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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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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지옥
작성일 : 20-09-02     조회 : 258     추천 : 1     분량 : 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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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뺀질이, 보고 싶었다.”

 고릴라 조감독이 한 손에 쇠파이프를 든 채, 떡하니 서 있다.

 “여... 여긴 어떻게?”

 터억!

 고릴라가 내 멱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다.

 “지옥의 맛을 보여주려고 왔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릴라의 쇠파이프가 내 머리통을 향해 날아왔다.

 “으악!”

 난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목을 움츠렸다.

 잠시 후...

 쇠파이프가 내 정수리를 장난스럽게 툭 건드렸고, 고릴라는 날 먹잇감 대하듯 노려보며 낄낄 웃어댔다.

 “넌 이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크크크...”

 고릴라가 날 거세게 밀치며 방으로 들어왔다.

 난 느닷없는 고릴라의 습격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휴대폰을 켜자, 고릴라가 내 손을 탁! 붙잡았다.

 “각본 계약서 12조 3항. 갑은 을이 작업을 완료할 때까지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한다.”

 “그게 무슨...?”

 “대표님이 보냈어. 딴생각 말고 시나리오에 집중하라고.”

 아... 계약금 떼먹고 도망갈까 감시하러 온 거구나?

 고릴라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넌 왜 거기 찌그러져 있냐?”

 구석에서 달달 떨고 있던 동훈이가 비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잠깐 쉬는 시간이라...”

 “쉬는 시간이 어딨어!”

 고릴라가 쇠파이프를 바닥에 쿵! 내리쳤다.

 “앞으로 먹고 싸는 것 외에는 오직 시나리오만 쓴다. 알겠나?”

 화들짝 놀란 동훈이가 책상 앞으로 뛰어가 노트북을 열었다.

 “형, 어디부터 하면 돼지?”

 “앞부분만 정리해. 나머진 내가 할게.”

 그때, 고릴라가 훈련소 교관같은 말투로 소리쳤다.

 “작가님들, 글지옥으로 뛰어들 준비가 됐습니까?”

 “네...”

 동훈이가 겁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목소리가 작다. 이래가지고 시나리오 제대로 나오겠나? 다시 한 번 묻겠다. 준비 됐습니까?”

 “네!”

 나도 모르게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고 말았다.

 ‘제기랄... 이래서 군대가 문제다.’

 난 모니터의 방향을 바로잡으며 힐끗 뒤돌아보았다.

 고릴라가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쇠파이프를 가슴에 움켜쥔 채, 눈을 부라리고 있다.

 ‘저 꼴을 안 보려면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겠군.’

 난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탁탁탁! 탁탁! 탁탁탁탁!

 자판 속도만큼이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작업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영화 <괴수>의 내용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장면의 디테일한 부분이 가끔 생각나지 않았고, 대사는 수시로 헷갈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어준 대표가 내건 조건이 가슴을 짓눌렀다.

 ‘만족할만한 시나리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려면 우선 나부터 만족해야 한다. 그런데, 급하게 써내려간 이 시나리오는 도무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역시 사흘은 무리였나?’

 후회의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무렵, 뒤에서 탱크가 지나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렁 드르렁-

 고릴라 조감독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순간 화가 치솟았다.

 “이봐요! 지금 뭐하는 거예요?”

 “네?”

 고릴라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누군 쉬지도 못하고 글 쓰고 있는데, 그렇게 코까지 골면서 자면 어떡하냐구요? 잘 거면 집에 가서 자던가!”

 “아... 미안하다. 그럼 시나리오가 완성될 때까지 나도 잠을 자지 않겠다. 지금 이 순간 우린 같은 배를 탄 동지니까.”

 고릴라 조감독은 벌떡 일어나 쇠파이프를 움켜쥔 채 눈을 부릅떴다.

 ‘흥! 미련한 녀석... 계속 그러고 서 계시던가.’

 난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며 시나리오를 고쳐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휴식 없는 노동이 계속되었다. 어깨가 무너져 내리고, 손목은 저리고, 땀에 젖은 엉덩이가 화끈거렸다.

 밤이 낮이 되고, 낮은 또 밤이 되는가 싶더니...

 드디어 사흘째 아침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툭! 툭!

 키보드 위로 빨간 액체가 떨어졌다. 코피였다.

 “형... 괜찮아...?”

 아까부터 옆에서 헤롱거리던 동훈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휴지로 콧구멍을 쑤시며 겨우 대답했다.

 “괜찮아...”

 안 괜찮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조여 온다.

 이러다 쓰러질 것 같다.

 쿵!

 그런데, 동훈이가 먼저 쓰러지고 말았다.

 난 녀석의 어깨를 흔들어보았다.

 “동훈아... 정신 차려...”

 고릴라가 좀비같은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다가왔다.

 “119를 부릅시다...”

 ‘갑자기 웬 존댓말? 이놈도 정신없나 보다. 하긴, 사흘 밤을 같이 샜으니...’

 고릴라가 잠시 휴대폰을 보더니,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좀 눌러주세요. 눈에 초점이 없어서...”

 “네...”

 난 고릴라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숫자 세 개를 눌렀다.

