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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검, 악마의 칼날 위에 서다.
작가 : 박현철
작품등록일 :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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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이시하라 유우Ⅱ
작성일 : 24-05-07     조회 : 12     추천 : 0     분량 : 4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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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화

 베일에 싸인 이시하라 유우Ⅱ.

 

  이시하라 유우...

 동경 도지사와 일본 내각의 수상을 지냈으며 현재도 막후에서 일본 정치를 쥐락펴락하는 일본 최고 가문의 대들보 이시하라 신따로가 친할아버지다.

 아버지 이시하라 신조 (石原 晋三)도 현재 자민당 간사장으로 있다. 일본의 건축사가로 문화재 전문가며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던 세키노 다다시(関野 貞 : 관야정)가 외증조할아버지다. 외증조할아버지 못지않은 건축사가며 고고학의 권위자인 세키로 마사루(関野 克)가 외할아버지다. 외증조할아버지가 지은 건물 여러 채가 예술적 유명세로 비싸게 팔려 부를 축적했고 그걸 바탕으로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일본에서도 5대 재벌에 속했다. 이시하라 유우 엄마의 뛰어난 사업 수단이 크게 작용했다. 이시하라 집안의 배경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루머가 한때 돌았다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아무리 뒷배경이 좋다고 해도 경영자의 자질은 중요했다. 이시하라 유우 엄마는 이시하라 유우가 엄마를 닮았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비상한 머리와 과단성 있는 결단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약육강식 밀림에서의 잘났다는 남자들도 이시하라 유우 엄마의 카리스마에 기가 질려 나가떨어졌다.

 안하무인 야쿠자 두목도 이시하라 유우 엄마를 보자 복지부동 오줌을 쌌다는 말이 우스개로 떠돌 정도였다. 그 뒤로 누구도 이시하라 그룹이 배경 탓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직 실력으로 일군 그룹이라고 일본 국민은 믿었다.

 

 이시하라 유우는 수재들만 우글거린다는 도쿄의 카이세이(開成) 영재고등학교 출신이

 다. 이과 3류라는 도쿄 의대에 들어갔지만, 고고학을 공부한다며 바로 사학과가 있는

 문과 3류로 옮겨버렸다. 조달호 교수 말로는 그해 두 명의 걸물이 누가 일본 전체 톱

 을 끊는지 지대한 관심을 보였는데 결과는 이시하라 유우가 끊었다고 했다. 그것도

 싱겁게 승부가 갈렸다고 했다. 따지면 찝찝한 구석도 있지만... 그 찝찝한 구석이 경

 쟁자인 스에마쓰 아야코가 시험 도중 배가 아파서 포기했다는 거였다. 시험을 포기한

 확실한 이유는 모르는데 긴장 때문이라는 말이 지배적이라고 했다. 근데 배가 아파

 포기할 때까지를 놓고 채점을 해보니 이시하라 유우는 1개를 털렸고 스에마쓰 아야코

 는 만점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겨도 이시하라 유우는 찝찝했던 거였다. 당연 이시하

 라 유우가 전체 시험문제 중 1개 틀리고 도쿄 이과 3류 뿐만 아니라 도쿄대 전체 수

 석을 차지한 건 불 보듯 뻔한 거였다.

 

 그러나 그 둘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시하라 유우는 그해 문과로 전과했고, 스에마쓰 아야코는 하버드니, MIT니, 옥스퍼드니, 세계 유수의 대학을 조금씩 다니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다.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또한 이시하라 유우도 동경대학을 1년 만에 졸업하고 스에마쓰 아야코 전철을 밟아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북경대를 완벽하게 섭렵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천재들은 세상의 관심 등은 애당초 아랑곳없었다. 주변에서 야단법석일 뿐이었다. 싸움 붙이기를 좋아하는 언론과 입방아들이 그렇게 만든 거였다. 거기에다 일본 전통 화족 스에마쓰 가문과 신흥 귀족 이시하라 가문의 은근한 경쟁 심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준 거였다. 그래 그게 무엇이라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도 못 들어줘, 하며 깨춤 한번 춰 준 거였다. 오히려 반대로 그들을 냉소적으로 쳐다보면서 말이다.

 은밀히 따지면 이시하라 유우가 지는 걸 싫어했다. 스에마쓰 아야코와 막상막하였지

 만 쓰에마스 아야코는 관심 없는데 이시하라 유우만 보이지 않는 신경을 썼다.

 

 학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유우는 일본 최고 명문 카이세이(開成) 영재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아야코는 가쿠슈인(学習院) 여자 고등과로 간 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중학교는 명문 카이세이 영재중학교 (開成英才中学校)에서 같이 다녔다. 친구지만 경쟁자였다. 유우는 열심히 노력하는 천재라면 아야코는 공부에는 별 관심 없고 꿈꾸는 몽상가처럼 엉뚱한 짓을 잘했다. 그러나 전교 1등은 서로 번갈아 가며 했다.

