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붉은 꽃이 피는 마을
작가 : Ki다린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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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2     조회 : 302     추천 : 0     분량 : 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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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수원은 시야에 가득 차 있는 웅장한 저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저택이라는 단어가 가진 서양적인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사극에서 보던 양반집 같은 곳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담장 안, 그 안에 기와집이 몇 채 있고 곳간이나 창고로 보이는 구조물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었다. 일반적인 기와집과는 느낌이 조금 다른, 마치 수학여행 때 본 절의 모습과 더 비슷한 건물.

 

  “아, 저기는 생활하는 곳이 아니란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이쪽.”

 

  외당숙이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 덕분에 건물의 위용감에 압도되어 멍하니 있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법 크지, 하고 뿌듯하게 말한 외당숙은 앞장서서 담장 안 왼쪽에 위치한 기와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이 기와집도 만만치 않게 컸다. 단지, 거대한 건물의 바로 옆에 있었기 상대적으로 비루하게 보일 뿐이었다.

 

  “다녀왔어. 나와서 희원이와 수원이에게 인사들 해!”

 

  익숙한 손놀림으로 기와집을 열며 외당숙이 소리치자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굴을 드러낸 것은 중년 여성과 우리 또래의 여자아이였다. 분명 외당숙모와 외당숙 부부의 딸일 것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집 밖까지 나온 외당숙모는 나와 수원의 손을 한쪽씩 잡고 반갑다는 듯 말했다.

 

  “어머, 너희가 희원이랑 수원이구나. 호호, 서울에서 와서 그런지 얼굴도 희고 잘들 생겼네. 나는 그냥 편하게 숙모라고 부르면 된단다.”

  “이쪽이 내 아내. 그리고 저쪽에 서 있는 아이가 아까 말했던 내 딸 보람이란다.”

  “아,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오렴. 아, 점심은 먹었니?”

  “아직이요.”

  “어머, 배고프겠구나! 빨리 밥 차리도록 할게.”

 

  외당숙모는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열렬한 환영에 얼떨떨해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외당숙 가족 모두가 우리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부터 문에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던 외당숙 부부의 딸인 여자아이가 우리를 차가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람이,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

 

  외당숙이 시켜서 하는 것뿐이라는 느낌이 가득했다. 그녀는 우리의 인사를 마저 듣기도 전에 몸을 돌려 사라져갔고 그 모습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외당숙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 아하하… 원래 붙임성이 좋은 아이가 아니라서… 그래도 나쁜 아이는 아니니 친하게 지내다오.”

  “…네.”

 

  외당숙은 자신의 딸의 태도로 인해 우리에게 미안해했지만, 사실 그녀의 태도에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외당숙 부부, 심지어 마을 사람들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다. 거기서 께름칙함과 불안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대놓고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니 우리의 올바른 위치가 단지 폐가 되는 군식구라는 점을 다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녀의 태도가 평범한 대응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당숙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요리해두었던 음식을 데우는 것인지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음식 냄새를 맡자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잊고 있던 공복이 찾아왔다.

 

  겉에서 보이는 크기만큼이나 집 안 역시 컸다. 코너를 몇 번쯤 돌았을까, 외당숙이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희원이 방, 그리고 이 옆의 방이 수원이 방이란다. 배고플 테니 짐은 간단하게만 풀고 밥 먹으러 오렴. 아, 찾아올 수 있겠니?”

  “아마도요.”

 

  수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외당숙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나와 수원은 한번 시선을 교환한 다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꽤 컸다. 반지하의 조그마한 방과는 차원이 달랐다. 커다란 창문도 달려있어 햇빛이 방안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집에 살아서 허여멀건 얼굴도 이 마을에 있는 동안 까맣게 탈지도 모른다. 까맣게 탄 수원의 얼굴을 상상하니 조금 웃겨서 나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상상속의 웃긴 수원의 얼굴이 곧 내 얼굴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짐을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푹신한 침대 매트가 눌리는 느낌이 생소해, 나는 몇 번이고 엉덩이를 떼었다가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한참 그 행위에 열중하고 있을 때 열린 문밖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냐?”

  “아, 아하하… 침대는 처음이라…”

 

  한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수원의 표정에 벌떡 일어났다. 방 안으로 성큼 들어온 수원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내 방이랑 똑같네.”

  “똑같겠지. 다를 게 있나?”

  “형, 여기 에어컨도 있다.”

  “어, 진짜네. 대박.”

  “외당숙네, 엄청 잘 사는 것 같지 않아? 시골인데 집도 크고 가구들도 제대로 갖춰져 있고… 그냥 잘 살아서 우리 거둬준다고 한 거 아니야? 우리 그냥 여기서 계속 살…”

  “안 돼!”

 

  새로운 환경을 맞이해 고양되어 있던 기분이 수원의 말을 듣자마자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수원의 말대로 외당숙네가 주체할 수 없는 돈을 가지고 있어서, 부자들이 사회에 기부를 하는 것처럼 불쌍한 우리들을 거둬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 마을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니 외당숙을 만나게 된 날부터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경고음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깜짝 놀랐는지, 수원이 잠시 멍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내 이마를 손으로 짚고는 중얼거렸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더위라도 먹었어? 오늘 왜 그래?”

  “아, 아니… 그게…”

  “아까부터 이상한데. 외당숙한테 물어봤던 붉은 꽃 이야기는 뭔데? 형,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못마땅하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린 수원은 추궁조로 물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뒤로 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배,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다들 기다리시겠다.”

