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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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 vs 헐크
작성일 : 20-09-07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4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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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노베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감독님, 저희랑 같이 저세상급 영화 한편 찍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영화요?”

 “제작비는 원하는 대로 맘껏 쓰셔도 좋습니다. 최고의 배우와 스텝들도 붙여드립니다. 투자사 입맛에 맞춰달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감독님 꼴린 대로 다 하세요.”

 “조건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굳이 왜 저를...?”

 “지옥을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감독이니까요.”

 어... 이거 설득력 있다.

 아냐 아냐.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얻는 보상은 뭐죠?”

 “감독님은 어차피 지옥에 가야합니다. 기왕이면 쾌적하고 편안한 지옥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 맘껏 찍으면서 지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감독님한테는 지옥이 아니라 완전 천국이겠죠.”

 어... 또 설득력 있다.

 아냐 아냐.

 “하하... 따듯한 배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네요. 전 이미 카이저랑 계약을 했거든요.”

 “그거야 파기하면 그만이죠. 그것도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자, 여기 사인만 하시면 됩니다.”

 로노베가 성경책보다 두꺼운 서류를 내밀었다.

 <이중계약 배상에 대한 위헌심판청구>

 한번 열어봤더니 개미 콧구멍보다 작은 글씨로 뭔가 빽빽하게 적혀있다. 이건 도저히 읽을 수도 없다.

 “굳이 이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법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요. 그래서 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거구요.”

 자꾸... 설득되려고 한다.

 “만약, 제가 이 제안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임의동행.”

 “네?”

 꾸우욱-

 갑자기, 로노베가 팔뚝에 힘을 준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덩치가 점점 커지더니... 입고 있는 정장을 찢어버리며 헐크처럼 무시무시한 근육질 괴물로 변신해버렸다.

 “뜨악!”

 녀석이 수박통만한 주먹을 들이대며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떡을 만들어서 불구덩이에 처넣은 다음에 얼음이랑 섞어서 믹서기에 갈아드리겠습니다.”

 ‘허억! 무슨 협박이 이러냐?’

 “포... 폭력 싫어하신다면서요?”

 “임의동행 시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합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순순히 앞장서시겠습니까? 아님, 제가 임의동행을 도와드릴까요?”

 달달달-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할 외통수라는 것을.

 '저 아저씨 힘 쎄. 말빨도 쎄. 내가 도저히 당해낼 수 없어. 흐흑!'

 내 눈은 저절로 전시연에게로 향했다.

 ‘시연씨와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멜로 영환데... 내 첫 작품인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제 막 꿈이 펼쳐지려고 하는데, 지옥에 끌려가야 하다니, 이게 왠 운명의 지랄 맞은 장난이란 말이냐?

 로노베가 내 맘 다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키스타임 5초 드리겠습니다.”

 “네?”

 “몰래 키스하면 범죄죠. 그런데, 제가 보니까 저 여자도 감독님한테 절반 정도는 맘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경우에 5초 정도는 입을 맞춰도 괜찮다고 키스에 관한 조례에 다 나와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난 전시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속으로 말했다.

 ‘시연씨, 이승에서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봐요. 우리 지옥에서 다시 만나... 아니,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다, 넌 죽어서 천국 가세요. 흐엉!“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마네킹같이 딱딱한 입술이었지만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이게 그녀와의 첫 키스이자 마지막 키스겠지?

 “5, 4, 3, 2, 1... 땡!”

 로노베가 내 턱을 잡아당겼다.

 “5초 지나면 뺨 맞습니다.”

 “뺨 맞아도 좋아요. 조금만 더!”

 “나한테 맞는다구요.”

 “아...”

 전시연의 어깨를 놓고 한 발짝 물러섰다.

 “금방 잊으실 겁니다. 지옥에 가면 훨씬 더 예쁜 배우들이 감독님 앞에 줄을 서 있을 테니까요.”

 “전 연기력도 중요해요.”

 “역시 위대한 감독이시군요. 자, 이제 가시죠.”

 로노베가 옆으로 손을 뻗어 에너지 파장을 발사했다..

 벽에 구멍이 뚫리더니, 잠시 후 출렁이는 블랙홀이 만들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블랙홀을 보니, 지옥의 공포가 확 밀려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고 말았다.

 로노베가 나를 그윽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손잡아 드릴까요?”

 ‘참 친절하기도 하다.’

 “아뇨, 제 발로 가겠습니다.”

 난 크게 심호흡을 하고 블랙홀에 한발 짝 다가섰다.

 ‘그래, 지옥에서 영화 만들면 돼. 한편 찍고 다시 탈출하는 거야. 불지옥, 줄지옥 다 탈출했는데, 행정법률지옥이라고 별 거 있겠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뛰어내리려는 순간,

 멀리서 귀에 익숙한 단어 몇 개가 들려왔다.

 “야이 18색깔 크레파스 수박 씨발라 먹을 XXXX......"

 크아악!

 괴수로 변한 카이저가 블랙홀 속에서 날아와 로노베의 턱에 날라차기를 꽂아 넣었다.

 퍼억!

 콰쾅!

 나이스!

 로노베의 육중한 몸이 한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야! 너 어디 있다 이제 온 거야!”

 난 재빨리 카이저 뒤로 숨었다.

 “사생팬들한테 감금됐다 겨우 탈출했다.”

 “너 씨...”

 한 대 쥐어패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로노베가 툭툭 먼지를 털며 아무렇지 않게 일어섰기 때문이다.

 “나 폭력 싫어한다. 말로 하자, 말로.”

 괴수로 변한 카이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녀석을 노려봤다.

 “조까! 니 속셈 모를 줄 알아? 말로 꼬드겨서 얘 데려가려는 거잖아!”

