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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남자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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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타
작성일 : 17-12-05     조회 : 367     추천 : 0     분량 : 5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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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

 

 이불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자고 있던 레미에르의 귀에 들어갔는지 그의 눈이 스르르 올라갔다.

 이미 서로의 코끝이 한번 스친 지근거리에서 그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터져 나올 것 같은 경탄성을 막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로막았다.

 

 “…….”

 

 피곤이 덜 가신듯 그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하며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손을 테네브리스의 이마에 올려보았다.

 

 “열은 다 내린 게 확실하군.”

 

 그의 손길에 테네브리스가 눈이 동그래지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뽀얀 어깨를 타고 슬립의 끈이 살짝 내려갔다.

 

 “너, 너……! 왜 옷을 입지 않고 있는 거야?”

 

 게다가 심지어 자신은 밤사이에 옷이 슬립으로 바뀌어있었다.

 

 “설마…… 읏.”

 

 테네브리스가 자신의 옷매무새를 확인하고는, 이불을 끌어당겨 흘러내리는 어깨끈에 드러나려 하는 가슴을 감추었다.

 

 “아.”

 

 공유하고 있던 이불을 뺏어오자 그의 아랫도리가 드러났고, 알몸이 아니라 여태껏 입고 있던 하의 그대로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어젯밤 어떻게 된 것인지 머리를 굴려 생각했다.

 

 ‘용사와 대련을 하고 나서…….’

 

 머리가 지끈거렸고.

 침실에 올라와서 올리메이든에게 목욕물을 부탁했었고.

 그러다 용사가 갑자기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그에게 화를 내다가.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궁전은 물론 성 안까지 고요한 것으로 보아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이 부하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헌데,

 

 ‘머리가 전혀 아프지 않아. 오한도 다 나았어.’

 

 하룻밤 사이에 나을 만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을 것이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상쾌한 기분이라니, 누군가가 마법으로 치유한 것이 아니라면 납득이 가지 않는 몸 상태였다.

 

 ‘올리메이든이 마법을 쓸 줄 알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테네브리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나오는 레미에르를 힐끔 바라보았다.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용사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전격 마법밖에 못 쓰는 게 아니었던 건가? 아니, 그보다는ㅡ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착각하지 마.”

 

 그가 시선을 회피해 곁눈으로 내려다보면서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병 따위에 의한 빈틈을 노려서가 아니라 정정당당히 널 내 앞에 무릎 꿇린 뒤 끝장을 내고 싶을 뿐이니까.”

 “……고마워.”

 

 그의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테네브리스의 감사에 레미에르의 입이 작게 벌어졌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다시 굳게 닫혔다.

 

 “용사, 역시 네가 맘에 든다.”

 “언젠가 널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맘에 들어. 아니, 오히려 그런 말 때문에 네가 좋은 걸?”

 

 급기야 그녀가 이제는 아예 뒤를 돌아서서 얘기하는 레미에르의 손을 잡아 끌어 몸을 제 방향으로 돌렸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말 남색에 미친 마왕인 건가? 난데없이 왜 고백을?

 

 “그러니까 내 부하가 되어라.”

 

 ……할 리가 없지.

 

 “고민해보겠다고 한지 고작 하루 밖에 안 지났어.”

 

 레미에르가 눈을 반개하며 테네브리스의 손을 적당히 떼어냈다.

 그러고 나서 식사 전까지 적당히 창가 난간에 앉아 탈출 계획이나 생각하려고 발을 떼었는데,

 스윽.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그 섬섬옥수를 레미에르의 잿빛머리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하는……!”

 “나, 난 집무 때문에 바빠서 가, 가, 가봐야 해!”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놀랐는지 테네브리스가 갑자기 상기된 목소리로 말을 살짝 더듬었다.

 레미에르는 집무실에 간다면서 슬립을 입은 채로 침실을 나가는 테네브리스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헉, 헉.”

 

 테네브리스가 침실의 문을 벌컥 열고 나와서는 그 문에 기대어 숨을 돌렸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손이 저도 모르게 올라가더니, 정신을 차리니까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콩닥콩닥.

 어째서인지 날뛰는 심장이 멈추질 않는다. 너무 급하게 뛰쳐나왔나?

 그렇지만 이 생소한 감정 상태는 대체……

 

 “폐, 폐하! 벌써 움직이시면 안 됩니…… 폐하?!”