 모두 아야코가 유우처럼 카이세이 영재고등학교로 갈 거라 예상했지만 아야코는 가쿠슈인 대학 여자 고등과로 진학했다. 가쿠슈인 대학은 환호성을 질렀다.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흥분했다. 아니나 다를까 카이세이 영재고등학교에 갈 우수

 한 영재(英才)들이 스에마쓰 아야코를 보고 몰려들었다. 졸지에 몰락에 가깝게 빛이

 바랜 가쿠슈인이 명문 학교 반열에 올라섰다. 작은 소동도 있었다. 이시하라 유우가

 친구 따라 강남 가야 한다며 가쿠슈인으로 전학 가겠다고 해 친가인 이시하라 집안과

 외가인 세키노 집안에서 난리가 났고 했다. 이시하라 가문과 세키노 가문은 대대로

 카이세이 출신이 대부분 차지하였기에 카이세이 출신이 아니면 이시하라 및 세키노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취급받아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파문까지

 당하기도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물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화족(일본 귀족)인 스에마쓰 가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나마 융통성은 있었다. 황족과 화족 자녀들이 가는 가쿠슈인이나 카이세이 또는 전통 있는 명문고 진학은 허용했다.

 

 잠자코 있던 엄마가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읍소(泣訴)와 공갈 협박에 움직여 고집

 불통인 이시하라 유우를 겨우 달래 주저앉혔다. 사실 유우 엄마는 아야코가 있는 가

 쿠슈인에 가서 경쟁하기를 바랐다. 지면 잠을 못 자는 유우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는

 말이 있듯이 유우 엄마가 그랬다. 끝까지 붙어서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가업(家業)을

 일본 최고의 그룹으로 키운 비결이었다.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가문의 중추적인

 인물이 거의 카이세이 출신인데 어떻게 가쿠슈인 출신인 이시하라 유우가 두 가문을

 이끌겠냐는 말에 엄마가 고심 끝에 결정한 거였다. 이시하라 유우는 이미 두 가문을

 이끌 재목(材木)으로 물망에 올랐기에 더욱 그랬다. 조용하게 타이른 엄마 말에 이시

 하라 유우는 고집을 꺾고 소수정예의 남고부, 여고부로 나누어진 카이세이 영재 고등

 학교를 그대로 다니기로 했던 것이었다.

 

 작은 소동은 이것만 아니었다. 이시하라 유우 따라 가쿠슈인으로 전학 가려고 했던 수재(秀才)들 때문이었다. 이시하라 추종자들이 가쿠슈인 간다며 전학 서류를 교무실에 제출해 선생들이 수업을 접어두고 가지 말라며 말린다고 북새통이 났던 거였다. 하마터면 1학년 3분의 1이 갈뻔했다고 했다. 어떤 선생은 공황장애가 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명분과 이미지 메이킹을 좋아하는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역시 저팬틱하다고 생각했다.

 

 조달호 교수가 두 걸물(傑物)이라고 말한 건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천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부는 기본이고 다방면에 재능이 뛰어났다는 것이었다. 예술, 체육, 예능, 언어, 과학, 의학, 철학, 잡학 등등... 스에마쓰 아야코와 이시하라 유우는 모든 일본인들의 기대에 완벽하리만큼 부응했고, 거기에다 쌍벽을 이뤄 경쟁 구도까지 옆에서 부추기니 아야코와 유우에 향한 일본인들의 맹신적(盲信的) 열광은 점입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 굴지의 재벌가(財閥家)의 자랑스러운 에이스니, 일본인들 모두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충족하고도 미모가 평범하거나 그럭저럭 생겼다면 대중들에게 외면을 받았을 텐데, 미모 또한 빼어나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따로 없다는 소리를 귀에 못 박힐 정도로 회자(膾炙)되었다.

 

 나루히토 황태자 고명딸 아이코 공주가 왕따를 당했다, 거식증으로 황실이 긴장했다, 가쿠슈인에 간다 안 간다, 아이코 공주의 사촌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의 결혼이나 진학 문제 그리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아들이 없으니 동생의 아들인 히사히토 왕자가 나루히토 후계자가 돼야, 한다는 등 분분한 의견은 뒷전에 밀렸다.

 신문의 가십난에 겨우 초라하게 오르내릴 뿐 국민의 관심에서 비껴나 있었다.

 오로지 스에마쓰 아야코와 이시하라 유우의 이야기만 궁금하였다. 아야코와 유우의 일거수일투족이 일본 국민들의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길거리 신문 가판대의 판매고(販賣高)가 유우와 아야코의 이야기가 있고 없고 따라 달라진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였다.

 하느님이 재능을 한 사람에게 다 몰아주지 않는다는 말은 아야코와 유우에게는 해당 사항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인들이 원하지는 않았지만, 뉴스의 초점이 되는 화제꺼리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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