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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사를 소개한다냥!
작가 : 오단로봇
작품등록일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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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가 돼볼까?
작성일 : 18-12-24     조회 : 426     추천 : 0     분량 : 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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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이랑 밥 먹으면서 눈치 안 본 거요.”

 

 “…….”

 

 “나는 오랫동안 눈칫밥이 일상이었거든요.”

 

 딱 보기에 고생 하나 안 하고 자랐을 듯한 연이를 보면서 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연이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씁쓸해서 빈말은 아닌 거 같았다.

 

 ‘수의사면 공부도 잘 했을 거 같고, 얼굴도 저만하면 예쁜데 무슨 눈칫밥이지? 아, 지난번에 7살 때부터 못 봤다던 언니 얘기랑 관계있나?’

 

 아까 물어보지 말랬으니 물어는 못 보겠고, 현수는 현수 나름대로 생각하며 그냥 연이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때 새로운 장난감에 조금 익숙해진 배추는 잠시 두 사람의 모습을 관찰했다. 그리고 아직 앞에 있는 장난감과 습식사료의 빈 캔을 잠깐 봤다.

 

 ‘목 막히는 건식사료에서 벗어나 간식이와 습식사료를 누리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없을까? 매일매일 새로운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싶기도 하고……. 나중에 공주랑 결혼하면 좋은 것만 해주고 싶은데. 아! 우리 집사를…….’

 

 그 순간 배추는 냥생의 목표가 생겼다.

 

 ‘집사를 수의사 누님한테 장가보내면 되겠구나!’

 

 배추는 저 숫기 없는 집사가 연이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을까를 잠깐 고민했다. 아무래도 혼자 힘으론 라면이나 먹는 게 다일 거 같았다.

 

 ‘그렇다면 이 몸이 오작교가 돼볼까? 근데 오작교가 뭐더라? 아, 너무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도 왠지 피곤해.’

 

 그 순간 오작교를 떠올린 자신의 지식에 감탄했다. 내친김에 연이에게 다가가 짧은 다리를 연이의 발목에 척 올렸다. 그리고 무릎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몸짓을 했다. 현수가 놀라서 연이에게서 배추를 떼어내려고 했다.

 

 “야! 배추. 이리 오지 못해!”

 

 “괜찮아요.”

 

 “여태 산책해서 발이 더러울 텐데요. 선생님 옷이 더러워질 거예요.”

 

 “그거야 빨면 되죠.”

 

 연이는 배추의 뜻을 알아듣고 바로 배추를 무릎 위로 올려 뒷덜미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기분이 좋아서 배추는 눈을 지그시 감고 기분 좋은 갸르릉 소리를 냈다. 왠지 연이의 무릎 위가 너무 포근했다.

 

 “배추 우리 누나 무릎엔 잘 안 올라가는데 신기하네요.”

 

 “그런가요?”

 

 배추는 아직 잠들지 않았으므로 그 말을 듣고 귀를 까딱했다.

 

 ‘누나 집사는 언제 떨어뜨릴지 모르겠는데, 내가 아이큐 한자리도 아니고 누나 집사 무릎 위에 올라가겠냐? 아, 내 아이큐가 얼마더라? 아함, 몰라. 왠지 잠이 오네……. 아, 머리를 너무 썼어.’

 

 배추가 잠이 들자 연이는 한 손으론 배추를 쓰다듬으며 한 손으론 커피잔을 들었다.

 

 “배추 보호자님은 말이 없네요.”

 

 “…….”

 

 “사람들은 남의 일은 막 되게 궁금해 하던데.”

 

 “묻지 말라고 하시길래요.”

 

 “말 꺼내놓고 묻지 말라고 해서 좀 당황했죠?”

 

 “뭐,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어요.”

 

 “미안해요. 먹는 중이라 소화 안 될까 봐 그랬어요.”

 

 연이가 씩 웃었다.

 

 “사실은 아까 본가에 다녀왔거든요.”

 

 “본가요? 그럼 부모님 뵙고 오신 거예요?”

 

 “네. 오빠랑 새언니 감도 보고 왔죠.”

 

 “그럼 가족분들 만나고 오신 건데, 좋은 거 아니에요?”

 

 “좋죠.”

 

 결코 좋지 않은 표정으로 좋다고 말하는 연이를 보고 현수는 혹시 가정불화가 있나 생각했다. 더 물어봐도 될지 몰라서 그냥 다시 눈치만 보다가 아까부터 옆에 뒀던 검정 봉지가 떠올랐다. 현지가 알면 분노의 레이저를 쏘겠지만 왠지 지금은 연이에게 주고 싶었다.

 

 “딸기 드실래요?”

 

 “딸기요?”

 

 “아까 배추랑 공주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아주머니가 주셨거든요.”

 

 “그럼 이리 주세요.”

 

 연이가 배추를 의자 위에 올려두고, 뒤쪽 세면대에서 딸기를 씻어서 종이컵에다 담아서 나왔다. 같이 먹자는 얘기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씻어서 가지고 오니 어쩔 수 없었다.

 

 연이가 건네자 현수는 못이기는 척 딸기 하나를 받아먹었다. 원래 과일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는데 왠지 달았다. 현수의 표정이 좋아지는 걸 보고 연이도 하나 집어먹었다. 연이가 먹은 건 조금 시어서 살짝 인상을 찌푸렸으나 바로 다음 걸 집어 먹었다.

 

 “내가 입양아가 아니라 친딸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그럼 오빠한테 친동생이었을 테니까…….”

