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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작가 : 강이안
작품등록일 :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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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 47
작성일 : 21-09-06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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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굳이 나오지 말라니까 그러네.”

  “아니야. 내가 바래다주고 싶어서 그래. 민재 없을 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중요한 거야?”

  은지는 그냥 털어놓고 싶었다. 민호라고 딱히 답을 알 리는 없다. 항상 잘 들어주는 민호니까 그저 속내를 보이는 걸로 족했다.

  “민재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서.”

  “아, 민재.”

  “이렇게 정 들었는데 막상 떠나보내려면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 싶어. 만약 구슬에 넣어지는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그건 상상도 하지 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천사들에게 고이 모셔가라고 잘 부탁해야지. 우리가 맡은 일을 끝마칠 때까지는 옆에 데리고 있게 해주지 않을까? 아직 모아야 할 영들이 꽤 남았으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그게 어쩜 그러네. 영들을 빨리 저쪽으로 보낼수록 좋은 건데 그러다 보면 민재랑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지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건 또 그렇구나. 일이 진행될수록 좋기만 한 것도 아니네.”

  멀리서 지나가는 차들이 보인다. 골목 가장 끝에 자리한 휴대폰 대리점은 새로 개점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들 시선을 끌기 위해 번쩍거리는 광고판을 여러 개 세워놓았다.

  “이제 들어가. 이미 멀리 왔어. 돌아가는 거리가 더 멀겠다. 집에 도착해서 문자 보낼게.”

  “그래. 너도 조심해서 가.”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려는데 누군가 민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민호야. 민호 아니니?”

  은지는 그 부름을 들으며 민호와 동시에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본다.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줄무늬가 세로로 쳐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민호를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기울이고 있다. 펑퍼짐하게 배 주변이 불렀다. 한 눈에 봐도 임신부임을 알 수 있다. 양손에 물건이 잔뜩 든 보따리를 들고 두 사람을 주시한다.

  “어라, 미나 누나잖아.”

  민호가 은지 귀에 겨우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우리 집 장녀, 홍미나 씨.”

  민호가 알은 체를 하자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저기 볼록 나온 배 보이지? 자고로 곧 나는 외삼촌이 될 거고.”

  “하고 많은 장소, 시간 중에 어떻게 이렇게 만나냐?”

  그녀는 민호를 향해 말을 건네면서 눈은 은지를 본다. ‘누나’라는 민호의 말에 은지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안녕하세요.”

  “어머, 민호 여자친구?”

  “네?”

  “아, 그, 그게, …….”

  “반가워요. 나 민호 누나에요. 이렇게 민호 여자친구를 만나는구나. 너도 애가 그렇다. 여태 이렇게 숨기고 있었니?”

  “아, 아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그냥 친구야, 친구라고.”

  은지는 표은동 목사가 설교 중에 자주 언급하는 ‘사람을 외모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을 떠올린다. 겉모양보다는 안에 든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설교를 통해 여러 번 강조하셨다. 하지만 듣는 가르침을 그대로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참 어렵다. 민호의 누나, 미나 언니는 이목구비가 아주 시원시원하게 생겼다. 쭉, 뻗은 콧날에 옆으로 뻗은 두툼한 입술하며 어딘가 답답해 보이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는 외양이다. 그런 모습이 은근히 은지를 주눅 들게 했다. 첫인상을 가지고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슬금슬금, 뒷머리를 타고 올라온다.

  그녀가 대화를 막힘없이 이끌고 가니, 은지는 어디서 그 말을 끊으며 대꾸를 해야 할지 몰라 자꾸 입 안에 할 말을 담았다 뱉지 못하고 우물거린다.

  ‘교사라 그러신지 말씀을 참 잘하시네.’

  은지는 민호한테 들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동생은 군대 부사관이라고. 은지 자신도 교회 아동부 선생님 일을 맡으며 나름 말을 조곤조곤 잘해 보려 노력했었는데, 미나 언니 앞에서는 자신이 오히려 학생이 된 기분이 들었다. 천직이라는 말처럼 선생님으로 타고나신 듯하다.

