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십자밑에 고양이
작가 : ballonwolf
작품등록일 : 20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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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작성일 : 22-02-16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4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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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검푸른 발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다. 공기를 헤집으며 심연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꿈속에서 목덜미를 제대로 잡힌 레건의 거친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듯이, 어린 시절 대성당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악몽은 깊은 상처와 함께 끝나게 되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수행원이 지나가는 장면을 되새기며, 레건은 꿈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어서 흑연 덩어리가 종이에 비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셨네요.”

 

 레건은 곧바로 탐험가 쥐를 바라보기 위해 머리를 뒤로 돌렸다. 자신이 타고 있던 검푸른 고양이의 등이 굽어져서, 흑연을 떨어뜨린 탐험가 쥐는 불만이 가득한 찍찍 소리를 냈다.

 

 “어음, 미안해. 저 불꽃 태양 아래 있는 바다가 보이니?”

 

 “그냥 거대한 강인데요?”

 

 그물과 어선이 내팽개쳐지다 못해 썩거나 부서져 있는 마을로 해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파도처럼 미련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냥 끝이 안 보이는 강이네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저 별 방향으로 건너야 하는데?”

 

 “저 망망대강을요? 안녕히 가세요.”

 

 검푸른 고양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별을 가리키다가, 쥐에게 이리 오라는 눈치를 주었다. 이후 함께 돌아갈 수 없음을, 그리고 홀로 위험한 땅을 건너야 함을 깨달은 탐험가 쥐는 울컥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 돌아갈래요.”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 넌 이 주변 잘 알잖아. 먼 곳으로 온갖 위험을 무릅쓰는 위대한 모험을 하라고.”

 

 쥐는 배신감에 몸서리치며, 자신이 너무 먼 곳으로 떠나버렸음을 깨달았다. 좀비가 그득그득했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건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것이고, 그럴 용기는 아무도 내지 않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쥐는 바다에 없던 길이 생긴 것처럼 대답했다.

 

 “그래요, 강을 수천 개 포갠 강을 건너는 게 더 위대한 모험이 되겠죠.”

 

 “위험 요소가 깔리고 깔린 길로 너 혼자 돌아가면 그게 더 위대한 거겠지? 바다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강을 보고 오는 모험담을 푸는 건 덤이고.”

 

 “샤크투스의 동생 없는 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잘 알았으니까 저 강에나 들어가요.”

 

 레건은 부서진 배가 여럿 묶여있는 항구를 둘러보고는 수영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스티로폼을 집어 들었다. 앞쪽이 망가져 있었지만, 폐허가 된 선박에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영 보조기구였다. 항구와 바다를 구분하는 콘크리트 턱에서 뛰어내렸고, 탐험가 쥐의 비명이 조금 들렸다.

 

 “솔직히, 그 망할 검은 열매 덕분에, 바다를 건널 힘이 남아 있으련지 모르겠다.”

 

 레건은 매우 빠르게 앞으로 헤엄치며, 정의 연합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땅으로 떠나갔다. 깊은 바다 밑, 조금 특이하게 생긴 물고기를 넌지시 바라볼 때, 검푸른 고양이는 대성당에 달린 작은 수영장에서 유영하던 날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지금도 그때의 속도가 나오고 있었다.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지도 여백에다가 적을 게 생겨서 정말 다행이네요.”

 

 적당히 몸을 비틀어, 녀석의 지도를 소금물에 적셔주려는 생각은 금세 그만두었다. 악의스러운 생각을 품었지만,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는 사악한 미소가 다른 표정에 충분히 묻혀 있었다.

 

 “난 진짜 황제가 아니었어.”

 

 “왜요?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샤크투스의 동생도 아니지. 전임 황제와 예언가 쥐는 날 샤크투스의 동생으로 만들어 자기들 이익을 챙기려 했거든. 난 꼭두각시 황제에 불과했어.”

 

 “왜 황제가 그 위대한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그랬을까요?”

 

 “왜냐면…. 예언가 쥐는 날 교세를 강화할 수 있는 신학적 수단으로 생각했을 거고. 아, 녀석이 굳이 황제를 집어던지고 귀족으로 돌아간 이유?”

 

 쥐가 동의하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나도 잘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내 뒤에서 배부르게 먹고 줄기차게 놀고 싶었던 거겠지. 책임이나 위험은 회피하면서 말이야.”

 

 “근데, 샤크투스의 동생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가 안 가요.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어둠의 숲에 최초의 별을 들여온 분이잖아요.”

