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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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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파인애플집
작성일 : 20-09-10     조회 : 323     추천 : 2     분량 : 3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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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허구이며, 글 속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겨울-파인애플집

 

  우리옆집은 비닐하우스 안에 파인애플을 키운다. 비닐하우스 안에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파인애플나무가 몇 그루있고 세계1호 사과보다 좀 더 크고 길쭉한 파인애플들이 아직 덜 익은 채로 달려있다. 파인애플집에는 백 살은 된 것같은 호호할매와 역시 머리가 하얀 키 큰 할배가 살았는데 키큰할배는 할머니의 아들이라고 했다. 바로 옆집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주 아기적부터 그 집에 매일매일 들락거렸다. 그냥 볼일이 있어서 가기도 하고 아무 할 일이 없어도 심심해서 하루에 몇 번씩은 꼭 갔다. 키 큰 할배는 파인애플이 익으면 시장에 비싼값에 내다팔았다.

 파인애플이 너무 귀했기 때문에 파인애플을 먹어본 적도 없고 가시가 삐죽삐죽난 덜 익은 파인애플이 맛있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파인애플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안이 따뜻했고, 하우스 안에는 한겨울에도 호호할매가 키우는 배추, 무, 시금치, 유채 같은 야채들이 가득했다.

 봄이 되면 파인애플집 마당에는 온갖 꽃들이 피었다. 개나리, 중나리, 철쭉, 붓꽃, 라일락같은 이른 봄꽃들이 피고 오월이 되면 그 집의 가장 자랑거리인 장미꽃이 피었다. 흰 장미와 불타는듯한 빨간 흑장미가 화려한 자태로 피었다. 집 입구에는 조그만 채송화들이 아기자기 피었고 봄앵초도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늘 늦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었다. 우아한 백합, 여름의 수선화, 이름모를 선인장꽃도 있었고 꽃사과도 심어놓아서 구슬만한 꽃사과들이 쏟아질 듯 늘어져서 정말 볼만 했다. 그 외에 내가 도저히 이름을 알 수 없는 화초들이 많아서 난 그 집 마당의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어디에서 주워모았는지 아기자기한 예쁜 돌들로 꽃밭테두리를 장식했다. 아들할배는 요즘으로 말하면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꽃은 보기만 하는 거다. 꺾으면 안된다.”

 내가 이 정도의 주의만 잘 지키면 언제든 꽃밭을 구경해도 되었다.

 파인애플집은 엄마호호할매와 아들키큰할배만 살았기 때문에 아이는 없었다.

 호호할매와 아들할배도 너무 늙어서 나와 동생들이 들락거려도 특별히 잘해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특별히 못해주거나 오지말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면 “응? 왔나?”하면서 한번 쳐다볼뿐 자기들이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었다.

 난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꽃도 보고, 비닐하우스 문이 열려있으면 파인애플이 얼마나 자랐나 관찰했다. 아주 가끔 아들할배가 하얀 돌사탕을 하나씩 줄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사탕중에서는 하얀 돌사탕이 오래 물고 있어도 되고 가격이 쌌다.

  엄마는 돼지등뼈국을 많이 끓이거나, 떡을 하거나, 닭집아지매와 가마솥에 공동으로 호박죽을 끓이면 파인애플집에 자주 갖다주었다.

 파인애플집도 사과농사를 지었는데 밭도 작고 농사도 우리집에 비하면 아주 적었다.

 아버지는 파인애플집 할배가 혼자서 못하는 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봄에 로타리로 밭을 간다든가, 농약을 살 때 한꺼번에 사다주는 일을 해주었다. 그래서 파인애플집할배는 가끔 조카같은 우리아부지에게 파인애플로 담근 술을 주었다. 파인애플술은 무척 달콤할 것 같았다.

 일년에 꼭 한 번 정도는 파인애플집할배가 파인애플을 동네사람들에게 시식을 시켜줄 때가 있었다. 가장 좋은 파인애플은 과일가게에 팔고 약간 상품성이 떨어지는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러면 혼자나 자기들끼리 먹을 수도 있는데 동네 아이들이 있는 집에 오늘 파인애플 자르니까 저녁에 모이라고 기별을 준다. 그러면 오빠, 나, 위선자, 막둥이, 앞집 구원자, 뒷집 순돌이 동네 어린아이들은 모두 모인다. 우리 엄마 아부지도 따라오고 순돌이할배할매까지 동네에 큰 행사인 파인애플시식에 참석한다. 닭집 똑똑이언니나 교회집 고등학생언니 오빠들은 절대로 오지 않았다. 파인애플집할배는 파인애플을 방 한가운데 놓아두고 비장한 표정으로 칼로 파인애플을 자른다. 크게 한번 잘라서 파인애플을 반으로 가르고 다시 또 길쭉하게 반으로 가른다. 그리고 가운데 심을 잘라버리고 길쭉한 파인애플을 옆으로 야채 썰듯이 작은 조각으로 자른다.