  “민호야, 이거 좀 들어라.”

  “이게 다 뭐야. 뭘 이렇게 많이 샀어?”

  “엄마가 요즘 기운이 떨어져 보여서. 집에서 같이 지내는 두 남자, 너랑 아빠는 엄마를 어디 제대로 챙기기나 하겠니. 내가 나서서 챙겨야지. 곰국이라도 끓어드리려고 꼬리랑 이것저것 야채도 샀더니 금세 짐이 이렇게 늘었네.”

  말은 민호랑 나누면서도 은지를 관찰하는 일은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훑어보는 눈길이 느껴져 은지는 어디 숨을 데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이 이렇게 불편한 줄 처음 깨닫는다. 최대한 밝게 웃으려는데 그것마저 억지웃음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실례했네. 지금 두 사람 함께 어디 가려는 거 아니었어요? 민호야, 그거 다시 이리 줘. 누난 괜찮으니까 어서 가던 길 가.”

  “어머, 아니에요. 안 그래도 방금 전에 헤어지려던 참이었어요. 마침 잘 됐네요. 같이 집까지 가시면 되겠네요. 민호가 짐도 들어드리고.”

  “안 그래도 집에 가는 길이었어. 어쩌다 짐꾼이 돼버렸군.”

  “너도 먹을 건데 불평하지 마라.”

  “그럼 저는 가볼게요.”

  “그래요. 다음에 또 봐요.”

  은지는 미나 언니가 멀어져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뒷머리가 화끈거린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려온다.

  “저 아가씨 집이 어디야?”

  “저쪽, 저 너머에 있는 건물.”

  “어디? 으이그, 똑바로 가리켜 봐.”

  “아, 남의 집은 알아서 뭣하게. 저기, 저기라니까.”

  “저기? 부모님이 치킨 집 하시니?”

  “그 위에.”

  “교복집?”

  “더 위에.”

  미나 언니의 대답이 들려오질 않는다. 아직 말하는 내용이 들릴 만한 거리인데도.

  “……아버지가 목사님이셔?”

  “어, 그게…….”

  “목사 딸이면……. 아, 민호야, 매형이…….”

  그 다음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건물 앞에서 멈춘다.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은 일층에 ‘치킨과 피자’, 이층에 ‘엘리트 교복’, 삼층과 사층은 가로질러 ‘온누리교회’라는 간판을 매달고 있다.

  “이렇게 바라보니 건물이 또 다르게 보이는데.”

  은지는 문득 미나 언니의 생각이 무척 궁금해졌다.

  ‘목사 딸이 어떻다는 걸까? 목사님이 내 아버지도 아니지만.’

  갑자기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싫어진다. 여기 아니면 갈 곳도 없지만 지금은 싫다. 딱히 어디를 가겠다는 생각 없이 발을 옮겼다. 익숙한 골목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머릿속에는 다시 미나 언니를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다.

  ‘더 공손하게 행동해야겠지? 참, 조금 전에 실수한 건 없었나? 예의 없는 애로 보시는 건 아니겠지?’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아, 민재.’

  민재를 혼자 두고 왔다.

  ‘나도, 자알 한다.’

  결국 돌아가야 할 곳이다.

  ‘나를 이만큼 클 때까지 지내게 해준 곳인데 말야.’

  되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두른다.

  ‘참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그러네. 미나 언니도 자주 보다보면 친해지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민재가 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속으로 묻는다.

  ‘민재야, 배 안 고파? 우리 뭐라도 해먹을까? 먹고 싶은 거 없어?’

 

작가의 말
 

 '문 여는 자 2 - 사슴처럼 빠르게 사자처럼 용맹하게'의 마지막 장입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문 여는 자 3 - 사흘 안에 지으리로다' 열심히 준비해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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