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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
작가 : 정진교
작품등록일 : 20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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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남겨진 아내들
작성일 : 20-09-29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5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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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1화 남겨진 아내들

 

 

 장마당은 이미 곡소리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아들을 잃은, 남편을 잃은 여인들의 오열 소리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수 없는 죽음이 그저 당연한 듯이 일어나던 시절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죽음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 잡혀간 이들이 죽어서 돌아오기는 했어도 내 나라 내 땅에서 우리끼리 서로를 죽여 이렇게 죽 늘어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너무 끔찍한 광경이었고, 믿을 수 없이 참혹한 현장이었다. 당당하던 노미도 어쩔 수 없이 윤화의 팔을 움켜쥐었다. 세 줄로 늘어서 있는 주검들은 얼추 오륙 십구는 되어 보였다. 그때 경찰로 보이는 한 사람이 장부를 들고 다가왔다.

 

 “이름! 주소!”

 

 하고 그가 노미를 향해 외쳤다. 넋을 놓고 있는 노미 대신 윤화가

 

 “정진화.... 구길에서 왔습니더.”

 

 하고 대답했다. 그는 장부를 쭉 훑어내리며

 

 “찾아보소.”

 

 했다. 찾아보라니……. 직접 시체를 찾아가라는 얘기였다. 노미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배를 끌어안았다. 노미는 배 속의 아기에게 이런 흉한 것을 보여주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형수는 여 계시소. 내가 보고 올 테니.”

 

 하고 윤화가 나섰다. 그러자 노미가

 

 “아닙니더. 지 서방님입니더. 지가 봐야 합니더.”

 

 노미의 눈빛은 단호했다. 윤화가 뭐라 한마디 하려는데 민화가 눈으로 말렸다. 민화는 노미 마음을 이해했다. 노미가 직접 봐야 했다.

 

 민화와 석이는 달구지를 지키고 서 있고, 윤화가 노미를 데리고 시체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향했다. 첫 번째 덮개를 윤화가 들추자 흙과 피가 엉겨 붙어 있는 주검의 얼굴이 드러났다. 노미는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진화는 아니었다. 윤화는 지금이라도 노미를 말리고 싶었지만 노미는 그다음 시체 앞으로 가서 섰다. 키가 큰 것이 얼핏 진화 같았다. 노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윤화는 노미의 안색을 살피고는 그다음 시체의 덮개를 들추었다. 역시 진화는 아니었다.

 

 그렇게 노미는 시체 하나하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첫 줄에는 진화가 없었다. 그렇게 둘째 줄이 거의 끝나갈 때쯤, 윤화가 이제는 그저 기계적으로 덮개를 들추고 있는데 노미는 그만 헉하고 숨을 멈추었다. 윤화는 깜짝 놀라 시체의 얼굴을 살폈다. 윤화도 아는 이였다. 윤화는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 성광이었다. 진화를 잡아간 그 동네 형이었다. 미운 얼굴을 대하니 노미는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노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성광이 머리카락이 단정했다. 누가 봐도 그것은 진화의 솜씨였다. 윤화는 거칠게 덮개를 도로 덮어버렸다.

 

 그렇게 둘째 줄이 끝나고 셋째 줄에 이르렀다. 어느새 노미는 죽은 이들의 머리 모양을 살피고 있었다. 누가 봐도 진화 솜씨가 틀림없는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한 이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셋째 줄도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덮개를 연 윤화는 순간 그 자리에 돌처럼 굳었다. 어느새 노미가 미처 다가오기 전에 미리 덮개를 열어 시체를 확인하고는 흉한 몰골인 것은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윤화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노미는

 

 “와예. 찾았습니꺼?”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윤화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형이 아닙니더. 근데.... 와서 보이소.”

 

 노미가 다가가 시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 주검은 복권이었다.