  “말 돌리지 마시고요.”

 

  말을 돌리려는 나의 노력을 한 문장으로 잘라내 버린 수원은 한 발짝 가까워졌고, 나는 또다시 한 발짝 물러났다. 확실한 증거도 뭣도 없이 나의 지레짐작만으로 이루어진 불안감을 수원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다. 나는 수원의 집요한 시선을 피해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문가에 서서 수원에게 손짓했다.

 

  “얼른 가자. 너도 배고프지?”

  “……”

 

  수원은 한숨을 쉬더니 나를 따라 방 밖으로 나왔다. 나는 앞장서서 부엌으로 향했고, 그런 내 옆에서 보폭을 맞추던 수원은 혼잣말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예전부터 말이야. 형은 이상하게 감이 좋았지.”

  “그랬나?”

  “기억 안 나? 형이 갑자기 느낌이 안 좋다고 하면 주위에서 이상한 일 터지고. 초등학교 때 누구였나, 민호였나 하여튼 맨날 학교 끝나고 축구 하고 가던 애 있잖아. 형이 걔한테 한번 오늘은 축구하지 말고 그냥 집에 가라고 했잖아. 그런데 걔가 형 말 무시하고 축구했다가 발목 접질린 거 기억 안 나?”

  “…그랬었나?”

  “그랬다고!”

 

  수원이 그렇게 말해도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좋다는 감이 들어맞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에 수원의 이야기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말해주라고.”

  “…알았어.”

 

  곧 우리는 부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엌 안에는 분주히 음식을 옮기고 있는 숙모와, 상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외당숙이 있었다.

 

  “왔니? 어서 앉으렴.”

  “네.”

 

  외숙모의 제안으로 외당숙의 맞은편에 자리하자, 외당숙이 텔레비전에서 고개를 돌리고 우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은 어땠어? 혹시 부족한 곳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렴.”

  “아, 아니요. 좋던데요.”

 

  나와 수원은 외당숙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이전 집에 비교하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외당숙은 사양하지 마라며 방 안에 없는 가구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아요. 혹시 나중에 필요한 게 생기면 말씀드릴게요.”

  “부담 가지지 말고 꼭 말해줘야 한다.”

 

  그렇게 겨우 실랑이를 끝내고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숙모도 자리에 앉았건만, 보람이라던 그 아이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외당숙을 향해 물었다.

 

  “그, 보람이는요?”

  “아… 보람이는 안 먹는단다. 다이어트라도 하는 건지… 어휴.”

 

  다이어트가 아니라 우리와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지만. 구태여 꺼낼 필요가 없는 속마음을 삼키며 나는 젓가락을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모 골분은 가지고 왔니?”

  “여보, 밥 먹는데…”

 

  골분 이야기에 당숙모가 슬쩍 외당숙을 흘겨보자, 외당숙은 멋쩍게 웃었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겨우 고향 땅을 밟으셨으니 맞이해드리는 게 조카 된 도리 아니겠어?”

  “아무리 그래도요.”

 

  외당숙 부부가 나누는 대화에 수원도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유골함, 챙겨왔지? 라는 무언의 물음에 나는 입술만 우물쭈물했다. 어제, 할머니 방에 있을 때 자기 혼자서 깨져버린 유골 항아리를 본 나는 다른 곳에 옮겨 담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할머니가 자주 다니시던 공원에 할머니의 뼛가루를 뿌려버렸다. 상자 속에 든 항아리가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깨져버린 것이 할머니가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수원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초지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저… 그, 그게…”

  “응?”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에 몸이 움츠려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다시 말을 내뱉었다.

 

  “유골함을 가져오려고는 했는데요. 그게, 옮기다가 깨져버려서 그냥 할머니가 자주 다니시던 공원에 뿌리고 왔어요. 옮겨 담을 데가 마땅치 않아서…”

  “아, 그러니? 그럼 어쩔 수 없지.”

  “하긴 이삿짐도 다 쌌는데 옮겨 담을 것을 찾는 게 녹록지 않았겠구나.”

 

  대충 내뱉은 변명임에도 외당숙과 외당숙모는 그럭저럭 납득한 듯했다. 하지만 수원은 그렇지 않았던지, 옆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수원의 시선이 따가워서 나는 밥그릇에 코를 박듯 허겁지겁 젓가락질을 했다.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구나.”

  “네, 네! 음식이 너무 맛있네요.”

  “어머, 그러니? 호호, 많이 먹으렴.”

 

  수원은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수저를 들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허겁지겁 먹고 있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억지로 먹고 있으니 체할 것만 같다.

 

  “아, 희원이랑 수원이.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딜요?”

  “우리 어머니한테. 마침 오늘은 상태가 좋으시거든. 이럴 때 인사를 해놓아야지.”

  “아… 이모할머니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셨죠.”

  “그래. 상태가 많이 안 좋을 때는 나도 찾아가는 것이 무섭단다. 정정하실 때도 무섭긴 했지만.”

 

  화제는 곧 이모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이모할머니는 어떤 분일까. 할머니가 이모할머니와 싸워서 고향을 나왔다는 이야기가 조금 걸리지만, 할머니의 동생이니 좋은 분이실 것이다. 외당숙이 해주는 이모할머니의 이야기와 함께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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