 그러자 고릴라가 날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마무리를 부탁... ”

 순간, 고릴라의 몸이 휘청하며 내 품에 털썩 안겼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당신이 쓰러지면 어떡해?”

 삐뽀 삐뽀-

 결국, 동훈이와 고릴라는 구급차에 실려갔고, 감옥같은 방 안에는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난 찬물로 세수를 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 끝났어. 이제 마지막 정리만 하면 돼.’

 철자, 띄어쓰기, 토씨 하나까지 다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키보드를 누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짜내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눌렀다.

 휴......

 극심한 피로와 함께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쏟아졌다.

 ‘드디어 글지옥에서 탈출하는 건가?’

 난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잠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자, 쨍한 햇살이 쏟아졌다.

 양팔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맑은 공기가 혀끝에 닫는가 싶었는데...

 흐읍!

 그런데,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식은땀이 쏟아졌다. 그리고 심장을 쥐어짜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으윽! 이건 설마...’

 쿵!

 내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눈앞이 온통 하얘지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 돼...’

 

 ***

 

 “이봐요, 앞으로 좀 가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불만 섞인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다.

 “아까부터 계속 서 있잖아요. 앞으로 가라구요.”

 “예...”

 영문도 모른 채 앞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런데, 내 앞으로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긴 행렬이 한 줄로 쭉 이어져있다. 돌아보니,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길게 줄을 서 있다.

 ‘잉?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내 뒤에 있는 젊은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여긴 뭐하는 덴가요?”

 “모르겠어요. 회사에서 며칠 야근하다가 쓰러졌는데, 눈 떠보니까 여기더라구요.”

 “그러셨구나? 저도 글 쓰다가 쓰러졌는데... 설마!”

 그때, 내 앞에 있던 허름한 점퍼의 아저씨가 대답을 대신 해주었다.

 “죽은 거 맞아.”

 “네?”

 “나는 노가다 뛰다가 계단에서 떨어졌거든. 죽은 게 확실해.”

 “에이,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어떻게 사람이 죽어요?”

 “공사장 계단이라 난간이 없었어. 12층에서 추락했는데 살아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거지?

 그때, 앞에 있던 아저씨가 머리칼을 움켜쥐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노가다 뛰고 밤에는 대리운전하고.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열심히 일만 했는데... 너무 허무하구만.”

 곧이어, 뒤에 있던 젊은 남자도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 저도 대학 졸업하고 3년 만에 취직했는데요. 안 짤릴려고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요. 허엉...”

 동시에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그냥 부장님이 시킨대로만 했는데..."

 "엄마가 서울대 가라고 해서 잠도 안 자고 공부만 했는데..."

 "난 이리저리 왔다갔다만 했는데..."

 열심히 살다가 비명횡사한 사람들의 통곡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고.

 “으앙! 난 영화감독 하겠다고 시나리오 쓴 죄밖에 없는데...”

 그 순간, 작은 희망의 빛이 머릿속에 살포시 떠올랐다.

 ‘잠깐만! 여기가 지옥은 아니잖아? 그럼 혹시... 천국?’

 맞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열심히 살다가 죽지 않았는가? 그럼 이 줄의 끝에는 당연히 천국의 문이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천국에서 편하게 영화 찍으면 되잖아?’

 라는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공중에 뜬 커다란 애드벌룬에 긴 현수막이 세로로 매달려 있었다.

 ⌜줄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줄지옥? 이건 또 뭐야?”

 너무 충격적이었나보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있던 말이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계속 줄만 서있는 지옥인거지, 뭐.”

 앞에 있던 아저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지옥이냐고?”

 “옆을 좀 봐.”

 양쪽 옆에는 허리 높이의 바리게이트가 행렬을 따라 쭉 이어져있다.

 그리고 단아한 붓글씨체로 이렇게 적혀있다.

 ⌜성실한 놈도 지옥간다⌟

 ‘엥?’

 아저씨의 자조 섞인 푸념이 들려왔다.

 “남들이 시킨 대로 열심히 살았더니 지옥에 와버렸네? 허허...”

 “열심히 산 게 죄는 아니잖아요?”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너무 열심히 살아도 안 되는 거였나 봐.”

 아! 미치겠다.

 실패한 놈은 불지옥 가고, 성실한 놈은 줄지옥 가는 거라고?

 뭐 이딴 지옥들이 다 있어?

 그때, 뒤에 있던 젊은 남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앞으로 좀 가요.”

 “더 갈 데가 어디 있어요? 봐! 봐!”

 “그래도 좀 가봐요. 계속 서 있기만 하니까 답답하잖아요.”

 “누군 안 답답해? 가뜩이나 열 받아 죽겠는데, 진짜!”

 동시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아웅다웅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밀지 마! 여긴 내 자리야!"

 "너 지금 나 만졌니?"

 "떨어져라. 확 죽여버린다!"

 성실한 자들의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작은 시비가 싸움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서로 피를 튀긴다.

 ‘아... 여긴 지옥이 확실하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바리게이트를 넘어가면 어떻게 되지? 설마 불지옥에 떨어지려나?

 조심스럽게 바리게이트 위로 손을 올렸다.

 ‘손가락만 살짝 내밀어볼까?’

 난 용기를 내서 새끼손가락을 바리게이트 밖으로 살짝 내밀었다.

 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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