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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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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복이 있나니
작성일 : 20-09-29     조회 : 306     추천 : 0     분량 : 5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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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5화 복이 있나니

 

 

 해가 막 떨어진 시간이었다. 아직은 서쪽에 걸린 해가 붉은빛을 남겨 놓아 마당에 누워있던 멍멍이 머리가 불그스름했다. 집안 동물들 담당이었던 정화가 집에 없으니 달래도, 멍멍이도, 고양이들도, 병아리들도 모두 왠지 기운들이 없었다.

 

 그때 나무 지팡이를 짚은 발이 절룩거리며 집을 향해 걸어왔다. 배를 깔고 누워있던 멍멍이가 순간 귀를 쫑긋하더니 ‘멍!’ 한다. 처음에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하다가 갑자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싸리문을 바라보고 섰다. 노미는 저녁준비를 하느라 부엌에서 분주했다. 멍멍이가 계속 ‘멍! 멍!’하고 짓는데 하는 짓을 보아서는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반기는 것 같았다. 노미는 부엌문으로 얼굴만 내밀고 ‘누가 오나?’ 했다.

 

 그때 희미한 저녁 노을빛 속에 한 사람이 나무 지팡이를 짚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멍멍이가 왕왕 짖으며 달려가 반겼다. 그는 멍멍이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니, 나 알아보나?”

 

 멍멍이가 끙끙 앓으면서 왕왕 짖는 소리에 노미가 부엌에서 나와 보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돌처럼 서버렸다.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형수님!”

 

 하며 씽긋 웃는다. 윤화다. 어찌 이걸 말로 할까. 어떻게 이걸 말로 하나. 노미가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윤화를 향해 주춤주춤 걸어갔다.

 

 “도.... 도련님....”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았다. 윤화는 그런 노미에게 다가가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리고 등을 두드려주며

 

 “댕겨왔습니더.”

 

 한다. 마루에 진화가 나와 섰다. 마루에 서 있는 진화를 발견한 윤화는 해맑게 웃는다.

 

 “형님!”

 

 하며 진화를 향해 아기처럼 웃으며 다가가는데 나무 지팡이를 짚은 다리를 전다. 진화 눈이 뒤집어졌다.

 

 “니....니 다리는..... 와 그라노?”

 

 진화는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살짝 다친깁니더. 부러지진 않았습니더.”

 

 했다.

 

 “보소, 야 옷 좀 내주이소.”

 

 하고 진화가 낮은 목소리로 노미에게 말했다. 노미는 얼른 방으로 가 윤화 옷을 꺼내왔다.

 

 “아부지는.... 아부지 뵙고.”

 

 하는데 진화가

 

 “아부지는 서울에 가셨다. 남화가 서울에서 대학 다닌다. 의대다. 남화가 아부지 병을 고쳐보겠다고 모시고 갔다. 내달에 오실끼다.”

 

 진화는 그저 나오는 대로 집안 돌아가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무슨 정신으로 말을 하고 있나 싶었다.

 

 그제야 윤화는 진화 앞에 서서 형이 눈앞에 있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왜 죄인같은 기분이 드는지.... 미안하니 윤화는 자꾸 웃음만 난다. 진화는 눈앞에 있는 놈이 윤화가 맞나 싶다. 집안에서 제일 하얗고 뽀얗던 녀석이 눈이랑 이빨만 하얗고 온통 새까맣다. 몸은 비쩍 말라서 뼈밖에 안 남았다. 그렇지 않아도 형제들 중 덩치가 제일 없는 녀석이 더 작아져서 왔다.

 

 윤화가 주춤주춤 다가가 진화를 끌어안았다. 진화는 그렇게 안겨 오는 윤화를 와락 안아주지도 못하고 기가 막히고 기가 막혀서 그저 끌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서 있었다.

 

 “아이고, 형님! 내 쫌 안아주소.”

 

 한다. 그제야 진화는 윤화를 가만히 안아본다. 한 줌도 안 되는 것 같다.

