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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중한, 소꿉친구
작가 : 도톨
작품등록일 : 20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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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의미없는 겉치레
작성일 : 20-05-07     조회 : 350     추천 : 0     분량 : 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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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 의미없는 겉치레.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녀석의 큰 손이, 뭘 숨기고 싶은건지는 몰라도.. 잔뜩 움츠린 채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큰 손과 대비되는 작은 동물같은 움츠림에, 나도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짓궃음까지 찾아와, 놀려주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녀석에게 한 걸음 다가가려다.. 바닥에서 녀석을 지탱해주는 발의 모습을 다시금 마주하고.. 장난끼를 스르륵 아래로 내려놓았다.

 

 

  상황이 다른 분위기로 조금 밝아지긴 했지만.. 검은 옷을 입은 녀석의 발이 원 상태로 돌아올 순 없었다.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봐도 저 발은 나로 인해 저 상태가 되었다. 스스로 저렇게 되어 달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녀석이 도움이란 이름 대신 희생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내 욕심일까.

 

  녀석이 베풀어준 예쁜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나만 편하고 상대가 당연히 희생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움을 당연시 여기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마음은 이리 복잡했는데 밖으로 나오는 말은 퉁명스러운 단순함 뿐이었다.

 

  “너만 멋있는 척 하는거 도저히 못 참겠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녀석은 분명히 모진 말을 이용해 그게 아니라며 내 고마움을 원천봉쇄 하겠지. 고마움 섞인 광경을 민망하지 않게.. 자연ㄷ스럽게 넘어가주는 녀석의 배려도 고맙지만, 이번에는 멍때리지 않고 내가 먼저 녀석에게 보여주리라. 시비어조로 얘기하면 반사적으로 발끈해버리는 내 특성을 녀석이 이용한다면, 내가 그 보다 먼저 행동해 버리면 된다.

 

  드디어 찾아온 시간의 공백. 이 타이밍만 잘 활용하면 나의 승리다. 은근히 눈치가 빠른 녀석이기에, 삐걱임을 보이면 내가 보일 행동을 ㅏ바로 들킬지 모른다. 그래서 중간 과정을 전부 생략하고 스피드 자체로 승부하기로 했다. 눈치보는 과정을 없애버린다면 추리할 시간을 가질 수도 없겠지.

 

  녀석의 예상행동을 전부 파악한 뒤, 스스로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녀석의 손바닥 그늘에 숨어, 쪼그려 앉은 뒤 빠르게 가방 속 후드티를 꺼냈다. 직원분께서 예쁘게 개워주신 후드티가 펄럭 소리를 내며 바람에 나부낀다. 다음으로 할 일은, 내 마음 속에서 수건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후드티를 이용해 녀석의 발을 닦아주는 것.

 

  후드티의 펄럭 소리에 놀란 녀석이 내 쪽을 바라보려 움직이고 있었지만.. 어림도 없지. 난 이미 네 발을 잡아챈 지 오래라고.. 후후. 갑작스런 면의 감촉에 다시금 놀란 녀석이, 작업중인 모든 기관들을 급하게 내려놓고 속도를 높이고 있는 내 작업장으로 고개를 급 하강했다.

 

  “..?!! 야, 너 뭐하는거!!”

 

  훗, 내가 너만 멋있는 걸 내버려 둘줄 알았니?

  거만한 미소를 이용해 녀석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브이자’를 그려주었다.

 

  ‘스테이지의 주인공은 너 뿐만 아니라 나도 될 수 있다 이거야.’

 

  뻔뻔함 충만한 내 태도가 어이 없었는지, 녀석이 ‘하.’라는 숨을 뱉으며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무게를 늘려주었다. 그에 도움을 받아, 후드티의 밝은 색이 녀석의 검은 자국들을 감싸 안아갔다. 짙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후드티의 모습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골격이 느껴지는 녀석의 발이 중간중간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 모습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다 됐다! 좋네! 이삐네!”

 

  검은 자국들이 군데 군데 묻은 후드티를 팔에 걸치고 일어선 후, 천천히 개워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허스키 네가 1단계를 시작한다면, 나는 1-2로 돌입하고 말거라고.

  날 생각해준다면, 나도 널 생각해 주고 말겠어.

 

  “하! 이제 쌤쌤이다!”

  “고맙다고 얘기 하기 싫어서 행동으로 갚은거다!”

 

  벙쪄있는 녀석의 손에 걸려있는 구두를 뺏어 빠르게 가방에 넣은 뒤, 집에서 나올때 후드티와 함께 신었던 운동화를 바스락 꺼냈다. 예상치 못한 운동화에 다시금 놀랐는지, 녀석이 어디서 나왔냐고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허스키씨, 잘못 짚으셨어~”

  “나도 인벤토리에 바꿔 낄 아이템 있다 이거야.”

