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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아이 따윈 개나 줘 버려!
작가 : 솔커
작품등록일 : 20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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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동상이몽 (3)
작성일 : 20-09-26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5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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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참 뜸을 들이던 선달은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다. 때마침 목을 축이러 간 곳에 척 보기에도 수상한 사내가 앉아있지 않더냐?”

 

 

 얄밉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도영은 제 옷자락을 손에 쥐고 구겨 뜨렸다. 차라리 그런 흑립 같은 건 벗어버리고 얼굴을 드러내는 게 나았던 것일까. 어쩌면 저놈처럼 뻔뻔히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차피 제 얼굴을 아는 이들은 전부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말이다. 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선달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상 제가 무슨 옷을 입었든, 어떤 얼굴을 했든, 어디를 갔든 맞닥뜨리는 건 그저 시간문제였을 뿐이니까.

 

 

 “오늘 만일 내가 그곳에 없었더라면 어찌할 작정이었느냐?”

 

 

 도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선달은 그저 태평한 얼굴로 남의 이야기를 하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내리며 대꾸할 따름이었다.

 

 

 “글쎄다. 내 갈 길이 바쁜 몸인지라 그냥 갔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밤중에 이 산자락을 지나가는 길에 사람 소리에 이끌려 이곳에 도달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지.”

 

 “허튼 소리. 네가 아무런 확신도 없이 이곳까지 왔을 리가.”

 

 

 선달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도영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인석아. 네놈은 그리 뻣뻣한 게 문제라 내 몇 번 말하지 않았더냐? 가끔은 운이라는 것도 좀 믿어보고 그러래도. 내 이곳에 온 건 그저 발길이 닿는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정말로 없었단 말이다. 헌데 네놈이 그리 말하니 꼭 내가 무언갈 찾아온 사람 같지 않더냐?”

 

 

 도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추궁어린 목소리로 선달에게 되물었다.

 

 

 “참말이냐?”

 

 

 선달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글쎄 그렇대도?”

 

 

 도영은 선달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이어지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선달은 아무렇지 않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영감님께서 이곳에 터를 마련해 두신 것이야 내 진즉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고, 아마 알 놈들은 다 알 테니 말이다.”

 

 

 얄밉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대는 선달의 모습에 도영의 눈빛이 달라졌다.

 

 

 “알 놈들은 알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허면 이리도 거대한 집을 지어 놓고 아무런 소문도 나지 않길 바랐단 말이냐?”

 

 

 덩달아 선달의 목소리에도 날이 섰다. 예리한 기운이 광 안을 가득 메웠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누가 기억이나 한다고.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대체 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이냐!”

 

 

 자리에서 일어선 도영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선달은 고요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눈 속엔 일말의 연민이 깃들어 있었다.

 

 

 “아서라, 이놈아. 이리 멍텅구리 같아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꼬.”

 

 

 선달은 대놓고 혀를 찼다. 도영은 주먹을 꽉 쥔 채 선달을 향해 윽박질렀다.

 

 

 “네놈,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까!”

 

 

 잔뜩 약이 오른 도영과 달리 선달은 느긋하다 못해 편안한 모습으로 그의 말을 받아쳤다.

 

 

 “아, 그때 인부놈들이 얼마나 입을 털어댔으면 평양까지 금강산에 집이 생겼단 말이 나돌더라 이거다! 그만한 재력을 가진 집안들을 다 뒤져봐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데, 유독 네놈만이 꼬리를 감춘 채 모습을 보이지 않더구나. 하여 내 네놈이 벌인 짓임을 알아차렸지. 최 영감님께서 또 무슨 재미난 일을 벌이시는가, 하여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고.”

 

 “또 아는 자들은 몇이나 되느냐.”

 

 

 선달은 위를 올려다보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수를 헤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도영은 마른 침을 삼키며 선달을 바라봤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마도 나 한놈이렷다?”

 

 

 그제야 선달의 장난질에 놀아났음을 깨들은 도영이 소리쳤다.

