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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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란의 파티
작성일 : 20-09-02     조회 : 272     추천 : 1     분량 : 4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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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밖은 그냥 허공이었다.

 ‘그럼 뭐...’

 난 한쪽 다리를 들어서 바리게이트에 걸쳤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뒤에 있던 젊은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밖에 나가보려구요.”

 “안돼요!”

 “왜요?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요?”

 “모르죠. 하지만 나가지 말라고 이런 걸 설치해놨는데 나가면 어떡해요?”

 “잠깐만 갔다가 다시 올게요.”

 나는 바리게이트를 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러자, 앞에 있던 아저씨가 내 다리를 붙잡았다.

 “자네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 보면 어쩌려고 그래?”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죽어도 내가 죽는거지.”

 난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바리게이트를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터엉!

 마치 빈 깡통을 때린 것 같은 금속음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리게이트 안이나 밖이나 다 똑같은 공간인 것이다.

 “어서 돌아와요. 빨리!”

 젊은 남자가 다급하게 손짓을 했다.

 “내 자리는 당신이 가지세요. 안녕!”

 난 남자에게 빙긋 웃어보이고는 뒤쪽을 향해 걸어갔다.

 바리게이트 안쪽의 사람들이 날 두려운 눈으로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역시 정해진 줄 안에서만 살아왔던 성실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이유로 지옥에 오지 않았는가?

 난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불지옥의 하수구에서도 빠져나왔는데, 이까짓 줄지옥 쯤이야!’

 그런데, 아무리 뛰어도 성실한 이들의 줄은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오는 것 같다.

 ‘탈출구는 도대체 어디지?’

 난 자리에 멈춰서 사방을 다시 둘러보았다.

 흰 공간, 끝없이 이어진 바리게이트, 그 안에 한 줄로 서있는 사람들.

 참으로 단조로운 세팅이다.

 그 말은 즉,

 이곳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뜻이다!

 ‘젠장!’

 어떤 놈이 설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지옥은 완벽하다.

 지키는 악마도 없고, 하수구도 없고, 감시카메라도 없다.

 그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성실함이 자발적인 고통이 되도록 성실하게 구현해놓았다.

 여길 빠져나갈 방법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바닥에 누워버렸다.

 성실한 자들의 줄지옥을 탈출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밀린 잠이나 실컷 자는 것.

 그런데 잠은 오지 않았고,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뭐, 상관없다.

 지금부턴 적극적으로 게을러질 거니까!

 난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상상 속의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한강에서 튀어나온 괴수가 고릴라 조감독을 잡아먹고, 문어준 대표가 돈다발을 괴수의 입에 처넣는다. 그러자 동훈이가 닭다리를 던져서 괴수의 눈에 적중시킨다. 한쪽 눈에 닭다리가 꽂힌 괴수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마침내 쓰러지고 만다. 난 그 스펙타클한 광경을 보며 이렇게 외친다.

 “컷! 오케이!”

 킥킥킥... 재밌다.

 난 꿈같은 상상 속 영화에 빠져들며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몸이 어디론가 쑥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내 옆으로 블랙홀 같은 구멍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었다.

 재빨리 일어나려 했지만, 자석에 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건 뭐지?’

 슈욱!

 그 순간, 밑에 있던 블랙홀이 진공청소기처럼 강력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으아악!”

 난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 속으로 추락해버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지만, 손에 닿는 것은 검은 허공뿐이었다.

 ‘또 불지옥에 떨어지는 건가? 그냥 바리게이트 안에 있을 걸 그랬나?’

 온갖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이것 또한 내 선택인 것을.

 난 자포자기 심정으로 몸에 힘을 풀었다.

 ‘될 대로 되라지.’

 그러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과감한 결단으로 인해 ‘조요한’의 잠재력이 깨어납니다.]

 [‘조요한’의 약점이 모두 사라집니다.]

 [‘조요한’의 능력치가 2단계 상승합니다.]

 

 <조요한>

 역할 : 영화감독

 아이디어 : ★★★

 스토리텔링 : ★★★

 연출력 : ★★★

 리더쉽 : ★★★

 특성 : 불굴의 의지와 과감한 결단의 소유자. 잠재력이 깨어난 관계로 향후 자신의 운명뿐만 아니라, 타인의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훗!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과감한 결단이라고?

 그리고 내가 타인의 운명까지 바꾼다고?

 그래, 뭐든 다 좋다.

 난 계속 잠이나 잘 거니까.

 쿨쿨쿨...

 

 ***

 

 쾅! 쾅 쾅!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나 혼자 누워있다.

 ‘여긴 또 어디야?’

 어디선가 눈부신 주홍색 빛이 쏟아졌다.

 난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암갈색 테두리의 작은 창문, 곰팡이 핀 벽지, 그리고 책상 위에서 불빛을 깜박이는 노트북.

 ‘내 방이다!’

 쾅! 쾅! 쾅!

 그때, 누군가 또 문을 두드렸다.

 난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왜 이렇게 문을 안 열어? 죽은 줄 알았잖아!”

 봉만오 감독이다.

 “감독님... 여긴 어떻게?”

 “이거 주려고.”

 봉감독이 고급스럽게 포장된 박스를 내밀었다.

 어! 이건...

 <공진단>

 ‘스트레스, 체력저하, 혈액순환 장애를 개선하고 오장육부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황제의 보약. 가격 : 120만원.’

 “내가 껌 대신 씹는 건데, 뜯은 김에 하나 먹어라.”

 봉감독은 박스를 풀어서 금색 구슬을 내 입안에 넣어주었다.

