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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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가 된 암 덩어리
작성일 : 24-05-02     조회 : 16     추천 : 0     분량 : 4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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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화

 악귀가 된 암 덩어리.

 

  바티칸 박물관 천장에 라파엘로가 그린 여신의 몸 같았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 같았다. 나는 용천이 감긴 손바닥을 목덜미로부터 아래로 내려갔다. 바디에 터치를 하지 않고 1센티 정도 띄어서 훑어갔다. 손바닥에서 강력하고 붉은 기운, 레이저 광선이 뿜어져 나갔다. 베아트리체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 흐~음, 아~

 

 이따금 원초적 말초를 건드려서 그런지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번엔 왼손 손바닥을

 풍만한 가슴과 골에 대고 훑어 내려왔다. 베아트리체가 움찔움찔 반응을 보였다.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성경의 어느 구절을 들릴 듯 말 듯 외웠다. 명치 부분에서 손바닥을 펴 기를 불어넣었다. 강력한 불빛이 레이저 광선처럼 뻗어 나왔다. 악귀가 타는지 검은 연기가 숨구멍을 통해 모락모락 올라왔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손을 피부를 뚫고 깊숙이 넣었다. 반고체 상태의 겔 속에 손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베아트리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용천은 몸속에서도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용천은 암으로 몽우리 진 베아트리체의 내장의 장기(臟器)를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붉은 가시광선(可視光線)을 쏘며 암을 죽여 나갔다. 암은 악귀가 되어 용천을 물어뜯었다. 예리한 면도칼로 상채기를 내듯 손이 쓰리고 아팠다. 용천은 암을 삼켰다. 뿌리가 깊은 췌장암, 위암 덩어리를 끄집어내 알콜이 든 세숫대야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자궁 속으로 용천을 넣어 지구상의 어떤 약이든 의술이든 듣지 않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자궁암 악귀 목을 비틀었다. 칠성장어처럼 장기에 달라붙은 악귀는 괴성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죽어 있었던 말초신경이 되살아났다. 출산의 고통이 아니라 희귀한 경우지만 출산의 오르가니즘이 갈증을 부추겼다. 말초를 바늘로 찌르듯 베아트리체는 황홀경에 몸을 솟구치고 심하게 떨더니 열락(悅樂)으로 빠졌다. 그리고 혼절했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새카맣게 굳은 자궁암 덩어리를 뽑아내 세숫대야에 넣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 맺혔고 등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용천도 기진맥진했다. 용천을 직호문녹각제도장구에 꽂힌 칼집에 꽂으려다 그만뒀다.

 

 용천을 위한 길이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먼저 자궁암 악귀를 완전히 없애는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는 용천을 쉬게 할 수가 없었다. 깊은 잠에 빠진 베아트리체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봤다. 베아트리체는 걷고 있었다. 온 천지가 아름다운 꽃들로 만발한 꿈 밭을 날 듯이 걸었다. 그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숙면에 빠진 베아트리체 가슴께까지 부드러운 시트를 덮어주고 세숫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 * *

 

 수진 누나는 마당 가장자리에 모닥불을 피우고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야경이 아름다운 창원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찬 듯한 가을바람이 맺힌 땀을 식혀 등짝이 찹찹했다. 그러나 기분이 좋았다. 몸이 한결 가벼웠다. 뿌듯함 때문일 것이다.

 

 - 누나, 수진 누나!!

 

 쩌렁쩌렁 뒷산이 울리게 크게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승전보를 알리려고 달려 온 병사의 마음으로 불렀는데 공주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멋있어 보이면 안 되나? 내 주제에... 금방 체념하고 세숫대야를 들고 터덜터덜 모닥불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보니 누나는 이어폰을 끼고 살짝 잠이 든 거 같았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잠이 들었다. 탁자에 암 덩어리가 든 세숫대야를 놓았다. 자는 누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흠잡을 데 없는 미모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고혹적인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입맞춤해 봐? 무례하고 무도한 생각을 하다가 언감생심(焉敢生心) 이시하라 유우 꼴 날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대신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누나 목덜미에 알콜로 닦은 손바닥을 갖다 댔다.

 

 - 으아, 차가워, 뭐야?!

 

 화들짝 놀란 누나가 스프링 튀듯 뛰어올랐다.

 

 - 야아~ 씨, 놀랬잖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듯 내 가슴을 쳤다. 그리고 안겼다. 내가 등을 토닥였다.

 

 - 어머니는?

 - 깊은 잠에 빠졌어, 평온한 모습으로...

 - 잘 된 거 맞지?

 - 응, 힘들었지만, 여길 봐, 이게 악성 암 덩어리야, 큰어머니 몸에서 떼어 낸 거야.

 - 아아, 이거야? 와, 이렇게 큰 암 덩어리가 들어 있었어? 징그럽다... 왜 이렇게 무섭게 생겼어?

 

 내가 세숫대야에 든 암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걸 본 누나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말했다.

