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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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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자 외 출입금지
작성일 : 20-09-02     조회 : 279     추천 : 1     분량 : 4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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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훈이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일부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 이 형이 아직 시차적응이 덜 돼서요. 자꾸 헛소리를 하네? 형, 멀미약 안 먹었어? 정신 좀 차려.”

 “나 지금 아주 멀쩡해.”

 난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독님, 장소를 한강으로 옮기시죠.”

 “한강?”

 순간, 봉감독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네, 한번 상상해보세요. 우리의 일상인 한강에서 괴수가 출현해야 관객들이 더 충격을 받지 않을까요? 현실과 판타지의 충돌! 그게 진짜 괴수다운 영상 아니겠습니까?”

 “아......”

 봉감독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하긴, 한강도 그림이 나쁘지 않아. 제작비도 줄어들고.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제라도 아셨으면 다행이구요. 후훗!

 그때, 고릴라 조감독이 책상을 쾅! 치며 소리쳤다.

 “안 됩니다! 우리의 괴수는 키가 50미터가 넘습니다. 한강 수심은 평균 4에서 5미터! 고질라보다 큰 괴수가 한강에서 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극 찍냐? 목소리 좀 줄여라. 이 고릴라야.

 “맞네... 한강에서 괴수가 나오는 건 말이 안 돼.”

 봉감독이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다시 쳐다봤다.

 “아이디어는 좋은데, 리얼리티가 떨어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얼리티야.”

 윽!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괴수의 사이즈를 줄이면 됩니다.”

 “사이즈를? 얼마나?”

 “길이 3.5미터, 높이 2.5미터, 몸무게 5톤, 커다란 머리에...”

 “그건 코끼리잖아. 그게 무슨 괴수야?”

 “그... 그건...”

 그러게... 괴수를 왜 그렇게 작게 만들었지?

 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뭔가 이유가 있을거다. 괴수의 크기가 작은 이유가...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테크닉이 더 중요합니다!”

 아... 테크닉이라니?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냐?

 그런데, 봉감독이 안경을 벗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테크닉? 괴수가 무슨 테크닉이 있는데?”

 “그... 그건... 이빨이 큽니다.”

 “이빨이 커? 또?”

 “꼬리도 길고... 엄청 빠릅니다.”

 “그게 다야? 입에서 불은 안 쏘나?”

 풋! 조감독의 웃음을 신호로,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중 가장 크게 웃은 건 물론 동훈이고.

 이런 의리없는 새끼...

 “유학파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뭐, 별거 없네.”

 봉감독은 안경을 고쳐 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럼 안 된다.

 괴수가 백두산에서 나오면, 이 영화는 완전 망하는 거다!

 “방사능에 오염됐습니다!”

 “방사능?”

 “네, 미군 부대에서 방사능 폐기물을 한강에 버렸습니다. 한강 상류에 살던 도롱뇽이 방사능에 오염됐고...”

 “이런 더러운 양키 새끼들! 그래서? 괴수의 테크닉이 방사능이야?”

 “네! 방사능은... 최강이니까요.”

 아! 봉감독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안경을 벗더니 눈을 감고 주변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방사능에 오염된 괴수의 형상을 상상하고 계시는 거다.

 

 “안 됩니다!”

 그때, 고릴라가 또 소리쳤다.

 ‘아... 뭐가 자꾸 안 돼?’

 “방사능에 오염되면 뭐합니까? 총 맞으면 죽잖습니까?”

 “그러네... 코끼리도 총 한 방이면 죽잖아?”

 봉감독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빨랑 답을 내놓으라는 거다.

 “아닙니다. 괴수는 총에 맞아도 죽지 않습니다.”

 “안 죽어? 왜?”

 “방사능에 오염됐잖습니까? 방사능은 인간의 탐욕을 상징합니다. 자신이 총에 맞은 것도 잊은 채,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조리 집어삼켜버리는 궁극의 탐욕... 따라서 괴수는 우리 자신입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존재입니다!”

 ‘있어 보이기’

 상징, 탐욕, 존재...

 이런 어려운 단어를 쓰면 영화하는 사람들한테 대체로 먹혀든다. 뭔 말인지 모르지만 어쨌건 있어 보이니까.

 '끄응...'

 봉감독의 입에서 짧은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내 비법이 통한 거다. 흐흐흐...

 “책 많이 봤네? 영국에서 그런 거 배웠냐?”

 “아니, 그게 아니라...”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아. 영화는 비주얼이 생명인데, 방사능을 어떻게 표현할 거야?”

 “그... 그건...”

 “어쨌건 말은 멋있었어. 유학파 답네.”

 봉감독이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고릴라 조감독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놓인 시놉시스를 걷어갔다.

 아! 이대로면 내 패배다.

 난 어쩔 수 없이 최후의 무기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이 영화를 만드시는 이유가 뭡니까?”

 “응? 그야 당연히...”

 “헐리웃 블록버스터나 흉내 내는 건 감독님 영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하고 비꼬기’

 모든 창작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궁극의 칼날!

 “흉내? 내가 누굴 흉내 냈는데?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과연 봉감독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반격을 시작한다.

 여기서 밀리면 내가 죽는다.

 더 치명적인 공격이 필요하다!