 

 “아…….”

 

 현수는 역시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위로를 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저도 그다지 전부 갖춰진 환경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서 자기가 위로하는 게 맞는지도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배추 보호자님 남매 보면 되게 부러웠어요.”

 

 “뭐가 부러워요?”

 

 “서로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싸울 수 있잖아요.”

 

 “그게 뭐가 부러워요? 그리고 저도 우리 누나 눈치 안 보는 건 아닌데…….”

 

 “정말요?”

 

 “네. 어느 정도 선에서 끊어야 한다는 거 은근 계산해요. 아마 우리 누나도 그럴 거예요.”

 

 “친남매도 그렇구나. 그럼 별 차이 없으려나요? 에이! 그래도 부럽긴 하네요. 순수하니까…….”

 

 연이는 무릎 위에서 잠든 배추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현수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제가 배추 보호자님에 대해 뭐 하나 맞춰볼까요?”

 

 “네?”

 

 “내가 29살인데 배추 보호자님은 나보다 한 살 어리죠?”

 

 “네? 아, 네. ……근데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이건 자기 얘기니 물어도 될 거 같아서 현수가 물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배추 보호자님 아버님한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거든요. 우리 언니랑 같이.”

 

 “예?”

 

 연이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얘기를 꺼냈다.

 

 “제가 배추 보호자님 아버님을 한번 뵙고 싶어서 찾았었는데……. 제가 좀 많이 늦었네요.”

 

 “그게 무슨…….”

 

 “제가 이런 말 하면 스토커처럼 보이시긴 할 텐데. 비밀도 아니니까. 아, 여기다 병원을 차린 건 그냥 그때 마침 제가 가진 돈으로 차릴 수 있는 병원이 나왔길래 차린 거니까 오해는 마시고요.”

 

 연이가 심호흡을 길게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사실은 배추 보호자님 남매 분들 이 동네 처음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가끔 지켜보기도 했었고. 이 병원 차리기 전부터니까 한 일 년 된 거 같네요.”

 

 “…….”

 

 “저 어릴 때 보육원에 잠깐 살았었어요. 그때 불이 나서 언니랑 저랑 같이 죽을 뻔했었어요. 그때 와주신 분이 배추보호자님 아버님이었고요. 덕분에 제가 지금 여기 있는 거죠. 그날 제가 호흡기에 화상을 입어서 꽤 오랫동안 입원해야 했어요. 그 사이에 언니는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갔고, 나는 퇴원 후에 보육원에 혼자 남았었죠.”

 

 “…….”

 

 “퇴원하고 나니까 언니가 없어서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도 배추 보호자님 아버님이 휴일에 자주 찾아오셔서 놀아주셔서 쉽게 견뎠던 거 같아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불 속에서 구해줬던 아저씨라고 생각하니까 되게 좋아했거든요. 저한텐 영웅이었달까? 그래서 소방관 아저씨 언제 오나 매일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현수도 그 무렵을 얼핏 기억했다. 아빠는 휴일에도 자주 다른 봉사 활동을 다니곤 했었다. 그 당시에 현수의 영웅도 만화 속 악당들을 물리치는 초능력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아빠였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지금도 그러냐 묻는다면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빠는 그저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라고 말할 거 같았다. 과도한 영웅심에 스스로를 만족시키느라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내팽개쳤고, 결국은 제 목숨도 그냥 놓아버린 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 결과 남겨진 엄마와 누나가 힘들었고, 저도 남들 보기엔 그다지 올바르지 못한 정신상태로 자랐다. 남들이 쉽게 보는 아빠와 자신이 겪은 아빠는 이렇게도 달랐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아빠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빠가 원망스러운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서로 모순이라고 여겨져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마음이니 그냥 묻어둘 뿐이었다.

 

 “그렇군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배추 보호자님은 궁금하지 않은 표정이네요.”

 

 “뭐, 고마웠다는 그런 얘기하실 거 아닙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렇겠죠. 아마?”

 

 “제가 선생님을 구해드린 것도 아닌데 제가 들을 필요도 없는 얘기겠네요. 저, 작업이 밀려서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네? 아, 네.”

 

 현수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아직 연이의 무릎 위에 곤히 잠들어 있는 배추를 달라는 듯 손짓을 했다. 연이는 바로 배추를 건넸는데 그 흔들리는 와중에도 배추는 눈 한번 뜨지 않았다.

 

 가끔 배추는 예민한 고양이답지 않게 누가 안고 가도 모르게 잠들곤 했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었다.

 

 현수와 배추가 동물병원을 나서는 걸 연이가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현수는 누가 봐도 화난 걸로 보였다. 딱히 말실수한 거 같진 않았는데, 왜 현수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해진 건지 이해가 잘 되질 않았다.

 

 “뭐지? 아, 내가 진짜 스토커로 보였으려나? 뭐 따지고 보면 일부러 이 동네에 병원 열고 몰래 훔쳐보긴 했으니까 스토커가 맞긴 하네. 에이! 예술가라 그런가 은근 예민하구만. 그치. 멍구 엄마. 근데 멍구 좋은 집에 입양됐다니까. 이제 걱정 좀 그만하고 갈 길 가. 아, 보신탕집하고 정육점이랑 똑같지 않다고. 으이구! 말이 제대로 안 통하니 아무리 알려줘도 소용이 없네.”

 

 연이는 자기 외에 사람은커녕 동물도 없는 병원 안에서 멍구의 엄마라는 이와 대화를 했다.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닌 듯 연이의 표정엔 지루함과 짜증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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