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은거기인
작가 : 건아성
작품등록일 :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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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화
작성일 : 16-11-16     조회 : 414     추천 : 0     분량 : 4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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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돌아가는 상황에 쾌재를 부르던 사내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발을 구르고 있는 동안 쓸데없는 것들이 따라붙었다.

 『이제, 맘 편히 내려갈 수 있겠는가?』

 움찔!

 반가운 얼굴에 화색을 띠던 모용혜미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비슷한 기운을 품은 동료들이 오는 것 같아 운무진을 풀고 시간을 벌었네. 내 세상사가 싫어 산에 은거했으니, 번잡하긴 해도 일을 피하는 데에 마음을 쓸 수밖에 없네. 상황은 내 살펴줄 터이니 그들과 함께 돌아가게.』

 “아!”

 모용혜미는 입술 한 번 뻥끗하지 않고 전음을 전하는 소요자의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가 전하는 말보다 그가 말을 전하는 수법이 더욱 놀라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꾸 몰리는구먼. 허허……, 어쩌겠는가? 그대들도 이곳에 들어오려는 참인가?”

 “그게 무슨…….”

 “청룡단주님, 잠시만요.”

 모용혜미는 소요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림맹 정예들에게 빠르게 전음을 전했다.

 지금의 대치상황을 모용혜미에게 전해 들은 그들은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걸음을 물렸다.

 기묘한 상황.

 소요자는 서로 거리를 두며 물러서는 두 무리를 바라보며 휘익, 손을 저었다.

 쩌엉!

 그러자 사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커다란 울림과 함께 운무진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한 안개구름.

 백발의 노신선이 산다는 선인곡이 다시 안개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 *

 

 터엉!

 장창이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얼마나 휘두르고 뻗었을까?

 창천은 기억도 나지 않을 것들을 헤아리며 자리에 누웠다.

 숨이 턱까지 찼다.

 심장이 미친 듯 요동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창천은 그렇게 말하는 듯한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떨어트린 창을 집어 들고 다시금 일어설 것만 같았다.

 길게 숨을 고르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연일 창을 휘두르느라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근육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부어올랐고 눈알은 바싹 메말라 뜨기조차 힘들었다.

 ‘정교한 초식도, 창을 잡는 법도 모르는 애송이의 꼬락서니…….’

 창천은 그동안 숱하게 창을 휘둘렀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오늘은 어쩐지 단잠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 *

 

 “……놓쳤다?”

 타앙!

 책상이 머리 위로 날아가자, 자리에 도열한 사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화가 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고작 모용세가의 딸년 하나를 못 잡아오다니 말이 되느냔 말이다! 도귀 염왕의 사신대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 염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신대가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면 단번에 목을 쳤을 일이다.

 모용세가의 하나뿐인 딸년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 잡았더라면 후일 중요할 때 비장의 한 수가 되었을 것이다.

 “변명은?”

 “예?”

 “변명은 준비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 그것이…….”

 서슬 퍼런 염왕의 눈빛에 사신대의 대주인 귀천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눈빛만으로도 몸이 얼어 버릴 것 같은 극강의 무공.

 귀천도는 칼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염왕의 시선을 받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계집과 함께 있는 애송이들을 베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계책은 완벽했고, 저희는 실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상처 하나 없이 잡아오라는 명에……. 그년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뒤쫓으려던 것이 화를 불렀습니다.”

 “화를 불렀다?”

 염왕은 눈을 무섭게 치뜨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삼키는 귀천도가 두려움에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두 놈도 아니고 사신대 전체가 나선 일이다! 그 무엇이 화가 될 수 있단 말이냐! 그깟 청룡대가 화란 말인가?”

 쿠웅!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와 함께 고개 숙인 귀천도의 몸이 퉁겨져 뒤로 날아갔다.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발길질이었다.

 “커, 커억!”

 바닥을 구르던 귀천도가 한 모금의 붉은 피를 토해내며 몸을 낮췄다.

 염왕은 자존심만큼이나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이다.

 명을 수행하지 못한 처벌로 귀천도의 목이 날아갈 지도 모른다.

 “서, 선인곡의 기인을 만났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귀천도는 서둘러 고했다.

 “선인곡의 기인?”