 “백두산 천지에서 고질라보다 큰 괴수가 출현하고, 한미 연합사령부에서 파견한 특수부대가 괴수를 무찌르는... 이런 이야기는 너무 뻔합니다. 지겹도록 봤던 헐리웃 영화의 재탕에 불과합니다.”

 “야! 주둥이 안 닥쳐!”

 고릴라 조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난 이미 칼을 뽑았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님이 진짜 보여주고 싶은 건, 괴수가 아니라 가족이잖습니까?”

 “가족?”

 “네! 딸을 잃은 아버지의 고통, 손녀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할아버지의 희생,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족의 사랑! 그걸 표현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드시는 것 아닙니까?”

 봉감독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그... 그걸 니가 어떻게?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는데?”

 “감독님이 만든 영화 속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그게 가족입니다. 괴수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난 최후의 칼날을 그의 심장에 꽂았다.

 충격을 받은 듯, 봉감독은 아무 말 못 하고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면 가족이다? 허허...”

 잠시 후, 봉감독이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꼼짝도 하지 않고 동상처럼 그 자리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봉감독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가 정답을 맞춘거다!

 감독의 머리 속에 있던... 아니, 감독 자신도 깨닫지 못한 영화의 방향을 내가 알려준 거다.

 봉감독은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사랑이 가득 담긴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네...?”

 봉만오 감독의 눈빛이 이내 싸늘해졌다.

 “마치 영화를 다 본 것처럼 얘기하잖아? 엔딩도 맘대로 정해버리고.”

 “전 그냥... 그게 최선인 것 같아서...”

 “영화에 최선은 없어. 그저 한발 더 나아가는 거지. 다 왔다고 생각해도, 항상 돌아보면 후회하는 게 영화야.”

 아! 듣고 보니 명언이다.

 맞다, 영화에 최선은 없다. 내가 너무 앞서갔던 거다.

 뭐라고 변명을 해보려 했지만... 봉감독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대신 고릴라가 내 앞에 다가왔다.

 “너! 내가 깝치지 말라고 경고했지?”

 “그랬나요?”

 “이 새끼가!”

 순간, 거대한 손바닥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타악!

 얼떨결에 고릴라의 손목을 잡고 말았다.

 어라! 내가 이렇게 반사신경이 좋았었나?

 “어쭈, 이거 안 놔?”

 갑자기 고릴라의 손목을 붙들고 있는 내 자세가 뭔가 드라마 주인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멋진 대사가 필요하다.

 “안 때린다고 약속하시면 놓겠습니다.”

 퍼억!

 고릴라의 왼 주먹이 내 명치에 꽂혔다.

 허억!

 난 창자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제기랄...

 “한 번만 더 주둥이 나불거리면 혓바닥을 뽑아버린다.”

 고릴라는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더니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동훈이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아프지? 나도 아프다.”

 “니가 왜...?”

 “형 때문에 나가리 됐잖아. 맘이 졸라 아파.”

 “쳇! 여기 아니면 일 할 데 없냐?”

 “있지. 난 다시 치킨집에서 알바하면 되고, 형은 방구석에서 시나리오 끄적거리면 되고.”

 “그래, 일단 괴수 아지트에서 탈출부터 하자.”

 난 동훈이의 어깨를 잡고 겨우 일어섰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사람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전혀 다른 얘기라는 걸. 내가 너무 자만했던 거다.

 그때, 쾅! 문이 열리며 고릴라 조감독이 다시 들어왔다.

 헉! 또 때리려고 왔나?

 난 간이 철렁하여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와!”

 고릴라의 목소리에 쫄았는지, 동훈이가 덜덜 떨면서 앞으로 나갔다.

 “너 말고, 너!”

 고릴라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킨다.

 아! 이게 웬 날벼락이냐?

 난 동훈이에게 제발 뭐라도 해보라는 구조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동훈이는 안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한테 빨랑 나가라고 턱짓을 한다. 이런 얍삽한 새끼...

 

 고릴라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며 온갖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뒤통수를 갈기고 도망쳐버릴까? 그러다 잡히면 죽겠지? 뭐 어때? 난 지옥에서 돌아왔는데... 까짓거 남자답게 한판 붙어버릴까?’

 그렇게 얼마나 걸어갔을까?

 고릴라가 시커먼 철문 앞에 멈춰섰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이 적힌 문 앞에서 고릴라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들어가.”

 “네?”

 “들어가라고!”

 고릴라가 철문을 열더니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밖에서 문을 잠궈버리는 게 아닌가?

 철컹!

 ‘뭐야?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잖아?’

 난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철문만 쾅쾅! 두드려댔다.

 “이봐요! 왜 이러는 거예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잘못이 있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바박!

 천장의 형광등이 연속으로 들어왔다.

 눈부신 빛 속으로, 한 남자의 등이 보였다.

 “입을 함부로 놀린 죄”

 봉만오 감독이었다.

 “영화판에서는 입조심 해야 돼. 괜히 나불거렸다가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고.”

 맞는 말이다.

 믿고 떠들었다가 뺏긴 아이템이 몇 개며, 날아간 계약이 몇 개던가?

 10년간의 실패는 어쩌면 입을 함부로 놀린 내 잘못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봉감독은 커튼을 젖히고는 손가락으로 책상 모퉁이를 가리켰다.

 “앉아.”

 그곳에는 노트북이 한 대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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