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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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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의 악마
작성일 : 20-09-03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4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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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아아~!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잠실야구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응원의 함성이 두꺼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귓전에 웅웅거렸다.

 웬 유리창이냐고?

 우린 지금 야구장 VIP룸에서 LC 대 투산의 라이벌전을 관람 중이다. 원래 20명 정도 들어오는 공간인데, 전시연 측에서 아예 통째로 빌려버렸다. 게다가 스테이크, 랍스타, 캐비어 등 최고급 요리를 비롯해 전시연이 좋아하는 각종 달달한 디저트까지. 원하는 음식은 뭐든 맘껏 먹을 수 있다.

 그녀와 나.

 단둘이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지상 최고의 야구데이트를 즐기는 중이라고나 할까? 으하하!

 “스트라이크!”

 멀리서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시연이 유리창에 얼굴을 딱 붙이며 물었다.

 “그런데 왜 타자가 공을 보고만 있어요? 원래 야구는 공을 때려야 되는 거 아녜요?”

 타자가 투수의 공을 거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시연씨는 남자가 작업 걸어오면 다 받아줍니까?”

 “아뇨, 그럴 리가.”

 “같은 원리에요. 저놈이 쓸 만한 놈인지, 괜한 헛수작 부리는 거 아닌지 상태를 파악해야죠.”

 “아... 호구 조사하는 거구나?”

 전시연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왜 세 번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싫으면 그냥 가버리면 그만이잖아요.”

 “한방에 차버렸는데, 알고 보니 재벌 3세, 엄청 똑똑하고, 성격도 좋은 남자면 어떻겠어요?”

 “아까워 죽겠죠.”

 “그러지 말라고 세 번의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인생은 삼세판.”

 전시연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진짜 야구랑 연애랑 똑같네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이 시나리오를 괜히 쓴 게 아니에요.”

 그녀가 경외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감독님은 진짜...”

 “천재 아닙니다.”

 “사랑스러워요.”

 ‘헉!’

 이건 엄마한테서도 못 들어본 말이다.

 게다가 제일 잘나가는 절세미인 톱스타가 날 사랑스럽다고 하다니... 내 귀를 의심하며 전시연을 쳐다봤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우리 한 잔 해요.”

 난 떨리는 손으로 그녀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진한 와인의 향기가 응원의 열기와 뒤섞여 날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그 순간,

 따악-

 타격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전시연과 난 동시에 벌떡 일어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의 향방에 집중했다.

 “홈런! 홈런입니다!”

 캐스터의 흥분된 목소리와 함께, 야구장 전체가 함성으로 들썩였다.

 “와! 홈런이에요!”

 전시연이 환호하며 내 목을 껴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뺨에 닿는 순간,

 싱그러운 향기가 뇌를 마비시켜버렸다.

 떠들썩한 함성이 사라지며...

 황홀한 쾌감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찌릿하게 밀려왔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렸으면...’

 

 찰칵!

 그때,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려왔다.

 난 반사적으로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다.

 시야가 닿는 곳엔 야구용품과 유니폼으로 장식된 흰 벽만 보였다.

 “왜 그러세요?”

 “아... 아뇨, 별거 아닙니다.”

 너무 흥분했나? 환청을 듣다니...

 전시연이 내게 떨어지며 다시 물었다.

 “그럼 홈런 치면 결혼한 거네요? 그쵸?”

 “아뇨, 아직 결혼까지는 아니고...”

 이걸 뭐라고 설명한다?

 “눈이 맞은 거죠. 그러니까 두 사람이 그...”

 “둘이 잤구나?”

 “그... 그렇죠.”

 전시연이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어떡해! 어떡해!”

 깜찍한 그녀의 스킨십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라리 온몸을 두들겨 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찰칵!

 카메라 셔터소리가 또 들려왔다.

 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잘 못 들은 게 아니다!’

 전시연이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잠시만요.”

 난 조심스럽게 출구 왼쪽 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야구용품이 진열된 장식장과 하얀 캐비닛이 세워져있다.

 캐비닛에 귀를 대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캐비닛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쾅!

 안에서 카메라를 든 중년의 남자가 튀어나오더니, 날 밀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꺅!”

 전시연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동시에 밖에서 대기하던 경호원들이 뛰어 들어와 남자를 붙잡았다.

 “놔!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몰라?”

 남자는 경호원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안다! 이 변태새끼야!”

 녀석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타악!

 전시연이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겁먹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전시연을 보더니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뻔뻔한 웃음을 흘렸다.

 “시연씨, 오랜 만이네.”

 “박하일... 기자님?”

 박하일?

 이름은 나도 많이 들어봤다.

 주간지 연예부 기자.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캐내 협박을 일삼고 돈을 뜯어내기로 유명한 파파라치.

 아무래도 질이 안 좋은 놈한테 걸린 것 같다.

 “시연씨, 요즘 연애 하나봐?”

 녀석이 게걸스럽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아뇨, 이분은...”

 전시연이 말끝을 흐리며 내게 다급한 눈짓을 보냈다.

 빨리 자리를 피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도망치면 앞으로 벌어질 비열한 협박을 그녀 혼자 감당해야 한다.

 난 정면승부하기로 결심했다.

 “기자님, 이거 불법촬영인 거 아시죠? 게다가 저런 데 몰래 숨어서 촬영하는 거, 너무 야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말씀 잘하시네? 조요한 감독님.”

