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로맨스
나의 심장을 주고 싶어
작가 : May0821
작품등록일 : 2019.10.10
  첫회보기
 
#4
작성일 : 19-10-13     조회 : 370     추천 : 0     분량 : 4071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4.

 벌써 한 시간째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대여섯벌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했다. 예진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본가에 가고 없었다. 데이트는 아니었지만 친구가 아닌 남자와 단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대학에 가면 저절로 남자친구가 생긴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단 한 번도 교제를 해본 적 없던 유채였다. 일찍이 철이든 그녀는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엄마의 학비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반드시 국립대에 진학해야한다는 목표로 학창시절 내내 학업에 매진했고 그 흔한 아이돌 조차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화장도 소풍때나 친구들이 해줘서 두어번 해본 것이 전부, 아직은 여자보다 소녀에 가까운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준비한지가 한 시간인데 여직 입을 옷을 고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도착했다는 강빈의 깨톡이 울렸다.

 

 

 바쁘게 펼쳐놓은 옷을 스캔하고 고른 옷은 핑크색 셔츠에 블랙 슬랙스였다. 나름대로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고픈 마음에 고른 것이 핑크색이고 어려보이지 않기 위해 고른 색상이 블랙이었다.

 

 

 유채의 원룸 앞에는 백마탄 왕자님이 아닌, 벤츠 S클래스 블랙을 탄 강빈이 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

 

 “고작 가보고 싶은 곳이 여기입니까?”

 

 

 유채가 정색하여 반박했다.

 

 

 “고작이라뇨? 3년을 여기만 꿈꾸고 엉덩이에 뿔나도록 앉아 공부했는 걸요.”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책. 그리고 학생들의 책을 읽고 공부하기에 최적화된 공간. 최근에는 서로 방해받지 않고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다가 별다방 커피에 버금가는 커피머신까지 구비된, 그야말로 꿈의 도서관이었다. 단 책을 빌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있으나, 다른 시설물 이용은 본교 학생에게만 허용되어있었다.

 

 지방에 사는 유채는 사진으로만 이 곳을 접했고 실제로 보니 그 분위기에 압도당해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강빈은 미소 짓게 되는 반면,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 잠깐 둘러봐도 돼요?”

 

 

 강빈은 그러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볼일이 있노라고 천천히 구경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

 

 

  인문대 뒤뜰. 쾌쾌한 담배연기가 자옥했다. 담배를 꼴아 물고 구부정하게 앉아있는 진상의 모습이 보였다. 유채를 안심시키기 위해 진상은 걱정 말라고 했지만 역시 지저분하게 그때 일을 빌미삼아 뭐라도 하나 얻어 내려할 거라는 예상은 한 치도 빗겨나가지 않았다.

  진상과 대조적으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강빈이 분명하고 강인한 어조로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인턴자리. 이번에 너희 회사 사무직 인턴 뽑더라고.”

 

 

 “그런데?”

 

 

 “그렇게 빡빡하게 굴지 좀 마. 동창 좋다는 게 뭐냐. 응? 취직도 아니고 고작 인턴이야. 1차는 이몸이 합격했고 면접만 통과하면 돼. 그 정도 한강그룹 외아들한테 껌이잖아?”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어떻게 이런 놈을 1차에 합격했을까.

 

 

 “그날 나랑 실랑이한 거, 이유야 어쨌든 밀친 건 분명하잖아?”

 

 “고작 밀친 걸로 뭘 어쩌자는 건지. 그리고 신입생한테 한 짓. 너도 당당할 수 없을 텐데?”

 

 

 “그렇지. 그 술집 찾아가니 완강히 거부하던데. cctv 자료는 더더욱 못 받을 거 같더라. 근데 맞은편에 세워져 있던 차. 그게 마침 우리 과 녀석 차더라고. 이미 블박자료는 받았고 증거야 내가 유리한 대로 이용할 수 있는 거니까.”

 

 

 어차피 진단서가 나온 것도 아니고 일주일이면 한국을 떠난다. 그냥 무시하면 되지만 남아있는 유채가 마음에 걸렸다.

 

 

 “걱정마. 나도 이번 학기 졸업이고 인턴만 되면 학교 올 일도 없잖아. 만약 인턴이 못된다면 내 얼굴 유채는 계~~속 봐야할 텐데 과연 불편한 건 누굴까?”

 

 

 아무래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낫다 싶었다. 진상이 계속 연락이 왔을 때 짐작한 바였다. 미리 준비한 서류를 꺼냈다. 유채에게 일절 접근하지 않는다는 ‘각서’라고 적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진상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거침없이 사인을 휘둘러 썼다. 한쪽 입꼬리가 야비하게 올라가며 뱀같은 웃음이 흘러 나왔다. 진상의 사인이 담긴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넣었다.

 

 

 ***

 

 

 도서관의 책을 둘러보며 유채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멋졌고 마치 푸르른 숲 안에 들어와 우뚝 솟은 나무들을 둘러보는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을 하나 골라 꺼내 자리에 앉았다. 유채는 새 책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간 손때 묻은 책에서 나는 냄새가 좋았다.

 

 

 폭설이 지나가고 추운 날씨를 녹여주는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비췄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좋았다. 긴 머리를 쓸어 올려 돌돌 말아 올린 후 연필을 비녀 삼아 꽂았다.

 

 

 “본격적으로 읽어볼까.”

 

 

 강빈이 자리를 뜬 지 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책에 빠져 있었다.

