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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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최대오디션(3)
작성일 : 20-09-23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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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서의 연기는 이런 식이었다.

 몸을 건들건들 흔들며 어린애 옹알이 하듯 대사를 읽어 내려갔다.

 “시연아... 오빠.. 와쓰어. 괘앤차나... 지키어주끄야...”

 엥? 뭥미?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객석 분위기가 싸해졌다.

 - 어디 아픈감?

 - 한쿡말 모타나 보아요 ㅋㅋㅋ

 - 고구마 먹다 체했음... ㅠ ㅠ

 - ㅍㅍㅅㅅ

 오디션을 하다보면 꼭 이런 참가자가 하나씩 있다.

 그냥 재미삼아, 혹은 튀어보려고 지원한 사람. 서류에서 걸러냈어야 했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아 실수로 끼어들어간 것 같다.

 난 재빨리 손을 들어 그의 연기를 중단시켰다.

 “가이서님, 수고하셨습니다.”

 “아이 씨, 잠깐만 있어봐요.”

 가이서는 날 힐끗 노려보고는 계속 더듬거리는 말투로 대본을 읽었다.

 “기다리께. 너희 지밥... 아니, 집밥...”

 ‘감독 말을 무시해? 이거 기본도 안 된 놈이잖아!’

 역시나 댓글이 마구 쏟아졌다.

 - 감독 개무시 당해쓰! ㅋㅋㅋ

 - 애가 사가지가 바가지네!

 - 잘생기면 다냐? 입 닫고 내려와라!

 - 감독 참는 거 보소. 성불하겠네. ㅋㅋㅋ

 -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오유미 대표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안병태 피디가 재빨리 무대 위로 뛰어갔다.

 “가이서님! 그만하시죠. 내려오세요.”

 “놔! 놔보라고!”

 가이서는 안피디를 뿌리치더니 대본을 쫙쫙 찢어버렸다.

 “썅! 대본을 이따위로 쓰면 어떡해?”

 순간, 발끈하고 말았다.

 “이 따위라뇨?”

 “대사가 장황하잖아.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대사의 기본 몰라?”

 ‘이 자식 봐라? 누굴 가르치려고 들어?’

 가이서가 거들먹거리며 짝다리를 짚었다.

 “뭐, 어떻게? 함 보여드리까?”

 그때, 오유미 대표가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감독님, 참으세요. 그냥 내보내겠습니다.”

 “아뇨, 한번 보고 싶네요.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대사가 뭔지.”

 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한테 무시당한 게 기분 나쁘기도 하고,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녀석을 망신주고 싶다는 복수심도 있었으리라.

 안피디는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무대에서 내려왔다.

 가이서가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똑바로 봐요. 딱 한번만 할 거니까.”

 녀석은 무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 저 자세 무엇?

 - 감독한테 무릎 꿇었음 ㅋㅋㅋ

 - 사랑 고백하려나 봐요. ㅎㅎㅎ

 - 감독이랑 사귀게? 캬캬캬!

 - 사겨라! 사겨라! 사겨라!

 “후하... 후하...”

 가이서가 웅크린 자세로 길게 심호흡을 했다.

 잠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꿀꺽...

 내가 침을 삼킨 그 순간,

 녀석이 갑자기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결코 잊을 수 없는 간결하고도 임팩트 있는 대사를 날렸다.

 “크아아! 크악! 크아아아! 쿠아악!”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울부짖는 짐승의 절규가 실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꺄악!

 객석에선 비명이 쏟아졌고, 녀석을 찍던 카메라가 마구 흔들렸고, 우린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 사람이 아냐!

 - 미쳤나봐!

 - 스피커 터졌어요... ㅠ ㅠ

 - 문어준 이상이야!

 - 거봐요! 내가 반전 있다고 했잖아욧!

 “와우!”

 가이서는 자세를 착! 바꾸더니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번역하면 이래요. 함부로! 까불면! 지옥에! 간다!”

 녀석이 미끄러지듯 무대 밖으로 나가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감독님, 현장에서 봅시다. 빠이~~”

 난 그제야 녀석의 정체를 깨달았다.

 ‘가이서?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다 싶었어. 흥!’

 그런데, 화면에 갑자기 시청자 점수가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20,789... 20,925... 30,785!

 양미씨가 당황하며 말했다.

 “저거... 현재까지 최고 점수예요!”

 - 육식남! 가이서!

 - 가이서, 주인공 가즈아!

 - 한글만 배우면 되겠네 ㅋㅋㅋ

 - 팬클럽 가입하실 분은 이쪽으로...

 - 슬슬 막장 분위기? ㅋㅋㅋ

 하아...

 순식간에 오디션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사회자가 재빨리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다.

 “하하... 임팩트 있는 연기 보여주신 가이서님께 박수 보내주시구요.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난 녀석을 찾아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가이서는 복도에서 여성 팬들에게 둘러싸여 싸인을 해주고 있었다.

 “지금 싸인 안 받으면 평생 못 받아요. 가문의 영광인 줄 아세요.”

 “가이서님, 응원할게요!”

 자알 논다...

 난 녀석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아, 감독님 오셨네! 어떻게? 나 주인공 확정된 거?”

 “하하... 빨랑 따라오기나 하셩...”

 난 녀석을 계단 후미진 곳으로 데려갔다.

 “야! 부르지도 않았는데 왜 나와서 깽판이야?”

 “그러니까 왜 안 부르는데? 왜?”

 팡!

 가이서가...

 아니, 카이저가 날개달린 탁상시계로 변하더니 날 새초롬한 눈으로 노려봤다.

 “나 주인공 시켜주기로 했잖아. 왜 이따위 오디션을 보고 그래?”