 

 역시나 말끔하게 자른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크게 다친 곳도 없고, 흙이 많이 묻어있지도 않은 말끔한 얼굴이었다. 마치 살아있을 때처럼 환하고 잘생긴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자기를 괴롭히기만 하던 짓궂은 오라버니였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늘 살뜰하게 살펴주던 사람이었다. 진화를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 노미를 좋아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복권이는 언제나 노미네 가족들 일이라면 자기 가족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런 복권이에게 노미는 한 번도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다케짱이랑 왔을 때 같이 아침밥을 차려준 것이 노미가 해 준 전부였다. 노미는 왜 친일파였던 복권이가 공산당이 되어 여기 이렇게 주검으로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윤화는 짧게 애도하는 묵례 만을 하고는 복권의 얼굴을 다시 덮었다. 그러게 세 번째 줄도 끝났다. 진화는 그곳에 없었다. 장부든 사나이가 다가와 물었다. 노미는

 

 “없습니더.”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진화라는 이름 옆에 ‘행불(行不)’이라고 적었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젊은 여인의 자지러지는 통곡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복권이 시체 앞에 배가 부른 여인이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 품에 쓰러져 울고 있었다. 복권이 아버지는 해방되자마자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여동생 내외가 유일한 가족이라고 했다. 딸이 하나 있다고 했고, 아마도 배 속에 있는 아이는 둘째인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광경을 노미는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니 참 고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애끓는 소리로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가엽고, 처참했다. 노미는 애써 고개를 돌려야 했다.

 

 축 처진 노미가 달구지까지 겨우 걸어와서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쓰러지려는 것을 윤화가 얼른 안아 들었다. 그렇게 힘이 풀린 노미를 달구지에 태우고 세 도련님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살아있는 갑소. 살아 있당께. 큰형이 명이 길꺼라고 엄니가 혔소. 절대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랑께.”

 

 석이는 축 처져 있은 민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노미도 석이의 말이 맞기를 바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방님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말할 수 없이 심정이 참담했다.

 

 

 빈 달구지를 끌고 집에 도착하니 태화와 유림이가 와 있었다. 태화는 노미를 향해 달려와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쪽 머리를 한 유림이를 보니 노미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유림이도 노미를 끌어안더니 흐느꼈다. 노미는 같은 여인으로서, 또 아내로서 유림이가 자기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에 노미는 한 세상 여인으로 산다는 것이 새삼 기가 막혀 유림이를 끌어안고 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울었다.

 

 노미는 결국 앓아누웠다. 아무도 누구도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또 가족들은 힘겨운 시간을 함께 버텼다.

 

 

 몇 날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노미는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정신이 드는가 싶다가도 다시 까마득하게 정신이 없어지곤 했다.

 

 꿈속에서 노미는 진화를 찾아 산속을 헤맸다. 멀리 뒷모습이 보여 달려가 손을 뻗어 등을 잡았더니 흰옷을 입은 그가 돌아보았다. 그런데 돌아본 그는 진화가 아니라 복권이었다. 복권이는 환하게 웃었다. 말없이 웃는 그의 얼굴은 환하면서도 또 서글퍼 보였다. 노미는 무어라 말하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복권이는 노미의 손을 잡더니 휙 밀쳐냈다. 노미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같은 곳으로 한없이 떨어져 내렸다.

 

 “형수! 형수님!”

 

 하는 소리에 깨어보니 민화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노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꿨습니꺼?”

 

 노미는 민화와 눈이 마주치자 민망하기도 하고, 꿈이었지만 진화를 찾지 못한 것이 한없이 서럽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울음을 삼켰다.

 

 “지가 소리쳤습니꺼?”

 

 하며 노미가 힘없이 묻자, 민화는

 

 “아니요. 이를 악물고 손만 허우적거리길래 가위눌리겠다 싶어 깨웠습니더.”

 

 했다. 노미는 민화가 말리는데도 주춤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에이구, 밥은예? 시장하시지예? 얼른 아침해야지예.”