 

 침실에서 슬립 차림으로 도망치듯이 나온 테네브리스를 발견하고는 올리메이든이 달려왔다.

 아직 몸이 성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테네브리스를 타이르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고 올리메이든은 깜짝 놀랐다.

 

 “어, 얼굴이 어찌 이렇게 빨개지셨습니까?! 설마 아직 열이 남아있는 건……!”

 “올리메이든!”

 “예, 예?”

 

 테네브리스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올리메이든을 팔을 끌고 궁전 1층의 응접실로 내려갔다.

 

 “나…… 왜 이러는 거지?”

 “예? 대체 어떤 것이……. 편찮으신 게 아닌 것입니까?”

 

 테네브리스가 절레절레 고개를 힘차게 흔들고는 대답한다.

 

 “나 심장이 엄청 두근두근거려……!”

 “어, 언제부터 그러신 겁니까?”

 “오늘……!”

 

 정확히는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서부터. 아니, 잠에서 깨어났을 때부터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아릿한 것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진다.

 

 “잠시 체온을 재어봐도 되겠습니까?”

 “으, 응……!”

 

 올리메이든이 테네브리스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으잉?”

 “왜? 열 있어?”

 

 테네브리스의 체온을 느껴보고는 올리메이든이 두 번째로 깜짝 놀랐다.

 정확히는 체온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이마에 얹은 손 위쪽을 보고 놀란 것이었다.

 

 “체온은 이상 없습니다만, 폐하, 뿔이……?”

 

 분명히 어젯밤 그녀가 스스로 부러트렸을 것인 뿔이 자라나 있었다.

 아니, 자라났다기보다는 원상복구라는 표현이 정확할 지도 모른다. 그 짧은 밤사이에 완벽히 대칭을 이룰 정도로 자라는 건 시간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뭐? 그게 사실이야?”

 

 그러면서 테네브리스가 자신의 뿔을 만져보았다.

 거친 듯 보이지만 막상 만져보면 매끈한 질감과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형용. 틀림없는 뿔이었다.

 

 “설마, 이것도 용사가……?”

 “…….”

 

 올리메이든은 마왕을 치료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침실에서 나가고 뿔까지 원상복구 시킨 그의 행동, 그리고 테네브리스의 현재 상태를 보면서 무언가를 직감했다.

 

 “……심려치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폐하.”

 “그래, 역시 그런 거지? 기분 탓인 거겠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올리메이든이 입꼬리를 씰룩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집무에 드실 준비를 하겠습니다.”

 

 잠옷 바람으로 나온 테네브리스가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지러 올리메이든이 위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 * *

 

 

 따분하다.

 매일 집무실에 나와 앉아서 하루 종일 부하들의 보고를 듣고 있자면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재미가 없다.

 

 “폐하, 어제 명령하신 사악마의 두 빈자리를 대신할 이들을 데리고 왔습니다만…….”

 

 바알라가 마왕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온종일 마왕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의자의 받침대에 팔을 올려 머리를 삐딱하게 괴고 있는데, 긴장을 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어제 아르가스에게 살기를 뿜었던 일도 있고 하니.

 

 “들라고 해.”

 “예.”

 

 마왕의 명에 바알라가 “들어와라!”라고 집무실 문 바깥으로 크게 소리쳤다.

 

 “폐하를 뵙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두 마족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름이 무어냐.”

 

 여전히 삐딱한 자세에서 꼬았던 다리만 반대로 바꾼 그녀가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무릎을 꿇은 부하들은 테네브리스가 앉아 있는 해골의 왕좌만큼이나 삭막한 그녀의 시선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바사드,”

 “카미긴이라 하옵니다!”

 “그래?”

 

 너희 둘…… 아니, 아르가스와 바알라까지 넷이 용사에게 덤벼도 이기는 데 어려움이 많겠지.

 정말이지, 용사에 비하면 오합지졸이 따로 없군.

 

 “알았으니까 나가봐.”

 “예, 예?”

 

 바사드와 카미긴이 숙였던 고개를 쳐들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거창한 임명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깨를 한번 씩이라도 두드려주는 게 관행이었는데, 별 볼일 없다는 듯이 나가라고 하다니.

 감히 마왕에게 서운할 수는 없다 치지만 전례 없던 일이라 황당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폐하의 명이시잖아. 당장 나가……!”

 “아, 예……!”

 

 바알라가 마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는 미리 나서서 불상사를 방지했다.

 

 “바알라.”

 “예, 폐하!”

