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공포물
기현상 칼럼니스트
작가 : ILooK
작품등록일 : 202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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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아귀
작성일 : 22-02-18     조회 : 185     추천 : 0     분량 : 4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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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은 보이지 않는 손.

 

 

 손가락은 기이할 정도로 마르고 길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그 푸르스름한 회색빛이 눈에 띄었다.

 

 비쩍 마르고 온갖 풍파를 다 겪어 보이는 손과 달리 손톱은 공을 들여 기른 것처럼 가지런했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기괴했다.

 

 

 잠시 움직이던 것을 멈췄던 손이 작게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모래사장에서 흙을 끌어모으듯 천이안의 가슴팍을 다섯 개의 손톱이 날을 바짝 세우고 움츠러들었다.

 

 

 따끔한 통증!

 

 

 아픈 것과 별개로 손의 주인이 궁금했다.

 

 천이안은 손톱, 손가락 그리고 손등을 타고 손목과 팔목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순간 움칠 놀랐다.

 

 손목과 손등을 덮는 회색 천.

 

 그건 최근 그를 노이로제 걸리게 했던 그 천이었다.

 

 팔을 덮고 있는 그 회색 누더기를 눈으로 더듬어 올라가자 그때까지 왜 알아챌 수 없었는지 의아할 정도로 으스스한 존재가 그곳에 앉아 있었다.

 

 

 스프링이 든 머리 흔드는 인형처럼 흔들리던 삿갓이 한 번씩 멈출 때 천이안은 가슴에서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공포에 질려있는 사이 또 다른 할퀸 상처가 추가되었다.

 

 점점 더해지는 통증은 곧 그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고, 두려움에 굳어 있기만 할 수 없었던 그가 움직이려던 때였다.

 

 

 그때 흔들리던 삿갓이 멈췄다.

 

 할퀴어 대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던 천이안이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니 두 개의 새카만 구멍이 천이안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다음 날, 햇살에 눈을 뜬 천이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주변을 살펴도 어제와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내가 신경이 예민해진 건가? 자꾸 악몽을 꾸네.

 

 그는 의아함을 느끼며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주방 입구에 우뚝 멈춰 서 또다시 엉망이 된 채, 음식이라는 음식은 모두 사라진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짓던 천이안은 순간 가슴께가 따끔한 것을 느꼈다.

 

 고개를 내려 바라보자 흰 티셔츠가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윗도리를 벗으니 군데군데, 마치 누군가 긁어 놓은 것처럼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천이안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젯밤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밀려드는 공포를 이기기 위해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갔다.

 

 여전히 엉망인 주방을 홀린 듯 청소하자 힘은 들었지만, 정신이 났다.

 

 

 천이안은 처음으로 문명을 뒤로한 채 돈이 있음에도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구식이라도 스마트워치가 있었으면....... 있었으면?

 

 누구에게 연락한단 말인가? 가족도, 친구도 없는 처지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추욱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다시 마을로 가야 할 때다.

 

 야구 배트를 가방에 넣어 둘러맨 채 힘겹게 시내에 도착한 그는 여전히 인상을 쓰며 고깃덩어리를 얹어주는 국밥집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슈퍼로 가 딱 오늘 먹을 수 있는 양을 주문했다.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할 때였다.

 

 

 생전 처음, 전자 상가로 가 오래된 모델의 구식 스마트워치를 구매했다.

 

 다행히 전자 상가 주인은 그를 안쓰러워하던 주민 중 한 명이라 스마트워치의 기본 작동법도 모르는 그에게 시간을 들여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으로 맛본 문명의 이기는 다른 의미로 그에게 버거웠다.

 

 

 잔뜩 지쳐 돌아온 집 앞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밤이 다가오자 덜컥 겁이 났다.

 

 또다시 가위에 눌려 끔찍한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두렵게 했다.

 

 결국 밤을 새우기로 결정한 그는 이불에서 일어나 라디오를 켠 채 자리에 앉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손에는 야구방망이를 쥔 채였다.

 

 

 덜컹, 쿵, 달그락달그락

 

 

 퍼뜩 정신이 든 천이안은 자신이 또다시 잠이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부터 잠이 든 것일까.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몸은 굳어 있었다.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몸이 굳어 있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는데, 청각은 이상할 정도로 예민했다.

 

 집 안의 모든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끼긱, 챙그랑, 덜커덕

 

 

 주방에서 끊임없이 소음이 들려왔다.

 

 주방을 샅샅이 뒤지는 소리였다.

 

 찬장부터 시작해 그릇 하나하나 다 뒤지는 듯 뒤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천이안이 지쳐 다시 잠이 들 때까지도 소음은 끊기지 않았다.

 

 

 다음 날, 그는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다 결렸지만, 특히 밤새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인지 목이 아팠다.

 

 스트레칭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문득 어젯밤, 자신을 괴롭히던 미라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밤새 들린 소음의 진원지로 급히 향하자 주방은 지난 이틀과 같이 난장판이었다.

 

 다만 음식을 찾지 못했는지 밤새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바퀴벌레라도 생기면 어쩌나 싶어 최소한의 음식만 사 온 것이 예상 이외의 해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한시름 놓았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도 천이안은 하루 치 음식만을 사와 싹 먹어버리고 치워버렸다.

