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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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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식한 신이다!
작성일 : 20-09-23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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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어떤 무식한 놈이 이런 말을 했다.

 ‘영화감독은 신이다.’

 감독의 말 한마디에 배우가 울고 웃고, 감독의 지시대로 스텝들이 움직이고, 감독의 결정에 수백억이 오고가며, 감독의 생각대로 영화가 만들어진다. 그러니, 감독은 영화라는 세계를 지배하는 신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 무식한 놈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모든 책임을 오롯이 감독이 짊어져야 한다고.

 그리고, 잘못된 결정을 내린 감독에게는 세간의 온갖 비난이 쏟아지며, 결국 엉망진창 재기불능이 되어 영화인들의 술자리에 맛대가리 없는 안주로 전락한다고.

 참! 그 무식한 놈이 누구냐고?

 바로, 10년 전의 ‘나’다.

 안병태 피디가 말했다.

 “전 감독님 결정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최성원 촬영감독이 말했다.

 “알아서 해요. 난 분명히 안 된다고 했으니까.”

 난 지금 ‘신’과 ‘안주’ 사이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갔다.

 찰칵!

 환한 빛 속에서 꽃미남 배우, 가이서가 나타났다.

 녀석이 들뜬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다.

 “감독님, 촬영 들어갑니까?”

 “아직 네 차례 아니야.”

 “썅... 대본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럼 뭐 하러 불렀어?”

 “부탁할 게 있어서. 비 좀 그치게 할 수 있냐?”

 “비?”

 “응, 맑은 날 촬영을 해야 되는데, 계속 비가 오네. 날씨 좀 바꿔줘.”

 가이서가 꽃미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걸 할 줄 알면 내가 신이지. 이 멍충아.”

 “에이 씨, 그럼 신한테 얘기 좀 해보던가!”

 “그 양반이 얘기한다고 들어주겠냐? 차라리 내가 신이 되는 게 빠르겠다.”

 “에휴... 알았다, 들어가 있어라.”

 역시 이놈도 안 되는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내가 신이 되는 수밖에.

 난 결심했다.

 ‘무식한 신이 되기로.’

 

 스텝들을 모아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촬영합시다.”

 촬영감독이 날 죽일 듯 노려봤다.

 난 그에게 신의 말씀을 들려줬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이 정도 난관은 극복할 수 있어요. 하늘이 도우실 겁니다.”

 “돕긴 뭘 도와요? 하늘이 지금 개판인데. 아니, 실컷 찍다가 비가 그치면 그땐 또 어쩔 건데요?”

 ‘아! 그건 생각 못했네.’

 그때, 안병태 피디가 말했다.

 “강우기랑 강풍기를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 맞네.’

 깜박했다. 내가 무식한 신이라는 사실을

 지금부터 무식하게 간다!

 “비가 없으면 비를 만들면 되고, 태양이 없으면 태양을 만들면 됩니다. 영화에 불가능은 없어요!”

 촬영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의상은요? 배우들 옷 다 젖을텐데?”

 “옷이야 사면 되죠.”

 “동선은?”

 “바꾸면 되죠.”

 “분장은?”

 “다시 하면 되죠.”

 “비 올 때 조명 켜면 위험한데?”

 “커버 씌우고, 천막 치고, 조심하면 되죠.”

 “진짜로 할 겁니까?”

 “무조건 고!”

 “하......”

 어때? 무식한 놈한테는 못 당하겠지?

 촬영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신인감독은 이래서 문제야. 원채 무식해서 원...”

 우쒸!

 참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촬영감독이 손뼉을 치며 스텝들에게 외쳤다.

 “자, 촬영 들어갑니다. 다들 셋업하세요!”

 “네!”

 수십 명의 스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빗속을 뛰어다닌다.

 발전기가 돌아가고, 이동차가 깔리고, 대형크레인이 설치된다. 제작부들은 거리를 통제하고, 연출부는 가드레일을 설치한다. 저 멀리 수많은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촬영현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 엄청난 광경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오늘 실수하면 완전히 X 된다...’

 전시연이 대본을 들고 다가왔다.

 “감독님, 그럼 내용이 어떻게 바뀌는 거예요?”

