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소로운 자화자찬입니다만 저는 첫 스타트를 기가 막히게 끊는 작가이죠.
첫 스타트가 재밌다는 말은 종종(아니, 어쩌면 꽤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처음 나갔던 대로, 처음 의도했던 줄거리대로 막힘 없이 쭉쭉 뽑아져 나오기만 한다면야 습작 인생 포함해서 10년 가까이 이르는
시간 동안에 이렇게까지 헤매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저보다 오래 글을 쓰신 분들도 너무 많이 계셔서 번데기 앞에 주름을 잡는 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느끼기에 이쯤 되면 막히더
라도 어느 경지에는 도달 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번번이 자신을 의심하고 불안해지죠.
하지만 매번 불안한 것은 아닙니다.
초반부에서부터 중반부. 길게는 중후반부에 이르렀을 때까지는 나름대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잘 해 나갑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큰 벽은 마지막에 가서 저를 막아버립니다.
내 글을 향한 의심이 많아지는 거죠.
'이거 글의 흐름이 뭔가 이상한데?'
'캐릭터가 이래도 되는 거야?'
'이런 식의 결말이어도 될까..?'
'이렇게 복선을 많이 깔아놓고 떡밥 회수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걸 다 회수 못하면 지저분한 구멍인데.'
'사건을 늘어놓긴 했는데 해결은 어떻게 하지?'
'이렇게 쓰면 내용이 심심해지지 않을까?'
'이건 너무 가볍지 않나?'
'이런 식으로 공감을 못 얻는 스토리가 이대로 괜찮을까?'
'내 글은 대체 어느 장르에 집어넣어야 하나. 내 글은 인문학에 가까운가. 장르 문학에 가까운가.'
'내 글쓰기가 잘못된 방식은 아닐까.'
이 외에도 엄청 많은 질문이 머릿속에 쏟아집니다.
하지만 쓰다보니 정확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선배 작가님들께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고 조언도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입장도 제각각이고요.
결국엔 쓰는 사람이 터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요.
처음엔 이게 너무 힘들고 막막했습니다.
여전히 의심을 많이 하고요.
하지만 글은 써야만 합니다. 시작한 이상 끝을 맺어야 합니다.
끝을 맺고 잠시 잊어버리더라도 끝을 맺어놓은 다음에는 짐 하나가 벗겨진 것처럼 후련해집니다.
그래도 완결을 쳐 놓고 몇 달이든 몇 년이든 묵혀 놓으면 그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 있으니까요.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문장력이 기가막히게 좋은 작가와 문장력은 부족하지만 스토리를 잘 쓰는 작가중에 누가 더 글을 쓸 때 고생을 하고
슬럼프에서 오래 머무르겠느냐는 뭐, 그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답은 전자의 작가입니다.
문장력이 기가막히게 좋은 작가는 문장에 얽매이기도 하고 슬럼프에 깊이 빠져들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문장력이 좋으면 정말 퍼펙트겠죠. 거기다가 스토리텔링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바라는 게 없이 되겠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시간은 흘러가고 자신이 쓰려고 했던 톡톡 튀는 스토리는 사라지며, 매너리즘에 빠져버리거나
우울해지고 말 겁니다.
너무 바짝 땡겨진 줄은 끊어지기 일쑤죠.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도말고 너무 꼼꼼하지도 말자는 겁니다.
꼼꼼한 것도 좋지만 어떨 땐 이래도 되나 싶게 풀어지기도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 합니다.
힘들고 어렵다. 더 잘 써야 하는데. 더 꼼꼼하게 유려한 문장을 찾아야 하는데.
그거 처음부터 너무 밀고 가지 말고 처음엔 그냥 가볍게 갑시다.
그러다보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몇 년 후에든 그걸 해결할 힘과 문장력을 터특 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쓰다보면요.
당장이 아니라 몇년에서 몇십년을 바라보는 일이지 않습니까. 글이라는 게.
그러니까. 천천히 느긋한 마음을 좀 가져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게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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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실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제가 뒷심도 약하고 중간중간 구멍에 저 위에 언급했던 문장력 따지면서 땅굴을 파는 인간이거든요.
정파도 아닌 사파에 느릿느릿해서 선배님들 조언도 제대로 못 받아먹고 늦게 깨치는 글쟁이인데도요.
욕심은 그렇게 많아요.
그래서 쓰다가 슬럼프에도 자주 빠지고(응? 뭐 해 놨다고 슬럼프여?) 헤매기도 오지게 헤맵니다.
그렇게 글을 쓰는 게 나날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또 멈추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면 글을 쓰는 것이 재밌거든요. 어떻게든 내가 이놈의 벽을 다 뛰어넘고 진짜 기똥차게 재밌는 글을
내놓고야 말겠다. 그런 오기가 자꾸만 샘솟는 겁니다. 연중 했다가 글을 다시 보면 내 글이 너무 재밌다는 것도
글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고 이제 겨우 몇몇 선배님들한테 잘 해 나가고 있다는 말을 듣기 시작한 판인데
여기서 놓으면 되게 억울하잖아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솔직히 글 쓰는 것도 너무 재밌고 행복한데 힘든 순간이 있다고 놓아버리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할 거거든요.
글 놓아두면 그게 다 부채가 됩니다. 꿈에서 등장인물들이 쫓아와요. 왜 제대로 완결 안 내놓느냐고요.
ㅎㅎ
다들 앞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열심히 즐겁게, 또 고통스럽게 좋아하는 글을 즐기면 합니다.
서로 등 두드리면서요.
그러니 요점은........
제 등을 먼저 두드려 주세요.(아이고~ 흑나비야~~!)
저도 열심히 작가님들 등을 두드리며 글을 쓰라고 등을 밀어 드리겠습니다. +_+ 캬홐!!
뭣 같은 하수 글쟁이의 말입니다만 그냥 눈 딱, 감고 두가지만 생각 하세요.
너무 깊이 생각 말자.
마지막 장까지 열심히 쓰자.
깊이 생각하고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면 머리 굳고 뼈만 삭아버립니다.
무진장 아깝고 속상합니다.
어차피 쓰다보면 마모될 거, 이왕이면 튼튼할 때 자기 흔적을 왕창 남겨 놓는 것이 글쟁이 인생에서도 월등히 남는 장사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들 무한 건필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