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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사연
작가 : 김선을
작품등록일 : 202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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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밤마실
작성일 : 22-02-23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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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얘기를 쓰는 건 처음인데요.

 

 저는 평범한 50대 직장인입니다.

 

 이건 제가 어린 시절 구미에 살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 때 저는 9살이었습니다.

 

 형이랑 여동생이 한 명 있었구요.

 

 저희가 살던 집은 구미 시골에 외딴 곳에 있었습니다.

 

 가까운 읍내라도 나갈려면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걸렸었습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닦여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당시엔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비포장도로여서 덜컹거리며 다녔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네는 집성촌이었는데요.

 

 같은 성씨를 가진 4가구가 살았었고, 작은 야산을 넘어가면 거기에 또 한 열 가구정도 살고 있었습니다.

 

 옆 동네엔 제 또래 아이들도 몇 명 있었고, 아빠와 맘이 통하는 아저씨들도 몇 명 있어서 저랑 아빠는 자주 그 마을에 놀러갔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도 아빠와 제가 옆동네에 놀러간 날이었습니다.

 

 그 무렵 아빠는 옆동네에 갈 때면 늘 저를 데리고 다녔었습니다.

 

 "무성아. 밤마실 갔다오자."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던 아빠는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 한 마디면 끝이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놀다가도 얼른 뛰어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아빠와 밤마실을 가면 옆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이 귀엽다며 사탕, 초콜릿같은 간식거리나 소소한 용돈을 쥐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예. 아부지."

 

 "아이고. 마 술 좀 작작 드시소. 그라고 일찍일찍 좀 댕기고."

 

 "내가 거 언제 마이 묵었다고? 흠흠 내 댕기올게."

 

 엄마의 잔소리에 아빠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빠는 농협에서 나눠준 초록색 모자를 쓰고 내 손을 잡은 뒤 집을 나섰습니다.

 

 아빠와 저는 동네 야산을 빠르게 전너 건너편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야산을 통과하는 건 보통 약 40분정도 걸렸구요.

 

 늦은 밤에 가더라도 1시간은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날도 밤 11시를 넘긴 시점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저도 방에서 그 집 아이랑 자고 있다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습니다.

 

 얼굴이 벌건 아빠는 기분이 좋은지 야산을 지나며 트로트 노래를 흥얼거렸고, 그에 맞춰 전등 불빛도 흔들렸습니다.

 

 달이 구름이 가려졌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믐달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날 따라 유독 밤길이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숲길을 걷던 와중에 저는 우리 옆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요.

 

 그건 아빠가 부르던 트로트와 똑같은 노래를 누가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흥얼거리는 소리는 바로 우리 옆 수풀에서 났는데 우리를 따라오는 건지 계속 들렸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든 나는 옆을 바라보았습니다.

 

 "응. 아빠 저거 뭐지?"

 

 옆 수풀 너머엔 아빠와 똑같은 옷을 입은 남자가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옆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아빠는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아야. 아빠 이거 놔 봐."

 

 그런데 아빠가 이상했습니다.

 

 턱을 덜덜 떨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아빠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어떠한 말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며 길을 갈 뿐이었습니다.

 

 아빠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나는 손을 뿌리치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두리번 거리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나무와 풀이 줄어든 곳에서 나는 똑똑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아빠와 나였습니다.

 

 옷도 같고 생김새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를 닮은 아이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아이의 얼굴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아빠와 닮은 그 사람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때 아빠가 작은 목소리로 나만 들리게 얘기를 했습니다.

 

 "무성아. 앞만 보래이. 앞만 절대로 절마 저거랑 눈 마주피면 안 된대이."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빠퍼럼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어디 가노? 집에 가나?"

 

 옆에서 나와 같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렸습니다.

 

 아무리 발길이라도 이렇게 빨리 걸으면 40분도 안 되서 집에 도착하는데 그 날 따라 매우 길게 느껴졌습니다.

 

 겁이 난 나는 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빠. 자꾸 옆에서 말 건다."

 

 "절대 대답하지 말고 앞만 보고 가래이. 알긋제."

 

 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빠를 따라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기이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평소보다 깜깜한 것도 주변의 길이 낯설게 느껴진 것도 이상했지만 무엇보다도 어떠한 소리도 들리 않는다는 게 이상했습니다.

 

 물론 그 아저씨와 아이가 내는 소리말구요.

 

 보통 여름날이면 아무리 깜깜한 밤이라도 풀소리나 새소리가 나기 마련인데 그런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요?

 

 다리가 아파올 무렵 갑자기 주변이 밝아지더니 부엉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엉 부엉

 

 다리가 풀린 나와 아빠는 땀에 흠뻑 젖은 채 그만 주저 앉고 말았는데요.

 

 희뿌옇게 동쪽이 밝아오는 모습을 보며 아빠는 다리가 풀린 나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이고 참마로 얼매나 술을 묵었으면 이래 새벽이 다 되가 집에 들어오노?"

 

 엄마는 잔소리를 하며 문을 열어주다가 아빠와 나의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고 얼른 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저는 그 날부터 꼬박 3일을 앓아 누웠는데요.

 

 3일째 되던 날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벌떡 일어나 앉아 멀쩡하게 다녔다고 합니다.

 

 나중에 엄마한체 들은 얘기로는 새벽에 저와 아빠가 물에 빠진 사람처럼 완전히 땀에 다 젖은 채로 왔다고 했습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빠는 금방 정신을 차렸는데, 나는 방에 눕히자마자 누구를 봤다느니 나도 간다느니 헛소리를 하면서 열병이 났다고 합니다.

 

 아는 의사선생님이 왕진을 와도 모르겠다 하고 링거를 맞아도 정신을 못 차려서 엄마는 무당을 불렀는데요.

 

 무당의 말이 귀신한테 홀린 거리고 했답니다.

 

 그래서 비방대로 소금물을 먹이고 팥죽으로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린 다음 부적을 쓰니까 제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야산에 들어서면서부터 이상한 걸 느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뒤로 마실을 다닐 때면 시간은 두 배로 걸리더라도 꼭 야산을 돌아서 갔는데요.

 

 지금까지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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