 “아! 오늘 데이트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온 거예요. 그래서 동원씨가 재킷을 벗어서 시연씨 머리를 가려주면서...

 강동원이 뚱한 얼굴로 말했다.

 “저 재킷 없는데요.”

 “의상담당한테 얘기해 놓을게요. 아무튼 동원씨가 시연씨를 보호하면서 정류장까지 뛰어가는 겁니다. 이해하셨죠?”

 전시연이 생글생글 웃었다.

 “빗속을 달리는 연인 컨셉이네요? 예쁘겠다.”

 “하하... 아름답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전시연과 강동원은 같이 발맞춰 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까르르~~

 전시연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밝게 들린다.

 하하하!

 강동원도 신이 났다.

 둘이 깔깔대는 모습을 보니, 진짜 연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러다... 사귀는 거 아냐?’

 살짝 질투가 느껴질 즈음, 양미씨의 호출이 들려왔다.

 “감독님, 콘티 고치셔야죠.”

 “얍!”

 콘티를 수정하고 나니, 이번엔 동훈이가 날 불렀다.

 “감독님아, 동선 잡아야지.”

 “오케이!”

 곧 이어, 여기저기서 감독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감독님, 의상 골라주세요!”

 “감독님, 분장 봐주세요!”

 “감독님, 미술 확인이요!”

 “감독님, 조명 위치는요?”

 “감독님, 화장실 어디에요?”

 “감독님, 밥 먹고 합시다!”

 난 빗속을 뛰어다니며, 일일이 변동사항을 알려주고 모든 것을 체크했다. 어느새 비와 땀으로 속옷까지 흥건히 젖어버렸다. 그렇게 또 어딘가를 정신없이 뛰고 있을 무렵, 묵직한 호출이 들려왔다.

 “감독님!”

 “네!”

 촬영감독이 날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정신없어요. 가만히 좀 계세요.”

 “어떻게 가만있습니까? 다들 나만 찾는데.”

 “참 나... 감독이 뭐하는 사람인 줄 몰라요?”

 “감독하는 사람이요.”

 촬영감독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뛰어다니면서 제대로 판단하겠어요? 확인받을 거 있으면 스텝들한테 직접 오라고 하세요.”

 들어보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신은 절대 고개 숙이지 않는다.

 “난 뛰어다니면서 판단할 수 있어요. 행동주의 감독! 몰라요?”

 “어휴... 무식한 감독이 고집도 세요.”

 우쒸!

 참자...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촬영준비가 끝났다.

 동훈이가 슬레이트를 들었다.

 “자! 촬영 들어갑시다!”

 난 전시연과 강동원에게 차분하게 설명했다.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동원씨가 시연씨를 보호한다는 느낌으로 달리면 됩니다.”

 “걱정 마세요, 한방에 끝내드리겠습니다!”

 강동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잉? 이렇게 남자다운 모습은 처음인데?

 난 강동원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안심을 하며 메가폰을 들었다.

 “스텐바이!”

 일제히 조명이 켜지고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다들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나만 바라본다. 난 숨을 들이키고 크게 외쳤다.

 “레디, 액...!”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 전 어디 있으면 돼요?”

 뒤를 돌아보니... 강동원이 서 있었다.

 “엥? 동원씨, 여기서 뭐해요?”

 “아니, 누가 밖에서 화장실 문을 잠궈버렸길래...”

 전시연 옆에 또 다른 강동원이 서 있었다.

 전시연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말했다.

 “이 분은... 누구세요?”

 스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강동원이 둘이야.”

 “완전 똑같이 생겼어. 쌍둥인가?”

 하... 미치겠다.

 난 전시연 옆에서 사악한 웃음을 짓고있는 놈에게 다가갔다.

 “이 분은 강동원 대역입니다. 원래 오늘 동원씨가 넘어지는 장면이 있어서 준비했는데... 제가 깜박하고 대역한테 말 안했네요. 그죠?”

 녀석이 뻣뻣한 자세로 말했다.

 “아뇨, 제가 진짜 강동원입니다.”

 퍽!

 엉덩이를 힘껏 차주었다.

 “하하... 대역분이 워낙 장난이 심해서.”

 난 녀석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가뜩이나 힘들어죽겠는데, 자꾸 방해할래?”