 

 “니.... 니 와 이래 작아져서 왔노. 니... 니 와 이래....”

 

 하며 진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딴 아 들은 어딨소?”

 

 하며 윤화가 동생들을 찾았다.

 

 “석이네 놀러갔습니더.”

 

 하며 노미가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석이라는 말에 윤화 눈이 번쩍한다.

 

 “석이는... 석이는 괘안습니꺼.”

 

 “야, 죽다 살았지만 괘안습니더. 괘안습니더.....”

 

 하고 노미가 말했다. 윤화는 세상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옷부터 입자. 여보, 밥! 아니 물도 좀 끓여가 씻깁시다.”

 

 하고 진화가 노미를 재촉했다.

 

 그렇게 윤화가 진화 손에 이끌려 건넛방으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노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하며 부엌에 들어와서도 발만 바쁘다.

 

 그때였다. 건넛방에서 진화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노미는 깜짝 놀랐다. 노미는 진화가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기.... 이기 모꼬! 이기.... 이기 사람 등이가! 윤화야!..... 윤화야!”

 

 노미는, 할머니는 그때 진화가, 우리 할아버지가 마치 황소 배때기를 생으로 째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하셨다. 살아있는 소를 생으로 배를 자르면 아마 그런 소리가 날까 싶으셨다고 하셨다. 그런 처참한 통곡 소리를 할머니는 평생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진화는 온몸을 쥐어짜며 울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처참한 광경에 진화는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놀란 노미가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윤화가 웃통을 벗은 채로 벽에 반쯤 기대어 앉아 있었다. 진화는 윤화의 등을 향해 고개를 묻고 엉엉 울고 있었다. 차마 그 등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처참하게 울었다. 정작 윤화는 그저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앉았다. 윤화의 등을 본 노미는 ‘헉’하며 그만 자기 입을 손으로 가렸다.

 

 등뼈가 다 드러난 마른 등에 새까맣게 딱지가 덕지덕지 앉아 마치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맞았는지 몽둥이 자국이 그대로 남아 등이 밭고랑처럼 울퉁불퉁했다. 맞은 곳을 또 맞고 또 맞은 모양이다. 맞은 자리가 다 낫기도 전에 또 맞고 또 맞은 모양이다.

 

 윤화는 부끄러운지 바닥에 있던 자기 옷을 끌어다 입었다. 오랜만에 입어보는 한복 저고리였다. 손에 익은 대로 저고리 고름을 매고 나니 이제야 내가 집에 왔구나 하고 실감이 난다. 형은 통곡을 하며 데굴데굴 구르며 우는데 윤화는 뭐가 좋은지 빙긋 웃기까지 한다. 눈에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맺혔지만 윤화는 울고 있는 진화를 두드리며 달랬다.

 

 “그만하소. 이제....”

 

 그때 와다다 하고 달려들어 오는 소리가 났다. 태화와 민화 그리고 석이다. 세 사람은 보고도 믿을 수 없다. 윤화가 셋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태화야! 민화야!”

 

 얼마 만에 불러보는 내 동생들 이름인가.

 

 “형? 둘째 형 맞나?!!”

 

 태화가 고함치는 소리가 비명소리 같았다.

 

 “형~!”

 

 민화가 와락 달려가 윤화를 부둥켜안았다. 태화도 달려가 윤화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윤화는 두 동생 머리를 마구 손으로 헝클이고 볼을 대고 비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쁜 놈들이다. 태화와 민화는 목을 놓아 엉엉 울며 윤화 목에 매달렸다.

 

 석이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서 있다. 석이를 보니 윤화도 눈물이 터졌다.

 

 “석아! 석아! 이리 온나! 이리.... 좀 온나!”

 

 석이도 달려가 윤화를 와락 부둥켜 안았다. 하도 세게 달려와 안기는 바람에 윤화는 그만 바닥에 쓰러졌다. 다들 그렇게 윤화를 바닥에다 깔아뭉개 놓고 올라타고 누워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은 진화는 아직도 울음이, 설움이 가라앉지를 앉아 흑흑 흐느끼고 있었다. 깔려있던 윤화가 주춤주춤 일어나 앉았는데 민화는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진화가 윤화 등만 바라보며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화는 윤화 옷을 휙 들어 올려 등을 보았다. 윤화는 보지 말라며 몸을 비트는데 이미 태화도 석이도 윤화 등을 보았다.