 우물우물 씹어보니... 윽! 쓰다.

 “이야! 경치 좋네.”

 옥상 난간에 기대 도심을 내려다보는 봉감독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난 세상에 천재가 나 하나밖에 없는 줄 알았어. 그런데 오늘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날이다.”

 “태양이 두 개면 뜨겁겠죠.”

 “아... 그런가? 역시 넌 천재야.”

 시나리오가 맘에 드셨나보다.

 하지만 난 봉감독님이 만든 영화를 미리 보고 글로 베꼈을 뿐, 절대 천재일 리가 없다.

 ‘하늘의 태양은 아직 하나입니다. 바로 당신.’

 봉감독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옷 갈아입고 나와. 파티 가야지.”

 “파티요?”

 “황혼에서 새벽까지, 미친 듯이 놀아보자.”

 

 ***

 

 난 봉감독과 함께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와 공용주차장에 들어섰다. 그 순간, 온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다.

 넓은 주차장 한가운데에 반짝반짝 빛나는 캐딜락 리무진 한 대가 도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건... 영화 속에서나 봤던 바로 그 차잖아?’

 봉감독이 리무진으로 다가가더니 운전석 안쪽을 살펴봤다.

 “이게 그새 자빠져 자고 있네? 어이, 일어나!”

 봉감독이 리무진 문짝을 발로 쾅! 쾅! 찼다.

 그러자, 안에서 턱시도 차림의 운전기사가 나오더니, 쓰고 있던 모자를 봉감독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대머리 운전기사는 바로... 문어준 대표였다.

 “야! 브래드 피트한테 빌려온 건데 발로 차면 어떡해?”

 봉감독은 모자를 주워서 문대표의 머리에 뚜껑처럼 덮어씌웠다.

 “그래서? 오늘 브래드는 온대, 안 온대?”

 “못 온대. 어제 디카프리오랑 막걸리 먹고 한판 붙었대.”

 “쌔끼들, 비싼 술 처먹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브래드 피트? 디카프리오? 이런 헐리웃 스타랑 친구사이란 말인가?

 문어준 대표가 날 보더니 부리나케 뛰어와 90도로 인사했다.

 “천재 작가님, 어서 타시죠.”

 “아... 아닙니다, 대표님. 제가 어떻게?”

 봉감독이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니가 운전할래?”

 “아뇨.”

 난 정신없이 리무진 뒷좌석에 올라탔다.

 푹신한 가죽시트가 날 안아주듯 몸에 착 감겼다.

 내 방보다 넓은 차 안을 훑어보니, 갑자기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나올걸. 추리닝에 청바지가 뭐냐? 이런 한심한 녀석...’

 리무진은 강변북로를 지나 외곽으로 빠졌다. 산을 넘고 다리를 건너 어느 비포장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부자들은 시골의 별장을 빌려서 광란의 파티를 즐긴다더니...’

 영화 속에서나 봤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 갔을까?

 리무진이 도착한 곳은, 한 외딴 시골 마을이었다.

 “내리시죠.”

 문어준 대표가 손수 뒷문을 열어주었다.

 난 기대와 흥분을 애써 감추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중화요리 강동원>

 낡은 간판이 달랑달랑 붙어있는 어느 허름한 중국집이었다.

 ‘이런 데서 파티를 한다고? 에이, 설마...’

 난 일부러 태연한 척 웃으며 말했다.

 “아! 강동원이 하는 중국집이구나? 하하하!”

 “맞아, 여기 동원이네 집이야.”

 농담인데...

 봉감독은 너무도 태연하게 받아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난 문대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집 간판은 분명히 위장일거야. 들어가면 비밀통로로 연결되고,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파티장이 나오고, 눈부신 샹들리에가...’

 

 “뭐 드실라우?”

 주방장 아저씨가 메뉴판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렇다. 여긴 그냥... 동네 중국집이다!

 “난 짜장면.”

 문어준 대표가 잽싸게 대답했다.

 봉감독이 메뉴판을 뒤적거리며 말했다.

 “북경오리 되나?”

 주방장 아저씨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북경에 조류독감이 퍼져서...”

 “오향장육은?”

 “구제역 때문에...”

 “에잇, 그럼 뭐 먹으라고!”

 문어준 대표가 봉감독의 손에서 메뉴판을 빼앗아 주방장 아저씨에게 건네줬다.

 “여긴 짜장면이 젤 맛있어. 짜장 셋, 단무지 많이.”

 주방장 아저씨는 똥 씹은 얼굴로 돌아섰고, 우린 단무지에 고량주를 마시며 영화 <괴수>의 제작방향에 관해 토론을 시작했다.

 “난 우리 영화가 헐리웃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해.”

 문어준 대표가 단무지에 식초를 부으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러자, 봉감독이 같잖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떤 새끼가 나랑 경쟁을 해? 뒤질라고.”

 “아냐, 요즘은 헐리웃 애들도 제법 해. 옛날 생각하면 안 돼.”

 “그래봤자 지들이 로컬이지. 걔들이 영화를 알아?”

 농담이라고 하기엔 진지하고, 진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이없다. 무슨 역할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어쨌건 우리 영화가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된단 말야.”

 “그래야지. 그래야 양키 놈들도 배우는 게 있을 테니까.”

 그때, 문대표가 나한테 고량주를 따르며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천재 작가님이 하나만 해결해주면 안될까?”

 “예, 말씀하세요.”

 “미군이 한강에 방사능을 풀었다고 하면 미국 애들이 싫어할거란 말이지. 그 설정만 바꾸자.”

 “아니,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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