 “지옥에서 도망쳤으니까 다시 지옥으로 데려가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조요한은 나와 이미 계약을 했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 지옥으로 갈 수 없다.”

 아... 순간 울 뻔 했다.

 카이저가 이렇게 책임감 강한 놈이었다니?

 ‘그래, 너만 믿을게.’

 로노베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공중에 홀로그램 태블릿이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계약서를 봤는데, 좀 문제가 있더라고.”

 태블릿 위로 카이저와 체결한 계약서가 나타났다.

 “카이저, 넌 조요한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때까지 무조건 돕는다고 했어. 맞지?”

 “그래서 뭐?”

 “모든 계약서에는 반드시 기간을 명시해야 돼. 생각해 봐, 만약 조요한이 영화감독이 못되면 어떡하겠어?”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도와줄 건데!”

 아! 또 울 뻔 했다.

 카이저가 이렇게 의리가 강한 녀석이었다니...

 로노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 가능하지. 하지만, 만에 하나 조요한이 영화감독으로 성공 못하면 넌 계속 시다바리만 해야 돼. 조요한의 노예가 되는 거라구. 그래서 이렇게 기간을 정하지 않은 계약을 노예계약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런 거였구나? 괜찮네?’

 카이저가 고개를 갸웃 하더니 나를 째려본다.

 “뭐야? 너 알고 있었어?”

 “아냐 아냐, 나도 몰랐어!”

 로노베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더 큰 문제가 뭔지 알아? 조요한이 영화감독이 안 되면 지옥에 데려갈 수도 없어. 조요한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사는 거라고. 널 평생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짝!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그게 더 좋네!’

 이런!

 나를 노려보는 카이저의 눈빛에 지옥의 살기가 흐른다.

 “너...”

 “아냐 아냐, 영화감독 될 거야. 저기 봐, 배우도 와 있잖아!”

 카이저가 전시연을 보더니 의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저 친구가 주인공?”

 “응, 멜로영화야. 키스 씬도 있어.”

 “레알?”

 카이저의 눈빛이 갑자기 초롱초롱 밝아졌다.

 ‘휴... 일단 한고비 넘겼다.’

 “카이저, 우리 같이 영화 해야지. 난 감독, 넌 배우. 오케이?”

 “네, 감독님! 꼭 해야죠.”

 “그래, 뒷일을 부탁한다.”

 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임의동행 발동!”

 로노베가 어깨에서 박쥐날개를 펼치더니 쏜살같은 속도로 쫓아온다. 녀석의 거대한 손아귀가 내 뒷덜미를 움켜쥐는 찰나,

 콰쾅!

 카이저의 꼬리가 로노베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다. 로노베는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고, 나 역시 그 충격으로 관중석으로 튕겨나가고 말았다.

 “으윽...”

 겨우 몸을 일으켜 뒤돌아봤는데...

 헉!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로노베가 빛보다 빠른 주먹으로 카이저를 마구 두들겨 패고 있는 게 아닌가?

 퍽! 퍽! 퍽! 퍽! 퍽!

 “나 폭력 싫어한다고 했지! 내 성질 건들지 말라고 했지!”

 카이저는 개구리같이 납작 엎드린 자세로 그야말로 피떡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로노베가 카이저의 머리를 짓밟더니 날 노려봤다. 선글라스를 뚫고나온 녀석의 눈빛이 붉은 화염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관중석을 달렸다.

 곧 이어,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쾅쿵쾅!

 무시무시한 굉음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뒷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펜스를 뛰어넘었다.

 “으아아~~”

 그때, 운동장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저만치 날아갔다.

 카이저가 로노베를 붙들고 몸을 날린 것이다.

 콰콰쾅!

 집채만 한 덩치의 괴수와 헐크가 마구 뒤엉키며 운동장을 데굴데굴 굴렀다. 잠시 후, 괴수가 먼저 일어났다.

 “카이저!”

 난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고 있는 녀석을 보며 울부짖었다.

 카이저는 날 힐끗 보더니 힘없이 웃었다.

 “걱정 마... 지옥의 괴수는 죽지 않아.”

 ‘그럼 다행이고.’

 잠시 후, 로노베가 몸을 일으켰다.

 “야, 너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도대체 왜?”

 “왜냐고?”

 카이저가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큰 소리로 외쳤다.

 “난 영화배우니까!”

 허얼...!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

 도도하고 꼿꼿한 자세,

 거만하고 시크한 포스,

 카이저는 확실히...

 연예인병 걸린 게 맞다!

 ‘저거 수술도 안 되는데.’

 나랑 같은 생각이었을까?

 로노베가 어린 애 타이르듯 카이저에게 말했다.

 “영화 한편 찍었다고 너무 목에 힘주고 그러지 마라, 쫌. 그러다 한방에 훅 가는 거야.”

 “나한테 천재감독이 둘이나 있거든? 봉만오! 조요한! 둘이 번갈아가면서 날 캐스팅 하는데, 내가 인기 떨어질 날이 어디 있겠냐? 이 엿도 모르면서 훈계질 하는 빙수 식빵 쉐이크야!”

 그러자, 로노베가 인상을 팍 쓰며 날 쳐다봤다.

 “감독님, 쟤 캐스팅 하실 거예요?”

 “네, 뭐...”

 “에잇! 감독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그래, 너 배우 해라. 조요한 감독님이랑 같이 지옥에서 영화 찍으면 되겠네. 그럼 우리 다 같이 해피하잖아?”

 “영화는 개뿔... 너 이번에 헬튜브 채널 깠다며? 조회수 1이라고 소문 자자하던데?”

 ‘헬튜브? 그런데 조회수가 1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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