 팡!

 카이저가 날개달린 탁상시계로 돌아왔다.

 “내가 쟤보다 나아. 그냥 내가 주인공 하면 안 돼?”

 “너 자꾸 이러면 역할 완전히 빼버린다!”

 카이저가 토라지며 날 노려봤다.

 “봉만오는 날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는데... 너무해.”

 “그건 괴수고 이건 사람이잖아. 좀 차근차근 배우면서 성장하면 안 될까?”

 녀석이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 그럼 뒤에서 보고만 있을게. 됐지?”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심해라.”

 

 난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바로 촬영 들어갑시다. 스탠바이!”

 동훈이가 슬레이터를 쳤다. 딱!

 “레디, 액션!”

 드디어,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강동원과 전시연이 빗속을 달리면, 촬영감독은 이동차를 타고 그들을 따라가며 촬영을 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게 완벽했다.

 “컷! 오케이!”

 그때, 양미씨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감독님, 전시연씨 눈 감았어요.”

 “아... 그래요?”

 전시연이 비에 홀딱 젖은 채 뛰어왔다.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요. 눈에 자꾸 빗물이 들어가.”

 “그럼 방향 바꿀게요. 바람 등지고 뛰겠습니다.”

 그때, 촬영감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럼 조명이랑 카메라 세팅 다시 해야 돼요. 준비하는 데 또 몇 시간 걸린다구요.”

 “그럼 어떡해요?”

 “그러니까 이런 날씨에선 촬영 못한다고 했잖아요!”

 으음... 결심했다.

 더 무식해지기로.

 “제작부! 바람 막아!”

 안병태 피디가 깜짝 놀랐다.

 “바람을... 어떻게 막아요?”

 “저쪽에 벽을 세워! 높이는 3미터!”

 그랬더니... 진짜로 벽을 세운다.

 철골파이프로 골격을 만들고, 비닐 천으로 촘촘하게 덮으니, 완벽한 바람막이가 된다.

 ‘그래, 이 맛에 감독하는 거지.’

 다시 촬영이 시작된다.

 “테이크 2!”

 “컷! NG!”

 “테이크 3!”

 “컷! 다시!"

 비바람을 맞으며 지옥같은 촬영이 계속된다.

 열 번째 테이크가 넘어가니, 스텝들의 눈빛에 이글거리는 분노가 새겨진다.

 ‘저 감독새끼... 반드시 죽인다.’

 그 와중에 해가 진다.

 안병태 피디가 강물에 빠진 생쥐 꼴로 뛰어온다.

 “감독님, 이번이 마지막 촬영입니다.”

 “알아요, 끝내겠습니다.”

 진짜로 이번에 못 끝내면, 난 오늘 밤 살해당할 것이다.

 이를 악물고 두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옆에서 같이 뛸게요. 카메라 의식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만 집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비장한 눈으로 촬영감독에게 지시했다.

 “무조건 배우만 따라가세요. 배우가 최우선입니다.”

 “그러죠, 뭐.”

 난 두 손을 번쩍 들어 모든 스텝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오늘 이 촬영 반드시 끝내겠습니다. 여러분, 절 믿고 끝까지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스텝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래, 이 맛에 감독하는 거지.’

 난 떨리는 손으로 메가폰을 들었다.

 “레디... 액션!”

 배우들이 빗속을 달렸다. 난 그들 옆에서 카메라의 이동속도에 맞춰 같이 뛰기 시작했다. 전시연의 행복한 얼굴과 강동원의 수줍은 미소가 앵글에 정확히 들어왔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부드러웠고, 튀어오르는 빗방울마저 리드미컬하게 펼쳐졌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커어어어엇! 오케이!”

 우와!

 모든 스텝과 배우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린 모든 악조건을 뚫고 결국 해낸 것이다.

 ‘이것이 영화다!’

 두 배우가 빗속에서 활짝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감독님, 최고에요!”

 난 감격에 젖어 강동원과 전시연을 양팔로 덥썩 껴안았다.

 “고맙습니다.”

 그 순간, 뒤에서 철골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지끈!

 “어어... 피해!

 맙소사!

 바람막이로 세워뒀던 철근 구조물이 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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