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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를 죽이고 싶습니다.
작가 : 지비냥
작품등록일 : 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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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작성일 : 20-09-28     조회 : 423     추천 : 1     분량 : 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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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마저 가려진 어두운 밤.

 붉은 꽃들이 만발한 황실 정원에 달빛을 닮은 여인이 서 있었다.

 어둠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허약한 몸 때문에 항상 피로감을 느끼던 그녀였다.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해져 하루 종일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내 몸은 왜 이렇게 약한 걸까….’

 

 그녀는 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냥 기사가 아닌, 몸이 건강한 기사가 되어 전쟁에 나가 많은 공을 세우고 싶었다.

 

 ‘그러면 아바마마가 나를 조금은 더 인정해주시지 않으셨을까?’

 

 기사가 되어 세운 공은 아니지만 베아트리체는 나름 공을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힘들게 준비한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차라리 전쟁에 나가 업적을 쌓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진 않았을 거다.’

 

 많은 사람이 옆에서 목격했을 테니까.

 그녀는 제가 세운 업적조차 지킬 수 없는 허약한 몸상태가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블라드 대공자...’

 

 업적이 재가 되던 그날 유일하게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대공자가 떠올랐다.

 

 ‘지나가다 몇 번 본 게 전부인데... 그는 어째서 내 편을 들어주었을까...?’

 

 자신의 편을 들었던 대공자의 뒷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했다.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겠어.’

 

 그녀는 고마움을 담아 대공자에게 선물을 보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건 그렇고, 내일이면 스무살이 되는 동시에 결혼식이네...’

 

 결혼, 결혼이라.

 

 ‘과연 이대로 결혼하는 게 맞는걸까...’

 

 상대에게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어 결혼을 미루고 싶었다.

 그래서 아바마마에게 말을 꺼냈지만 불호령만 떨어졌다.

 

 [결혼식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정녕 네가 미친 것이냐!]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황제 정무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사실 그녀가 생각해도 결혼 연기는 무리였다.

 그걸 알면서도 힘겹게 꺼낸 말이었는데,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으시다니.

 

 ‘휴우...’

 

 답답한 마음에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리.”

 

 자신을 베리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는 한 사람 뿐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자마자 베아트리체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몇 달 전부터 행동이 이상하던 약혼자였다.

 베아트리체는 그 존재를 차갑게 돌아보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지.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대답 대신 그녀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며 속상한 어투로 말했다.

 

 “베리, 참 아쉬워.”

 “뭐가?”

 “네가 황녀가 아닌 귀족영애로 태어났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게 무슨 소리지?”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너무 가깝게 다가온 그를 밀어내려고 한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프레드릭이 먼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내일이면 우리 결혼식이잖아.”

 

 프레드릭의 손길이 어깨를 넘어 겨드랑이 안쪽을 슬금슬금 더듬기 시작했다.

 무례한 손길에 기분이 나빠진 그녀가 프레드릭의 손을 떼어내려 할 때, 낯선 감촉을 동반한 기분 나쁜 소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푹!

 

 “……?!”

 

 베아트리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프레드릭을 쳐다보았다.

 

 “베리, 정말 아쉬워. 너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찾기 힘들 텐데 말이야….”

 

 불쌍한 것. 쯧하고 혀를 차던 그가 연이어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그냥 귀족영애였다면 너를 취하는 것도, 황가를 내 손에 넣는 것도 한결 쉬워졌을 텐데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보았다.

 그녀의 가슴엔 붉은 보석이 달린 단검이 꽂혀 있었다.

 심장박동에 맞춰 울컥 피가 새어 나왔다.

 

 “역시 황가의 핏줄이라 그런가? 잘 죽지도 않네."

 “……!”

 

 베아트리체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프레드릭이 몇 달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여 미심쩍은 생각은 들었지만, 자신을 죽일 정도로 돌변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매번 자신에게 사랑과 믿음을 속삭였던 그였으므로.

 

 [베리, 널 사랑해.]

 [베리, 당신을 위해 준비했어.]

 [이 세상에서 당신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없을 거야.]

 

 태어나자마자 그와 약혼했다.

 그리고 그와의 결혼식이 바로 내일이었다.

 그만큼 오래된 관계였고 신뢰할 수 있는 사이였다.

 아니, 멍청이처럼 그렇게 믿은 것뿐이었다.

 뒤늦게 어린 시절, 자신이 유난히 따랐던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 생각났다.

 

 [아무도 쉽게 믿으시면 안 됩니다. 황녀님.]

 [그 누구든 경계하고 의심하세요.]

 [설령 그게 가족이든 친구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그녀는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며 물었다.

 

 “왜 이러는 거지?”

 “몰라서 물어?”

 “……?”

 “잘 알잖아. 내가 왜 이러는지. 처음에는 몰랐어도 이 상황까지 왔으면 그 영민한 머리가 알려 줬을 텐데?”

 

 그랬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저 아닐 거라고, 그를 믿어보자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아…. 내가 생각보다 더 그를 아꼈던 거였구나….’

 

 원래도 약했던 몸이 최근에 들어 급격히 나빠졌다.

 누군가 독을 쓴 게 틀림없었다.

 프레드릭이 알 수 없는 약초를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 안가 몸이 더 나빠졌지만 그는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행동을 보자면 최소한 연관되어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 순간에도 베아트리체는 이 상황이 모두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없어도 한평생 추억을 같이 쌓을 수 있는 친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이젠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할 것 같다.

 황제의 외동딸.

 황실의 직계 혈통.

 그 단어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황권을 원하는 건가.”