 

 그러자 밤새 가위는 눌렸을지언정 다음 날 아침에 멀쩡하게 눈을 떴다.

 

 매번 주방을 치우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그 소름 끼치는 미라 몰골을 보지 않는 것만 해도 기뻤기에 사소한 수고는 기꺼이 치를 요량이었다.

 

 

 "어?"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다른 날보다 가위도 덜 눌려 몸 상태도 좋았고 아침에 일어나 주방을 청소하는 속도도 일취월장해 겨우 한 시간 만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신기록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어 공기는 선선해졌고 하늘은 높아졌다.

 

 마을로 향하는 산책로에서는 짙은 풀냄새가 났고 서서히 단풍이 들 조짐을 보였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국밥집에서는 뚱한 표정의 주인이 고기를 얹어주었고 슈퍼에서는 그를 헐뜯는 무리를 만나지 않았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기분 좋은 하루였는데.......

 

 

 몸이 앞으로 휙 쏠렸다.

 

 바닥까지 5단의 계단이 남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은 대비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으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땅을 내디딘 발의 복숭아뼈가 시큰거렸다.

 

 발목을 삔 것 같았다.

 

 

 천이안은 고개를 휙 돌려 계단 위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은 밀쳐졌다.

 

  처음에는 그를 시기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고개를 돌려, 바라 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도 공중으로 솟구치지 않고서야 이 짧은 시간에 사라질 수는 없었다.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별다른 도리가 없던 천이안은 인근 약국에서 간단한 응급조치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도.

 

 나갈 때마다 이유 모를 원인으로 다쳤다.

 

 어떤 때에는 도로에 돌부리가 튀어나와 있어 그걸 밟고 넘어졌고, 슈퍼에서는 갑작스레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물건이 쏟아져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국밥집에서는 술 취한 손님이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뜨거운 국밥 국물에 뎄고, 덩치 큰 개가 갑작스레 달려드는 바람에 담벼락에 부딪혀 팔꿈치 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문제는 사소하고 꾸준히 다치기 시작한 이후 그 피해가 점점 커지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발을 접질린 것에서 시작했지만 머리를 부딪치거나 화상을 입고 이후에는 뼈에 금이 갔다.

 

 그는 이 모든 게 밤마다 찾아와 주방을 헤집는 미라 때문이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다치다 보니 천이안은 집과 슈퍼를 오가는 생활조차 부담스러웠다.

 

 밖에서 매번 다치다 보니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이 너무 피곤했다.

 

 다치지 않으려면 집에 있어야 했고, 집에 있으려면 식자재를 미리 배달시켜야 했는데, 식자재를 사다 놓으면 밤새 가위에 눌려 그 끔찍한 괴물에게 괴롭힘을 당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만 부여잡고 끙끙거렸다.

 

 

 하지만 고민은 배고픔보다 짧았다.

 

 결국 마을까지 간 그는 사방을 경계하며 움직였다.

 

 쫓기는 도망자처럼 슈퍼에서 음식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천이안은 오늘 시내에서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설마 우연이 반복된 건가?

 

 신경이 예민해서 자신이 다치는 걸 그 괴생명체와 연관 지은 건가?

 

 머릿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하며 집 앞에 도착한 천이안은 오랜만에 보는 회색 천 덩어리에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괴물 놈이 오늘 밥을 얻어먹으러 와서 별일이 없었구나!'

 

 

 천이안은 성큼성큼 괴물에게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 내가 뭔 잘못을 지었다고!"

 

 

 가위에 눌려 괴롭힘을 당하거나 매일매일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치는 과정에서 공포심을 이길 정도의 억울함과 분노가 쌓였다.

 

 이제 그는 억울해서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조상을 섬기지 않고 박대하며 밥 한술 대접하지 않는 후손에게 날벼락이 내린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이를 따닥따닥 대며 하는 말에 천이안은 하도 기가 막혀 숨통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그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증거도 없고, 하물며 조상이라 하더라도 밥 한 끼 얻어먹지 못했다고 후손을 이리도 괴롭히는 게 진짜 조상일 수 있겠느냐 말이다.

 

 

 "나는 당신에 대해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내 조상인지 아닌지 알 게 뭐야!"

 

 

 억울한 듯 내뱉은 말에 잠시 말이 없던 미라는 바닥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덕분에 머리에 쓴 삿갓이 얼굴 전체를 가리다시피 했지만, 미라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저 침묵이 흐르자 오히려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은 천이안이었다.

 

 

 "밥만 주면 먹고 갈 겁니까? 나를 괴롭히는 것도 그만두고?"

 

 

 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이안은 하는 수 없이 그를 집에 들여 식탁에 앉히고 저녁 식사로 사 왔던 음식을 그의 앞에 차려 주었다.

 

 조상이라 주장하는 미라는 정신없이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고 쌀 한 톨 남기지 않은 채 모든 음식을 싹 다 비웠다.

 

 

 천이안은 그 괴물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맞은편에 앉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분명 자신을 괴롭히는 괴물에 불과한데 차려준 음식을 저리도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어쩐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먹고 사라진다고 하니 마지막 만남이 분명할 져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미라와 대화를 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세요? 정말 내 조상입니까?"

 

 

 식사를 위해 삿갓을 벗은 미라의 익숙한 몰골을 보며 천이안이 물었다.

 

 호영이라 자칭하던 괴생명체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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