 

 - 잘 봐, 이게 위암 덩어리, 이건 췌장암 덩어리고 위암 덩어리를 반쯤 먹고 있는 이게 악성 중에 악성이 고질이 돼

  악귀로 변한 자궁암 덩어리야.

 - 이게 아주 독한 놈이구나...

 - 조심해, 누나!

 

 누나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뛰어오르는 자궁암 악귀 덩어리를 용천이 스며든 왼손으로 낚아채 에탄올 알콜이 든 세숫대야에 깊숙이 담갔다. 손에서 나오는 붉은 가시광선이 자궁암 덩어리를 지졌다. 어느새 위암 덩어리와 췌장암 덩어리를 먹어 치워 몸을 불리고 더 악해진 자궁암 덩어리가 몸부림을 치며 발악하다가 기진맥진해져 축 늘어졌다. 검은 먹물을 내뿜었다. 검은 먹물이 에탄올 알콜에 녹아 하얗게 되더니 한 줌의 연기로 사라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누나는 너무 놀라 얼어붙었다. 영화나 책에나 있을 법한 초자연적인 현상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자 혼란스러움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누나를 살포시 안아 부드럽게 어깨를 쓰다듬었다. 용천에서 나온 푸른 불빛이 누나의 전신을 감돌면서 긴장을 풀어주었다.

 

  - 몽대야, 무섭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가 없어, 이게 현실이야...

 - 응,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어, 이 오컬트한 세상을...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 구나, 인간이 참 미약한 존재구

  나 하는 생각도 들고... 누나 주둥이가 큰 병이나 대형 양주병 같은 거 있어? 이 자궁암 악귀 덩어리를 가두어놓게.

 - 음... 있어, 큰 양주병이면 되지? 잠깐 기다려...

 - 강력 본드도 있으면 가져와.

 

 누나가 상기된 표정으로 집 안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 일만은 내가 꼭 해야만 한다는 듯이...

 

  수진 누나가 대형 술병과 강력 본드를 가져왔다.

 

 - 조니워커의 다이아몬드 쥬빌리(Diamond Jubilee)야.

 - 가격이 장난이 아니겠는데?

 

 누나가 가지고 온 술병이 보기에도 화려해 주위를 압도했다.

 

 - 이건 보통 술병보다 서너 배 큰 대형 술병이라 약 2억 5천에서 3억 정도할 걸...

 - 뭐?!

 - 술을 그렇게 즐기지 않아서 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술

  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격언 정도 고작 아는 수준이니 주당으로 오해 말기를...

 

 누나는 술을 즐기지 않으니 술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스에마쓰 아야코 집에서 아야코 아버지인 스에마쓰 혼 교수에게 2잔 얻어먹고 뻗어서 잔 기억이 떠올랐다. 뭐라 하더라 진 토닉의 대명사 봄베이 사파이어 리벌레이션인가? 그 술도 가격이 어마무시했는데... 집 한 채 값을 호가하는 이런 비싼 술을 사는 사람도 있긴 있구나, 우리 같은 서민들은 꿈도 못 꿀 일인데,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갑자기 떠올랐다. 일종의 용심이었다.

 

 - 영국 여왕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대, 아마 여기에 쭉 박힌 하프 캐럿 다 이아몬드 때문에 더 비싼

  거 같아.

 

 바카라 크리스털 케이스로 만들어진 술병 뚜껑을 땄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냄새가 진했다. 콜라에 취하는 사람도 이 조니워커의 다이아몬드 쥬빌리 향기를 맡으면 마시고 싶어질 만큼 술향기가 강렬했다.

 

 - 누나 술병을 꽉 잡아, 무서워서 놓치면 안 돼...

 - 무섭지만, 알겠어.

 - 무서우면 내 눈을 쳐다봐.

 - 싫어, 그냥 눈을 감을 거야...

 - 왜?

 - 니 눈은 음흉해서, 큭...

 - 날 못 쳐다보는 이유가 따로 있어서가 아니고?

 - 까불지 마... 빨리 해, 또 그러면 확 발로 찰 거야.

 - 내 눈에 빠지고 싶지?

 - 아, 정말, 유치해 죽겠어...

 

 누나가 발로 차는 시늉을 했다.

 순간 내가 자궁암 악귀 덩어리를 왼손으로 건져 올렸다.

 으아~ 하고 누나가 눈을 질끈 감고 술병 몸통을 두 손으로 깨뜨릴 듯이 꽉 잡았다.

 나도 오른손으로 술병을 잡고 왼손으로 악귀로 변한 자궁암 덩어리를

 재빨리 다이아몬드 쥬빌리 병 속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자궁암 덩어리가 독한 위스키 성분에 못 견뎌 지랄발광을 떨었다.

 잔뜩 겁먹은 누나가 놀라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웃으며 윙크를 했다.

 술병이 깨질 듯이 흔들거리다가 금세 조용해졌다.

 공기가 못 들어가게 하는 것도 있지만 단단하게 고착시키기 위해 술병 뚜껑 주위로 우선 테이프로 감고 그 위에 강력 본드를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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