 

 “이기 뭐꼬? 이기....뭐꼬!! 이기.... 이기 사람 등이가! 이기 사람한테 할 짓이가!!!”

 

 도대체 누구한테도 화를 내는 법이 없는 민화였다. 부산에서 어쩔 수 없이 일본군들을 때려야 할 때도 ‘스미마센(미안합니다.)’라고 하던 민화였다. 민화는 부르르 떨었다. 부르르 떨며 바닥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바닥 구들장이 다 부르르 떨렸다. 민화가 그렇게 벌벌 떨며 우는 것을 노미는 처음 보았다.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없다. 윤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죄인도 아닌데 죄지은 사람처럼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태화는 윤화 등을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윤화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석이는 윤화 손을, 그리고 발을 잡고 앉아 하염없이 흐느꼈다. 그렇게 잡고 있지 않으면 윤화가 또 어딘가로 휙 하고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힘이 없으믄, 이래 되는 기다. 나라 잃은 백성 꼴이 이렇지, 별수 있나. 나라가 못나고, 백성이 못나고, 윗대가리들이 못나면! 이래 되는 기다.”

 

 윤화는 씹듯이 말을 뱉었다.

 

 “사람이 사람한테 이럴 수 있냐 했나? 사람이, 인간이 원래 그런 것들이다. 나보다 약하면 밟고, 나보다 못나면 잡아다 패고, 나보다 좋은 거 가지고 있으믄 빼앗고! 나보다 잘나면 눈꼴시어가 어찌 됐든 발 걸어 넘어뜨려가 망쳐놓고! 그라고는 좋다고 배 두드리는 것들이 그기 인간이고, 사람이다. 약한 게 죄고, 없는 게 죄고! 못난 게 죄다!!”

 

 윤화는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입에 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모두 그 서슬 퍼런 윤화가 순간 낯설고 안타까웠다. 그때 흐느끼다 지쳐 있던 진화가 말했다.

 

 “그래, 그렇다. 니 말이 맞다. 그란데...”

 

 진화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방을 울리고 있었다.

 

 “그라믄, 니도 그랄끼가. 니는.... 그랄 수 있나? 니한테 힘이 생기믄, 니가 힘이 생기가 강해지믄, 니도.... 그랄끼가? 남이 가진 거 빼앗고, 사람 잡아다 패고, 죽이고, 여자들 데려다 욕보이고, 니도....그랄끼가? 니라면 그랄 수 있나?”

 

 순간, 윤화도 동생들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윤화는 진화를 그저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이.... 사람이 원래 그런 거라 했나? 윤화야! 사람이니까, 사람이믄 그라믄 안되는 기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사람한테 그라믄 안되는 기다..... 니는.... 아무리 힘이 생겨도, 절대로 그랄 수 없을 기다.”

 

 잠자코 있던 윤화가 갑자기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흐느낌이 점점 커졌다. 윤화의 터질 것 같은 울분을, 분노를, 슬픔을, 진화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감히 위로할 수도, 아는 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진화는 주춤주춤 다가가 윤화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해주는 거 말고는 진화는 윤화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윤화는 목을 놓아 울었다. 몸부림치며 울었다. 그런 윤화를 진화는 그저 안고 있었다. 그렇게 윤화를 품에 아기처럼 안은 진화를 다들 우르르 얼싸안았다.

 

 노미는 그 모습을 눈에, 가슴에 담았다. 처참하고 비참한 순간이었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노미는 소년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더 할 수 없이 약했지만, 그 누구보다 강했다. 그리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웠다.

 

 

작가의 말
 

 슬퍼하는 자는, 슬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슬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슬픔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아프지만, 단 한 순간도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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