 

 

 “이놈아!”

 

 

 선달은 소리 내어 웃으며 몸을 굴렸다.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웃음이었다.

 

 

 “이놈아, 긴장 좀 풀라고 한 말이다. 영감께서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는 건 영감님을 계속 보고 있던 나나 되니 아는 것이지 다른 놈들이 알 턱이 있겠느냐? 그리고 이건 네놈이 내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괜한 놈들 귀에 들어가기 전에 몇몇 족쳐 없애기도 했으니.”

 

 

 도영은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며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도대체가 이 자식은 왜 나타나선 사람 속을 뒤집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여태 영문도 모른 채 선달과 윽박지르기에만 바빴던 자신이었다. 도영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지푸라기를 들어 선달에게 던지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네놈이 예까진 대관절 무슨 일이냐?”

 

 “빨리도 묻는다, 이놈아.”

 

 

 선달이 기가 찬 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도영은 재차 지푸라기를 던지며 그의 대답을 종용했다.

 

 

 “아, 글쎄 무슨 일이냐니까?”

 

 

 선달은 그제야 웃음기를 지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 수도 돌아가는 상황을 좀 아느냐?”

 

 “아예 모르진 않지.”

 

 

 도영은 주막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하긴, 이런 외진 곳까지 소문이 돌 정도면 수도는 난장판이 되어도 진즉 되었을 게 분명했다.

 

 

 “왕 영감께서 청을 하시더구나.”

 

 “왕 영감님이?”

 

 

 도영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선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 영감이라면 도영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최 영감의 하나뿐인 벗, 평양을 주름잡는 인물.

 

 

 “그래서 내 보름 내에 최 영감님과 만나게 해 드리겠다 약조를 드리고 왔지.”

 

 “그분께서 영감님은 무엇 때문에 찾으신단 말이냐?”

 

 “글쎄다? 언제고 우리가 높으신 분들의 의중을 명확히 안 적이 있었더냐?”

 

 

 뼈가 있는 선달의 말에 도영은 애꿎은 지푸라기를 내던지며 입을 다물었다. 하기사, 처음 최 영감이 저더러 산중에 집을 하나 마련하라 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따랐던 자신 아니었던가.

 

 

 “도영아.”

 

 

 낮은 선달의 목소리에 도영이 고개를 돌리며 반응했다. 선달은 제법 진지한 얼굴이었다.

 

 

 “헌데 이곳에 왜 이리도 아이들이 많은 것이냐?”

 

 

 도영은 그제야 선달이 희진과 경 모두를 보았음을 깨달았다. 역시 이 자식을 이곳까지 들여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도영은 살며시 입술을 깨물며 부리나케 기억을 더듬었다. 영감께서 무어라 하셨더라.

 

 

 “영감님께서 구휼사업을 하고 싶다 하셔서 빈민가 아이들 몇을 데려오는 중이다.”

 

 “호오라, 그 영감님이 구휼을 하신다고?”

 

 

 도영은 더 이상의 대답 대신 선달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괜한 티를 내서 녀석의 오해를 부채질하는 일은 삼가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도영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선달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 지은 채 답이 없는 도영을 향해 재차 말을 건넸다.

 

 

 “그래, 황태손 마마님께서 살아 계신 것이야. 그러하지?”

 

 

 도영은 이를 꽉 깨물었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순간적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달의 매서운 눈빛이 옷자락 밑에 경직된 도영의 근육을 훑고 지나갔다.

 

 

 “그래, 그래. 이제야 의문이 풀리는구나. 황태자 전하와 최 영감님께선 유난히 사이가 좋으셨으니 아들을 부탁하는 것쯤이야 무엇이 어려웠으려고. 영감께서도 이 대고구려를 위해 그 정도는 응당 해야 한다 여기셨겠지.”