 

 강빈이 커다란 손가락으로 책 위를 톡톡 쳤다.

 

 

 “언제까지 읽으실 건가요?”

 

 

 턱을 괴고 앉은 강빈이 말했다. 벌써 유채의 맞은편에 앉은 지 오 분 정도 흘렀다. 노골적으로 쳐다봤건만 얼마나 집중했는지 강빈이 온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강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자고 손짓하고 유채는 책을 도로 제자리에 꽂아놓고 뒤따라 나갔다.

 

 

 ***

 

 

 “저 해보고 싶은 거 있었어요!!”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며 유채가 말했다.

 

 

 “원래 유채씨가 저랑 놀아주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영 상황이 반대 같은데.”

 

 

 “저어기 앉아서 딸기우유 한잔 먹어 보는 거 로망이었어요.”

 

 

 “맥주 아니고?”

 

 

 러브힐. 인기 있는 멜로 영화의 촬영지가 된 이후로 러브힐이라 이름 붙여지며 유명해진 곳이다. 원래는 채플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언덕일 뿐이었다.

 

 

 “술은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해요. 아예 먹으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

 

 

 완치됐다고는 하지만 심장병 때문에 해로운 것은 되도록 안 먹으려 애썼다. 오티자리에서도 예진이가 몰래, 혹은 대놓고 대신 마셔주는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 대학에 가면 술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고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는 주의였다.

 

 “맥주보단 딸기우유가 더 어울리긴 하지. 기다려요. 하나 사올 테니.”

 

 

  “같이 가요.”

 

 

 “지금 사람 하나도 없는데?”

 

 

 “근데요?”

 

 

 “로망이었다며? 그럼 저곳이 왜 유명한지도 알 텐데.”

 

 

 오로지 남녀 단 둘이 함께 오르면 사랑에 빠진다는 그 곳. 단 다른 사람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남녀 단 둘이 오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날씨 탓인지 방학을 한 탓인지 두 사람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미신 믿는 사람이었어요?”

 

 

 장난기 있는 말투였다. 자기도 모르게 강빈이 편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빈 역시 자연스럽게 유채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

 

 

 채플관에서 찬송 소리가 흘러나온다. ‘기도하소서.’ 가냘픈 목소리가 찬바람을 따라 더 간절하게 전해져 온다.

 두 사람은 나란히 언덕에 앉아 딸기우유를 마셨다.

 

 

 “근데 선배님도 딸기우유 좋아하셨어요? 여긴 원래 맥주라면서요.”

 

 

 “운전해야지.”

 

 “하긴, 맥주는 선배님하고도 안 어울려요. 왠지 선배님은 맥주보단 우아~하게 와인 마실 거 같단 말이죠.”

 

 

 “난 소주파야.”

 

 

 진지한 강빈의 얼굴.

 

 

 “푸하하하”

 

 

 “왜 웃어?”

 

 

 “그냥요. 항상 표정이 너무 진지하셔서, 아니 너무 진지하게 얘기하니까….”

 

 

 유채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웃으면서도 추운지 양팔로 자기 몸을 감싸고 오돌오돌 떠는 게 느껴졌다. 강빈은 자기 옷을 벗어 유채에게 덮어주었다. 유채가 돌려주려했지만 강빈은 거절한다. 강빈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늘 자상했다. 언덕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거의 유채 혼자 얘기했지만 강빈도 묵묵히 잘 들어 주었다.

 

 

 “여기 유채꽃 피면 정말 예쁘다더라구요. 정말 사진처럼 그렇게 예뻐요?”

 

 

 “글쎄, 봄에 직접 보면 되겠네.”

 

 

 “그때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 한국 떠나신 댔죠.”

 

 

 두 사람 사이에 처음으로 침묵이 생겼다. 곧 떠날 사람. 곧 떠나야할 사람. 순간이지만 두 사람 모두 잊고 있던 사실이다.

 

 

 “그만 내려가지.”

 

 

 “그럴까요? 선배님 괜히 저땜에 감기 드시겠어요.”

 

 

 유채는 걸치고 있던 강빈의 코트를 건네며 말했다.

 

 

 “춥네. 딱 얼어 죽기 좋을 날씨야. 근데 나보단 네가 더 추워보인다.”

 

 

 강빈은 다시 유채의 어깨 위로 코트를 걸쳐주었다. 두꺼운 옷을 입었음에도 강빈의 묵직하고 큰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유채는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단둘이 오르면 사랑에 빠지는 곳. 유채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그 말이 빙빙 맴돌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또다시 유채 앞에 놓여있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30 #30 12/8 377 0
29 #29 12/4 376 0
28 #28 11/18 369 0
27 #27 11/7 350 0
26 #26 11/6 373 0
25 #25 11/4 357 0
24 #24 11/4 341 0
23 #23 11/2 382 0
22 #22 11/1 395 0
21 #21 10/30 351 0
20 #20 10/29 351 0
19 #19 10/28 356 0
18 #18 10/27 349 0
17 #17 10/27 364 0
16 #16 10/27 347 0
15 #15 10/27 377 0
14 #14 10/26 372 0
13 #13 10/25 332 0
12 #12 10/24 355 0
11 #11 10/24 354 0
10 #10 10/23 361 0
9 #9 10/22 367 0
8 #8 10/20 340 0
7 #7 10/20 349 0
6 #6 10/19 372 0
5 #5 10/19 369 0
4 #4 10/13 371 0
3 #3 10/12 349 0
2 #2 10/11 363 0
1 #1 (1) 10/11 63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