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공작이 집착한다. 죽은 공작 부인과 닮았다는 이유로.
드보라 공작 부인은 죽었다.
그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은 그녀의 연약한 몸뚱어리를 분명 찢고 찢었다.
이 장면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공작을 비롯한 광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목격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드보라가 다시 나타났다.
아니? 그녀는 단지 드보라와 닮은 여자일 뿐이란다.
하긴, 이제 막 스무 살이 됐다는 여자는 나이로도 평민이라는 신분으로도 드보라와 절대 같을 수 없었다.
리제가 드보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작은 혼란에 빠진다.
모습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표정, 체취, 태도로도 리제는 드보라가 맞았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였다. 그가 그녀를 몰라볼 리 없다. 공작은 단 한 순간도 드보라를 잊은 적이 없다.
데클란은 미친 듯이 리제에게 집착하며 그녀의 행적을 뒤쫓기 시작한다.
리제는 혼란스러웠다. 하늘처럼 높은 신분의 남자와 엮이기 싫었다.
드보라와 닮았단 이유만으로 접근하는 데클란이 부담스럽다.
더군다나 리제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도 많다. 데클란에게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되는 비밀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 해도 남자는 악착같이 리제의 행적을 뒤쫓는다.
이제 리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오래전 죽었던 드보라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드보라가 죽었던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면 리제는 데클란에게 절대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