로 일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연출부 막내라도 들어가려고 했더니...

 “나이가 너무 많아. 요즘 스물 아홉이면 조감독 급인데...”

 쓰파! 어쩌라고?

 한국의 영화 현실에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때...

 삐리리리~~~

 앗! 동훈이한테서 온 전화다.

 난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어이, 유학파! 때 벗기러 영국 다녀왔어? 왤케 전화가 안 돼?]

 “응, 지금 런던이야. 사우나에서 스카치 위스키 한잔 하고 있어.”

 [그렇지? 영국은 소주가 비싸지?]

 “젤 비싼 술 달라고 하니까 참이슬 주더라고.”

 [그럼 얼른 비행기 타고 종로로 나와. 일거리 생겼어.]

 “무슨 일?”

 [봉만오 감독 알지? 살생의 추억.]

 “대한민국에 그 감독 모르는 사람도 있냐?”

 [같이 일하자고 제의 들어왔어.]

 “너한테? 왜?”

 [나 치킨 집에서 알바하잖아. 며칠 전에 봉감독이 닭 잡아먹으러 오셨다가 밤새 이야기를 나눴거든.]

 “근데?”

 [신선하대.]

 “닭이?”

 [아니, 내 아이디어가.]

 그럴 만하다. 동훈이는 워낙 말빨이 좋으니까.

 [근데 그 아이디어가 형이랑 쏘주 빨다가 나온 거잖아. 형 얘기를 살짝 흘렸더니... 만나고 싶다네?]

 “아, 진짜?”

 [자세한 얘기는 면상 보고 하자고. 거기로 와.]

 “알았어! 당장 갈게.”

 

 그렇게 동훈이를 만나러 간 장소는 우리가 항상 가던 광장시장 파전집이다. ‘팀 버튼’ 감독이 여기서 파전을 드셨다지? 여튼 혼자 단무지에 깡소주를 빨고 있는 동훈이를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갱년기야? 왤케 눈가가 촉촉해?”

 “사우나를 오래했더니 습기가 차서. 그나저나 봉감독님이 우리 이야기가 맘에 드신대? 그걸로 영화 들어가재?”

 “그건 아니고. 봉감독 새로 들어가는 작품이... 제목이 괴수?”

 “괴수? 잘됐네! 그거 천만 영환데.”

 “뭔 소리야? 아직 시나리오도 없는데.”

 아차!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왔으니까, 영화가 아직 안 만들어졌겠구나?

 “암튼 봉감독이 아이디어 반짝반짝한 연출부를 구한다고 해서... 내가 형을 추천했거든. 잘했지?”

 “잘했네.”

 “그럼 술 사. 이모! 여기 파전이랑 소주 한 병이랑 맥주 두병 주세요. 위스키도 있으면 주시고. 헤헤...”

 ‘주둥이가 뇌보다 빠른 새끼... 대꾸할 기회를 안 주냐?’

 어쨌건 봉만오 감독은 앞으로 10년 안에 한국 최고의 감독이 된다. <괴수>는 천만 관객을 넘을 거고, <회충>이라는 작품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오를 것이다. 그런 감독 밑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포트폴리오다!

 더 흥분되는 사실은... 난 앞으로 10년 동안 흥행할 작품이 뭔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봉만오 감독 밑에서 일단 경력을 쌓고... 흥행작품들의 시나리오를 미리 써서 투자를 받아버리면... 내가 싹 다 먹는거다. 나! 조요한이 한국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는 거다. 크하하하!

 “잠깐만 있어봐라... 요즘 박산욱 감독은 뭐하지?”

 “헐리웃 가셨잖아. 영화인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

 맞다. <늙은 소년>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박산욱 감독은 이후 헐리웃에 진출해서 세계적인 감독이 된다.

 일단 박산욱은 패스!

 “그럼 김지운 감독은?”

 “김지운? 그게 누군데?”

 “아 그... <나쁜 놈 미친 놈 이상한 놈> 찍은 감독.”

 “뭔 소리야? 그건 유신민 감독이지.”

 유신민? 보건복지부 장관했던 그분?

 “유신민은 정치하는 사람 아냐?”

 “뭔 개소리야? 한국 최고의 느와르 감독, 유신민! 몰라? 아, 저기 나오네.”

 동훈이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TV 연예프로그램에서 뿔테안경을 쓴 익숙한 얼굴의 아저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틀을 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광기를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죠.”

 삐쩍 마른 몸, 미간에 고집스럽게 패인 주름, 그리고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 저... 저 사람은 분명히!

 ⌜<악마를 욕보았다> 영화감독 : 유신민⌟

 허억! 이럴수가... 과거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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