 

  녀석의 표정에 대한 대답으로 손에 있는 운동화를 보란듯이 흔들며 씨익 웃었다. 녀석의 표정에 어쩔 수 없다는 미소가 보일 즈음,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음.. 물론.. 엄습해오는 세희의 100배 문자 생각에 좀 두렵긴 했지만.. 구두에 묻힌 내 모습보다.. 운동화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녀석 앞에서.. 구두는 딱히 의미없는 물건이었다. 뒷 꿈치를 올려주던 공기는 낮아졌지만, 내 숨결엔 그보다 시원한 마음들이 감돌고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란걸 잘 알고 있지만, 나에겐 정말 큰 선물로 느껴졌다.

 

  “자!”

 

  녀석이 신겨주었던 운동화를 다시 건네주고, 지니고 있었던 내 운동화로 바꿔 신었다. 앞에 내려 두었는데,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녀석이 해줬던 것처럼 쪼그려 앉아 녀석의 발에 신발을 신겨 주었다. 발바닥에 닿아오는 쿠션감을 알아차렸는지, 녀석이 쪼그려 앉아 웃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하.. 너 진짜..”

 

  기쁘게 접히려던 눈꼬리와 활짝 펼쳐지던 미소가, 잠깐의 멈칫함을 드러내며 고개를 숙인 뒤 표정을 바꾸었다. 해맑게 웃어버린 자신이 부끄러운건지, 아니면 다른이유가 있는건지.. 난 잘 모르지만.. 일단 녀석의 웃는 모습을 봤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그때 즈음, 고개 돌린 녀석에게서 소환 주문이 흘러나왔다.

 

  “..됐으니까 집에 가, 빨리.”

 

  “….”

 

  ..잠시 진지하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빠른 시간에 집에 가면, 잉여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허나, CAR BEE가 너무나도 아깝다! 내가 겨우 이 정도 시간을 쓰기 위해 왕복 반 올림 3000원을 썼단 말인가.. 억울하기 짝이 없는 가벼운 소비에, 반항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되겠어.’

 

  생각의 불편함을 넘기지 않은 채 목소리의 마이크를 바로 잡고 큰 소리로 말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단호함을 무너트리기 위해선 이정도는 해야 겠지.

 

  “자~~↗여러부운!↘”

  “지금 이 학생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큰↗ 가치를 지닌↘”

  “3000원↗ 가까운 돈을↘ 무방비하게↗ 낭.비.하.고 있습니다↘”

 

  허공의 책상을 손으로 쳐가며 웅변을 이어갔다.

 

  “지금 저는→ 왕복 삼천원을↗ 그냥 주는분이 누.가. 있느냐고↘”

 

  두 팔을 어깨로 모은 후, 백조의 날개를 형상화하며 앞으로 촤악 펼쳤다.

 

  “오온~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우렁찬 박수소리가 소리없이 내 귀에 닿아 온다. 감사하다는 의미의 고개 숙임을 두 어번 반복했고, 반짝임을 담아 녀석에게 어떻게 들었냐고 시선을 보냈는데.. 내 예상과 달리, 녀석은 나에게 이런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럼 혼자 놀던가.”

 

  “..윽.”

 

  무감각한 반응에, 나의 웅변 열정이 짜게 식었다.

  그래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쁜 뜻으로 말한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퉁명스러움으로 넘길 수 있다.

 

  “알았다, 알았어.”

  “뾰루퉁한거 언제까지 갈 지 모르겠지만..”

  “한 턱 내는 나의 대인배 앞에서는 그렇지 못 하겠...”

 

  “아니, 글쎄…!!”

 

  콧 김을 내뿜으며 말을 이어가고 있는 내 모습 중간에,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급한 발걸음까지 드러내고 있었기에.. 어느새 목소리는 우리들의 주의력을 단숨에 가져가 버렸다.

 

  “이 주변인 것 같은데..?!”

 

  급하다는 목소리의 숨소리가 파마머리 아주머니에게서 흘러나온다.

  그 옆엔 진지한 표정의 경찰아저씨가 서 계신다. 미묘한 조합에, 우리 둘 다 뭔가 싶어 그 쪽을 바라보았는데..

 

  “저..저 학생이야!!”

 

  “..누굴 말씀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아주머니께서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우리를 가리켰다.

  영문 모를 지칭에, 갑작스러움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운 시선에 의문을 품고 있을 무렵, 아주머니에게서 궁금증에 대한 답이 들려왔다.

 

  “아까 저 여학생이 저 남학생한테 소매치기라고 했다니까!!”

 

  “저 학생들이요?”

 

  ..진지함을 한껏 머금은 경찰 아저씨의 표정이 우리 둘을 향해 시선을 움직이려 한다.

 

  “..?!”

 

  “..?!!”

 

  모든 여파는 좀 전의 상황으로 인해 나온 것.

  식은땀 한 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에, 다음 내용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현실은 예상을 빗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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