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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사를 소개한다냥!
작가 : 오단로봇
작품등록일 :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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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하지 마.
작성일 : 18-12-24     조회 : 417     추천 : 0     분량 : 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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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기 싫어요! 원장님. 나 내 동생이랑 같이 있을래요!”

 

 “나중에 만날 수 있어. 어서 가자. 엄마 아빠가 예쁜 인형 많이 많이 사줄 거야.”

 

 “거짓말이잖아요! 어른들은 다 거짓말만 하잖아요! 안 갈래요!”

 

 “이렇게 말 안 들을래? 엄마 아빠한테 예쁨 받으려면 착한 아이가 돼야지.”

 

 “그 아줌마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 아니에요! 우리 엄마는 나랑 내 동생을 여기다 데려다 놓고 금방 온다더니 안 왔단 말이에요. 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

 

 꿈속에서 배추는 너무나 무서웠다. 누군가 날 버리려 한다. 누군가 날 억지로 데려가려 한다. 누군가 날 사랑하는 동생과 떼어내려 한다. 배추는 저를 거칠게 잡아끄는 그 사람의 팔을 물어버리고 도망쳤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키가 큰 아저씨.

 

 그날 저를 불길 속에서 구해준 영웅 아저씨. 배추는 그 아저씨 품에 안겨서 펑펑 울었다.

 

 “아저씨 나 가기 싫어요. 가면 이제 다신 내 동생 못 볼 거란 말이에요.”

 

 “아니야. 나중에 크면 내가 꼭 만나게 해줄게. 아저씨는 약속한 건 꼭 지킨다. 아저씨 믿지?”

 

 “…네…….”

 

 “자, 그럼 우리 새끼손가락도 걸고 도장도 찍을까?”

 

 배추는 앞발을 내밀었다. 근데 그 앞발이 짤막한 털 뭉치가 아니라 기다란 사람 손가락이었다. 아저씨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을 찍었다.

 

 모든 어른이 거짓말해도 이 아저씨라면 믿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니, 이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도 믿어주고 싶었다.

 

 아저씨가 배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뭔지 모르게 가슴이 찌르는 듯 아프고 그리워서 또다시 눈물이 마구 솟아났다.

 

 

 ***

 

 

 현지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마신 술병에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부지런한 현지보다 현수가 먼저 눈을 떴다. 이런 일은 분기별로 한두 번 있을까 말까였다.

 

 현수가 눈을 뜨자마자 시간을 보니 한 서너 시간 잔 거 같았다. 어제 새벽 연이를 데려다주고 괜한 설렘에 잠이 안 와서 한참을 뒤척였다. 일어나자마자 연이 얼굴이 아른거리는 게 잠이 덜 깬 거 같았다.

 

 “아, 박현수! 너답지 않게 왜 이러냐?”

 

 현수는 수염이 조금 자라 까칠한 제 볼을 때리며 혼잣말을 했다. 괜히 자신이 한심해서 한동안 침대 위에서 뭉그적댔다.

 

 그러다 아직 밖이 조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현지가 술병이 단단히 든 모양인 거 같았다. 배추도 챙겨야 하고 누나도 챙겨야 해서 기지개를 켜며 방 밖으로 나왔다.

 

 거실 바닥엔 배추가 옆으로 누워 잠들어 있었다.

 

 “하이고, 자식. 언제 여기 나와서 이렇게 자고 있대. 누나가 또 귀찮게 했냐?”

 

 현수는 배추의 화장실부터 치우고 잠시 잠든 배추를 구경했다. 너무 귀여운 그 모습을 사진을 찍고 씩 웃으며 배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추는 잠시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그 손길을 반겼다.

 

 그러다 현수는 그 손길을 멈췄다. 언제까지 배추의 머리만 쓰다듬고 있을 수 없었다. 현수는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세수와 양치질을 대충 하고 나왔다.

 

 주방으로 와 수납장에서 북어포를 꺼내 작은 그릇에 덜어 물을 부었다. 그리고 어제 술을 마신 현지가 설거지를 못 해놓고 자서 설거지를 치웠다. 그 후 싱크대 수납장에서 적당한 냄비와 라면 두 개를 꺼내놓고 누나 방 앞으로 가서 물었다.

 

 “누나 아침이야. 북어라면 끓일 건데 먹을 거지?”

 

 “아, 몰라. 안 먹어.”

 

 이래놓고 진짜 안 끓이면, 꼭 ‘한 젓가락만’을 시전하며 절반은 먹어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는 누나였다. 현수는 애초에 끓이려던 대로 두 개를 다 뜯었다.

 

 냄비에 조금 전에 불린 북어포를 넣고 참기름을 두른 후 조금 볶다가 물을 넣었다. 그리고 파와 건더기스프를 넣고 끓기를 기다렸다.

 

 그때 익숙한 현지의 ‘으윽’ 하는 헛구역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현지는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으이구,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도대체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 쯔쯧.”

 

 현지는 술을 좋아하긴 해도 주량 이상을 마시면 저렇게 아침마다 요란하게 깨곤 했다. 현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마침 라면 물이 끓어서 라면을 넣었다.

