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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른 은하에 해적선 하나
작가 : 과하객
작품등록일 : 2018.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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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초인의 길 (3)
작성일 : 18-12-31     조회 : 520     추천 : 1     분량 : 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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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장. 초인의 길 (3)

 

 #8. 앞 장면의 연속. 해후(邂逅)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에는 간디080의 커다란 머리통이 있었다.

  “깨어났군.”

  그가 말했다. 시선을 돌려 주위를 보았다. 낯익은 얼굴들이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나는 그리던 고향에 돌아왔음을 알았다.

  “자네가 마지막 생환자라네. 우리는 다시 뭉쳤다네.”

  김진욱101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오신과 알렉산더의 모습도 보였고 오덕양095의 앳된 얼굴도 보였다. 왕선생이 음식을 가득 담은 쟁반을 번쩍 들고 들어오는 양도 보였다.

  “우주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일세. 자신의 안에서 일어난 병든 세포의 반역을 불가사의한 생명력으로 치료하여 끊어진 역사를 재생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후일 내가 코넬099로 전생테를 확립시킨 후 간디080에게서 들은 말이었다. ‘태양계 최후의 전쟁’으로 인해 우주 밖으로 날아갔던 영혼들이 우주의 불가사의한 생명력에 의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는 뜻이었다.

  “불행한 것은 우리에게 전쟁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일세. 우리는 해적선 신천지호의 승무원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엮어 나가야 하는 고독한 처지에 있다네.”

  간디080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게 새로운 운명이 주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나는 재생 전의 기억을 잃은 젊은 해적이었다. 간디080은 “우주가 병든 세포를 치료하며 남긴 최소한의 상흔”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9. 황제 류우에 관한 어떤 사가의 기록

  우주력 887년부터 899년까지 은하 우주의 셋 중 둘을 지배했던 은하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 신비스러운 행적으로 인해 이설이 많다. 전신인 통령정부로부터 별다른 정변 없이 권력을 물려받은 점도 그렇지만, 한창 위세를 떨치던 중에 소리 없이 사라진 점도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은하제국이 전신인 통령정부와 마찬가지로 우주사에 비물리적인 어떤 현상의 하나로 비쳐지고 있음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은하제국의 역사는 황제 일가 개인의 역사라고 할 만큼 황제의 비중이 컸다. 초대 황제인 류우510이 통령정부 대리인의 신분으로 권력을 잡고 등극한 이래 3대의 황제가 모두 명군으로 꼽히는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이 이룩한 내치 외정의 업적이 후신인 은하연방의 영화로 이어져 오늘날의 우주를 지구계 인류의 생활 터전으로 만든 근간이 된다.

  초대 황제인 류우510이 내치의 안정에 주력하기 위해 용병들을 활용한 국경 정비를 서둔 반면에 2대 황제인 류우511은 대대적인 원정으로 숙적인 성간연맹을 멸망에 가까운 상태로 몰아넣는다. 그는 성간연맹이 수도로 삼던 마젤란 성운계 내의 한 항성계에 속한 ‘제3지구’에 대군을 상륙시키고 친히 군정을 펴서 적국의 시민들을 진심으로 신복하게 만들었다.

  류우511의 위대한 점은 정복자로서의 치적보다 위정자로서의 폭넓은 소양에 있었다. 그가 성간연맹 원정 말기에 적지의 수도에 호위 없이 상륙하여 옥쇄를 부르짖던 적 수뇌부를 항복시킨 일화는 진심으로 전란을 종결시키기 위해 노력한 명군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실례로 알려져 있다.