 윽! 내 이름을 알고 있다. 하긴, 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으니...

 박하일 기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누가 VIP룸을 통째로 빌렸다길래, 무슨 재벌 2센가 싶어서 한번 와봤지. 그런데, 두 분이 들어오시더라고. 명색이 연예부 기잔데 특종을 놓칠 수 있나?”

 거짓말인 거 다 안다.

 분명 전시연의 뒤를 캐다가 이곳까지 잠입한 거겠지.

 “기자님, 연예인도 엄연히 사생활이 있는 겁니다. 그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권리이구요.”

 “아! 사생활을 즐기고 계셨구나? 거기 서 봐요.”

 박기자가 카메라를 들더니 사진을 연사로 찍기 시작했다.

 다다다다! 찰칵! 찰칵!

 “그만해요!”

 난 재빨리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박하일 기자의 입술이 하이에나 주둥이처럼 벌어졌다.

 이제야 깨달았다.

 녀석이 원하는 게 바로 이 포즈라는 것을.

 전시연은 다 틀렸다는 듯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한테 말씀드릴게요. 향후 일은 회사랑 논의하시죠.”

 “나야 좋지. 간만에 김 대표랑 술 한 잔 해야겠네. 헤헤...”

 말인 즉, 돈을 뜯어내고 지속적으로 협박하겠다는 뜻일 터.

 ‘이 녀석, 버릇을 고쳐놔야겠군.’

 난 재빨리 뛰어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리고, 시간을 멈추는 조리개를 돌렸다.

 ‘10분이면 충분하겠지?’

 카메라를 들고 박하일 기자 앞으로 걸어왔다.

 “여기 보세요. 기자님도 사진 한 장 찍어드릴게요.”

 “야! 안 치워?”

 녀석이 손을 뻗어 카메라를 뺏으려고 했다. 그 순간,

 찰칵!

 날카로운 셔터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박하일 기자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난 박기자의 카메라에서 배터리와 메모리칩을 빼냈다.

 “증거는 없앴고. 이제 이놈을 어떻게 혼내줘야 속이 풀리지?”

 그때, 어디선가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여 버리시죠.”

 “응?”

 깜짝 놀라서 옆을 쳐다봤다.

 전시연과 네 명의 경호원이 마네킹같은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환청인가?”

 순간, 멈춰서있던 경호원 중 한명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악”

 경악하며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시간이 멈췄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혹시 꿈인가?

 선글라스를 쓴 경호원이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밖으로 던져버리세요. 제가 법대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누... 누구세요?”

 난 겁에 질려 경호원을 빤히 쳐다봤다.

 경호원이 흰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다.. 당신은?”

 “조요한 감독님, 당신을 스카웃하려고 왔습니다.”

 이글이글 불타는 이 눈빛... 어딘가 익숙하다. 설마!

 “스카웃이요? 누구시길래?”

 “법과 원칙의 화신, 로노베라고 합니다.”

 남자가 검정색 명함을 내밀었다.

 <행정법률지옥 대표변호사 : 로노베>

 헉! 역시 지옥에서 온 게 맞구나! 그런데 여긴 뭐하는...

 “행정법률지옥?”

 “법과 원칙 따져가면서 지들은 법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이나 고위급 인사들이 주로 가는 곳이죠. 쏟아지는 규제와 법률에 파묻혀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뛰게 만드는 매우 인텔리전트한 지옥입니다.”

 참, 별의별 지옥도 다 있다.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런데 저한테 왜?”

 “지옥에서 탈출하셨잖습니까? 법을 집행하러 왔습니다.”

 “아... 바쁘신 와중에 사람 잘 못 찾아오셨네요.”

 난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

 ‘카이저 이 자식은 어디서 뭐하는 거야?’

 로노베가 그런 내 속을 간파했는지 씨익 웃는다.

 “카이저는 요새 연예인병 걸려서 정신없습니다. 팬 사인회다 콘서트다... 지가 무슨 아이돌인줄 알아요. 쳇!”

 “하하... 그렇군요. 잠깐 화장실 좀.”

 몸을 돌리는 순간, 싸늘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전 폭력을 싫어합니다.”

 윽! 도망치면 두들겨 패겠다는 소리?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로노베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왔다.

 “역시 이해가 빠르시군요.”

 이해가 아니라 눈치다.

 난 로노베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태도로 봐서 보통의 악마같지는 않다. 왠지 말이 통할 것 같은 인상. 게다가 악마들은 인기에 집착하기 때문에 칭찬에 약하지 않은가? 카이저에게 그랬던 것처럼 녀석을 기분 좋게 만든 후에 약점을 파악하기만 하면 분명 빠져나갈 구멍이 보일 거다. 운 좋으면 이놈도 내 조수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난 활짝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지옥에서 오신 분 치고는 잘생기셨네요. 하하하!”

 “감독님도 영화감독 치고는 잘 생기셨습니다. 하하하!”

 이때다!

 난 로노베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데... 녀석이 얼른 선글라스를 써버린다.

 이러면 상태창이 떠오르지 않잖아!

 침착하자. 침착하자...

 “흐흠, 그런데 아까 절 스카웃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워낙 무식해서 법이고 행정 쪽은 전혀 모르는데요.”

 “그건 저희 쪽에서 자문서비스 해드립니다. 그것보다 감독님께 기가 막힌 제안을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요.”

 “제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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