 

 

 선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더 이상 도영의 반응 같은 건 보지 않아도 충분했다.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는 꼴이 더욱 수상했으니까. 다만 선달의 마음에 걸리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분명 희진이라 부르며 도망치라 했었지. 그 아이는 대체 누구기에 이리 싸고돈단 말이야?

 

 

 “희진이라 했지.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더냐?”

 

 “말하지 않았더냐. 영감님께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저 불쌍하다 하여 이곳에 둘 분이 아니시니 하는 말이다.”

 

 

 도영은 선달을 노려볼 뿐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선달은 저를 죽일 듯 노려보는 도영을 향해 싱글싱글 잘도 웃으며 말을 붙였다.

 

 

 “누군데 그러느냐, 응? 누구의 아이란 말이야. 내 알기론 저리 숨어 지낼만한 아이는 황태손 마마님을 제하곤 없을 것 같은데. 그 사이 공주님이라도 태어나셨던 것이냐? 아니야, 그렇다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도 비슷하단 말이지.”

 

 “헛소리 그만하고 잠이나 자거라, 이놈아.”

 

 “옳거니! 황가의 사람이 아닌 게로구나?”

 

 

 익살맞은 선달의 얼굴에 도영이 관자놀이 부근을 문지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고 싶지 않은 놈과 하룻밤을 지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대체 누구기에 이렇게까지 말을 아끼는 것이야, 응? 이러니 더 궁금하잖아!”

 

 

 선달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굳게 닫힌 문을 뚫고 나아갈 만큼이었다.

 

 

 “도대체 그 희진이란 아이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인데! 에라이, 좀 말 해 주면 어디가 덧나느냐?”

 

 “저 말입니까?”

 

 

 굳게 닫혀있던 광의 문이 활짝 열리고 작은 아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엔 그새 더욱 늙어버린 것 같은 최 영감이 함께였다.

 

 

 “영감님!”

 

 

 문가에 앉아있던 도영이 벌덕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 영감은 도영을 향해 나가보라는 듯 손짓했다. 희진은 눈치껏 도영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당황한 표정이 도영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최 영감은 꽁꽁 묶인 선달을 향해 시퍼런 불길이 치솟는 것 같은 눈빛을 발하며 입을 열었다.

 

 

 “저 아이의 정체가 그리도 궁금하더냐?”

 

 “아니, 영감님, 그것이 말입니다.”

 

 

 천하의 선달이 더듬더듬 말을 얼버무리는 사이, 도영과 선달 모두에게, 그리고 희진에게조차 날벼락인 말이 최 영감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 손녀다.”

 

 “손녀요? 결혼도 안 한 영감께서 손녀라니, 가당키나 한 말씀입니까?”

 

 

 선달이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최 영감은 그런 선달을 내리깔아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내 손녀다.”

 

 

 다른 반론은 허용치 않겠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였다. 희진은 뒤에서 눈을 깜빡이며 최 영감을 바라봤다. 저 영감님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는 거야? 노망나셨냐고요, 영감님! 갑자기 손녀가 왜 나와요!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도영아, 진이를 데리고 물러가거라.”

 

 

 도영은 떨떠름한 얼굴로 제 옷자락을 붙잡은 희진을 데리고 나갔다. 희진도, 도영도 누구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공기가 가득했다. 도영은 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와서야 무릎을 숙이고 앉아 희진과 눈을 맞췄다. 그는 조심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감님과 무슨 이야기를 한 게야?”

 

 

 희진은 입을 오물거리며 대답을 골랐다. 영감님이 알아서 한다 하긴 하셨는데, 내가 먼저 말을 해도 되려나. 손녀라고 하는 걸 보면 차라리 내가 말하는 게 나을 것도 같은데. 주저하는 희진의 모습에 도영은 한숨을 내쉬고는 희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되었다. 네가 다치지 않았으니 그걸로 되었어.”

 

 

 다정한 손길과 다정한 목소리였다. 희진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도영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도영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닫힌 문을 바라봤다. 도대체 일이 어찌 돌아가고 있단 말이야.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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