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붉은 꽃이 피는 마을
작가 : Ki다린
작품등록일 : 201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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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4     조회 : 300     추천 : 0     분량 :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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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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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이 집에 들어설 때 보았던 가장 큰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이모할머니를 보러 가자는 외당숙의 뒤를 따라와 보니 여기에 도달했던 것이다. 아까 외당숙이 이곳은 생활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했었는데 이모할머니는 이 안에 있다는 것일까. 담장 안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큰 이 건물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호기심이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이 사, 아니 건물에 들어가기 전에 둘에게 말해둘 것이 있단다.”

 

  눈을 빛내고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외당숙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기도 하고… 음… 이 건물은 마을 안에서 조금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어서 안에 들어가서 뛰면 안 되고, 큰소리를 내어서도 안 된단다. 알겠니?”

  “특별한 취급이 뭔데요?”

 

  수원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도 궁금했다. 이곳은 외당숙, 개인의 집일 터인데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수원의 물음에 외당숙은 곤란한 표정으로 우물쭈물 입만 움직였다.

 

  “그… 음… 그건 너희가 이 마을에 조금 익숙해지게 되면 말해줄게. 혹시 이상한 편견을 가지게 될까봐 걱정되거든. 들어가도 별 건 없단다. 그냥 앞에 말한 것만 잘 지켜주면 돼.”

  “…네.”

 

  외당숙은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외당숙에게 차마 더 캐물을 수가 없어 우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우리의 모습을 보고 외당숙도 고개를 끄덕였고, 두세 칸 정도 되는 돌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다. 어떤 모습을 마주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과는 달리 열린 문 안으로 보이는 건물 안의 전경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절처럼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안은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단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렇게 큰 건물인데도 방이 하나도 나누어져 있지 않고 건물 전체가 한 개의 방으로 되어있다는 점일까. 덕분에 안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많은 가구가 배치되어 있긴 했지만 너무 넓어서 휑한 느낌을 주는 실내 안, 그 가장자리에 이불이 펴져 있었다. 이불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모양으로 보아 이모할머니가 누워계신 듯했다.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는데도, 이모할머니가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외당숙은 다시 한번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곤 손짓했다. 우리는 그 건물의 안에 한 발짝 내디뎠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나는 발을 우뚝 멈추었다. 후덥지근한 밖의 날씨 때문에 땀을 쏟아내던 땀구멍이 모두 닫혀버린 것 같았다. 단 한 걸음 내디뎠을 뿐인데, 이렇게 확연한 온도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에어컨을 몇 대 설치해두고 최저 온도로 설정해 놓기라도 한 건가. 나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으며 에어컨을 찾으려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내 어깨를 툭 친 수원이 정숙하라는 외당숙의 당부 때문인지 말은 못 하고 뭐하냐는 듯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소리는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만 추워, 라고 말하고 양팔을 감싸 안았다. 수원도 입만 벙긋거려 춥다고? 라고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원은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떴다.

 

  수원의 반응으로 보건대, 지금 추운 것은 나 혼자뿐인가 보다. 외당숙도 아무렇지 않은 듯 앞장서 이불 쪽으로 걸어가고 있기도 하고. 나는 연신 닭살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외당숙의 뒤를 쫓았다.

 

  “어머니.”

 

  이불 앞에 선 외당숙이 조용한 목소리로 이모할머니를 불렀다. 여름용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두꺼운 비단 이불이 들썩였다. 이모할머니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외당숙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우리도 외당숙을 따라 무릎을 꿇고 앉아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펄럭이는 이불 소리가 들리고 이모할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찬영이냐.”

  “네, 어머니.”

 

  일어난 이모할머니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옆에 있는 수원 역시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모할머니의 얼굴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얼굴과 너무 비슷, 아니 비슷하다 못해 똑같았다. 이모할머니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우리를 올려다보더니 외당숙을 향해 물었다.

 

  “그 아이들이냐.”

  “네.”

  “……”

 

  이모할머니는 우리를 다시 한번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매우 서늘한 빛을 하고 있어, 조카손자를 처음 보는 상황에서 띌 법한 어떠한 아련함이나 그리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 나도 이모할머니가 할머니와 얼굴이 똑같다는 점에 대한 놀라움만을 느꼈기 때문에 말할 처지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모할머니는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전혀 할머니에 대한 향수를 느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냥 할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한 남이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었다.

 

  “이쪽이 형인 희원이, 그리고 이쪽이 수원이입니다. 맞지?”

 

  이모할머니를 향해 우리를 소개하던 외당숙이 우리를 향해 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모할머니에게 꾸벅 묵례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지만 이모할머니는 우리의 인사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빤히 우리의 얼굴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기를 느끼고 있었건만, 이모할머니의 서늘한 눈빛을 받으니 더 추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몸을 웅크렸다.

 

  “…추우냐.”