 

 “그런 기적들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기가 싫다. 그냥 그렇다고 알아들어.”

 

 안개가 점점 옅어지고, 주위는 점차 밝아졌다. 레건은 빛나는 별을 보았다. 별 주변이 붉은색으로 강하게 물들여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소란스러운 좀비 떼에게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하네요.”

 

 “그래,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진 마, 분명 누군가 와서 우리를 도와줄 거니까. 도움의 손길을 받고 나면 안전하고 지루한 여행이 될 거야. 일단 저 서광을 따라가는 게 먼저지만.”

 

 “그래요. 저희가 만든 배를 타고 가는 게 더 편했겠지만요.”

 

 수영 초심자에게 주는 스티로폼을 가리키며 탐험가 쥐가 대꾸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어, 게다가 바람이 주는 힘보다는 내 발이 훨씬 빠르기도 하고.” “거기에는 이견이 없어요. 다만 강물이 제 털과 지도를 제대로 망쳐놓고 있지요.” “바닷물이야.”

 

 탐험가 쥐는 짜증이 섞인 눈동자로 레건을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꽤 거대한 공기 방울이 올라오더니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런 바람에 레건은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고, 조금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쳐다보면 부담스럽지.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그렇게 바다를 지도로 그리고 싶었다며.” “못해요. 그냥 푸른색으로 칠하면 되니까요. 동서남북 모두 푸르디푸르니까. 그냥 지도 여백에 적을 이야기나 더 해줘요.”

 

 이어진 침묵 속에서, 어두운 안개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서광이 지나칠 정도로 강해졌고, 검푸른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광명을 피해 눈을 감았다. 눈꺼풀마저 뚫는 붉은 빛을 이정표 마냥 따라가는 중에, 눈이 빛에 적응했다.

 

 눈을 뜨자, 일렁이는 연기 밖에 여러 배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해안이 어둠의 숲에 봉쇄된 붉은 십자국에 값진 물고기를 낚으려는 어부들인 줄 알았지만, 저들은 물고기보다도 더 귀중한 것을 찾으러 온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연기에 숨어 저들을 피해 가려고 했지만, 선원 하나가 레건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배가 레건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붉은 십자국은 레건의 이동 경로를 유추해서 가로막았을 것이다.

 

 “돌아왔구나!”

 

 옛날에도 그랬듯이, 붉은 십자국은 수행원은 반갑게 레건을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바닷물에 절여진 쥐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서 레건의 등에 올라간 탐험가 쥐를 손으로 쳤다. 수행원은 떨어진 쥐를 밟기 위한 탭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탐험가 쥐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엄폐물을 찾아 숨어 들어갔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 저 안개를 건넌 것 치고는 매우 깔끔한 상태야. 최소 널 세탁기에 돌려야 먼지가 좀 빠질 거로 생각했는데.”

 

 악의적인 농담이 아니었다. 레건은 뼛속까지 주부인 수행원을 향해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먼지가 잘 빠지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힘들게 따라다니시네요. 하지만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더라도 바다를 건널 겁니다.”

 

 “그래, 수만의 군인을 동원해도 의미가 없을 거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지. 네 마음을 돌이키는 것. 그걸 위해서 죽음에 이를 질병 또한 감수하면서 안개의 작은 틈새로 빠져나왔지. 물론, 방독면 같은 걸 사용하긴 했어, 그래도 내 건강은 급격히 나빠질 거고, 그걸 감수해서라도 널 다시 보고, 되돌리고 싶은 거야.”

 

 검푸른 고양이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물건을 뒤지는 소리에 귀가 씰룩거렸다.

 “돌아가자, 진심으로 널 다시 보고 싶어. 그러니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일상으로….”

 

 짐 속으로 숨어든 탐험가 쥐가 난동을 피우며 배 한편에 쌓인 짐들을 쓰러트렸다. 베일이 벗겨진 고양이용 캐비닛이 갑판을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부인할 수 없는 위선에 검푸른 고양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시 돌아가자.”

 

 레건은 마음의 결단을 내리고 수행원의 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십자 목걸이가 레건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십자 목걸이와 수행원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마중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와 진실로 함께하고 싶으셨다면, 고양이 캐비닛도, 절 제압하려는 개박하도 들고 오지 말아 주셨어야죠. 제가 없어도, 부디 잘 지내주세요.”

 

 검푸른 고양이는 갑판으로 튀어나온 쥐를 낚아채 바다로 뛰어들었다. 강인한 네 발로 헤엄치며 결코 평범한 배들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 항해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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