 “캐스팅이 내 맘대로 되냐? 신인감독은 힘없어.”

 “아! 명분 쌓기? 오케이! 이해했고. 심사위원 점수나 팍팍 올려놔.”

 “오디션은 공정함이 생명이야. 점수 조작하면 나 감옥 간다고.”

 “감옥은 무섭고 지옥은 안 무섭나 보지?”

 “뭐?”

 “지금 악마들이 사방에서 너 잡아가려고 눈에 쌍심지 켜고 있어. 까딱하면 확 보내버리는 수가 있다잉?”

 “지금... 배우가 감독 협박하니?”

 순간, 녀석이 눈웃음을 지었다.

 “에이, 그럴리가요. 그냥 딱 잘라 대답해주세요. 저 이 영화 출연 합니까, 안 합니까?”

 ‘이런... 끈질긴 놈.’

 “출연할거야. 할건데... 주인공일지 아닐지는 몰라. 그건 오디션 점수로 결정되는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감독님만 믿고 대본 연습하고 있을게요. 헤헤...”

 “야! 또 나타나서 이상한 짓 하고 그럼 안 돼! 한번만 더 방해하면 그땐 진짜...”

 녀석은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난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고민에 잠겼다.

 ‘저 놈을 무슨 역할로 넣지? 거 참...’

 

 어쨌건, 녀석이 떠난 뒤로 오디션은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명한 연예인들도 왔고, 스포츠 스타들도 왔고, 무엇보다 전혀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무명배우들이 자신의 숨겨진 진가를 세상에 드러냈다. 그 중 몇 명은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영화와 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며 감사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지상최대 오디션을 진행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난 여전히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지상 최대 오디션의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입장해주세요.”

 둥! 둥! 둥!

 긴장된 북소리와 함께,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그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강동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난 숨을 크게 들이키며 마이크를 들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긴장되시죠?”

 “예... 조금.”

 “짜장면 먹는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하세요.”

 강동원이 피식 웃었다.

 그러자, 옆자리의 동훈이가 나를 툭 쳤다.

 “형이 말한 게 저 사람이야?”

 “응.”

 “요즘 저런 얼굴은 별로 인기 없는데...”

 옆을 보니, 양미씨와 오유미 대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끈 화가 났지만, 꾹 참으며 말했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죠. 연기력이 중요하죠.”

 난 강동원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시죠.”

 그때, 강동원이 불편한 표정으로 눈을 찡긋했다.

 “죄송하지만, 불 좀 꺼줄 수 있나요?

 안병태 피디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카메라 녹화 중이라 불 끄면 안 됩니다.”

 난 무전기로 안병태 피디에게 지시했다.

 “다른 조명 끄고, 핀 조명만 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무대 위의 불이 꺼지고.

 강동원은 어둠 속 작은 빛의 타원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잠시 후, 강동원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머금은 슬픈 눈이 저 먼 곳 어딘가를 향했다.

 그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삶의 수많은 순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습니다. 매일 웃고 바라보며 당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내 몸 속에 기억하고 싶습니다.”

 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묵직한 저음, 또렷한 발성, 풍부한 감정표현까지... 무대 위에서 홀로 독백하는 그의 애절한 눈빛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난 아직 껍질 속에 있습니다.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며 겨울 속에 잠자고 있습니다. 내년 봄 우리 헤어졌던 그 곳에서 우연한 바람처럼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아무도 숨을 쉬지 못했다.

 잠시 후, 강동원이 눈물을 닦으며 호흡을 추스렸다.

 그리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끝났습니다. 불 켜주시죠.”

 와아-

 모두가 기립하며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오유미 대표, 양미씨, 동훈이도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 완전 소오름!

 - 어떡해! 나 울었어... 엉엉...

 - 난 남잔데 울었어... 엉엉...

 - 동원씨, 극장에서 만나요~~

 - 나랑은 지금 만나요~~ ㅎㅎㅎ

 강동원은 자신을 향한 환호가 실감나지 않는 듯 어리둥절한 눈으로 객석을 바라봤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강동원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었다.

 강동원이 나를 보더니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역시 감격의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강동원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그때, 메시지가 나타났다.

 [‘조요한’의 끝없는 신뢰로 인해 ‘강동원’의 잠재력이 깨어났습니다.]

 [‘강동원’의 약점이 모두 사라집니다.]

 [‘강동원’의 능력치가 급상승합니다.]

 

 <강동원>

 역할 : 배우

 외모 : ★★★★

 매력 : ★★★★★

 연기력 : ★★★★

 특성 : 껍질을 깬 알바트로스. 거대한 날개를 펼치면 세상 끝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오를 것입니다.

 

 난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강동원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

 

 오디션이 끝나고 우린 모두 회의실로 모였다.

 이제 주인공을 결정해야 할 시간이다.

 안병태 피디가 시청자 점수표를 가져왔다.

 “일단 확인해보시죠. 1, 2위가 근소한 차이이긴 합니다만...”

 1위. 가이서

 2위. 강동원

 3위. 황성민

 ‘하... 이럼 곤란한데?’

 오유미 대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 가이서한테 빵점 줬어요. 기본도 안 된 배우를 쓸 순 없으니까.”

 “저두요.”

 “저두요.”

 ‘그럼 다행이고.’

 다들 나를 쳐다봤다.

 “뭐, 그래도 인기는 있으니까 이미지 단역 정도는 어떨까요?”

 “그건 감독님 재량껏 하시구요. 그럼 심사위원 점수를 보죠.”

 심사위원 점수를 합산해보니...

 1위. 황성민

 2위. 강동원

 이런! 순위가 바뀌었다.

 오유미 대표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예상대로네요. 역시 황성민 배우예요.”

 ‘어어... 이럼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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