 “예, 청룡대가 강하다고는 하나 우리 역시 강호 제일이라는 사신대! 그들만이었다면 결코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사신대를 이끄는 대주로서 선인곡의 기인과 계곡 전체에 쳐져 있는 운무진을 보고 수하들에게 섣불리 도를 뽑으라고 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의 싸움보다는 차후를 대비하는 것이 사신대가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귀천도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말을 쏟아냈다.

 대주로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라면 이대로 목이 날아가도 좋다.

 무인의 높은 자존심.

 그것은 비단 염왕만을 의식하고 하는 말은 아니다.

 “……네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선인곡의 기인이 상황을 뒤집을 만큼 강했다는 것인가?”

 귀천도는 참마도를 집어 드는 염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거짓이라면 당장 목을 치겠다. 사신대 대주 귀천도! 너는 지금 네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예! 무능력한 대주는 사신대의 명성을 갉아먹는 해충이 될 터, 소인의 말이 틀렸다면 당장에 이 목을 내어놓겠습니다.”

 터엉!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목을 길게 내미는 귀천도를 보며, 염왕은 조용히 손에 거머쥔 참마도를 내렸다.

 염왕이 아는 귀천도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을 고할 만큼 혼이 없는 무인이 아니다.

 “선인곡의 기인이라…….”

 애병 참마도를 쓸어 만지는 염왕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 * *

 

 “그런 기인이 있었더냐?”

 해가 진 늦은 저녁.

 모용혜미는 마주앉은 모용진림을 보며 말했다.

 “예, 운무진을 한 손으로 거두고 뿌릴 만큼 대단했어요. 아마도 진을 친 무언가를 내기로 조절한 것이겠지요.”

 “허! 그것 참. 어찌 그런 것이 가능했을꼬…….”

 모용진림은 모용혜미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관진식이란 무공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생문과 사문을 열어야 하며, 음양과 오행의 섭리를 깨달아야 비로소 자연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아버지.”

 “음? 그뿐만이 아니다?”

 모용혜미는 생각에 잠긴 모용진림이 눈을 들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혜미에게는 무림맹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비밀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소림의 진전을 이은 기인일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냐? 소림의 진전을 이은 기인이라니?”

 모용진림은 뜬금없는 모용혜미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정파 무림의 하늘이라는 소림사에 많은 기인이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가 알기로 최근까지 소림에서 파문되거나 홀로 나와 은거한 이는 없다.

 일찍이 소림사는 불가에 뜻을 세우고 속세와 떨어져 수도를 닦는 이들.

 산사를 벗어나 또다시 어딘가에 은거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해 보는 말이 아니에요. 그는 혜광심어를 사용했어요.”

 “혜광심어!”

 소리 낮추어 전하는 모용혜미의 말에 모용진림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혜광심어가 무엇인가?

 이미 무림에서 실전되었다 전해지는 전설의 무공이 아닌가.

 “아버지! 목소리가 높아요.”

 “아, 아…… 그렇구나. 그런데 정말이냐? 참으로 그가 혜광심어를 사용했느냐?”

 모용혜미는 놀라워하는 모용진림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인곡에 들어선 많은 사람들 틈에서 받은 전음.

 그것은 틀림없는 혜광심어였다.

 “그는 많은 고수들이 모인 그곳에서 입술조차 달싹하지 않고 제게 전음을 전해 왔어요. 물론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 모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고요. 무림맹의 청룡단주도, 마천루의 사신대주도요.”

 “허! 전음입밀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니냐? 정말, 정말 혜광심어였느냐?”

 모용혜미는 재차 묻는 모용진림을 확고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고 정신이 없는 자리였지만, 그것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혼이 나간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아직 무림맹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았어요. 그만한 이가 이름도 없이 은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사연이 있는 일. 아버지, 우리는 그를 꼭 다시 한 번 만나봐야만 해요. 혹 그가 우리의 손을 들어준다면…….”

 모용혜미는 안개 속으로 사라진 소요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씩 웃었다.

 그가 소림의 진전을 이었던, 잇지 않았던 상관없다.

 소림은 이미 오래 전 혜광심어를 잃었다.

 선인곡의 기인이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혜광심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림은 그를 무림의 높은 배분으로 추켜 세울 터, 배경은 만들려 하지 않아도 자연히 만들어질 것이다.

 ‘꼭…… 꼭, 끌어들여야 해! 아버지를 위해서도, 가문을 위해서도, 또 나를 위해서도.’

 해가 진 어두운 하늘 그림자 속에서 그녀의 야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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