 “자, 이제 먹어봐라.” 파인애플할배의 말이 떨어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조그만 파인애플을 하나씩 집어든다. 사람이 여럿이고 파인애플이 그리 크지 않아서 한 두 조각씩 손에 들면 거의 남는 것이 없다. 온 동네가 사과, 자두, 복숭아 등 과일농사를 짓는 집들이라서 과일은 풍족했다. 하지만 파인애플은 희귀한 열대과일이고 시장에 가도 파인애플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도시에 사는 이모네 집 앞 슈퍼마켓에 갔을때도 파인애플을 보지 못했다. 옛날 이모집 근처에 백화점에 구경갔을 때 파인애플을 보았다. 가끔 바나나는 한 송이씩 놓여있었다.

 그 시절에는 바나나도 한 송이씩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따로 떼어서 팔았다.

 전에 이모집에 오빠랑 갔던 적이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오빠가 나에게 자랑을 했다.

 “나, 어제 바나나 먹었지롱.”

 나는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도대체 나만 빼고 언제 자기들끼리 바나나를 먹었단 말인가?

 “니가 어제 아무리 흔들어도 안일어나서 이모가 나만 수퍼에 데리고 가서 바나나 사줬지롱!”

 내가 안일어나서 못먹었다니 할말은 없지만 참 짜증이 났다.

 그렇게 과일이 귀하던 시절에 파인애플집할배가 동네 꼬마들에게 1년에 한번씩 파인애플을

 시식시켜주는 것은 엄청난 행사였다.

 일단 파인애플조각을 손에 들고 생김새를 열심히 탐색한다. 냄새를 맡아본다. 새콤하고 독특한 향기로운 냄새였다. 잘 익은 사과도 달콤한 냄새가 나지만 파인애플은 뭔가 이국적인 색다른 향을 풍겼다. 그리고 입에 넣어서 아주 천천히 맛을 음미해본다.

 아~ 사과와 복숭아와 다른 오묘한 식감, 그리고 좀 더 강렬한 새콤달콤한 맛! 과수원집에서 태어난 나는 온갖 과일을 다 먹을 수 있는 처지였지만 일단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비주얼과 처음 맛보는 묘한 식감에 황홀했다. 아이들은 조그만 조각으로 2개씩 먹었다. 어른들은 한 조각씩만 먹었다. 파인애플시식은 금방 끝이 났다. 너무 아쉬웠다.

 너무 조금 먹고나니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하려고 해도 생각이 안났다.

 “잘 먹었습니다.”

  모두들 파인애플집할배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파인애플이 사과보다 맛이 없다고 했다. 아부지는 파인애플집할배가 거름을 많이 못줘서 파인애플이 별로 안달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맛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꼭 밖에서 외식을 하고 오면 맛이 없었다고 투덜거린다. 동네 동갑계에서 아주머니들끼리 바닷가에 놀러를 갔다와도 혼자서 갔다와서 미안한지, 아니면 우리도 보내달라고 할까봐 그런건지 아무 재미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거기서 회나 해삼멍게를 먹었다고 하면서도 맛이 없었다고 늘 말했다. 우리도 사달라고 할까봐 미리 구라를 치는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엄마의 말을 불신했다.

 오늘도 그렇다. 어떻게 그 귀한 파인애플이 우리 과수원 사과보다도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나는 그 이유가 아마 우리가 파인애플을 사달라고 할까봐 미리 경계하는 마음에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아! 또 파인애플시식을 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한다. 자르는 순간 새콤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방 안에 진동을 하고 입에 닿는 순간 새콤달콤한가 싶더니 순식간에 혀에서 녹아 사라져버리는 맛! 오늘은 맛있는 파인애플을 맛보아서 참 행복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꿈 속에서 더운 이국의 나라에서 황소만한 파인애플을 나 혼자서 배터지게 먹었다. 크면 꼭 답답한 동네를 벗어나 세계를 누비면서 온갖 맛난 과일을 먹으리라! 마음먹었다.

 

 

나나 20-09-10 20:32
 
갑자기 파인애플이 먹고 싶어졌어요^^ 작가님을 비롯해서 요즘 스토리야 작가님들 글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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