 “최근 북쪽 언크노운 접경지역에 카르커스들이 다시 출몰하고 있다고?”

 

 마계와 인간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대륙, 드라크나의 외부에는 미지의 땅 언크노운이 존재하며, 그곳에 서식하는 괴수종 중 하나인 카르커스들은 이따금씩 마족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예, 그렇습니다.”

 “빠삭인지 깜돌인지 쟤네 둘, 보내.”

 “북쪽은 본래 아르가스의 담당구역입니다만…….”

 “아르가스는 남은 인간들 처리하라고 해. 아까 그 둘은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봐야겠어.”

 “말씀, 받들겠습니다.”

 

 하지만 테네브리스는 그렇게 명령하고도 한참을 더 같은 자세로 있으며 고민했다.

 

 ‘용사……. 뿔……. 흐음.’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바알라에게 다시 명령한다.

 

 “아르케아 처리는 조금 나중으로 미룬다. 아르가스는 실력이나 정진하라고 일러.”

 “정말 인간들을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차피 역대 가장 강했던 용사가 마왕에게 패한 지금, 인간들을 처리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긴 했지만.

 

 “지금 인간들은 큰 걸림돌이 아니잖아? 이제는 다른 걸 생각할 때라고.”

 “지당하십니다. 헌데, 출타하시는 겁니까? 날이 곧 질 텐데…….”

 

 성 밖으로 나설 때 종종 걸치는 로브를 챙기는 테네브리스를 보고 바알라가 물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여전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호위를 붙이겠습니다.”

 “아니, 칼릭스만 데리고 간다.”

 “칼릭스라 하시면 서고의 사서가 아닙니까?”

 

 전투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좋게 쳐줘야 중급 마족밖에 안 되어 사서나 하고 있는 녀석을 데리고 간다니, 호위용이라고 보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게다가 녀석은…….’

 

 바알라가 자신의 턱을 만지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성 인근으로 나갈 거야. 뭣하면 암행을 붙이든가.”

 “아, 아닙니다. 어찌 감히.”

 

 마왕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암행을 붙이는 건 드문 일은 아니지만, 마왕들에게는 그다지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기에 눈치를 봐야만 한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놓고 암행을 붙이라고 말을 하면 실행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당장 칼릭스에게 폐하를 모실 채비를 하라 이르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준비하고 나가마.”

 

 바알라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다급하게 사라졌다. 마왕보다 부하가 늦게 나오면 안 되기에.

 

 

 * * *

 

 

 폐허가 되어 황량한 바람이 부는 인간의 왕도.

 마치 악마의 승전보를 알리듯 해골이 기다란 작살에 몇 개씩 꽂혀있고, 그러한 작살이 군데군데 땅에 깃발처럼 박혀있다.

 을씨년스럽게 말라비틀어진 나무의 가지에 매달린 인골을 칼릭스가 힐끔 보았다.

 

 “이 아래입니다.”

 

 과연 사서라는 직책에 어울릴 만한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는 칼릭스가 인골 밑 땅바닥에 있는 낡은 문을 들어 올리고는 테네브리스에게 말했다.

 

 “고마워, 역시 칼릭스는 늘 친절하구나. 대충 위치만 알려주면 내가 알아서 먼저 갈 텐데 말이지.”

 “고결한 폐하를 위해서라면…….”

 

 칼릭스가 미소를 짓자 안 그래도 선한 눈매가 더욱 부드러워졌다.

 그 상태로 그는 계단의 아래로 조금 내려가 마왕에게 손을 뻗었다.

 

 “제가 감히 폐하의 옥체를 보필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허락하마.”

 “감사합니다.”

 

 손바닥을 내민 그의 손을 테네브리스가 가볍게 잡았고, 동시에 노을이 비추는 빛이 칼릭스의 낯빛을 붉게 물들였다.

 그는 한 걸음씩 천천히 어두운 계단 통로를 밟아 내려갔다.

 

 “어두우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하……. 그래, 알았다.”

 

 마침내 계단을 다 내려가자 거대한 장소가 드러났다. 그곳의 벽과 천장에는 계단과는 달리 등이 있어서 불을 켤 수 있었다.

 칼릭스가 품에서 완드(wand)를 꺼내어 화염마법을 사용해 등불을 밝힌다.

 화르륵.

 거대한 장소에 불이 켜지자 그 내부가 훤하게 드러났다.

 테네브리스가 그곳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곳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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