 

 하며 나서려는데 밖에 앉아있던 윤화가

 

 “아침이 아니라, 저녁입니더. 형수! 형수 아니라도 밥할 줄 아는 사람 많습니더. 누워계시소.”

 

 하며 낮은 목소리로 노미를 말렸다. 노미는 그만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더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노미가 민화가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났더니

 

 “형수! 더 누워 계시소!”

 

 하며 마루 끝에 앉아있던 태화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러자 노미는

 

 “뒷간에 갑니더. 소피 누러 갑니더.”

 

 하며 방문을 나섰다.

 

 “여보, 언니 뒷간 가시는디 잡아드려라잉~.”

 

 하며 윤화 옆에 앉아있던 석이가 말하자, 유림이와 함께 건넛방에서 아이들을 재우고 있던 다혜가 달려 나왔다. 노미는 손짓으로 다혜를 말렸다. 민화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노미를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쓰러질까 싶어 조마조마하고, 윤화는 좀 멋쩍어져서 길을 내주었다. 태화는 그런 노미를 터지는 눈물을 겨우 삼키며 보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다혜 옆에 석이도 어정쩡하게 서서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내려서는 노미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건너방에는 유림이가 잠이 든 아이들을 조르르 눕혀놓고는 한참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노미를 보고 있었다.

 

 밖은 이미 해가 기울기 시작해 붉은 노을이 깔리고 있었다. 오래 누웠다 일어나는 바람에 노미는 잠시 눈앞이 하얗게 되며 어지러웠지만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마당을 가로질러 뒷간으로 향했다. 하지만 뒷간에 가려고 일어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노미는 마당에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있던 사람이 없는데 산 사람은 그래도 밥을 묵고, 뒷간에도 가고 하는구나.’

 

 노미는 자기 꼴이 우스워 헛웃음이 났다.

 

 ‘시상에 과부 된 여인이 내 뿐이가…….’

 

 노미는 또 그렇게 혼잣소리를 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던 마당이었다. 시집와 가마에서 내려 처음 밟은 마당이었고, 자기와 진화를 가운데 두고 도련님들이 풍물을 하며 빙글빙글 돌던 마당이었다.

 

 저만치 저 장독대 옆에서 미순이랑 윤화가 바닥에 글자연습을 하며 서로 어깨를 맞대고 웃었던 마당이었고, 저 싸리문으로 진화는 만주로 떠났었고, 또 만주에서 돌아왔었다. 저 싸리문으로 새하얀 윤화가 징용에 갔었고, 또 새카맣게 되어 돌아왔었다.

 

 남화가 둥근 안경을 쓰고 돌아왔었고, 또 서현이를 데리고 와 수줍게 서 있던 곳이었다. 석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달구지에 실려 들어온 날도 있었고, 만삭이 된 다혜랑 같이 손을 잡고 들어오며 환하게 웃던 날도 있었다.

 

 민화가 주검이 되어 가마니를 덮은 채 실려 나간 날도 있었고, 또 기적처럼 살아 돌아와 서 있던 마당이기도 했다. 태화가 예쁜 돌멩이들을 주워와 노미 앞에 내밀었고, 그 추운 겨울 민화와 함께 맨발로 징용 트럭에 끌려가기도 했었다.

 

 정화가 달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장정들을 때려눕힌 곳이었고, 또 학생복을 입고 뛰어 들어와 노미를 번쩍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았던 마당이었다. 그랬다. 거기에 다케짱도 있었다. 술에 취해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던 진화를 둘러업고 다케짱이, 그리고 복권이가 있었다.

 

 노미는 순간 어지러웠다. 민화가 달려와 부축하려는데 노미가 손짓으로 민화를 말렸다. 노미는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물항아리에서 물을 떴다. 물을 마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하지 못한 감사기도를 하려는 것이었다. 노미는 그렇게 하얀 그릇에 물을 떠 장독대로 향했다. 그리고 늘 물을 올려놓던 뒤집어놓은 장독 위에 물그릇을 올리고는 가만히 가슴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감사합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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