 

 곧 죽을 것 같은 상태에서도 고고한 베아트리체의 태도에 프레드릭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괴물 같은 년!’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는데도 아직 살아있다니!

 프레드릭은 까닭 모를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질긴 생명력에는 내심 감탄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숨긴 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드디어 내가 솔라리스 제국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는 거지.”

 “후우… 비록 황가의 방계 출신이라고는 해도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건 너일텐데? 어차피 솔라리스의 이름을 물려받을텐데 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거지?”

 

 황실의 상징인 불사조, 피닉스.

 그 신비로운 힘의 선택을 받은 후계자가 나타났을 때 솔라리스 제국은 엄청난 성세를 누렸다.

 하지만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이는 극히 드물었다.

 몇 백 년에 한 명 꼴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황실은 물론이고 제국민 모두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후계자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다 베아트리체가 태어나던 날, 피닉스가 잠들어 있는 성에 찬란한 빛이 떠올랐다.

 예언에서 말하던, 후계자가 태어났다는 징조였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 날 황실의 핏줄에서 태어난 아기는 뜻밖에도 두 명이었다.

 베아트리체와 프레드릭.

 그 중 프레드릭이 조금 더 빨리 태어났다는 것과 황실의 피가 섞여 있다는 이유로 먼저 피닉스의 성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프레드릭이 후계자가 되었고 베아트리체는 성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피닉스의 선택을 받았다지만 그 증표인 반지는 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황가의 보물 중 가장 귀한 건,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후 그 증표로 얻게 되는 반지였다.

 그 반지를 끼고 있어야 피닉스의 힘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황비 말로는 당시 프레드릭이 너무 어렸기에 피닉스의 힘을 통제하지 못할까봐 증표의 반지를 얻는 건 결혼식 이후로 미뤄두었다고 했었다.

 

 “설마... 그 모든 게 거짓이었나? 피닉스의 선택을 받은 것도, 반지를 나중에 받기로 한 것도?”

 

 그녀의 물음에 그가 짓궂게 웃었다.

 

 “그걸 이제 깨달았단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절망했다.

 

 “네놈이 감히 황실을 능멸한 건가!”

 

 베아트리체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프레드릭은 키득거리는 목소리로 비웃듯 말을 이었다.

 

 “베리, 나도 피해자라고. 그래서 더 아까워. 비록 그대와 첫날 밤을 보내진 못했지만, 그대의 아름다운 몸만큼은 정말 탐이 났었는데 말이야. 이렇게 되기 전에 그대와 한 번은 자보고 싶었어.”

 

 그는 끝없이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었다.

 

 “개자식!”

 

 베아트리체는 이제 프레드릭에 대해 좋았던 감정이 모두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 사이, 가슴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려 드레스를 붉게 물들였다.

 서 있는 것도 힘들어졌지만, 머릿속은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았다.

 

 ‘모두 내 잘못이다.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걸…!’

 

 지난 일을 자책하며 그녀가 입술을 깨물 때 였다.

 

 “베리, 당신은 한 번도 아래에서 위를 쳐다본 적이 없었겠지. 나는 당신이 밑바닥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신을 볼 때마다 말이야.”

 진득한 악의가 깔린 말에 베아트리체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힘을 끌어모았다.

 “윽!”

 그러나 고통만 심해질 뿐 힘이 전혀 발현되지 않았다.

 “큭큭. 포기해. 아무리 애써도 힘을 쓸 순 없을거야.”

 

 득의양양하게 웃는 프레드릭의 모습에 베아트리체는 살기를 담아 그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 눈빛을 본 프레드릭이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내가 죽어가는 여자의 눈빛 한 번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순간적으로 위축된 제 모습에 당황한 프레드릭은 그녀의 심장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으며 말했다.

 

 “사실 뭐…. 당신에게 제대로 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약혼자로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으니 이쯤에서 편히 잠들게 해줄게. 영원히.”

 

 푹!

 

 “윽!”

 “어? 베리, 두 번이나 심장을 찔렸는데도 바로 안 죽네?”

 

 그는 단검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더욱 깊게 찔러 넣었다.

 

 푸욱-!

 

 “……!”

 

  더는 버틸 수 없어 베아트리체의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가늘게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힘을 모으려 애썼다.

 그러나 아주 미약한 힘만이 심장 근처에 모이는 게 전부였다.

 

 “아…. 당신이 한 번에 죽지 않는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죽이지 말걸….”

 

 프레드릭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당신을 악마로 몰아서 죽였다면 나는 영웅이 되어 확실한 후계자가 되었을 텐데. 시체를 따로 처리하는 수고도 덜고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필사적으로 심장에 힘을 모으려 애썼다.

 

 “베리, 쓸데없는 짓 하지 마. 당신 몸은 이미 독에 중독되어 있거든. 아무리 발버둥쳐도 힘을 쓰기는 어려울 거야.”

 “허억…!”

 

 그 말이 사실이었다.

 힘을 모으려하면 할수록 더욱 큰 고통이 느껴졌다.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프레드릭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러게 독으로 그냥 편하게 죽었다면 얼마나 좋아. 그러면 나도 이렇게 불편한 일은 안 해도 되고, 당신도 괜한 추문에 휩싸이지 않고 아름다운 황녀님으로 죽을 수 있었잖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베아트리체는 프레드릭을 보며 이를 갈았다.

 

 “…역시 독도 네가 한 짓인가?”

 

 베아트리체의 말에 프레드릭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그럼 누구냐?”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진실을 알려줘도 되겠지. 내 어머니가 한 일이야.”

 “…어머니?”

 “그래,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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