  3대 황제인 류우512는 사가들 간에 가장 많은 논란을 부른 인물이다. 그는 재임 기간 내내 어떤 종교의 비의(秘意)에 심취되어 스스로 승려가 되는 일면 전 우주에 사원을 짓는 등의 기행을 보인 끝에 출가를 위해 왕관을 버렸다. 그의 출가가 황제 일가의 몰락으로 이어져 다시금 민주국가 은하연방이 들어서게 됨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은하제국 황제 3대의 생애와 존립 이유 등을 연구한 사가들은 특히 마지막 황제인 류우512에 주목하고 그가 옥좌를 버릴 만큼 몰두했던 종교의 비의에 대해 많은 연구 성과를 남기고 있다. 필자는 여러 가지 설 중의 하나인 허무주의론에 동조하는 사람인데 그와 관련된 예의 종교 기록들 중 특히 관심을 끈 부분은 다음과 같다.

 

  (대저 우주 안의 생물체 중 으뜸은 인간이라, 인간 되어 태어남을 가장 큰 인연의 결과로 보노라.

  무릇 인간 된 자는 알지니 인간이란 신의 버금이요 대리자이니 인간 된 구실을 다하여 우주 질서를 집행할 의무를 지노라.

  그대 깨달았거든 구실을 다하라. 깨달음은 곧 의무를 말함이요 해방이 아니니 얻은바 깨달음을 나누어 모든 이에게 경지를 주고자 함이노라.

  한데 어찜이뇨. 그대 떠나려 하는도다. 맡은 바 의무가 헐함을 의심하여 더 많은 번뇌를 사려 하니 그 속된 집착을 어이할꼬.

  작은 집착을 버리는 이는 더 큰 집착을 취함이니 깨달음이 해방이 아님은 이 까닭이라.)

 

  필자는 류우512가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싫증을 느껴서 옥좌를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의 으뜸이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에 허무를 느껴 더 큰 집착의 대상을 찾아 세간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축에 든다. 류우가(家)의 선대가 전설의 해적선 신천지호의 선장 김진욱과 한 여인을 두고 사랑을 다투었음은 신화로 전승된 바 있거니와, 원념이 성취되지 못한 종말에 실망하여 모든 것을 던진 최후를 찾았음이 옳은 답일까 싶다.

  류우 가계 512세대의 정화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황제 류우512의 최후의 모습은 몇 가지 이설이 있지만 필자는 최근에 한 난파선에서 발견된 황제 복장의 시신에 주목하고 싶다. 예의 시신은 난파선의 조종실 좌석에 정좌한 채로 전망 스크린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고전극 속에 등장하는 황제의 정장을 하고 있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필자는 예의 시신을 류우512의 것으로 믿는 축으로 그의 그러한 최후를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때 황제였던 이가 그리던 무언가를 찾아 우주를 떠돌다가 끝내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임했고, 한 시절의 영화와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갈등으로 그러한 최후의 모습을 남겼으려니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 지곤 한다.

  필자는 그가 옥좌를 버린 이유를 끝없이 무언가를 찾아 우주를 헤매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결론을 내린다. 이는 그의 필생의 적 김진욱과 그의 부하 해적들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테지만, 류우512의 경우 빼앗긴 여인이 연적을 택했음을 알고 있는 경우의 방황이었으니 그 고독의 깊이는 짐작하기에 남음이 있다.

 

 #10. 방랑자 황제

  끝없이 다가오고 멀어지는 별들의 세계 속을 한 척의 난파선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미 동력을 잃은 지 오래였으므로 마지막 동력이 남긴 관성이 유일한 추진력이었지만 본시 선체가 완벽하게 설계된 덕택에 본래의 속력인 아광속을 잃지 않고 있었다. 빛의 속도를 돌파하면 신의 경지가 보인다고 믿고 끝없이 과속을 추구하던 시대로부터 자연 본래의 모습이야말로 신이 내린 은혜의 표상인 것으로 믿음이 환원되기까지 수없이 거듭해 온 시행착오의 결과가 동력을 잃은 난파선에게 아광속의 여행을 허락하게 했던 것이다.

  류우512는 자신을 또 다른 객체의 위치에 놓고 죽음 후의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 사체의 주인은 죽을 때 산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았군. 아름다운 죽음이란 죽은 자가 남길 수 있는 최대의 예의일 텐데 이런 추한 모습이라니 재생이 못된 것은 당연한 벌칙이었겠군.