 

 그러다 어젯밤 현지만큼 연이도 마셨다는 게 떠올랐다. 고생할까 봐 걱정이 돼서 챙겨주고 싶은데, 아직 그럴 사이가 아니라 좀 애매했다.

 

 ‘아, 자고 가라고 할 걸. 그랬으면 그 기분 나쁜 오빠도 어제 안 만났을 텐데……. 전화 한번 해볼까? 아! 휴대폰 번호를 안 물어봤구나.’

 

 그 와중에 자신의 정신없음을 깨닫고 제 이마를 한대 툭 쳤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누나를 먹이고, 누나한테 물어보든가 슬쩍 가보든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한바탕 게워 낸 현지가 초췌한 몰골로 화장실을 나왔다.

 

 “으! 다음부터 술 섞지 말아야지.”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왜 고기 먹을 때마다 그렇게 술을 찾냐?”

 

 “인생사 쓴맛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네가 뭘 알겠냐. 그나저나 우리 배추 왜 여기서 자고 있대.”

 

 “누나가 귀찮게 한 거 아니야?”

 

 “아니거든! 오히려 배추가 귀찮게 했지!”

 

 현지가 여전히 옆으로 누워 있는 배추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배추가 움찔하더니 눈을 떴다. 잠결에도 현지의 그 따뜻한 손길이 너무 좋아서 긴 듯 짧았던 꿈에서 바로 깨어났다.

 

 “흐규! 배추 자면서 울었네! 이 눈물 자국 봐. 우리 배추 오랜만에 누나랑 같이 세수 좀 해야지, 안 되겠다!”

 

 현지는 배추를 안아 들고 바로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잠깐 어리둥절했던 배추는 뜻밖의 상황에 발버둥을 쳤다.

 

 「누나 집사야! 세수는 아까 다 했다고! 나 안 울었단 말이야! 이거 놔라! 이거 놔!」

 

 ‘냥냥’거리는 배추의 처절한 외침이 욕실에 그득했으나 현지는 결코 배추를 놓아주지 않았다.

 

 배추는 그렇게 혼을 홀딱 빼버린 세수를 하고 나자 조금 전 무슨 꿈을 꿨던 건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이 무지막지한 현지가 미워서 다시는 그루밍 해주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삐친 티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배추는 현지를 보며 꼬리를 바짝 들고 ‘야옹 야옹’하며 애교를 부렸다. 현지가 주방 수납장에서 배추의 사료가 들어있는 통을 꺼내니 조금 전 삐친 마음 따위는 사료통 너머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나 집사야! 아침 맘마! 아침 맘마!」

 

 역시 물질 만능주의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모두에게 통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현지가 배추를 챙기는 사이 현수는 의자가 두 개밖에 없는 작은 식탁 위에 김치를 꺼내놓고 라면을 그릇 두 개에 담았다. 그리고 컵에 따뜻한 물과 찬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맞춘 다음 현지의 자리에 놨다.

 

 현지가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이렇게 챙기는 게 일상이었다. 학생일 땐 이러면 현지가 용돈을 줘서 꼬박꼬박했다. 이젠 딱히 용돈을 받지 않아도 습관이 돼서 해줬다.

 

 “속 많이 아파?”

 

 “늘 그렇지.”

 

 “선생님도 누나만큼 마시지 않았나?”

 

 고개를 숙이고 이제 막 라면 국물을 한번 떠먹던 현지가 무심결에 연이 얘기를 꺼내는 현수를 가자미눈을 뜨고 봤다. 남의 일은커녕 제 일도 지독하리만치 무관심한 현수가 현지한테 이런 말을 먼저 꺼내는 게 처음이라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걱정돼?”

 

 “어? 뭐, 걱정까진 아니고…….”

 

 “박현수. 내가 지금 속도 메슥거리고 머리도 겁나 아프니까 일단 우리 라면부터 먹고 말하자.”

 

 “…….”

 

 남매는 조용히 라면만 먹었다. 현지는 평소라면 나트륨 걱정한다고 절대 먹지 않는 국물까지 전부 들이켰다. 그리고 두통제까지 챙겨 먹고, 배불러서 뒹굴뒹굴하고 있는 배추의 배를 문질문질 했다. 현수는 그 옆에서 그냥 누나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제 새벽에 너 나가는 거 소리 들었어.”

 

 “어? 아, 그게…….”

 

 “연이 씨한테 관심 있어?”

 

 “어? 그게 뭐…….”

 

 “그거 하지 마.”

 

 “…….”

 

 “그러지 마.”

 

 평소 현지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했다. 현지가 이런 표정과 말투로 말하는 건 진짜 심각하게 말하는 거라는 걸 현수는 알고 있었다. 단순히 동생에게 여자가 생기는 게 샘이 나서도 아니라는 것도. 그럼에도 이런 참견이 기분도 나쁘고 반발심이 들었다.

 

 “……왜?”

 

 “왜라니?”

 

 “왜 선생님한테 관심 가지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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