 

  그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이모할머니가 갑자기 나를 향해 물어왔다. 갑자기 세 명의 시선이 나에게 못 박혀 당황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레 조금요, 하고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이모할머니는 잠시 내 뒤쪽을 바라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만 놔두고 도망치더니 꼴이 좋다.”

  “네?”

 

  뜻을 읽어낼 수 없는 이모할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하지만 이모할머니는 퀭한 눈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더니 나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구나. 앞으로 고생 좀 하겠어.”

  “어머니! 그런 얘기는…”

  “듣기 싫다.”

 

  이모할머니는 그대로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외당숙은 한숨을 내쉬더니 우리에게 나가자고 손짓을 했다.

 

  내가 누구의 마음에 들었다는 걸까. 그리고 이모할머니만 놔두고 도망갔다는 말은 혹시 우리 할머니에게 하는 말일까. 당장 입을 열어 내 머릿속에 떠돌고 있는 의문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이모할머니의 말을 들으니 이모할머니와 싸우고 마을에서 나왔다는 외당숙의 말과는 달리, 정말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도망친 것이 맞는 것 같았다. 희원, 수원의 이름의 뜻과 같이 근원에서 도망쳤던 것이다.

 

  갑자기 마룻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쾅쾅, 대며 마루를 뛰어다니는 발소리. 나는 휙, 고개를 돌렸지만 이모할머니는 여전히 이불 속이었다. 아무도 없다. 외당숙과 수원은 내 앞에서 조용히 걷고 있었다. 홀로 느꼈던 한기와 마찬가지로 이 발소리도 나 혼자 들은 듯, 그 둘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는 종종걸음을 걸어 수원의 등 뒤에 붙었다. 어서 이 추운 건물 안에서 나가고 싶었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나를 맞이하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햇살이 기분 좋았다. 나는 차갑게 식었던 몸이 풀려가는 기분을 음미했다. 외당숙과 수원의 뒤를 쫓아 내가 마지막으로 건물에서 나왔기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커다란 문에 손을 대자, 안에서 풍기는 서늘한 한기가 또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아 나는 빠르게 문을 닫았다. 기분 나쁘다. 될 수 있으면 앞으로 이곳에는 오고 싶지 않았다.

 

  문을 닫고 내려오자, 마당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외당숙이 멋쩍게 웃었다.

 

  “많이 놀랐지? 우리 어머니와 이모님은 희원이, 수원이와 마찬가지로 쌍둥이란다.”

  “…그렇군요.”

 

  수원이 별 감흥이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쌍둥이를 모시는 마을. 마을 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물에 사는 쌍둥이 중 한 명인 이모할머니. 쌍둥이인 우리를 거둬준 외당숙. 쌍둥이인 우리를 손들고 반기는 마을 사람들. 모든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자꾸만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 나만 느끼는 한기. 이 마을에 있는 동안 계속 그런 일을 맞닥뜨릴까 무섭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이 있다면 수원은 내가 겪은 불가사의한 일들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수원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혼자서 이 모든 것들을 안고 가기엔 내 정신력이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겠다.

 

  “아, 그리고 희원아.”

  “네?”

 

  한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외당숙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외당숙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편찮으시다고 말했었지?”

  “아… 네.”

  “그래서 가끔 이상한 말을 하신단다. 아까 희원이, 너한테 한 이야기도 아프셔서 횡설수설하는 것이니 그냥 흘려들으면 돼.”

  “……”

 

  그냥 횡설수설했다기에는 이모할머니의 상태가 너무 멀쩡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차가운 눈빛을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이모할머니의 말 대신 외당숙의 말을 흘려듣기로 하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긍정의 의미가 담기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고분고분해 보일 나의 끄덕임을 보고 외당숙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막 이사 온 날에 이것저것 하느라 피곤하겠다. 저녁 먹을 시간 되면 부를 테니 들어가서 쉬렴.”

  “네.”

  “나는 평소에도 집에 있으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고. 아,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니까 학교는 내일모레부터 나가면 된단다.”

 

  그렇게 말하고 외당숙은 잠시 볼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는 수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왜?”

  “나 산책 좀 하고 올게.”

  “산책? 상태도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산책? 그냥 들어가서 쉬지.”

  “그, 그냥 바깥 공기 좀 쐬고 싶어서.”

  “그럼 나도 같이…”

  “아, 아냐. 됐어! 피곤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나올 필요 없어. 나 혼자 다녀올게.”

 

  수원은 미심쩍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산책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 이유가 바깥 공기를 쐬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이 마을의 비밀을 알아내길 원했다. 나와 내 동생이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곳인지, 아닌지. 그리고 적어도 수원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인지. 우리가 수능을 볼 때까지는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한 산책이었다.

 

  그러니 수원이 따라오는 것은 달갑지 않았다. 수원은 연거푸 나를 따라오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내 고집도 못지않다. 나는 결국 수원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수원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흙길을 밟는 발걸음이 조금 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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