  나의 주검의 모습은 그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생전에 은하 우주 제일의 인물이었던 사람다운 멋스러운 죽음이라고 할까. 황제였던 자가 황제였던 시절을 최후의 모습으로 남긴다는 것은 세속의 인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경멸을 보내는 이도 없지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한 이름 모를 선원으로 죽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죽음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그들에게 류우 가계 최후의 인물은 결코 세속의 영화에 연연하던 이가 아니었노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황제의 복장으로 죽음을 맞았다고 세간의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을 터이지만 그들만은 알 것이다. 류우가(家) 최후의 인물은 결코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해서 황제로서의 주검을 남긴 것이 아니고 어떤 비의를 전하기 위해 그러한 모습을 남겼을 것이라고. 그들은 내가 전하고자 하는 뜻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줄 유일한 친구일 것이다.

  좋은 적은 좋은 친구와 통한다고 했지만 나는 영원히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므로 친구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역시 나는 그들의 친구이고 이는 최초의 만남 이후 900년의 세월 동안 변함없이 의식해 온 사실이다. 한때의 믿음과 지난 세월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미움의 세월은 내가 그들에게 보낸 못난 질투의 산물이었을 뿐 그들이 스스로 친구의 예를 잃은 적은 없었다.

  그들은 나의 친구가 아니었지만 나는 영원히 그들의 친구인 것이다. 그들은 알 것이다. 내 질투는 한 여인의 사랑을 잃은 데 대한 분노일 수도 있지만, 한때의 친구들로부터 소외된 데 대한 외로움이 더 큰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최후가 오고 있다. 몸 안의 에너지는 바닥이 난 지 오래고 영혼만이 생기를 잃은 지성을 지탱하여 최소한의 의식을 유지시켜 주었다. 이제 그마저 버릴 때가 되었다.

  죽음은 영원한 평화라고 하는데, 사랑도 미움도 우정도 다 버린 어떤 안정된 경지일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내 몸에 제재를 가하여 다시는 이 기억으로는 재생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다.

  류우512는 영원히 죽는다. 아울러 류우 가계의 과거 기억들도 이것으로 단절된다. 나를 친구로 알고 있을 좋은 적들이여. 그대들도 오라. 나 먼저 왔던 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노라.

 

 #11. 앞 장면의 연속. 어떤 사가의 기록. 한 시대의 종말, 그 결론

  최후의 황제 류우512의 실종 이후 은하제국 시대가 마감되고 의회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은하연방이 성립된 후 은하 우주는 하나의 중앙 대국과 변경의 군소 국가군으로 나뉘어 역사상 보기 드문 평화를 이룬다. 은하제국은 은하 우주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 전쟁이 없는 시대를 만든 후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다.

  은하제국의 유산을 물려받은 은하연방은 은하 우주 유일의 강대국으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하고, 은하 우주의 패권을 놓고 세력을 다투던 성간연맹은 변경의 군소 국가들의 연합체로 전락하여 명목뿐인 국체를 유지한다.

  이 무렵의 해적선 신천지호는 은하 우주 유일의 이질적인 존재로 은하연방군과 성간연맹군 모두의 추적 대상이 된다. 양국은 관과 군의 전력을 동원하여 해적선 신천지호를 뒤쫓는다. 이 시기의 언론기록을 보면 시민들이 집단격투기 경기를 관람하듯 추적상황의 중계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전설의 해적선 신천지호의 말류를 추적하여 몇 낱의 장을 엮으려 한다. 지구계 인류가 고향별을 떨치고 나와 엮은 우주사 1000년은 신이 빚은 순환의 한 고리에 불과할 테지만, 가장 극적인 1000년을 살았던 해적선 신천지호를 위하여 기록을 남기는 것은 신이 우리를 내신 뜻에 충실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이미치 19-02-26 16:13
 
과하객님!
작가분이셨군요. 오랜만에 뵙네요! 화이팅입니다!
콜비송 19-04-10 16:17
 
* 비밀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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